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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생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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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기의 시작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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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니 (jx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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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3-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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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간의 짧은 여정으로 한국을 다녀왔죠.  월요일에 출발해서 값싸고 품질좋은 타이 항공(갈 때는 방콕, 홍콩 경유, 올때는 방콕만 경유)으로 저렴하게 여행을 하였답니다.  한국에서는 정말 정신이 없었네요.  인천에 도착하였더니 하루 건너 하루씩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 때문에 견딜 수가 없다고 난리고, 귀성 고속버스를 타고 가는 와중에도 서울-부산 12시간 돌파라는 뉴스를 고속터미날에서 들여다 보면서 싱가폴에서 인천공항까지 걸린 시간이랑 서울에서 부산까지 걸리는 시간이랑 거의 맞먹는다는 생각에 정말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되는지에 대해서 다시 한번 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아뭏든 고향에서의 추석은 마냥 편안하지만은 않았었지요.  추석 당일에도 성묘를 가면서 언제 매미가 시커먼 먹구름에 구멍을 내고 비를 뿌릴른지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가득 차 있었지요.  

토요일의 싱가포르행 비행기가 이륙하는 순간까지도 태풍으로 인하여 결항되지 않을까 조바심을 내었었구요.  밤새 내린 비로 인하여 남해안 대부분의 지역들이 물난리를 겪고 상당 지역은 전기까지 끊겼다는 우울한 소식을 접하고 있었지요.

다행히 싱가폴의 날씨도 서늘한 분위기에 구름으로 덮여 있어서 공항을 나오면서의 후덥지근한 답답함은 느끼지도 못하고 택시를 탈 수 있었지만, 월요일 아침부터 하루 종일 내리는 소나기와 천둥 번개가 함께 어울어져 내는 분위기 속에서 마냥 답답한 마음이 생기는군요.  비를 좋아하는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창밖으로 내리는 비를 생각하면 매미의 흔적으로 소름끼치는 아픔의 고향 소식을 안떠올릴 수 없는 상황이네요.

점심을 먹으면서 현지인들에게 물어봤지요.  날씨가 많이 서늘한 편이 아니냐고?  우기라서 그렇다고 하네요.  비가 오면 싸늘해지는 그런 계절이랍니다.  언제까지가 우기냐고 물으니 음력설까지는 계속 이런 날씨가 지속된다고 곁에 있던 인도네시아가 고향인 친구가 대답을 해줍니다.  설명을 붙이기를 이곳은 반년은 건기라서 비가 거의 없고, 나머지 반년은 오늘처럼 수시로 비가 퍼붙는 그런 날씨라고 하네요.  

지금 또한번 하늘에는 인삼 뿌리 마냥  불꽃 놀이가 진행되고 2초도 안되어 폭발음이 들립니다.  괜히 내가 지은 죄가 많아서 번개가 날 따라 다니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들기도 하네요.  

같이 일하는 직원들은 태연하게 본연의 일들을 잘 하고 있기에 나만 혼자 더 불안해지는 순간입니다.

이곳의 경치 중에 하나의 큰 특징은 연중 변화가 거의 없다는 사실이지요.  우리나라처럼 꽃들을 심어둔 것도 아니고, 그냥 나무에서 피는 꽃들을 구경하면서 보내야 하는 그런 분위기 속에서, 그렇다고 그리 화려한 꽃들도 아닌 우리나라에서 요즘 많이 유행하는 꽃나무 중에 하나가 백일홍(배롱나무)인데, 그처럼 화사한 꽃도 아니고, 작은 꽃들을 수시로 바꿔서 시가를 장식하는 그런 분위기도 아닌 탓에 많은 답답함이 느껴지지요.  단지 인도의 상당 부분을 잔디로 덮어 두어서 녹색이 많다는 장점이 있다는 면이 그나마 한국보다는 덜 메말라 보이는 것 같기는 합니다만...

아뭏든 이제 반년이 다 되어 가는 싱가폴의 생활, 철없는 어린 아이가 조금씩 걸음마를 하는 그런 상황까지 온 것 같은데, 이미 오랜 세월을 살아오신 분들에겐 아직도 위태위태한 불안감을 주는 것이 사실이겠지요.

그래도 요즘처럼 견딜만한 시원함이 계속된다는 것 만으로도 고마운 마음을 가지면서 이제는 우산을 하나 장만해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우기가 끝나기엔 아직 많은 날들이 남아 있다고 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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