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생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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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큐리 (liberty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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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4-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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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무래도 읽기 중독인가 보다.

하루에 뭔가를 읽지 않으면 안절 부절한다.  아침 나절 여전히 졸린 눈으로도( 난  전형적인 슬로우 스타터다. 7시 이전에 깨있는 1시간은 이후 3시간으로도 벌충이 안된다.) 신속하게 집안일을 끝내느라 동동거리는 단 하나의 이유는 바로 읽고 싶은 뭔가를 읽을 시간을 갖기 위해서다.

물론 너저분한 상태에서도 읽는 행위는 가능하다. 하지만 단연코 나에게는 유쾌하지 않은 거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을 어찌 너저분한 상황- 빵부스러기담긴 접시와 컵이 난무하는 식탁, 벗어 놓은 옷이 파편마냥 이리저리 뒹굴고, 베개와 이불이 레슬링하는 침대- 에서 즐길 수 있냐고.

마치 신성한 의식을 앞두고 있는 양 , 경건하게 그리고 동선을 최대한 줄여 신속하게 일을 끝내고 커피 한잔을 타서 책상에 앉는다. 뭔가를 읽을 때 책상 만큼 좋은 게 없다. 소파는 너무 푹신하고 뒤로 재껴져서 집중이 안된다. 또 가끔 앉은 상태에서 혹은 잠깐 일어나서 몸을 풀어 주기에는 책상이 최고다.

아침에 읽기 제일 좋은 것은 역시 따끈따끈한 새 소식이다. 지금은 인터넷으로 대신하지만 예전에는 꼭 신문을 읽었다. 아침 일찍 배달된 , 잉크 냄새 솔솔 풍기는 신문은 늘 나에게 유혹적이었다.  저 빽빽한 글자 속에 무엇이 들어 있나. ...딱히 좋아하는 면이 있는 것도 아니고 찾는 기사가 있는 것도 아닌데.

매일 새로운 이야기 꺼리가 있는 것이 좋았고, 가지런한 글씨도 좋았다.신문보다 더 많은 광고 전단지(일명 찌라시)를 통해 어디 백화점에 이월상품을 90프로까지 세일하는지도 알고 , 새로 개업한 피자집에서 써비스 왕창 준다는 소식도 알게 된다.

신문한장 척~ 펴들고 있으면 종이와 내가 끊임없이 이야기를 주고 받는 것 같았다. 신문은 한 줄의 제목으로 나의 시선을 확 끈다. 난 궁금함으로 몸살이 난다. 모야.  뭐가 어떻게 됐다고? 그러면 신문은 다시 아래 조그마한 글씨로 자세히 얘기해 준다. 나는 놀라기도 하고,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실망하기도 한다. 으응.. 그렇구나

지금도 난 인터넷의 바다에서 허우적대면 열심히 뭔가를 건지고 있지만  여전히 종이위의 글씨만 못한 느낌이다. 인터넷의 글씨는 뭔가 ...기계적이라서 싫다. 책과 종이는 나무 느낌이다. 인터넷의 그림은 거의 사진이다. 책은 거의 그림이다. 그리는 사람마다 다른 느낌을 준다. 나의 상상력을 한껏 자극하는 그런 그림. 사진처럼 사실적이지는 않지만.

지금은 그림없는 책을 주로 읽지만 예전 초등때 학교 도서실에서, 황홀한 그림들과 신기한 얘기로 가득찬 책 속에 파묻혀 행복해했던 때가 생각난다. 책과 나 사이의 형성된 보이지 않는 상상의 공간은 다른 그 어느 것보다 흥미 진진하면서도 친밀했다. 나는 그 속에서 울고 웃으면서 쑥쑥 자랐던 것 같다.

중 고등학교때는 긴 시간 책 읽기를 못했다. 뭐 딱히 그 시간에  공부한 건 아닌데 시험이란 놈이 시도 때도 없이 있는지라- 주초 고사는 정말 싫었다- 어디 맘편히 30분 이상 책들고 있질 못하게 했다. 그래서.... 난 단편을 주로 읽었다.  물론  명작만 읽은 것은 아니다. 그 당시 유행하던 로맨스 풍의 글도 읽었다. 하지만 두 세번 봐도 나를 끄는 것은 1900년대 초반 한국 단편선이었다. 우선 하나 읽는데 30분 안쪽이면 되고 학교 도서관에 잘 비치되어 있고, 문장이 아름다왔고, 현대 소설과는 다른 순수한 느낌이 있었다. 다른 나라것보다 우리나라 것이 역시 맘에 쏙쏙 와 닿는 것 같았다.

나는 무슨 교훈 얻을려고 글을 읽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교과서는 재미가 없다. 물론 내용이 좋으면(교훈적이면서) 좋지만 그 글이 주는 총체적인 느낌이 나를 끄는 것이다.  어떤 소재를 다룰때 그 작가의 생각과 가치관이 글속에 확연히 드러난다. 나와 다를 수도 비슷할 수도 있다. 비슷하면 반갑고 다르면 궁금하다. 뭔가 결정이 안되어 답답할때는 그 문제에 대해 나와 다른 관점을 가진 글을 읽는다. 감성이 있는 남자가 쓴 글이나 , 감정적이지 않은 여자가 쓴 글이 좋다. 가장 싫은 것은 현학적이면서 남발하는 글이다.

내가 글 읽기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글 자체가 좋기 때문이다. 문체가 좋은 글은 최상이다.똑 같은 사랑 노래도 심금을 울리는 것이 있고 뻔하디 뻔하고 지루한 것이 있듯이 문체는 작가 고유의 영역이고 어떤 글의 미적 가치를 최대한 올려 주는 장치다. 어떤글을 읽으면서 한없이 아름답다고 느끼고 , 내 맘속을 정확히 꼭 찝어준 듯시원하게 느끼는 것은  바로 문체의 힘때문이다. 아름다운 경치를 보듯, 감미로운 음악을 듣는 듯 맛있는 음식을 먹듯이 나는 그렇게 글을 즐긴다.

누가 책을 마음의 양식이라 했지. 맞는 말인 것 같다. 먹어도 먹어도 맘이 허하고 머리가 텅 빈 듯할 때, 정말 뭐라도 눈 속에 집어 넣으면 조금은 나아진다. 특히나 난무하는 외교성 발언과 밑도 끝도 없는 가십성 수다에 식상한 날은 맛있는 글 하나가 간절해져서  인터넷으로 책방으로 이리 저리 헤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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