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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의 마지막 밤을 보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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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니 (jx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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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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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생각지도 않게 이곳 싱가폴에 눌러 앉아서 약 2년의 세월이 흘렀고, 그나마 작년에는 매달 한국을 갔었는데, 올해는 완전히 이곳에 묶여서 꼼짝못하고 한해 세월을 그냥 보내고, 겨우 석달, 넉달에 한번씩 계절바뀔 때마다 한국으로 향하다보니...
한국이 그리 먼곳인가 다시금 생각해보게 됩니다.
지난해 마지막으로 크리스마스 다음날 싱가폴로 온 뒤에... 지난 4월 총선때 한번, 8월 중순에 한번, 항상 마음은 매달 한국을 가겠다고 생각하면서도...
9월을 넘기고, 또 10월을 넘겨서,,, 며칠전 우리 직원 비행기표 예약할 때, 그냥 무작정 11월 12일로 예약을 했습니다. 이번부터는 무조건 한달에 한번씩 한국에 가겠다는 마음 속의 다짐을 굳게굳게 다시 하면서...
어린 시절 지방에서 생활하다가, 어느날인가부터는 서울 생활에 익숙해져서, 처음 한두해는 거의 매주 고향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두달, 석달, 반년마다 한번씩 방문하던 그런 시절이 있었는데, 이제는 싱가폴 생활이 나로 하여금 그런 치사한 모습을 보여주게 만들고 있네요.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언제나 열심히 세상을 살아야 한다는 강박 관념이 나로 하여금 아무리 바쁘더라도, 가야할 곳, 들러야 할 곳을 빼놓지 말고 참석해야 한다는 쪽으로 이끌다가도, 어느 순간이면 깡그리 잊어버린채, 그냥 적당히 살아가기를 되풀이 하는 삶이 되어 가고 있나봅니다.
이제 남은 삶이 더짧아지고 있음을 온몸으로 느끼면서도, 삶을 정리하는 방향으로가 아닌 무엇인가 자꾸만 새로운 것을 펼치고 싶어 하는 그 마음이 한편으론 대견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론 이러다가 스스로 마무리 못하는 그런 인생으로 끝나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되기도 하네요.
새로운 곳에 살다보면 새롭게 자꾸만 늘어나는 살림살이들,,,
새롭게 늘어가는 이웃들,
함께 정들여 가며 살다보면,
불현듯 미련없이 떠나야할 순간이 다가와도,
감히 용기를 내어 떠나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이 미련, 미련 속의 미련한 삶...
결국은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떠밀려서,
후다닥 정리를 하고 뒤돌아볼 틈도 없이 떠나는 그런 삶이 되고 마는 너무나 바보같은 존재임을 나 자신이 알고 있지만,
천성을 속일 수는 없는것인지...
그래도, 이번에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
뭔가 나름대로 열심히 정리하는 노력을 되풀이해본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이번에는 차근차근 잘 정리하고 떠나게 되길 바라면서...
이러다가, 영원히 정리 못하고, 이곳에 눌러 앉게 되는 건 아닌지...
하나님, 전 싫어요... 추위에 약하긴 하지만, 그래도 더위만으로 일년내내 보내는 것보단, 추위, 더위 적당히 섞어서, 골고루 다음 계절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찬 세월을 보내고 싶어요...
기도하고, 또 기도해봅니다. 그날이 빨리 오기를....
그러면서도 간사한 이마음은 언뜻언뜻 아침에 일어나면, 마치 사형 언도 날짜가 당일까지는 알려지지 않는 특성상, 사형수가 매일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그날이 마지막 날이 아닌가에 대한 나름대로의 노우하우를 가지고 가늠을 하는 것과도 같이, 하루 이틀만 더 있다가 갔으면 하는 바램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네요.
10월의 마지막 밤은 이렇게 조용히 정리를 하면서 문밖으로 할로윈 축제를 시끌벅적하게 즐기고 있는 애들의 소란스러움을 즐기고 있습니다. 인적 끊긴 수영장의 불빛은 평화롭기만 한데, 하늘은 여전히 구름으로 가득 덮혀 있습니다.
그 옛날 병영 훈련 들어가서 한밤중에 팬티바람으로 연병장에 집합해서, 비온뒤에 살얼음이 살짝 덮힌 연병장에서 맨발로 서서 군가 자세를 취한 뒤, 부모님께 대한 감사의 묵념을 하고, ~~~뜻모른 이야기만 남긴채 우리는 헤어졌지요. 그날의 쓸쓸했던...~~~ 10월의 마지막 밤이란 노래를 부르던 기억이 나네요. 그 때는 정말 추웠었는데...
이 무렵이면 첫눈 소식도 들릴 만한데... 이곳, 싱가폴에선 도저히 계절 감각이 생겨나지 않으니, 이일을 어쩜 좋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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