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생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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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인민공화국 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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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식가 (jph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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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3-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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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애가 싱가폴 병원에서 태어났을때  제일 먼저 달려온것은 산고때 부터 문밖에서 얼쩡거리던 사진사와  종신보험 영업사원이였었다.  그게  끝나자 병원에서 출생 근거자료를 받아서 싱가폴 정부에서 발행하는 아이 출생신고서를 만들고  이제 요놈을 본국에 이름을 올리고 여권도 같이 만들어야 할때 였다.   제나라에 산다면  여권이 급할것이 없지만 그것이 있어야 싱가폴 정부에서 영주권을 정식으로 받을수 있으므로 급한 상황 이였다.   문제는 출생한 놈을 아버지 이름밑에 올리고  여권을 발급해 줘야 하는 싱가폴  주재 중국 대사관에서 생겼다.

신랑이 우리 속된말로 뺑이를 쳤다.  스티븐로드에 있는 대사관을  한 일곱번은 다니는 것 같았다.
아침 9시에서 부터 12까지 밖에 업무를 안보는 “대국”의 대사관이라 아침부터 설쳐서 줄을 섣는데도  기다리다가 중간에 잘려서 돌아 온것이 1번.
접수시키는데 갓난아이 사진에 눈을 감았다고  퇴자.
갓난아이 사진에 아이 얼굴과 함께 두 귀가 안보인다고 퇴자.
혼자 못앉는 아이를 바치고 찍어서 손이 찍혔다고 퇴자.
–        이것을 한꺼번에 일러준것이 아니고 다 한번씩 접수때 마다 하나씩 트집을 잡아서 퇴자를 맞았다.
사진문제가 해결되자 접수는 받았는데 한달이 넘도록 연락이 없었다.
전화는 거의 통화가 불가능하고 그것 알아보느라고  2번.  두번 다 기다리라는 이야기만 들었다.
하도 애가 타서 개별면접을 한 사무관의 이야기로는  중국본토인이 한국인과 결혼한 선례가 싱가폴에 없어서  본국의 지침을 기다린다나…

어영부영 한달이 또 지나서  첫째놈은  6달째 불법체류(?)를 하고 있는 중이였다.  성질급한 마누라에게 들들 볶이다가 다시 신랑이 대사관을 찾았을때는 우리 아이 이름의 중국한자가 중국에는 사용되지 않는  한자라서 안된다는 해괴한  트집을  잡혀서 왔다.  아뿔사  한중사전을 찾아서 만든 이름이라서 한국에서는 사용되는 한자이지만 중국에서는 이미 고사가 된 것이였다.

이미 출생신고서에 이름을 올려서 한자를 바꾸자면 싱가폴 관계 당국하고 다시 수정작업에 들어가야하는 지겨운 행정적인 문제가 있었고  또 내 아이의 첫 세상신고식이  행정부서의 횡포에 의해 바꾸어지는 것이 참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우리나라에서는 쓰고 있는 글자인데 안된다니  구석에 물러나 있던 애국심이 다시 발동했다.  

이번에 내가 찾아갔다.  정말 지루하게 긴 줄을 서서 차례가 왔을때 똑같은 소리를 반복했다.  한자가  자기가 못보던 한자라서 안된다고.  지 이야기 끝났다고  다음 상담자에게로 넘어가는 것을 내가 붙잡고 늘어졌다.   창구에 앉아있던 싱가폴 직원이 골치아프니까 중국 사무관에게로 넘겼다

“왜 안되냐 ?  우리나라에서는 쓴다. “
“넌 어디서 왔는데?”
“나 한국에서 왔다.  너도 알다시피 우리도 한자를 쓴다. 이자는 대한민국 한자사전에서 뽑은 글자다”
“한국 사전은 안되고 중국사전에 있는 글자여야 한다.”
“너도 알다시피  한국도 오랫동안 한자를 사용해 왔고 지금도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내가 알기로는 이자는 중국에서 현재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 뿐이지 옛날에는 사용되었던 글자다.  안되는 이유를 모르겠다.”
“어쨌든 안된다.”
지 영어나 내 영어나 한정된 제 삼국어로 다름쥐 체바퀴 돌듯이 계속 똑같은 소리만 반복이 되었다.

반복을 한 몇번 하다 보니까 상대가 대안을 제시 했다.  중국어사전에서 그 자를 찾아서 오면 여권발급해 주겠다는.    곧장  도서관으로 뛰어갔다.  
영어도 신통치 않았지만 중국 한자실력은 더 시원찮고,  도서관의 컴푸터 이용은 거의 맹인 수준이라서 도서관 사서들에게 상황을  떠듬거리며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저는 한국사람인데요.  중국남자랑 결혼해서요… “하고 시작을 하자니 갑자기 내가 지금  이국땅에서 뭘하고 있나 하는 서러움이 밀려왔다.
내 소개가 왜이렇게 시작되어져야 하나,
옛날에는 한마디로 정리되던 나의 존재가 왜 이렇게 복잡해 져 버렸나.
축복속에 진행되어야 하는  자식의 이 세상 신고식 조차도 왜 이렇게 어려운가 등등..
갑자기  내가 처한 환경과  아이의 미래, 거기에 외국생활  몇년의  삶의 무게까지 합쳐져서 설움이 북받쳤다. 안그래도 헤매는 영어가 더 엉망이 되었다.  머리도 꼬리도 없이 문법도 엉망이였지만  옆에 듣는 도서관 사서가  끊임없이 바로 잡아주면서 이야기를 간신히 끝냈다.

중국으로 시집온 이방인 여자가  행정부 직원의 무책임한 무식함 때문에 딴것도 아니고 아이 출생신고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 충분히 이 전문가들의 마음을 건드렸다.   금방 자기들끼리 뭉치더니 자기끼리가 안되니까   중앙국립도서관과  싱가폴 국립대학 도서관까지 인맥을 연결해서
내가 제시한 문제의 한자를 찾아나갔다.   내가 해괴한 한자를 골랐기는 한지 그들중 누구도 이 한자를 아는 사람이 없었고  관련문헌을 찾는것도  족히 한나절은 걸렸다.

드디어 싱가폴 국립대학 도서관의 한 중국어 사전에서 그 한자를 찾았는데 문제는 중국출판서가 아니고 대만출판서였다.  어쨌든  그 사전의 곁장과 그 해당한자가 있는 부분을 복사해서 주면서 꽤 높아 보이는 도서관 직원이  자기 핸드폰 번호까지 적어주었다.  언제든지 대사관 직원이  이 참고문헌에 대해 이견을 제시하면 자기에게 전화 하라고 자기가 그부분에 대해 책임지고 대답하겠다고.  정말 전문가 로서의 자존심이 창창한 모습이였다.

다음날 새벽부터 가서 줄을 섰다.  그날은 핸드폰도 빌려서 갔다.  정말 이번으로  그 지겨운 대사관 행차는 끝내고 싶었다.   다시 그 사무관과 마주 섰다.   꼼꼼히 제시된 자료를 훑어보더니

“안되, 이건 대만거야”
“대만거는 왜 안 되는데 ?”
“어쨌든 중국인민공화국 것이 아니면 안되”
“왜?”
“어쨌든 중국인민 공화국 사전것이 아니면 안되”
이유도 잘 모르면서 앵무새처럼 똑같은 말만 하는 그 사무관이 정말 지겨워 지기 시작했다.
“왜 안되는데?  너 모르지.  안되겠다  너는 잘 모르면서  자꾸 나서니.  너 말고 더 위에 높은 사람, 왜 안되는지 정확하게  이야기 해줄수 있는 사람 오라그래.”
“ 아니야,  높은 분은 전부 지금 자리에 없고 이건 내 권한이야.  해줄수 없어.”
“ 너, 정말  이게 대만출판 사전이라서 안된다고 했다.  그리고 이건 니 권한이라고 했구.”

왜그러나 싶은지 나를 빤히 쳐다 봤다.  아마 책임소재의 문제이다 보니까 조금 캥기는 것 같았다.
도서관 사서와 통화를 시켜줄수도 있었지만 이번만큼은 내식대로 하고 싶었다.  지가 당서열 몇번째 아버지를 두었는지는 모르지만 – 외국 대사관에 나올수 있는 젊은 사람들은 거의 당서열이 백번째 안에 있는 아버지를 둔 사람이 많다고 했다. -  내가 세상을 무서워 하는 것 만큼,  그도 세상이 무섭다는 것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

“ 그래 그럼, 내가 지금 나가면, 나는 이건을 전부 싱가폴 신문과 한국신문 그리고 나아가 대만신문에 전부 알리겠다.   중국 정부가  “중국인민공화국” 아이의 출생신고를 거절하는데   이유가  한자가  대만출판 사전에 있는 것이라서 인정을 하지 않아서 이라고.
대만학회가 뭐라고 할지 한번 보자.”

갑자기 얼굴색이 변해서 잠깐만 기다리라고 하더니 주섬주섬 내 서류를 챙겨서 안으로 들어갔다.
한 10분쯤 있더니  오늘 중으로 여권이 완성될테니 찾아 가라고 했다.  없다던 위에 사람은 문 안에서 불안하게 나를 쳐다보면서 뭐라고 그 사람에게  더 보태는게 아마 빨리 해서 보내버리라고 하는 것 같았다.

한번 더 퉁겼다.  “ 너희는 12시까지 밖에 일 안하잖아,  지금 11시가 넘었는데 어떻게 오늘내로 되니?”  몇번을 걱정말라고 하더니 정말 거짓말 처럼 삼십분도 안되서 우리 첫놈의 여권이 말끔하게 내게 전달榮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는 정중한 사과와 함께.

그날 저녁,  신랑과 한잔했다.   그런 말도 안되는 엉터리 공산국가에서 대접받지 못하는 인민으로 이십여년을 살아온 신랑이 너무 안되서 위로겸 우리아이의 “중국인민공화국” 입국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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