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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레와 다이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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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식가 (jph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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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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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 부터 약하다는 소리를 줄창 듣고 자랐구. 뼈만 남은 체구로 꼭 추가 밥을 시켜야 하는 먹성때문에 사람들을 놀라게도 하고 물만 먹어도 살찌는 체질들에게 세상이 공평치 못하다는 둥, 억울하다는 등 하는 질투성 발언만 듣던 나니까.
한번도 체중으로 걱정, 저체중으로 걱정한 적은 있어도 살찌는 것은 나와는 별개의 문제 인줄 알았었다.
싱가폴에 와서 초반전에는 허구 헌날 한국음식만 사모하는라고 더 말라가다가 현지식에 적응이 되어가면서는 아침부터 뽁은 국수, 점심에는 어떤 형태로던 한번은 기름위에 굴렀다 나오는 반찬 과 밥, 저녁엔 좀 느끼한 것에서 탈피한다고 간 곳이 맥도날이나 켄테키 아니면 피자 . 이래도 기름끼 때문에 피부걱정 만 했지 체중 걱정은 정말 하지 않고 보냈었다.
근데 일의 사단이 난 것은 고놈의 카레에 맛이 들리면서다. 싱가폴에 와서 어설플때 락사를 잘못 먹은 덕에 대충 그런 색갈인 음식과는 별로 친해 질것 같지 않아서 시도조차 않았었다 . 근데 한번 인도 봄베이에 가서 본토 카리에 칠리빠리 라는 풋고추를 찍어먹어본 후로 시체말로 카레에 완전히 뽕 가버렸다.
종류는 왜 그렇게 또 많은지. 하나씩 골라 먹으면서 가도 다 먹어 볼려면 꽤 걸릴 정도로 같은 카레라는 이름이지만 양념 재료에 따라 나라에 따라 요리방법에 따라 다르게 미식가를 현혹한다.
가령 쌀뜨물에 고추가루 탄것 같은 색깔(말라사), 빨간 색이 더 많은 조금 더 비싼 카레(차이). 뻑뻑하게 요리해서 빵을 찍어먹는 것, 묽은 소스를 밥위에 훌훌 뿌려서 손으로 꼭꼭 눌러서 먹는 카레소스. 하다 못해 고기는 하나도 없이 토마토와 야채만으로 만든 카레 등등…
맵쌉한 인도카레 치킨과 김이 솔솔나는 밥 그리고 카레에 찍어먹는 노란 스낵(빠빠덤).
- 처음엔 왠 밥에 과자가 나와? 하고 의아해 했지만 혀끝 착 감기는 카레밥에 아삭한 스낵을 한입 베어물면 그 될것 같지 않던 오묘한 컴피네이션에 음~ 소리가 절로 난다. 거기에 매울것 같으면 가끔씩 빨아먹는 라임쥬스의 새콤함 까지.
인도카레 보다는 조금 순한맛의 국물에 피시해드를 같이 요리한 중국식 피시해드 카레나 카레는 아니라지만 아삼양념으로 조금 깔깔한 맛이나는 인도네시아식 피시해드 카레.. 그 퐁당거리는 카레 국물속에서 피시의 눈과 주변 볼따귀 살을 요리조리 발아 먹을때의 묘미.
이렇게 점심, 저녁을 카레에서 시작해서 카레로 끝내기를 몇달 한 것 같더니만.
문제가 시작 되었다. 아니 문제가 이렇게 발견했다.
점심 먹을려고 앉아 있는데 아는 사람이 있어서 반가와서 손을 마구 휘저었다. 그런데 한번 힐낏 보더니 무표정. 이번에 손을 입에 대고 모아서 “여보세요” 했다. 한번 눈길을 주더니 다시 무표정.
‘아니, 사람을 무시 하나 ’ 싶어서 이번에 아가서 “ 아이구, 안녕하세요?” 했더니만 간신히 알아보면서 한다는 첫마디가 ‘ 왜 이렇게 퍼졌어요?” 이다.
아 찐것도 아니구 아주 푹 퍼져 버렸구나.
워낙 단순해서 밥때 밥못먹으면 화나고 맛있는 밥을 먹으면 행복지수가 치솟는 내가 그날은 무엇을 먹었는지 기억이 잘 안나는 것을 보니 충격이 꽤 컸나보다.
그건 시작에 불과 했다.
우선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 나 살쪘느냐’ 고 물었더니 전부 그래도 보기 좋다는 외교성 발언만 들어왔다. 지거 아니라고….
그래, 지거라고 생각해 줄 사람에게 물어보자.
신랑에게 “ 자기 나 살찐것 같아” 했더니.
“그걸 왜 지금 물어봐?”
아니 이건 무슨 소리야???????
“그럼 언제 물어봐야 하는데?”
“한 2-3년 전에”
“근데 지금까지 왜 가만 있었어?”
“응 난 포기 한줄 알았지. 그리고 나는 너볼 시간이 별로 없잖아. 잘때 밖에.”
“그래서? 그게 무슨 상관이데?”
“그냥 별로 볼시간이 없으니까 별로 많이 괴롭지도 않거든….”
난 이런 인간이랑 살아요.
그래도 위로 받고 싶었다. 조금 벌어졌지만 나이와 어우러 져서 있어 보인다던가
우아해 보인다던가 뭐 그런것 있잖아요. 우리가 듣고 싶은 말.
이번엔 진짜 내편인 아들, 딸을 앉혀놓고
“니네 생각에 엄마가 뚱뚱하다고 생각하니?”
했더니 정말 말 그대로 분위기 썰렁해졌다. 조그만한 것들 소견에도 요런것은 민감한 문제라는 것을 감파한듯.
잠시 침묵상태에서 애들 숨쉬는 소리만 들렸다.
조금 그런 부분에서 순진한 딸네미가 뭐하고 말할려고 할때
여우같은 우리 아들이 나를 얼싸안으면서
“엄마, 그래도 나는 엄마를 사랑해.”
그날 저녁부터 나는 다이어트 중이라우. 이 미식가가 말이우.
첨부 : 제일 무서운것은 내편일줄 알았던 콩알 만한 자식들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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