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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 대부분에 월급쟁이들이 자존심 상해서 이야기 못하는.
- 토끼엄마 (boyung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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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05-07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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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다가 이런 긴 글을 단숨에 쓸 정도의 정열까지도 겸비하신분, 같은 여성으로서 존경스럽습니다.
싱가폴에서는 아니지만, 저도 일을 하고 있는 입장에서 님의 의견에 많은 공감을 느낌니다.
계속 좋은글 많이 올려주세요.
>집에서 살림만 하는 결혼한 친구가 토요일 오후에 싸운 이야기를 한다.
>
>토요일 오전 근무를 마친 신랑과 같이 모처럼 만에 가족전부 외식을 하기로 하고 부푼 마음에 애들을 준비시키고 화장도 마치고 전화 오기만을 기다리는데
>1시가 되도
>2시가 되도
>전화는 없고,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면 바쁘다고 빨리 끊으라고 하더니
>
>결국 3시가 훨 넘은 시간에 집에 들어와서는 갑자기 현장에서 일이 터지는 바람에 수습하다가 윗사람이 점심식사를 같이 하자고 해서 대충 먹었으니 그리고 너무 피곤하니까 점심을 집에서 먹는 것이 어떠냐고 하는 신랑과 한판 하셨다는 이야기다.
>
>너무나 속상해서 너만 입이냐,
>만날 밖으로 다니면서 좋은 것만 먹고 다니니까 집에 있는 사람은 생각도 안하고 등등
>소리를 지르며 그리고 목이 빠지도록 기다린 본인과 애들이 너무 불쌍하고 속이 상해서 마구 울었다고도 했다.
>
>같은 여자로서 “그래, 참 니네 신랑 너무 했다” 정도로 박자를 맞추어 줘야 할 분위가 였는데 푼수같이 훈수를 두다가 친구만 삐지게 해서 결국 “니네 신랑은 이해심 많은 마누라 둬서 좋겠다” 며 찬바람을 내면서 가버렸다.
>
>그 친구에게 사과하는 마음으로, 하지만 절대 잘난척 한것이 아니라 정말 월급쟁이의 비애를 같이 나누어 보고자 몇자 적는다.
>
>나도 어려서부터 잘못 알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남자들이 밖에서 잘 먹는 다는 것 하고 출장을 가면 무진장 재미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성공한 커리어 우먼을 그릴 때 항상 화려한 파티장이나 외국을 드나드는 큰 가방과 서류가방을 든 여자를 생각했을 정도로……
>
>하지만 내가 직접 직장생활을 하면서 외식이라는 것이 결코 즐겁게 좋은 음식을 먹는 시간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으면서부터 나의 월급자 로서의 고달픔이 시작되었다.
>
>우선 내 몸 컨디션하고는 관계없이 시간이 잡힌다.
>
>나는 무진장 피곤한데 전부 부서가 전부 모이는 자리라서 빠질수 없어서,
>몸이 아파도 이자리는 중요한 누가 참석하기에 안 갔다가는 미운 털 박힐 까봐 가야 하는 위무방어전,
>별로 가고 싶지 않은 자리지만 자꾸 빠지면 나중에 왕따 당할까봐 아니면 사소한 정보라도 노쳐버릴까봐
>등 누구도 강요한 사람은 없지만 이건 완전히 강제성을 띤 시간외 근무라고 볼 수 있다.
>
>메뉴를 내가 원하는 대로 할수 없다.
>나는 죽어도 국수가 싫은 사람인데 윗사람은 짜장면을 무진장 좋아한다. 같이 중국집에 갔어도 선득 윗사람과 다른 음식을 시키지를 못하게 된다든지.
>치통으로 아스피린을 2-3알씩 삼키면서도 일주일 내내 갈비집을 돌아야 할 경우도 있고 싱가폴에서는 새우와 해물 때문에 콜레스테롤의 수치가 위험수위에 이르렀어도 싱가폴을 방문하시는 분마다 원하는 해물음식 타령에 해물집에 출근부를 찍어야 한다 든지 등
>
>같이 간 상대가 재미있는 분일때는 그래도 다행이지만
>같은 소리를 고장난 축음기 돌리듯이 재미도 없는 이야기를 하고 또 하는 웃분과의 식사. "그 이야기 지난 주에 하셨는데요" 라던가, " 이번으로 40번째를 기어이 채우셨읍니다" 라고 입방정을 떨고 싶은 것을 꾹 참고 어떤 대목에서던지 나보고 대신 이야기 하라고 해도 막힘없이 이야기 할수 있을정도로 많이 들은 이야기를 정말 처음 듣는 무진장 흥미진진한 것으로 가장하며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 나면 온 안면근육에 마비가 오고 목이 뻑뻑하다.
>
>더한 상대는 밥먹는 시간에도 회의실이나 주주총회 장소로 착각하는지 지난달 실적비교 라든지 다른 부서와의 경쟁상황 등 진지한 문제로 열변을 토하는 관계로 입에서 침이 깔아놓은 음식에 골고루 튀고, 정말 입맛은 커녕, 씹고 있던것을 목으로 넘기기가 쉽지 않다. 거기다 밥먹는 시간에도 끊임없는 쏟아지는 업무지시 및 결코 간단하게 대답할수 없는 업무에 대한 질문.
>
>밥을 먹자는 것인지, 일을 하자는 것인지.
>
>남이 들으면 배부른 소리라고 하겠지만 그 배가 부르다는 것은 만족한 포만감이 아니라 스트레스와 의무감을 불만족이나 정서불안 이라는 소스를 쳐서 긴장속에 위장에 마구 쑤셔넣는 배부름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내가 배가 고파서, 먹고 싶다는 충동에 의해서, 원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과 좋은 분위기에서 먹는 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
>누군가 외교는 파티장에서 샴페인 터트리는 소리를 배경으로 싸우는 소리없는 전쟁이라고 했는데 회사 회식이 그 정도라고 하면 너무 과장 일까?
>
>출장에 대한 꿈은 정말 많았었다.
>
>낮선 도시에서의 저녁식사,
>수영장이나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특급호텔방에서 아침에 눈을 뜨면 어메리칸 아침식사나 뷔페식 식사.
>일정 사이 사이에 가보는 온갖 관광명소,
>품위있게 항공백을 돌돌돌 굴리며 나라과 나라를 날아다니는…등등
>
>웬걸 실제로 해보니 이 출장만큼 월급쟁이의 몸을 축나게 하고 서글프게 하는 것도 없다.
>
>비행기 좌석이라는 것이 이사 정도 되어서 비즈니스 석을 앉아야 편한 것이지 이코노믹은 정말 한국에 웬만한 시외버스보다도 더 좁고 그 속에서 꼬그리고 왕창 틀어놓은 에어콘 속에서 오돌오돌 떨면서 한밤을 보낸 뒤 마구 구겨진 옷과 엉망이 된 화장과 텁텁한 입을 가지고 비행기에서 내리자 마자 곧장 회의장소로 간다.
>
>정말 끔찍하다. 맹세코 서류고 일이고 다 집어 던지고 쭉 늘어져서 한숨 자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아진다. – 그리고 눈꼽만 간신히 떼고 속옷도 못갈아 입고, 간신히 하품을 참고 나와 앉은 여자, 별로 내가 꿈꾸는 커리어 우먼의 우아함 하고는 전혀 거리가 멀다.
>
>나라와 나라를 날아다니는 화려한 꿈 또한 이 비행기라는 놈을 잘 몰라서 그렇지. 온갖 보안의 이유로 각종 check point을 지날때 마다 가지고 있는 모든 짐을 올려 놓고 다 들쑤셔서 검사를 한다.
>
>돌돌돌 끌고 다닐때는 폼이 나는 가방이 막상 줏어들어서 보안검사용 책상에 올려 놓을때 마다 이건 웬수 덩어리다. 거기다 여자라고 봐주는 것 없이 다 뒤집어서, 안 빤 냄새나는 양말, 속옷 과 세면도구들이 서류와 같이 뒤죽박죽이 되고. 같이 출장간 남자직원들도 민망해서 눈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몰라 서로 눈을 안 마주칠려고 하고. 이땐 정말 울고 싶어진다.
>
>"남자의 안빤 빨래는 별로 그런 느낌이 없는데 여자의 빨래는 왜 칠칠치 못하다는 느낌이 들까?"
>
>회사는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집단이다.
>
>따라서 한사람 에게 되도록 적은 돈을 들여서 최대의 효과를 낼려고 한다. 이 말은 비싼 비행기 표와 호텔비를 대준 회사는 그 보다 더한 효과를 내기 위해 출장자를 쥐어짠다. 따라서 출장일정이 살인적인 스케줄이 될수 밖에 없다.
>
>나는 심한 경우 7박8일에 10나라를 거친 출장자도 보았다. 마지막 일정이 싱가폴 이였는데 거의 좀비와 같은 형상으로 공항에서 걸어 나왔다. 이런 입장에 일정에 따른 관광지 여행? 정말 천진난만한 꿈이다.
>
>출장지마다의 음식은 또 어떻고. 물론 나라마다 특색있는 음식이 있고 또한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음식도 있다. 그건 관광차 간 팔자좋은 사람 이야기지. 언제 시간이 나서 한국인입맛에 맞는 음식점까지 이동해서 음식을 즐길 시간이 있을까.
>
>어떨 땐 회의장을 벗어나지 못하고 점심은 맥도널드 저녁은 피자 하는 식으로 대충 때우면서 마라톤으로 회의만 하다가 밤 비행기로 돌아와서 아침에 비행기에서 눈을 뜨면 온 몸은 얻어맞은 것처럼 얼얼한데 내가 그 나라를 가기는 했던걸까 하고 의구심이 드는 판에.
>
>친구야, 이것이 현실이고 니 신랑이 살고 있는 현장이다.
>대부분에 월급쟁이들이 자존심 상해서 이야기 못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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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내가 장담할께.
>그날 니 신랑은 집에서 화장하고 애들과 목이 빠지도록 기다린 너보다 더 많이 속상하고
>힘들고 처한 상황에 많이 화가 났을거야. 이제 화 풀어라. 신랑이 불쌍하지도 않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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