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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생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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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눈덮인 산야를 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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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니 (jx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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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0
    4. 2003-12-30

본문

하늘 가득 차가운 햇살이 내려쪼이던, 한반도 상공을 가로질러 남으로 남으로...

구름 사이로 틈틈이 어둠침침한 산들과 골짜기 사이로
채 녹지 않은 눈들이 하얗게 발라낸 생선뼈처럼 드리워져 있다.

얼마전만 하더라도 짙푸른 하늘 아래, 녹음으로 가득찬 그 정겨움이
이제는 누르스름하거나 검은 색으로 변해버린 뒤 하얀 눈을 뒤집어 쓰고 있다.

그 산하의 틈마다, 골짜기마다 여름의 계곡물을 대신하여 눈을 즐기는 사람들이 가득차 있다.

비행기에 오르기 전만 하더라도, 살을 에는듯한 추위에 몸서리를 쳤었으나, 공항에 도착해서부터는 벌써 더운 나라에 대한 걱정으로 자꾸만 뒷걸음질쳐진다.

어린날, 동화속에서 배우던 햇님과 바람간의 내기에서 신사의 옷을 벗기는 대목이 있었다.
바람이 먼저 신사의 옷을 벗기려고 센 바람을 불어댔지만,
실패하고,
햇님이 따뜻한 기운을 불어넣으니, 자연스럽게 신사가 옷을 벗을 수 밖에 없었던...
내가 가장 대답하기 어려웠던 질문 중에 하나가, 어느 계절이 제일 좋으냐?, 나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준비하면서, 나 자신의 간사함에 정말 놀라고 또, 놀라버렸다.

여름이면 겨울을 그리워하고, 봄이면 가을을 그리워하던, 겨울이면 당연히 여름을, 가을이면 봄을...
사시 사철을 돌아봐도 정말 없으면 안될 고마움들이 있었기에...

지금은 언제나 한증막과 같은 이곳을 쉴새없이 드나들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고 보니,
눈덮인 산야의 그 환영이 더 뼈저리게 나의 향수병을 부추기고 있다.

인천 공항을 벗어나기도 전에 한반도의 풍경이 내 발밑에서 사라지기도 전에 나는 이미 향수병의 증세를 느끼고 있는 것이다.

내가 지금 느끼고 있는 그 향수병이 단순히 어린 시절부터 익숙해진 탓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느끼는 그런 종류의 유치한 모습이 아니라, 점차 현실을 현실로 느끼고 난 뒤의 비교적 평온한 상황에서의 판단이라고 믿고 있기에 그 원인은 나에게 무척 심각한 모습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어린 시절 우리나라가 참 못살고, 우리를 도와주던 그 나라들이 참 잘 산다는 그런 상황 인식과, 가끔씩 부딪혀오는 외국사는 내 친척들의 부유한 씀씀이가 나를 자극하여 새로운 세상에 대한 무작정 동경으로 이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성장하여, 기회가 있어, 미국이란 나라부터, 프랑스, 이태리, 네덜란드, 영국, 스위스, 동서독, 중국, 일본, 등등의 나라를 방문하게 되면서, 그곳들도 결국은 내가 익숙하게 살았던 내 조국에 비해서 별로 다를 바 없고, 그냥그냥 사람들이 사는 그렇고 그런 곳들이란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어찌보면 막연한 미지의 상태에서 동경하고, 그리던 그런 것들이 단순한 꿈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거듭하게 되기에, 내가 살아가고 있는 오늘을 무척이나 피곤하고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젠, 틈이 나면 한반도 구석구석을 다시 한번 차근차근 돌아보고 싶다.
내가 한번도 밟아보지 못한 그 산하를 몸으로 직접 느끼고 싶다.
그 동안은 주로 찦차 여행을 즐겼었는데, 이젠 오토바이를 타고 전국을 한번 달려보고 싶다.

찦차로 가보지 못했었던 그 골짜기마다, 나의 발길을 닿게 하고 싶다.
그렇게 함으로써 내가 보는 지구촌이 좀더 가깝게 내곁으로 올 것 같다.
언제쯤 이 그리움의 마음이 벗어질까?

나를 포근하게 감싸줄 그리운 산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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