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생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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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세주기 2단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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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식가 (jph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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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3-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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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고의 전화면접이 끝나고  집을 직접보는 이름하여 “Open house”.
전화와는 달리 정말 방이 필요한 사람이  직접 주소를 들고 찾아와서 보는 것이기에 우리도 진지하게 생각했다.   서비스쪽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알 것이다.  내가 다 아는 어떤것을  똑같은 소리로 반복해서 이야기 해야 할때의 그 피곤함을 …단지 위안이라면 인종이 섞여사는 싱가폴이다 보니 인종별로 재미가 다양하다는 것 정도??   어쨌든 무척 많은 사람이 들고난 것은 생각이 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들은 이렇다.

우선 홍콩싱글남자.
무척 바쁜 사람이였다.  말도 무지 빠르게 했고 전화상으로도 바쁘다는 말을 여러번 했다.  약속도 요리조리 바꾸는 것이 근처의 난 방을 전부 몰아서 한번에 볼려고 시간을 조정하는 것 같았다.   집에 들어서는 것도  핑 하는 바람소리가 나게 들어와서 내부를 빠르게 둘러보더니 흥정에 들어갔다.   그는  전문적인 장사군이였다.  우선 근방의 방시세와  전철역과의 거리,  그 거리를 버스를 이용시 드는 비용,   창이 복도로 난 방과  그렇지 않는 방과의 가격차이 등 자세한 정보를 가지고  흥정에 임하는데 얼마나 진지한지 마치 수백만불짜리  국제무역에  임하는 자세였다.   정말 대단하다.  황무지 바닷가의 돌산을 깍아서 국제적인 상업도시를 만든 “홍키” 답다, 속으로  감탄하는 사이,  그가 집에 들어온지 10분사이에 방값은 50불이 깍였고 세금은 거의 안내는 것으로 진행되었다. 대단한 저돌력이였다.   대단한 장사군인 그가 마지막으로 실수를 한것은  거의 자신의 요구대로 조정된 조건으로 진행되던 흥정을 잠시 유보시키고 더 좋은 조건을 찾아서 다른 곳으로 방을 보러간 것이였다.   지극히 장사군다운 행동이였으나  아무리 맹탕이라서  얼떨결에  당하기만 한 우리가 정신을 차리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였다.  우린 돈보다도 그의 그 집요성과 저돌력이 무서웠다.   안그래도 외국에서  산다는 것은 아침마다 “ 오늘도 제 이해의 도를 넘는일이 발생하지 말게 하옵시고  나와 너무 틀린 괴물을 만나지 않도록 하옵소서” 라고 기도해야 하는 새가슴의 외국인에게  편히 쉬어야 하는 집에서 나보다 휠씬 강한 누군가에게 생각의 여유도 시간도 없이 몰려야 한다는 것은 정말 끔찍한 일이였다.  아니 너무 무서웠다.  교훈1  –  흥정은 앉은 자리에서 끝을 맺어야 한다.
교훈2. 인간은 특히 외국에서는  나보다 너무 똑똑한 사람을 만난다는 것을  싫어한다.

다음은 말레이 부부.
무진장 큰 사람이였다.  들어서는 순간 부터 집이 비좁은 느낌이 들었으니까,  여자와 남자가 둘다 공평하게 컸는데 색갈이 거무스름하니까 더 커보였다.  말레이라서
이슬람일까봐 걱정을 했는데 웬걸 엄청나게 말많은 기독교인 이였다.  들어서는 순간부터 “하나님의 은총으로 이렇게 아름다운 집에서 훌륭한 형제, 자매들을 만났읍니다”로 시작된 말은 그야 말로 홍수 였다.  말의 홍수.  큰 몸집답게 우렁찬 목소리로  하나님의 은혜로 어떻게 마누리를 만났고,  어떻게 직장을 구했으며 하다못해 지금은 직장에서 밀려서 놀고 있는 것 까지, 특히 방이 필요한 시점에 어떻게 신문에서 광고를 보았고, 전화통화시 얼마나 느낌이 좋았으며 방을 보러온 이 시점까지 하나님이 역사하시고 계획하신 것이라고 역설했다.   자신의 이야기 뿐만 아니라 우리를 취재하듯이 언제 싱가폴을 왔고, 어떻게 서로 만나서 결혼을 했는지등을  다 털어놓게 했고  우리 말이 끝날때마다  “할렐루야 와 아멘” 을 번갈아 가면서 코러스를 넣는 것이 조금만 더 진행하면 손에 손을 잡고 우리죄를 전부 자백하고 통성기도에 들어가야 할 분위기 였다.  

나도 같은 신을 믿지만 말끝마다 그렇게 아무대나 주책없이 끼는 신의 존재가   너무 민망했다.    나보다 더 시끄러운 것을 싫어하는 우리 신랑과 나는  절대 이사람들에게 방을 줄수 없다고   무언의 사인을 보내는 동안에도  이미 여기서 살기로  결정난 것같이 굴었다.
결정적인 것은 방을 둘러볼때 두 양반이 너무 커서 준비된 침대가 작다는 것이였다.  야호.
신은 결국 조용한 우리편이 였다.   그 큼직한 두양반이 한 구석에 서서 조그만한 계산기를 두들기며 계산에 계산을 하더니 우리에게  자신들이 새침대를 사면 우리가 얼마나  보탤수 있는지를 물어봤다.  이제야 말할 기회를 잡은 나는   우리도 사랑하는 형제,자매와 살고는 싶지만  형제, 자매에게 방값이상의 비용을 물리는 것은 신앞에서 절대 불공평하며 그렇다고 멀쩡한 침대를 두고 새로 살수는 없으므로 다른 곳을 알아볼것을 요청했다.  아주 다행으로  나갈때는 더이상 신을 부르지 않고 조용히 갔다.   교훈 – 신은 그렇게 사소한 일에 끼이는 분이 아니다.  예수님도 그랬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아버지의 것은 아버지에게 -

계속 할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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