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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생을 통해서 가장 어려웠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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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 사람 (hoys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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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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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우등생은 맨 마지막까지 자리에 앉아 시험지를 내지 않고 미적거리더니 무거운 발걸음으로 선생님께 와서 답안지를 내놓으며 "선생님, 빵점 주세요"라고 힘없이 말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너무 감격하시어 "네가 시험에 빠지지 않으려고 얼마나 애썼는가를 내가 보았단다. 너는 이제 고백함으로써 승리했다. 너는 정말 훌륭한 학생이구나"하시며 그를 힘껏 껴안아 주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일생을 통해서 가장 어려웠던 일은 무엇이었습니까?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에 가장 힘들었던 일이 무엇인가 말입니다. 돈을 버는 일이었습니까, 아니면 출세하는 일이었습니까? 가장 어려운 일은 진실을 지키는 것입니다.또한 회개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죄인된 우리로서는 정말이지 회개하기가 어려운 일 중의 어려운 일입니다. 성경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말씀하고 있듯이 모름지기 세상에는 의인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문제는 얼마나 철저하게 회개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사람이 죄 때문에 망하는 것이 아니라 회개가 없어서 인격도 나라도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란 가장 어려운 일이요 귀한 일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성자 프란체스코의 일화 중에 다음과 같은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의 제자 한사람이 기도하는 중에 환상으로 천국을 구경했다고 합니다. 그 곳에 크고 작은 보좌들이 늘어서 있는데, 그 중에서 유달리 크고 화려한 한 보좌가 눈에 띄었다고 합니다. 그는 궁금하여 천사에게 이 보좌가 누구의 것이냐고 물었습니다. 천사는 대답하기를 이 자리는 세상에서 가장 겸손한 프란체스코가 않을 보좌라고 설명하는 것이었습니다. 제자는 자기 스승이지만 너무 높아지는 것에 시샘이 나서, 어느 날 조용히 프란체스코에게 물었다고 합니다. "선생님, 선생님은 자신을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러자 프란체스코는 "나는 세상에서 가장 악한 사람일세. 가장 큰 죄인이야"하고 대답하는 것이 아닙니까? 제자는 "선생님, 그것은 위선이요 거짓입니다. 세상에는 얼마나 나쁜 사람들이 많은데 성자로 일컬어지는 선생님께서 어찌 그런 말씀을 다 하십니까? 그것은 정말 잘못된 거짓말입니다"하고 반박을 했습니다. 이 때 성 프란체스코는 기가 막힌 대답을 했습니다. "자네가 날 잘 몰라서 그런 걸세. 나는 참 죄인이야. 만일에 하나님께서 내게 베푸신 그 큰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 베푸셨다면, 그들은 모두 나보다 훨씬 더 훌륭한 사람이 되었을 것이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오늘의 내가 있는 것일세." 이런 간증을 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을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어느 정도의 사람이라고 생각하느냐 말입니다. 바울은 자기가 죄인의 괴수이며,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이고, 교회를 핍박한 자이기에 어떤 핍박을 받아도 자신은 할 말이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는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도 말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몸을 쳐 복종시킨다는 말도 합니다. 그의 말을 좀 쉽게 풀이하면, 자신은 못나고 나쁜 기질이 있어서 늘 자기를 쳐서 복종케 한다는 것입니다.
다윗도 회개한 죄인입니다. 그는 말하기를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라고 날 때부터 근본적으로 죄인이었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이것저것 논할 것 없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니 회개하는 마음으로 평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는 가정 문제로부터 정치에 이르기까지 항상 회개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감수했습니다.
회개는 은혜의 길이며 생명의 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회개하지 못하는 것입니까?
사단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우리가 회개하지 못하도록 술수를 쓰며, 우리는 그 술수에 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사단은
첫째, 우리를 교만하게 하여 회개하지 못하게 합니다. 이것이 사단의 지혜입니다.
둘째, 변명하게 하여 회개의 기회를 놓치게 만듭니다. "너만 죄인이냐"고 얼마든지 변명 거리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의 잘못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시키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뿌리깊은 것으로 태초에 에덴 동산에서부터 내려온 것입니다. 아담은 처음 하와를 만났을 때 너무 좋아서 "이는 내 살 중의 살이요 뼈 중의 뼈"라고 기가 막힌 사랑의 표현을 했습니다마는 범죄한 다음에는 어떻게 말했습니까? 하나님께서 왜 선악과를 먹었느냐고 아담에게 물으시자 그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이 여자가 먹으라고 해서 먹었습니다"라고 변명을 해 버립니다. 그러고 보면 변명이 얼마나 뿌리깊은 죄입니까? 죄를 정당화하고 남에게 전가하면 회개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단의 역사입니다.
셋째, 사단은 회개의 결과를 위협합니다. 만일 네가 회개하면 이런 망신을 하게 되고, 저런 문제가 생기며, 또 다른 사람에게까지 파급이 되니 회개하지 말라고 유혹하는 것입니다. 결과와 파급되는 다음 문제를 가지고 협박하니 회개할 자유를 잃게 되고, 또한 두려워서 회개할 용기를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넷째, 회개를 내일로 미루라고 유혹합니다. 아직 젊었고 아직도 날이 많은데 급히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회개할 기회를 가로막아 회개의 기회를 놓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눅 19장에 보면 예수님을 만난 삭개오는 달랐습니다. 오늘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셨습니다. 예수님의 얼굴을 딱 보는 순간 자기 죄스런 모습이 확 드러납니다. 그동안에 그는 변명도 많았습니다. 내가 왜 죄인이냐,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을 내가 대신하는 것이 아니냐, 내가 세리 노릇을 한다고 하기로서 내가 어째서 죄인이냐는 등등의 말로 스스로를 변명했습니다.
그러나 이 시간은 그것이 아닙니다. 지금까지는 내가 왜 도둑이냐?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보니 내가 도둑입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자에게 주겠습니다."고 합니다. 십분의 일이 아닙니다. 절반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는 그동안 쌓고 또 쌓고 모으고 또 모으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만족을 못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랬던 그가 예수님을 만나자마자 자기 재산의 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겠다는 것입니다. 삭개오에게 새로운 부요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 마음 속에 다른 것으로 아무리 채우려고 해도 채워지지 않았던 빈 공간이 넘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회개의 축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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