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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이 없는 집은 정말 돌아 가기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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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식가 (jph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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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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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다가 일어나 쳐다본 남편 얼굴과 눈도 썰렁하다. 아이가 없는 우리 사이는 무엇일까. 남편도 나도 별로 할 말이 없다. 아이들이 주위에 있을때 아이들 머리위로 쳐다만 봐도 꽉 찬 느낌으로 말이 필요가 없던 그것과는 많이 틀린 느낌이다.
생각하면 재미있는 것이 우리 둘이 같이 살기로 했을땐 없던 아이들이 이렇게 우리 삶과 관계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다니. 아이들이 없는 방에 아이들의 물건은 나를 많이 외롭게 한다. 잠시 할아버지 댁에 놀러간것도 이런데 앞으로 있을 수많은 떠나 보냄을 어떻게 이겨내나, 갑자기 엄마 노릇이 무서워진다.
아이는 독립체이고 내가 너에게 묶이지도 너를 나에게 묶지도 않겠다고 수없이 다짐했고 도토리만할때 부터 의식적으로 하나의 인격체로 볼려고 했는데도 지금의 이 휘청거리는 마음은 내가 한심해 하던 주책엄마와 다를 것이 없다.
아이들에게 무슨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아이들이 있는 공간이 좋다. 그 조잘거리는 소리를 듣고 싶고, 그 작은 손을 만지고 싶고, 그 말랑거리는 몸을 안고 싶다. 놀다가 뛰어들어와서 나는 쾌쾌한 땀 냄새도 맡고 싶고… 그냥 같이 있고 싶다. 이건 첫사랑의 애절함 보다 더 진한 감정이다. 조금만 방심하면 감정이 마구 뚝뚝 흐릴것 같다. 주책없이.
이제야 왜 엄마가 옆방에 있는 나를 시도때도 없이 불러서 확인했는지 알것 같다.
엄마는 그랬었다 내가 대답하면 . “응, 그냥” 이라고.
이제야 왜 아버지가 싱가폴로 대책없이 가겠다는 다 큰 딸네미를 어쩌지는 못하고 마당의 애지중지 하시던 멍멍이를 때리는 것으로 화풀이를 했는지 알것 같다.
아버지는 보내야만 한다는 사실에 그리고 잡을수 있는 방법이 없음에 화가 나셨던 거다.
왜 옆집같이 잘 들리는 국제전화를 자주 드려도 그토록 아쉬워 했는지도.
할 얘기가 없어도 목소리를 듣고 싶으셨겠고
같이 할일 이 없어도 내 체취를 맡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나고 잠자리에 들고 싶으셨겠지. 당신들의 이해의 도를 넘는 짓을 골라 해도 옆에서 있어 주기만 해도.
매일 들어와서 대문을 흔들어만 줘도.
아니 같은 하늘아래 있어만 줘도.
그게 그분들이 바라는 전부였을 것이다. 내가 내 아이들에게 그렇듯이.
아이들은 할아버지 집에서 새로운 환경과 사람들과의 관계를 맺느라고 아마 나를 생각지 않을 것이다. 내가 그렇했듯이.
그래도 서운해 하지 말자. 어차피 그애들의 삶은 그들의 것이고, 그 관계들도 그들에게 많이 소중할 거니까. 그것도 그애들의 시간이니까.
그런데 나는 왜 이제 밥맛도 없는 것일까. 아이들이 없는 집은 정말 돌아 가기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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