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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경속에 있는 CRM(고객관계관리, 혹은 고객만족) 컨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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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솔로몬 (jglee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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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6-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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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마 7:12)”

우리 인간들은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내고 그것을 구현하여 삶을 보다 가치있게 만들려고 노력해왔다. 그러나 다윗이 전도서를 통해 밝힌 것처럼 우리가 믿는 새로운 것이란 이미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더욱이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앞에서 무엇이 새로운 것이 있으랴.

2000 년부터 내가 일해 온 분야는 업무용 컴퓨터 솔루션 중에서 CRM 이란 분야이다. CRM 은 Customer Relationship Management 로 업체의 입장에서 중요한 고객과의 관계를 새롭게 인식하고 고객의 만족을 유도해 경쟁이 심한 현재의 비즈니스 환경속에서 장기 고객을 확보해 나가는 전략이다. 2000년 전 세계적으로 이 분의 최고를 달리고 있던 S 사에 입사에 그 개념을 처음으로 접한 나는 모든 것들이 그다지 새롭지 만은 않았다. 그 이유는 1995년도 한국의 대기업중의 하나인 H 사를 다닐 당시에 이미 한국에서 붐을 일으키며 지나갔던 ‘고객만족 경영’ 이라는 주제와 근본적으로 별반 차이가 없었던 까닭이다.

이후 S 사를 거쳐 동종업계의 2위 회사인 E 사에 입사한 뒤 기술영업을 맡게 되었고,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자연스럽게 한국시장을 담당하게 되었다. 한국을 출장으로 방문하여 많은 회사의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만나본 나는 이들에게 CRM 의 개념을 가장 쉽게 소개해야 하는 고민을 하게 되었고, 성경속에서 이 개념을 가장 명확하게 풀어 놓으신 하나님의 말씀을 접하게 되었다.

고객을 만족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질문에 대답은,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어떻게 해줄 때 나는 만족스러운가 하는 질문에 대답을 해 봄으로써 자연스럽게 찾을 수 있다. 왜냐하면 나도 누군가에 대하여 고객이고, 내가 대접받기를 원하는 것과 별 다르지 않게 나의 고객도 그렇게 대접받기를 원하는 것이다. 얼마나 간단한가 ?

하지만 그렇게 하는 것은 그다지 쉽지 않다. CRM 시스템을 도입한 많은 회사들이 성공하지 못한 이유를 생각해보면 왜 어렵지 않은 가는 쉽게 유추해볼 수 있다. 대부분의 회사들은 고객을 중점으로 하여 이와 같은 시스템 도입을 착수한다. 하지만 시스템 적용을 해 나가면서 애초에 목표했던 고객 만족 보다는 내부 직원의 사용상의 편의성과 시스템의 효율적인 운용에 중점을 맞추게 되고, 결국은 고객중심의 시스템보다는 내부 직원들의 편리성과 매출 신장을 위한 시스템을 만들고 만다. 뿐만 아니라, 이 시스템을 운용하는 직원들도 자신들의 고객을 향한 서비스 정신은 그대로인 채로 시스템이 CRM 시스템이니 알아서 고객을 만족시키겠거니 하고 넘어간다. 고객만족을 위해 해야만 하는 행위나 정신은 희석되어져 버리고 시스템 도입 이전과 똑 같은 상황으로 돌아가버리게 된다.

이러한 상황을 잘 표현한 한 컨설팅 회사의 표현이 있는데, “NT + OO = EO” 라는 공식이다. NT 는 New Technology 이고 OO 는 Old Organization 이며 EO 는 Expensive Organization 이란 뜻이다. 다시 말해서, 내가 변해야 하는 부분은 변하지 않고 비싼 신기술만 도입하게 되면 쓸모없는 비싼 가치만을 가진 회사가 되고 만다는 것이다.

이것을 우리 신앙 생활에 적용해봐도 동일한 결과가 나온다는 것이 참 재미있다. 내가 누군가를 전도하고 그 대상에게 사랑으로 잘 대해서 하나님을 증거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대부분 전도를 시작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상대방에 대한 배려 보다는 나의 편안함과 나의 목적으로 그 사람을 대하게 되고, 애초에 목표했던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과는 거리가 먼 목표를 향햐 자꾸 발길을 내디디게 된다는 것이다. 내가 받기 원하는 대로 상대방에게 대하는 것이 아닌 내가 주고 싶은 것만을 상대에게 강요하는 것이 되어지는 것도 쉽게 볼 수 있는 현상중의 하나다.

태초부터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우리의 이러한 연약한 부분을 이미 알고 계셨기 때문에 성경을 통하여 서두에 인용한 본문과 같은 말씀을 우리에게 하신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다시 한번 하나님의 전능하심에 무릎을 꿇으며, 우리가 마치 21세기를 변화시킬 새로운 이론처럼 들고나오는 이야기도 이미 새것이 아니라는 것도 놀라울 뿐이다.

오늘 묵상을 통해 결단해 보고 싶은 점들이 있다. 첫번째로, 오늘 말씀에서 주시는 대로 남을 대할 때는 내가 받기를 원하는 대로 남에게 베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상황과 조건에 적절하게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우리의 기도 중에 하시는 성령을 말씀을 의지해야 한다. 예를 들어, 병상에 있는 이웃을 방문했다고 하자. 이때 우리의 생각으로 위로하겠다는 마음만 앞서 무턱대고 얘기를 꺼낸다면 상대방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다. 예전에 나도 그랬는데, 당신이 겪고 있는 상황은 아무것도 아니다 혹은 당신의 죄로 인해 당신이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하는 말들을 건넨다면 과연 위로를 받을 수 있을까? 우리는 이미 성경 말씀을 통해서 이러한 상황을 들었다. 바로 욥과 욥의 친구들의 이야기다. 기도로 성령님께 물어도 대답이 얻지 못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 (내가 믿는 바로는 모든 상황에 성령님은 반응하시고 답을 주신다. 다만, 나를 포함한 우리의 우둔함이 깨닫지 못할 뿐이지.) 가장 쉬운 방법은 상대방에게 물어 보는 것이다.

무엇이 필요하세요, 어디를 불편하신지요, 고통이 어떠세요? 나의 경험으로 보아도 그렇지만 대부분의 환자들은 상대방이 자신의 얘기를 들어주기를 원한다. 그렇다 들어주는 것이다. 듣다 보면 ‘아, 이 사람은 지금 부엌에 있는 것들을 좀 치우고 싶은데 거동이 불편해서 그걸 못하고 있구나’라는 것을 알수 있다. 혹은 사과를 먹고 싶어 하는구나 등등의 원하는 바를 알 수 있다. 문제를 알면 답은 쉽게 처리할 수 있지 않은가 ?

두번째로, 돕고자 하는 혹은 그 사람과의 관게를 잘 만들어가고 싶은 목적과 의도를 가지고 있다면 끝까지 일관성 있게 그것을 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 역시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 주님이 주시는 힘과 능력이 아니고서는 힘든 이야기다. 누군가에게 잘 해주다가 쉽게 표기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주님의 능력이 아니고는, 주님을 닮고자 하는 열정이 없다면 어렵다. 그래서 능력 주시기를 간구하고 기도하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혹시, 과연 하나님께서 그렇게 해주실 건지 의심스럽다면 우리에게 베푸신 신실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보면 알 수 있다.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녀가 선한 일을 행하기 위해 구한다면 절대로 거절하지 않으실 하나님이심을 나는 굳게 믿는다.

마지막으로, 묵상한 본문의 후반부에서 그렇게 하는 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라는 말씀을 다시 한번 더 묵상하면, 남에게 그렇게 하는 것이 하면 좋고 안 하고 싶으면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이 율법이요, 즉 우리가 지켜야 할 법이라는 것이다. 또한 그것이 선지자라는 것이다. 선지자는 하나님께 말씀을 받아 대언하고 백성을 말씀으로써 인도하는 사람이었다. 다시 말하면,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요, 그것으로써 믿지 않는 사람들을 인도하게 된다는 것이다. 신학적으로 죄라는 것은 하나님이 하라고 하는 것을 하지 않는 것과 하나님이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을 하는 것이라 한다. 오늘 묵상한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하라고, 지키라고 말씀 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 앞에 죄가 된다는 것이다.

쉽고도 어려운 말씀. 하지만 하나님의 자녀로써 해야 할 것이라면 당장 시작해야 한다고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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