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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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말기암 진단뒤 24년 나를 지탱해준건 영혼의 호흡인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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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촌 (hans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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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3-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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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풍미 ‘스타극작가’ 오해령씨

1978년 2월, 그는 말기암 진단을 받았다. 서른 여덟살 때였다. 암세포는 십이지장, 임파선까지 온몸으로 전이돼 있었다. 수술도 할 수 없었다. 방사선 치료 한번 하고는 손을 놓았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성큼성큼 다가오는 죽음의 검은 그림자를 그저 지켜만 봤다.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오직 기도, 기도 뿐이었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24년간 그는 길게는 12시간, 짧게는 7시간씩 매일 기도했다. 산중 스님들의 장좌불와 다를 게 없었다. 내 마음 속의 불성과 진리를 찾아가는 스님들과 달리, 절대자에 대한 온전한 순명과 절대자와의 만남과 일치를 추구하는 것이 다를 뿐이었다.

오혜령, 그는 한 시대를 풍미하던 스타 작가였다. 신은 그에게 너무 많은 것을 주었다. 여럿에게 나누어 줄 수도 있는 것을 그에게만 허락했다. 이화여고, 연세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64, 65년 중앙일간지 신춘문예에 잇따라 당선됐다. 연극영화예술상 신인상, 연극대상도 수상했다. 76년엔 36살의 나이로 세계언론인작가대회 사무총장에 뽑히기도 했다.

그러나 밝음은 어둠과 짝을 이루듯이 누구도 이겨내기 힘든 시련이 그의 찬란해 보이던 삶을 휘감았다. 77년 그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숨이 멎는 대형사고였다. 72시간 뒤에야 가사상태에서 깨어날 수 있었다. 소생은 했지만, 그때 얻은 관상대동맥경련증은 하루에 한번씩 그를 생사의 경계로 떠밀곤 했다. 조금만 과로해도 숨이 멎고 졸도하곤 했다. 암 진단을 받은 것은 이듬해였다. 비록 기적적으로 암을 이겨내긴 했지만, 지금까지 지독한 저혈압(60-40)과 만성위염 좌골신경통 등 39가지의 병을 안고 살아야 했다. 그가 그토록 간절하게 사랑하던 신은 사실 잠깐의 행운 뒤에 오랜 불운을 안겨준 셈이었다.

78년 십이지장등에 암세포
지금도 39가지 병과 동거
"소외된 삶 돕는다" 약속
평화의 집서 아이들 돌봐
"하루 8시간 하나님과 교감"

그러나 그는 성한 사람보다 더 많은 일을 한다. 하루에 단 ‘1분 동안’의 짬도 내기 힘들다고 한다. 13명의 가족을 온전히 그의 힘으로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들은 모두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는 죽음 앞에서 절망에 빠져있을 때 ‘다시 살면, 소외된 사람을 위해 내 몸을 바치겠다’고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지난 83년 평화의 집을 개원했다. 처음엔 무의탁 노인들을 돌봤지만, 지금은 의지가지 없는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이 집을 거쳐간 노인은 백여명이고, 아이들은 27명이라고 한다. 경비를 줄이기 위해 일하는 사람도 쓰지 않는다. 한때 회원들의 회비로 운영했지만, ‘도움을 줘야할 사람이 받는데 익숙해지는 것 같아’ 6년전부터 회비도 받지 않고 있다. 주로 자신의 책 인세 등으로 경비를 충당했다.

‘일하느라 바쁘면 기도시간을 줄이면 되지않는냐’고 반문할 사람도 있겠지만, 그에게 기도는 에너지의 원천이고 평화의 샘이다. 기도시간을 줄이고 줄인 게 지금의 여덟시간이다.

그는 아침 여덟시 느즈막히 잠자리에서 일어난다. 주변정리를 하고 10시 아침식사를 준비하러 나갈 때까지 묵상에 든다. 11시 식사가 끝나면 다시 낮 1시까지 다시 기도시간이다. 2시 점심 식사를 차려준 뒤 빨래 청소 쇼핑 등 살림살이를 챙긴다. 6시반이면 다시 부엌으로 든다. 다시 밤 9시부터 10시반까지 기도하고, 가족들이 모두 잠자리에 든 것을 확인한 뒤 자정부터 새벽 4시나 5시까지 깊고도 긴 기도 삼매에 빠진다.

아침기도는 묵상이다. 침묵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다. 세간의 말로 이른바 명상이다. 낮과 저녁시간은 증보기도다. 가족과 이웃과 공동체의 평화를 위한 기도다. 밤에서 새벽으로 이어지는 기도는 이른바 관상기도다. 일체의 상을 여의고, 마음으로 하나님을 보고, 예수님의 사랑을 만나는 시간이라고 한다. 이뭐꼬 등 화두를 들고 정진하는 선방 수좌들의 참선수행에 해당하는 기도다. 화두에 해당하는 것이 ‘하나님은 누구이고 나는 누구인가’이다. 79년 암을 이겨낸 뒤 한동안 12시간씩 기도를 하기도 했고, 때론 72시간을 꼼짝 않고 기도에 들기도 했다고 한다.

“제가 삶의 에너지를 받는 것은 수면이나 먹거리가 아닙니다. 그건 내 육신만 지탱해줄 뿐입니다. 삶의 활력을 가져오고, 헌신의 힘을 주는 것은 기도입니다. 그 분의 사랑 안에 가만히 있는 경험만으로 한없이 평안해집니다. 영혼의 호흡이라고 할까요. 이 과정에서 은총의 빛이 나를 감쌉니다.” 그가 잠자는 시간은 하루에 서너시간 뿐이다. 음식은 밥 한 공기를 점심 저녁으로 나눠 먹는다. 초인적이다. 그럼에도 그가 무의탁 아이들과 함께 사는 평화의 집을 운영할 수 있는 힘은 오로지 ‘기도의 힘’ 덕분이라고 한다. ‘금방 죽을 줄 알았는데 아직도 청춘이냐’고 친구들이 놀라면, ‘하나님의 에너지를 받기 때문’이라며 기도하라고 충고한다.

“하나님과 나를 있는 그대로 보게 되면 한없는 평화와 고요 속에 들게 됩니다. 그 속에서 어떻게 살아갈 지, 무엇을 해야할 지가 자연스럽게 정리됩니다. 이런 경험이 쌓이고 쌓이면, 어떤 상태에서도 감정적으로 흔들리지 않고, 누가 비난하더라도 마음이 평화로운 상태가 지속되죠.” 불가의 깨침과 다를 게 없다. 그는 자신의 기도생활을 바탕으로 9년째 영성수련원을 운영하고 있다. 기도를 통해 존재 자체의 변화를 추구하는 곳이다.

그는 최근 24년간의 묵상과 기도를 바탕으로 12권짜리 영성묵상기도집 <강여울 풀씨처럼>(이유 펴냄, 각권 6500원)을 펴냈다. 1년 365일, 하루에 한 편씩 따라 읽고 기도할 수 있도록 365편의 기도문을 월별로 12권에 나눠 실었다. 각 기도문 앞에는 지은이가 발췌한 짧은 성경구절이 있어 하나님과의 만남으로 인도한다.

그의 기도는 결코 엄숙하지 않다. 신부님의 가운처럼 무겁지도, 수녀님의 옷처럼 갑갑하지도 않다. 구름처럼 가볍고 바람처럼 자유롭다. 사랑의 밀어처럼 달콤하기도 하다. 그에게 하나님은 그에게 사랑하는 님이자, 영원을 약속한 그의 신랑이기 때문이다.

“밤마다 당신을 그리워하며/찾아 헤매며 써 놓은 낙서 한장,/오늘도 제 책상에서/당신을 기다립니다/잠시 보여 드릴까요/어디 계실까, 나의 님/언제 오실까, 나의 님/어떻게 만날까, 나의 님/님 보기까지는 잠들 수 없네”(12월1일 ‘님을 보기까지는’에서)

2003.12.4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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