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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은 사람 (hoys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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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4-07-07

본문

주후 10세기경에 성 브루노라는 훌륭한 인물이 있었습니다. 그는 대주교로서, 수도원의 원장으로서 사람들로부터 많은 존경을 받았던 인물이었습니다.
그가 젊은 시절 수도사로서 훈련에 전념할 때였습니다. 어느 날 그는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한적한 곳을 찾아서 그곳에 작은 움막을 쳤습니다. 그리고는 그 속에 들어가서 조용히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기도에 힘썼습니다. 어느덧 저녁이 되었습니다. 그는 등불을 켰습니다. 그는 또 다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움막 밖에서 개구리들이 개굴개굴 거리면서 울기 시작했습니다. 개구리들의 울음소리 때문에 도무지 집중되지를 않았습니다. 그는 움막 밖으로 나와서는 개구리들을 향해서 이렇게 고함을 질렀습니다. "야. 이 녀석들아! 수도사가 기도하려고 하는데 왜 이리 시끄럽게 떠드느냐? 너희들 때문에 내가 시끄러워서 기도를 할 수가 없다. 그러니 좀 조용히 해라. 알아들었느냐?"
그러자 개구리들은 알아들었다는 듯이 일제히 잠잠해졌습니다. 그래서 브루노는 움막 속으로 다시 들어가 하던 기도를 계속 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웬일입니까? 이제는 언덕 너머에서 잠자던 개구리들마저도 다 깨어나서 더 시끄럽게 울어대는 것이었습니다.
브루노는 다시금 움막 밖으로 나와서 더 큰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러자 개구리들은 다시금 잠잠해졌습니다. 그가 움막 속으로 들어가서 기도하려고 하면 개구리들은 또 다시 시끄럽게 울어대기 시작했습니다.
브루노는 나오고 들어가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습니다. 급기야 그는 너무나도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자기의 심경을 이렇게 토로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하나님께 좀 더 깊은 기도를 드리기 위해서 이렇게 산 속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저 개구리들의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서 제가 도저히 기도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저 개구리들의 입을 좀 막아주시면 안되겠습니까?"
그때 그의 마음속에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이 있었습니다. "너는 왜 너 혼자서만 기도한다고 생각하느냐? 저 개구리들은 기도할 자격이 없고, 찬송할 권리도 없다는 말이냐? 저 개구리들을 누가 만들었는지 생각해 보아라. 너 혼자서만 기도한다고 하지 말고, 네가 저 개구리들과 더불어서 함께 기도하며 찬양한다고 생각하면 안되겠느냐?"
브루노는 새로운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지금까지 자기 혼자만 기도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까 개구리들이 함께 기도하고 함께 찬송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는 감격에 찬 음성으로 개구리들을 향해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오, 개구리 형제들이여. 내가 잘못했습니다. 이제부터 우리 함께 하나님께 기도하십시다. 마음껏 소리 높여 하나님께 찬송하십시다." 그랬더니 개구리들이 그 소리에 화답이라도 하는 듯이 더 큰 소리로 개굴개굴 거리면서 울기 시작했습니다.

개구리의 소리가 변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무엇이 변한 것입니까? 개구리들의 울음소리를 듣는 수도사의 시각과 관점이 달라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있어서 하나의 고질적인 문제가 있다면 우리 자신의 관점에서만 바라보고 해석해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관심을 기울이기 보다는 그저 우리의 주장, 우리의 고집을 내세우면서 그것을 관철시키려고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일을 하면서도 마치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처럼 착각할 때가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의를 세우는 것이 아니고 자기들의 의를 고집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나라를 허물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하나님의 의를 세우는 것처럼 생각을 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자기들의 의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고 말았습니다. 로마서에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열심은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지요.

지금이야말로 내 뜻이나 내 고집이 아닌 온전한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할 수 있도록 지혜를 구하는 우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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