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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생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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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 여자가 일을 한다는 것은
  • 화니 (jx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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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3-10-21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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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내가 왜 왔을까라는 질문으로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간혹 있다.
내가 남자란 이유로 해야할 일들과, 책임져야 할 일들,
그냥 조용히 지내고 싶고, 만사가 귀찮을 경우엔
여자의 삶이 참 편안할 것이란 생각이 들고,
뭔가 열성적으로 활동하고 싶을 때에는 남자인 것이 못내 자랑스러운 경우가 있고,
아뭏든, 남자로 선택된 것에 대한 후회는 거의 하지 않았었다.
후회가 없었던 이유는 매우 단순하다.  
어차피 선택된 삶을 바꾸기가 쉽지는 않기 때문이다.
고민하다가 고민의 시간이 지나면 쉽게 치유되는 일이기에 그냥 시간을 보내다 보면 괜찮을 것이란 생각으로 체념하곤 했었다.

미식가님의 힘찬 필체를 대하다 보면 보통 왠만한 남자들도 갖지 못하는 강인하고 도전적인 성품을 갖고 있어 보인다.  매우 활달한 현대식 여성이란 수식어를 붙이면 본인은 어떻게 생각할른지 모르지만...

내가 어려서부터 내린 결론 가운데 하나가 있다.  
남자는 결혼을 하고 나면 남자가 아니라 가장이란 점이다.
그리고, 여자는 애기를 갖고 나면 여자가 아니라 어머니라는 점이다.
물론 반대로 해도 상관은 전혀 없다.
단, 여러가지 사회 구조상(이 구조는 하루 아침에 형성된 것이 아니라 인류의 역사 속에서 가장 편리한 방법으로 합리적인 방법으로 숱한 시행착오속에서 정착된 것이다.) 남자가 돈을 벌어오고, 여자가 어머니로써 자식들을 돌보는 것이 정답이라고 생각을 했었기 때문이다.  
파충류나 곤충과 같이 젖을 먹여서 키우지 않는 동물을 제외하고 자식 키우는 일에 아버지의 역할이 중요하게 간주되는 경우는 극히 미미하다.  젖을 먹여서 키우는 대부분의 동물들은(인간을 포함하여) 아기를 키우는 일이 여성(혹은 암놈)으로서의 가장 기본적인 의무에 속하고 있다.

가장 서구화된(우리가 흔히 말하는 잘 발달된 문명) 민족들도 대부분은 아버지의 이름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  자신의 선조를 가장 잘 따라갈 수 있는 혈통은 결국 아버지, 남자에게만 있는 Y염색체의 역할이 중요한 것이다.  XX 염색체는 세대가 교체되면서 둘다 다른 혈통에서 따라 들어와서 전혀 다른 종족이 형성될 수도 있지만, XY 염색체 가운데 Y 염색체는 어떤 경우에도 바뀌지 않고 그냥 그 모습을 이어 나간다.

이미 그렇게 창조된 것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물론 요즈음은 우유를 먹여서도 자식을 키울 수 있고, 아버지도 그 역할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내가 가장 중요시하는 부분은, 자식을 키우는데 있어서 최소한 두 부모 가운데 한사람은 희생을 해야 한다고 생각을 한다.  둘다 사회 생활을 하면서 자식에게 보내는 시간을 줄임으로서 자식이 겪게 되는 아픔은 세상 어떤 돈과 명예를 다 주더라도 바뀔 수 없는 것이다.
적어도 자식이 이유기(3-6세)까지는 무조건 부모중 한사람이 같이 있어야 하고, 가능하다면 육체적인 변화에 의한 이성에 대한 눈을 뜨고 새로운 세상을 향해 홀로 서기를 시작할 시기(12-18세)까지도 같이 있어주는 것이 그 아이에게는 정신적인 지주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자식을 갖지 않고 여자가 일하는 것에 대해서는 추호의 반대를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자식을 집에다 둔체로 직장으로 향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정말 헤아리기 힘이 든다.  그 아픈 가슴을 무엇으로 보상받을 수 있을른지에 대하여...

싱가포르의 현실을 보면 참 안타깝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부부가 함께 벌어야 그럭저럭 자가용이라도 타고, 콘도라도 월세를 내면서 장만할 수 있는, 자식들은 외국에서 들어와서 주인 눈치만 보는 메이드에 의해서 키워지고 있는,,,  그 나라의 미래는 과연 어떻게 변해갈까?

부모에 대한 포근한 정을 느끼기 보다는 사랑에 굶주린 모습으로 부모와도 일일이 금전적인 계산으로 일관하는 그런 모습 속에서 과연 이들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에 관해서는 무척 회의적인 것이 사실이다.

내가 아는 싱가포르 탁구 대표 선수는 애기를 키우기 위해 지난 6월에 탁구 대표 선수를 은퇴하고, 저녁시간에만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애기를 위해서 엄마가 직장을 그만두기 보다는 아빠가 직장을 그만둔다고 하기에 왜 메이드를 두지 않느냐고 했더니, 그의 아내가 싫어한다고 했다.  친할머니까지 함께 지내는 집에서 애기는 부모중에 한사람이 키워야 한다는 가장 자연적인 순리에 따라서 직장을 그만두고 애기를 키우는 그 모습 속에서 싱가포르에서 또다른 희망을 느끼긴 하지만...

여자가 직장 생활에서 호응을 받지 못하는 이유 가운데 가장 큰 부분이 육아와 성적인 문제에 있는 것은 사실이다.  육아를 위해서 일찍 퇴근해야 하고, 남자들 가운데서 밤새도록 함께 일을 하다보면 자칫 엉뚱한 일이 벌어지는 경우도 있다고 의심을 하기 때문에 직장 생활에서의 여자의 위치는 상대적으로 열악한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문제는 사회 전체가 변화해가야 해결이 되는 것이지, 누군가 한두 사람에 의해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 문제가 심각한 것이다.
누군가가 선구자적인 역할을 하고 희생을 해야만 어느날엔가는 법적인 사회적인 제도가 새롭게 나타나고...
마치 오늘날의 민주주의가 설때까지 그 숱한 민주화 투사들의 역할이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그리고 이처럼 힘들게 진화해온 민주주의 제도 자체도 그렇게 완벽하게 적용되고 있는 것 같지 않아서 속상한 것이 사실인 것이다.

숱한 변화의 현실 속에서 무엇인가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노력을 갖고,
그 의지를 펴보기 위해 노력하는 미식가님의 의견에 많은 찬사를 보내면서,
한편으로는 그냥 슬그머니 현실 세상에 동조해가는 편안함을 함께 터득하기를 권유하는 마음이 뒤따른다...

언젠가는 그런 종류의 유토피아가 우리 눈앞에 펼쳐지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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