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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니아 연대기 -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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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로몬 (jglee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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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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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4월 부활절의 고난 주간, 한국 출장을 마치고 싱가폴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c.s.루이스 의 나니아 연대기,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을 보게 되었다. 비 크리스천들에게는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포터와 같은 판타지 소설의 대작이라 불리는 작품이지만, 성경을 사복음서를 아는 사람들에게는 눈물과 감동 없이는 볼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 얘기인 작품이다.
이 영화의 원작인 7권으로 된 나니아 연대기를 쓴 C. S. 루이스는 1898년 아일랜드의 벨파스트에서 태어났다.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중세 문학과 르네상스 문학을 가르치면서 소설, 평론, 동화 들을 썼다. 지성적이며 논리적인 신학자로서 그는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헤아려 본 슬픔》, 《고통의 문제》 들이 작품을 써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나니아 연대기》는 그의 유일한 판타지 소설이면서 가장 대중적인 사랑을 받은 작품이기도 하다. 종교를 넘어서서 보편성을 얻는 주제들로 전세계인의 공감을 얻는 흥미진진한 작품으로 평가되는 《나니아 연대기》 중 <마지막 전투>는 이 연대기를 대표하여 카네기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작품 원작은 총 7권으로 되어있는데, 작가의 의하여 마법사의 조카, 사자와 마녀와 옷장, 말과 소년, 캐스피언 왕자, 새벽 출정호의 항해, 은 의자, 마지막 전투의 순서로 배열이 되어 있다고 한다.
작품의 줄거리는 두 명의 남자아이와 두 명의 여자아이들인 네 자매가 전쟁을 피하여 어느 시골 마을의 신비로운 교수의 집으로 보내지면서 시작된다. 다 자란 듯 하지만 아직도 어린아이 같은 맏형 피터, 그와 별 다르지 않은 둘째 누이 수잔, 그리고 언제나 말썽을 피우며 문제 거리를 만들어 내는 에드먼드, 마지막 제일 어리지만 순수한 영혼을 가진 루시, 이들 네 자매는 엄격함을 강조하는 아주머니(집사인가?)의 통제 속에서 답답하게 지내던 중, 어느 비 오는 날 막내 여동생인 루시의 제안으로 집 안에서 숨바꼭질을 시작한다. 큰 오빠가 숫자를 세기 시작하자 재빨리 나머지는 숨기 시작하는데, 막내 루시가 자기가 원했던 곳을 에드먼드 오빠에게 뺏기자 2층 구석방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곳에는 텅 빈 방이었고 흰 천으로 덮인 옷장 하나만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루시는 흰 천을 벗겨내고 얼른 옷장으로 숨어 들어간 뒤 깊이 숨고자 하는 욕심에 자꾸 뒤 걸음을 치는데, 그러다 문득 자신이 눈으로 덮인 어떤 장소에 이르게 되었음을 알게 된다.
어린 아이 특유의 호기심으로 약간은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걸어가던 루시는 가로등이 서있는 조그만 광장에 이르게 되고 거기서 반인반양인 톰누스를 만나게 된다. 루시를 ‘이브의 딸’이라고 부르는 이상한 톰누스를 따라가 차와 과자를 대접받고 잠시 잠들었던 루시는 시간이 많이 지났음에 놀라 서둘러 옷장 밖으로 돌아와서 오빠와 언니들에게 사과하지만, 루시가 옷장으로 들어간 이후 시간이 흐르지 않은 까닭에 오히려 오빠들과 언니들은 의아해 한다. 루시는 일어났던 일들을 설명해보지만 오빠들과 언니는 어린아이의 천진난만한 상상이라 일축해 버린다. 더욱이 에드먼드는 핀잔까지 주는 바람에 루시는 결국 울음보를 터뜨리고 만다. 자신의 방으로 울며 달려가던 루시가 저택의 주인인 교수님과 부딪히게 되고, 이들을 루시가 말한 일들에 대해 교수님과 얘기하게 된다.
얼마 후, 모두가 잠든 시각에 루시는 살짝 일어나 램프를 들고 다시 옷장 속으로 들어가는데 이걸 본 에드먼드가 루시를 쫓아 옷장 속의 세계, 즉 나니아로 들어가보게 된다. 루시가 톰누스의 집으로 간 동안 이리저리 헤매는 에드먼드를 치듯이 썰매가 지나가는데, 그 썰매에는 자신이 나니아의 여왕이라고 주장하는 백색마녀를 만나게 된다. 에드먼드를 발견한 백색마녀는 나니아에 전해 내려오는 전설, 즉 두 명의 아담의 자손(남자)과 두 명의 이브의 자손(여자)이 와서 나니아의 왕들이 되고, 그러면 백색마녀의 세월이 끝난다는 것을 생각하고 에드먼드를 비롯한 4자매를 죽이기 위해 에드먼드가 좋아하는 터키 과자를 선물로 주면서 나머지 형제 자매를 더 데리고 오면 과자를 더 주겠다고 유혹한다.
마녀가 떠난 뒤 루시와 에드먼드는 만나게 되고, 다시 옷장 밖으로 나온 루시는 함께 다녀온 에드먼드를 증인으로 피터와 수잔에게 이 사실을 말하여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려고 하지만, 에드먼드가 거짓말을 하는 바람에 루시는 다시 깊은 슬픔에 빠진다.
이후 며칠이 지난 후, 이들은 밖에서 크리켓을 하다가 에드먼드가 친 공이 유리창을 깨고 어느 방에 떨어지게 되는데, 그 방이 바로 그 옷장이 있는 방이었다. 집사의 엄격함을 이미 잘 알고 있는 지라, 겁에 질린 이들은 숨을 목적으로 모두 옷장에 들어간다. 서로 밀고 밀리며 4 명의 오누이는 함께 끝나지 않는 겨울 속에 있는 나니아로 들어가게 된다. 루시의 인도로 톰누스의 집을 방문한 그들은 비버를 통해 전설이 이루어질 것을 두려워한 백색 마녀가 톰누스를 체포해 가버린 것을 알게 된다. 비버를 따라 그의 집으로 향하면서 그들은 나니아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나니아의 왕인 아슬란(터키어로 ‘사자’란 뜻이다.)이 자리를 비운 사이 백색 마녀가 반대하는 세력들을 모두 얼음으로 만들면서 왕임을 자처하고 나서고 나니아를 영원한 겨울 속으로 만들어 버린다. 끝나지 않는 겨울 속에서 모든 생물들은 아담의 아들들과 이브의 딸들이 나니아를 회복할 것이라는 전설에 대한 믿음과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살아가게 된다. 무엇보다도 톰누스가 잡혀간 소식 때문에 마음이 아픈 루시는 아슬란이 새로운 병력을 모아 백색 마녀와의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은근히 아슬란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어 하지만, 냉철한 피터와 수잔은 자신들과는 상관없는 일이라면서 그들이 온 세상 속으로 가고자 한다.
그러나, 나머지 형제 자매를 데려오면 더 많은 과자를 주겠다는 유혹에 사로잡힌 에드먼드는 일행 속에서 빠져 나와 백색마녀의 궁전으로 향한다. 이것을 뒤늦게 알아차린 수잔과 피터 그리고 루시는 나니아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더 이상 자신들과 무관한 애기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백색마녀의 비밀경찰인 늑대들의 추격을 피하여 아슬란이 있는 곳으로 향한다. 그곳으로 향하는 도중 잃어버린 크리스마스로 인해 전쟁에 가담한 산타클로스로부터 갑옷과 칼, 활과 치료약을 선물로 받고 이제 겨울의 끝이 멀지 않았다는 소식을 듣고 난 일행은 폭포에서의 싸움 등의 우여곡절을 겪으며 아슬란의 진영에 도착한다.
이윽고 그들은 왕인 아슬란을 알현하는데, 아슬란이 바로 사자인 것이다. 아슬란은 나머지 형제인 에드먼드가 어디 있느냐고 묻게 되고, 그가 백색마녀에게로 갔음을 말해준다. 근심하던 아슬란은 혼자 백색 마녀의 진영으로 들어가 에드먼드를 구해오고, 이를 알게 된 백색마녀는 아슬란에게 와서 이전에 맺은 약속에 따라 에드먼드를 돌려주어야 하며 거기에 상응하는 벌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백색마녀를 데리고 자신의 텐트로 들어간 아슬란은 뭔가 비밀스런 얘기를 나눈 후에 에드먼드를 보내지 않겠다고 선포한다. 하지만, 그 대가로 자신이 돌 제단 위에서 죽어야 함은 숨긴 채로.
4 오누이에게 당부의 말을 해준 아슬란은 저녁 무렵 수잔과 루시에게 할 말이 있다고 그들을 데리고 나와 백색 마녀와 그들의 병사들이 기다리고 있는 돌 제단으로 향한다. 수잔과 루시를 뒤로하고 아슬란은 돌 제단으로 나아가게 되고, 수치를 주기 위해 백색마녀의 병사들이 왕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갈기 털과 모든 털을 깎는다. 그러한 수치를 당하며 아슬란은 자신을 배신한 에드먼드와 나머지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외로운 죽음을 맞이한다. 백색마녀와 그 일당들이 사라지고 그 광경을 지켜본 수잔과 루시가 제단 위의 아슬란의 주검 위에 눈물을 흘리며 산타가 준 치료약을 사용해보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이러한 사실을 모른 채 아슬란의 진영에서는 결전을 위한 준비를 하는데, 왕이 없는 상황에서 우왕좌왕 하던 모든 생물들이 피터가 왕이 되어 줄 것을 요구한다. 피터와 에드먼드가 이끄는 좋은 편과 수적인 면에서 압도적인 우세를 지닌 백색마녀와의 전쟁이 시작되고, 예상대로 피터의 편이 밀리기 시작한다.
한편, 돌 제단 위 아슬란의 주검 옆에서 밤을 샌 수잔과 루시는 슬픔을 간직한 채 일어나 계단을 내려오는데 이상한 것을 눈치 채고 뒤를 돌아보니, 아슬란의 시체가 없어진 것이었다. 그리고 그 뒤에 이전의 당당한 모습으로 부활한 아슬란이 서 있는 것이었다. 아슬란은 이들을 태우고 백색 마녀의 궁정으로 향하고, 그곳에서 얼은 채로 갇혀 있는 모든 생물들과 병사들을 아슬란이 생기를 불어 넣어 살린 후에 이들을 이끌고 전장으로 돌아온다.
열세를 면치 못한 피터의 병사들은 거의 패배할 지경에 이르게 되고, 위험을 느낀 피터는 에드먼드에게 후퇴할 것을 명령하지만, 형의 곤경을 보던 에드먼드는 후퇴하지 않고 피터의 싸움에 합류해서 부상을 입게 된다. 그와 때맞추어 도착한 아슬란과 얼음에서 깨어난 병사들이 전세를 뒤집고, 백색마녀를 물리치고 전쟁을 승리고 이끌게 된다. 전쟁이 끝난 뒤, 아슬란은 전설대로 네 오누이를 동서남북의 4 나라를 다스리는 왕으로 각각 임명하고 떠난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장성한 오누이들은 말을 타고 숲속을 달리던 중 숲 속에 서있는 가로등을 발견하고 그것이 매우 눈에 익은 것임을 깨닫게 되고, 비로소 옷장을 생각해낸다. 조심스럽게 한 발 한 발을 옷장 속을 통과 세상 속으로 돌아온 사람들은 장성한 오누이가 아니라 옷장 속으로 들어갈 때의 모습 그대로인 아이들의 모습이며, 그들이 돌아온 그 순간이 바로 그들이 옷장 속으로 들어간 시점과 같은 것이었다. 즉, 시간이 흐르지 않은 것이다. 크리켓 공에 유리창이 부서진 소리를 듣고 달려온 교수님과 집사와 놀란 모습으로 서 있는 네 오누이. 교수님과 대화를 나누며 이제 그들이 옷장 속의 나니아를 믿게 되었다는 것을 조용히 들은 교수님이 자신도 옷장 속의 세계를 믿는다고 고백하는 것으로 영화는 끝났다.
이런 줄거리와 다양한 특수 효과로 영화는 한 편의 판타지 소설처럼 보이지만, 서두에 밝힌 대로 이 영화는 하나님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 그리고 주님의 죽음과 부활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성경적인 영화다. 나니아를 모르고 믿지 않는 것처럼 아직도 지구상에서는 복음을 듣지 못한, 또는 복음을 들었음에도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이 영화가 주는 많은 메시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 감동을 받았던 몇 가지가 있다.
첫 번째로, 우리는 에드먼드와 같이 세상이 주는 유혹에 너무나 약하다는 사실이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겨우 터키 과자의 유혹에 넘어가 에드먼드를 비난할는지도 모르지만, 사탄은 바로 우리가 어떤 유혹에 약한 지를 잘 알고 있고 그것을 통해 우리를 넘어뜨리려 하며, 우리를 통해 믿음의 형제 자매들도 함께 멸하고자 항상 시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아슬란에 의해 구해진 에드먼드에게 백색마녀가 찾아와 배신자라고 손가락질 하며 에드먼드가 자신의 소유라고 주장한다. 죄 중에 빠진 우리에게도 사탄은 동일한 비난과 유혹으로 예수님의 피로 구원받은 우리를 정죄하고 다시 죄 속으로 끌어들이려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슬란이 그 목숨으로 대신해 에드먼드를 영원히 구원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으로 구원 받은 주님의 백성인 우리들은 더 이상 사탄과 세상의 정죄대상이 아니다. 로마서 6장 18 절에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라고 선포하신 것처럼 우리는 죄에서 해방 되었으며,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롬6:14-15)”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우리가 더 이상 죄 가운데 살아가서는 안되며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아가야 함을 말씀하고 있다.
연약한 에드먼드가 아슬란의 말을 듣고 담대해지는 장면에서 나는 연약한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나면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세상의 모든 악을 대항해 싸울 수 있는 담대함이 생긴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었다. 배신자였던 베드로가 갈릴리 호숫가에서 진심으로 영접하고 성령을 받은 후에 강력함으로 세상에 복음을 증거한 것 말이다.
두 번째로, 나니아의 전쟁이 나와 무관하다며 세상 속으로 돌아가고자 했던 피터와 수잔의 모습에서 내가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나도 저들처럼 하나님의 영적 전쟁이 나와 무관한 싸움이라고 세상 속에서 그것을 바라만 보는 모습으로 살아온 것임을 깨닫고 회개할 수 있었다. 믿고 구원받은 주님의 백성이라면 모두가 하나님의 영적 전쟁의 전사가 되어서 사단을 대적하는 전쟁을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무기들을 들려 세워 주시고 세상을 왕노릇 하게 하신다는 말씀이다.
우리가 잘 아는 에베소서의 하나님의 전신갑주에 대한 말씀을 다시 읽어 보고자 한다.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믿지 않는 사람을 보았을 때 그들을 전도해야 하는 책임은 교회의 목사님이나 전도사님 혹은 장로나 안수집사가 해야 할 일이 아니라 바로 그 순간에 그 현장에 있는 나에게 하나님께 맡겨주신 책임이라는 것이다. 나의 유익을 위해 믿음의 형제나 자매에게 거짓말을 해야만 하는 순간에 서 있다면 바로 그 순간이 내가 사탄을 대적해야 하는 영적 전쟁의 순간인 것이다. 분내고 화내야 할 순간에 하나님을 생각하며 사랑으로 형제, 자매 및 자녀들을 대하였다면 우리 속에 계신 하나님께서 나의 승리를 함께 기뻐하실 것이다.
마지막으로, 비행기 안에서 나로 하여금 눈물 짖게 한 장면은 아슬란이 에드먼드를 구하기 위해 몸이 털이 모두 깎이는 수모를 당하고 쇠사슬에 매달려 죽는 장면이었다. 설정만 다를 뿐 그 장면은 예수님의 고난과 죽으심과 다를 바 없는 장면이었다. 특별히 고난 주간을 그렇게 거룩하게 보내지 못하고 돌아오는 출장 길에서, 에드먼드와 다를 바 없이 세상과 짝하며 살기를 즐겨 하였던 나를 위해 그 수모와 수치를 마다 않고 당하셨으면 피와 살이 찢기는 고통 중에서도 나를 바라 보시며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나를 위한 용서를 하나님께 간구하시던 예수님의 모습이 떠올라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토록 나를 사랑하시며 나의 슬픔과 고통을 아시고 나를 위로하시는 주님의 손길이 나를 잔잔히 덮어 주셨다.
영화를 통해 내게 말씀해 주시는 하나님, 이제 죄인의 길에서 벗어나 의인으로 살아가며 영적 전쟁에서 주님의 군사가 되어, 주님의 마음과 손발이 되어 세상 가운데 승리하는 자로 살아가기를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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