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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이드 쓸것인가 말것인가 5 - 감정낭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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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식가 (jph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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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9-06
본문
노여움
서러움
동정
연민
더 나쁜 자기연민
미움
배신감
질투
근거없는 자만감
논리적이지 못한 비교 같은 것은 안그래도 힘든 외국생활을 더 황폐하게 한다.
상황을 정확히 따져보지 않고 내 주관적으로 무진장 한 동정과 연민에 넘쳐서 천사표 노릇을 하다가
어느 순간 이것이 아니다 싶어 여태컷 질질 흘려운 감정을 추수리느라 반대작용으로 배신감이나 노여움
또는 자기 연민에 떠는 것은 본인에게도 힘든 일이지만 주변사람에게도 참 어이 없는 일이다.
그 대표적인 case가 helper와의 관계가 아닌가 싶다.
한국사람은 굉장히 정이 많고 4계절을 가진 국민 답게 감정이 굉장히 풍부하다. 그리고 좋고 싫고가
분명하다. 하지만 내가 그렇다고 그래서 내가 그렇게 상대를 대한다고 상대도 그러기를 바라는 것은
정말 철저히 우리 생각만 우리식으로 하는 것이 아닐까?
더우기 그 상대가 지금 먹고 사느라고 자식도 신랑도 다 떼어놓고 온 비장한 상태이며, 타고난 국민성 자체가
우리 처럼 그렇게 넘쳐나는 감정이나 정이라는 것이 없는 외국인일땐
우리도 경험이 있지 않은가?
서양사람 특히 미국사람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우리가 얼마나 순간적인 표현력에 인색한가를 많이 느낀다.
작은 것에도 “terribly sorry” 나 “Thank you so much” 라고 말끝마다 늘어 놓는 다던가
조그만 것에 “great” “marvelous” ”fantastic” 같은 코로스를 넣으면 웬 호돌갑인가 싶은것이 괜히 쑥스러워
지면서 그쪽의 넘치는 감정이 거북해 질때가 있는 것처럼 helper 도 우리가 시도때도 없이 퍼붓는 동정
이나 지나친 친절에 심적으로 불편할수도 있지 않을까.
흥미 있는 부분은 helper에 대해서 불평을 하는 것은 여기 현지인이나 한국인이나 똑 같은데
현지인은 일어난 일에 대한 결과, 결과적으로 자신이 얼마나 손해를 보았는지에 더 촛점을 둔다.
따라서 손해치에 해당하는 것만 상쇄가 되면 문제가 없이 다음으로 넘어가는데
한국사람은 감정적인 부분이 참 많다. 경우에 따라선 진짜로 helper를 미워하는데 이런 사람 일수록 전에
helper 에게 우리식으로 “인간적으로”, ”정” 을 너무 퍼붓다가 “배신” 을 당한 전적이 있다.
나중에는 여기 현지인보다 더 지독한 주인이 되어있다.
한국의 인정이 외국에 와서 고생을 하다가 감정적 괴물이 되어 버린 것이다.
주인 본인을 위해서도 참 안된 일이다.
관계가 좋은 감정으로 유지되는 친구나 연인사이가 아니라 고용주와 사용인이라는 사무적인 관계임을
빨리 인식하는 것이 좋다.
또하나, 나를 절대 연민이나 동정으로 그들을 대할수 없게 하는 것은 한치 앞을 내다볼수 없는 비정한
국제정세이다.
각종 자료를 보면 30여년 전만 해도 지금 메이드의 나라로 알려진 필리핀이나 무척 미개한 것으로 인식
하고 있는 인도네시아 등이 한국이나 싱가폴, 홍콩보다 휠씬 잘 살고 잘 나가는 나라였었다.
아는 사람은 다 알듯이 우리나라 장충체육관을 설계해서 건축한 것이 바로 필리핀이다. 싼 노동력
을 이용해서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우리의 기술이 안되서 그때만 해도 기술 선전국인 필리핀이
와서 폼을 잡으면서 지어 준것이다.
그 나라가 잘나가는 나라였다는 것은 남의 나라에 일하러 온 메이드들의 노는 문화를 봐도 알수 있다.
멕도날을 빌려서 꼬깔까지 쓰고 제대로 생일 파티라는 것을 한다. 찍은 사진을 보면 차림이나 하는 짓이
정말 많이 놀아본 허리우드 스타일이다.
남의 집에서 종살이를 하면서도 정신을 못차린다고 중국사람들은 혀를 차며 못 마땅하지만 호크센타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2불짜리 국수 한 그릇으로 한끼를 때우면서 돈 절약한것이 사는 것에 전부 인양
별 부족함을 못느끼는 이곳 사람들 보다는 훨씬 풍요로운 문화를 엿볼수 있다.
문화라는 놈은 돈이 있고 난후에 생기는 것이고 적어도 한시대가 지나갈 정도의 융성한 경제적인 뒷받침이
있어야 노는 문화라는 것이 형성된다고 한다.
수백년 전도 아니고 불과 30여년 만에 국제정세는 이렇게 그들을 제 나라 파티장에서 몰아내 남의 나라
화장실 옆의 구석진 메이드방으로 보냈다.
그야 말로 아차 하는 사이 아닐까.
나는 지금도 어렸을때 쌀이 없어서 밀가루를 한끼씩 꼭 먹도록 장려 받고
공책의 껍데기 부분까지 전부 필기지면으로 이용하고,
수없이 부러지는 질나쁜 몽당연필도 볼펜대에 묶여서 사용하던,
그때의 가난은 화장실까지 따라와 신문지를 오린 것으로 뒷정리를 해야했던 그 시절이 이렇게 기억속에
생생해서 너무 짧은 시간내에 이루어진 지금의 풍요함이 겁나기 까지 하다.
언제까지 이럴 것인가. 얼마나 더 풍부하고 편리해 져 갈 것인가.
30여년 전의 순간의 실책이 지금 세계적인 메이드의 나라로 필리핀을 만들었듯이 우리의
잠깐의 판단미스가 우리 딸을 일본이나 중국으로 메이드로 보내게 되지는 않을까 ? 현재인들이 다
자는 새벽에 배설물과 쓰레기를 치우는 것이 외국 노동자 우리 아들이 아닐까?
너무나 무서운 중국이 따라 오고
10여년의 경제침체를 벗고 일본이 잠에서 깨어나고
미국은 툭하면 북한을 걸고 넘어져서 세계인의 한국 투자를 막고
이제는 자리잡고 살아야 하는 황혼나이에 본국에서 쫒겨나듯 딴나라로 살길을 찾는 옛동료들
귀국때마다 듣는 못살겠다 는 아우성과 본토의 동공화를 눈으로 확인하면서
지금 내가 부리는 domestic worker 에게 동정이나 연민, 또는 그에 따른 반응이 안좋다고 분노에 떨거나
제대로 되지 않은 남의 나라 흉볼 시간이 없다.
비정한 사회를 살면서는 사람의 도리를 하기에도 벅차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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