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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엄마가 모두 이루어주마"-[성수대교 붕괴 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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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은 사람 (hoys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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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4-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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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모두 이루어주마"

女大生딸이 일기장에 남긴 14가지 소원
[성수대교 붕괴 10년] 승영이는 갔지만…

1994년 10월 21일 아침. 서울교대 국어교육과 3학년 이승영(여·당시 21세)씨는 성수대교 상판과 함께 20여m 아래로 떨어진 16번 시내버스 안에서 목숨을 잃었다.
교생 실습을 위해 강북 초등학교에 버스로 출퇴근한지 닷새만의 일이었다.
성수대교 붕괴로 이날 숨진 사람은 32명. 사고 직후 오열 속에 딸의 유품을 챙기던 어머니 김영순(56)씨는 승영씨가 남긴 일기장을 읽어내려갔다.‘내가 일생동안 하고 싶은 일’이란 구절 밑에 빽빽히 적어놓은 ‘14가지 소원’. ‘장학금을 만든다, 이동도서관을 강원도에 만든다, 복지마을을 만든다, 한 명 이상을 입양한다, 맹인(시각장애인)을 위해 무언가를 한다….’ 11개월전 군인이던 남편을 과로사로 잃고 흔들리던 어머니였다.
“승영아, 네 소원을 이 애미가 모두 이루어주마.” 어머니는 흐르는 눈물을 닦아냈다.

어머니는 딸이 입버릇처럼 말하던 “죽으면 장기(臟器)를 남에게 주겠다”는 약속을 생각했다. 하지만 딸 시신이 제대로 수습된 것은 장기 기증을 위한 시한(時限)인 ‘사망후 6시간’을 넘긴 뒤였다. 어머니는 대신 고려대 의과대학에 시신을 해부 실습용으로 기증했다. 딸의 소원을 절반만큼이라도 들어주고 싶어서였다. 손에 쥔 보상금 2억5000만원은 전액 교회(남서울교회)에 장학금으로 기부해 ‘승영장학회’를 만들었다. ‘장학금을 만든다’는 딸의 소망을 이룬 것이다. 어머니 스스로도 전도사가 돼 호스피스(죽음을 앞둔 사람을 돌보는 봉사자)에 뛰어들었다. 그후 10년….

그동안 형편이 어려운 신학대학원생 50여명이 승영씨의 목숨과 바꾼 장학금을 받았다. 장학생 중에는 청각장애인이면서 같은 처지의 장애인을 모아 공동체를 꾸리는 사람, 암(癌)을 이겨낸 뒤 말기 환자 병동에서 기타로 음악을 들려주는 사람도 있다.

인천시 부평구 산곡1동 백마마을 산곡중학교 뒷골목. 이곳에서 승영장학금을 받아 작년에 뒤늦게 신학대학원을 마친 최만재(47)씨는 ‘작은손길 공동체’를 만들었다. 무허가 월세 건물이지만 파지(破紙)를 주워 연명하는 65세 이상 노인 11명을 모아 식사를 무료로 제공하는 공동체다. ‘복지마을을 만든다’는 승영씨의 소원은 이렇게 장학생들의 손으로 이루어졌다.

이들은 누가 연락하지 않아도 승영씨의 기일(忌日)이 되면 해뜨기 전 고려대 의대 뒤편의 감은탑(感恩塔)에 모여 꽃을 바치고 고개를 숙인다. 두 손을 모은 모양의 탑에는 ‘이승영’ 이름이 10㎝ 크기로 새겨져 있다. 최씨는 “‘승영’이라는 이름은 ‘오늘은 내가 무엇을 부족하게 살았나’ 하고 되묻게 하는 이름”이라며 “마음이 지칠 때마다 성수대교를 찾아 자신을 채찍질한다”고 말했다.

‘이동도서관을 강원도에 만든다’는 소원도 이루어졌다. 군인 아버지를 따라 강원도 전방 부대를 다닌 어린시절 기억이 만든 소원이다. 작년 8월 승영장학회는 강원도 인제군 서흥리의 한 포병연대에 전천후 이동도서관 차량(흰색 무쏘스포츠)을 기증했다.

이 차량은 7개 부대 500여 장병들 사이를 누비고 다녔다. 휴전선 바로 아래까지 식료품을 나눠주러 가는 ‘무료 PX’ 역할도 했고, 군생활을 힘겨워하는 사병들의 이동상담소 역할도 했다. 부대 조준묵(55) 군목은 “여대생이 남긴 사랑이 10년 후, 여기 강원도 오지(奧地)까지 미치는 모습을 보면 ‘이것이 기적’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사고 직후인 95년 초등학교 때 딸이 쓴 시(詩)를 ‘연기는 하늘로’란 제목의 책으로 묶어 출간했다. ‘신앙소설을 쓴다’는 소원도 이렇게 실현됐다. 이 때 받은 인세(印稅) 400만원은 김장김치가 돼 장애인 재활시설 4곳에 골고루 전해졌다. ‘맹인(시각장애인)을 위해 무언가 한다’는 소원 역시 장학회가 조만간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책 보급을 시작하면 이루어진다.

‘한 명 이상의 아이를 입양하고 싶다’는 소원은? 올해 초 결혼한 동생 상엽(29)씨가 “내가 실천하겠다”고 약속한 상태다. 상엽씨는 “누나는 인생을 길게 볼 수 있는 눈을 주고 갔다”고 말했다. 10년동안 승영씨가 남긴 14가지 소원 중 실현됐거나 곧 실현될 소원은 대략 7가지. 이를 실천한 어머니 김씨는 자신의 모든 것을 따르이 소원 실현을 위해 바치고 교회 근처 연립 8평 원룸에 혼자 살고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찾아간 기자에게 “나는 한 일이 없기 때문에 해 줄 말이 없다”고 했다. “세상에 대한 미움 따위도 없다. 세상에 사랑이 이어지고 있으니 우리 딸, 아직 살아 있는 것 아니냐”는 말만 남기고 현관을 닫았다. 더 이상의 질문도, 사진 촬영도 응하지 않았다.


조용히 모퉁이를 밝히고 있는 이런 사람들 때문에 이 세상은 희망이 있는 것이 아닐까요? 낮엔 해처럼 밤에 달처럼 살기를 소망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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