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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의 어머니 헬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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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촌 (hans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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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3-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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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인물 뒤에는 위대한 어머니가 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뒤에는 경건한 신앙의 어머니 헬레나 황모(皇母)가 있었다. 기독교회는 그의 이름 앞에 성인의 칭호를 붙여 성 헬레나(Saint Helena)라고 부른다.성 헬레나는 그의 아들이 기독교를 공인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했을 때 고령의 나이(70대)에도 불구하고 성지순례에 나섰다. 그의 성지순례는 성지 이스라엘 역사에 새로운 장을 열어 주었다. 성 헬레나의 성지순례 결과 이스라엘 땅에 교회 건물이 세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예루살렘을 방문한 황제의 어머니는 무엇보다 먼저 예수님께서 십자가 고난을 당하신 골고다 언덕과 부활의 현장빈 무덤’을 찾기를 원했다. 당시 예루살렘 교회의 감독은 쉽게 그 장소를 찾아 황제의 어머니를 안내했다. 로마제국이 바로 그 장소 위에 비너스 여신을 위한 신전과 주피터 신상을 세워 놓았기 때문이다. 황제의 명령에 따라 신전과 신당은 말끔히 제거되고 그 자리에 웅대한 교회가 세워졌다. 이것이 성지 이스라엘에 건축된 첫번째 교회인 ‘성묘(聖墓)교회’이다. 서기 336년 완공된 성묘교회는 성지 이스라엘의 수난의 역사와 함께 파괴와 재건이 반복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성묘교회는 서기 12세기 십자군이 재건한 것이다. 그러나 교회 내부에는 콘스탄티누스 1세 때 건축된 교회 원형의 편린이 곳곳에 남아 있어 교회의 역사적 무게를 더해주고 있다.

황제의 어머니 성 헬레나는 베들레헴의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장소에도 교회를 짓기 원했다. 그 위치도 찾기 어렵지 않았다. 그곳에는 로마인들이 섬기던 아도니스 신전을 세워 놓았기 때문이었다. 곧 그 장소에도 아름답고 웅장한 ‘예수님 탄생교회’가 건축되었다. 이 교회도 수난을 당해 파괴된 일이 있었고 오늘날 남아있는 교회 건물은 서기 500년대 중엽에 재건된 것이다. 예수님 탄생교회로 들어가는 입구는 높이가 120㎝밖에 되지 않아 누구든지 이 교회에 들어가려면 머리를 숙이고 몸을 낮추어야 한다. 교회 안에 들어서면 1400년 이상 오랜 역사의 때가 짙게 묻어 있는 11개의 돌기둥이 양편에 각각 2줄씩,모두 4줄로 늘어서 있어 이 교회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말없이 증언해준다. 바로 작년 4월 전 세계의 이목이 예수님 탄생교회에 집중된 일이 있었다. 30명의 아랍 무장 테러범들과 200명에 달하는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이 이 교회를 도피성으로 삼고 39일동안 이스라엘에 저항했던 것이다. 역사적인 이 교회를 공격할 수 없었던 이스라엘측은 테러범들과 협상할 수밖에 없었다.

예루살렘의 성묘교회,베들레헴의 예수님 탄생교회 외에도 성 헬레나는 예루살렘의 동편 감람산 위에도 교회를 건축했고 나사렛에 마리아가 천사로부터 예수님 탄생 소식을 전해 들었다는 장소에도 교회를 세웠다. 성지 이스라엘 역사에서 콘스탄티누스 1세가 정식 등극한 해(312년)로부터 아랍인들이 성지 이스라엘을 정복할 때까지(638년) 약 300년을 ‘비잔틴 시대’라고 부른다. 이 비잔틴 시대는 성지에 수많은 교회와 수도원이 세워졌던 기독교 전성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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