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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사 뜻대로 되는 게 아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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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강(서생) (h12k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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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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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이 오면 싱가포르에 가겠다고 글을 올린 지 불과 다섯 달 전이다. 그러니까 셋 달 앞두고 ‘추억을 캐려가련다’고 큰소리 쳤었다. 그리고 9월 말, 결국 헛소리가 되었고 봄날의 개꿈으로 날아가 버렸다. 그깟 것 마음만 먹으면 너끈히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내심 여유를 부렸지만 “말하기는 쉬우나 행하기는 어렵다(Easier said than done)”는 속담이 몹시도 부끄럽게 다가온다. 세상사 정말 마음먹는 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교훈을 새삼 일깨운다.
어젯밤 모처럼 ‘한국촌’에 들렸다. ‘싱가포르생활기’가 침묵하고 있었다. 싱가포르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는데, 지나간 추억을 되살려 보고 싶었는데..., 잠자리에 들어 억지로 눈을 감았지만 뒤척거리다말고 침대를 떠났다. 거실로 나가 티테이블에 앉자마자 한밤을 가르는 화물열차 소리가 뿌연 눈길을 가로챘다. 마치 징그러운 지네발처럼 기어간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꼬리를 물고 또 가고 또 갔다. 아마도 낮에는 여객열차에 밀렸다가 한밤만 움직이는 것이라 지레짐작을 하면서 ‘늙은이의 신세가 바로 이런 것이려니’ 쓴웃음을 흘렸다.
세상사 뜻대로 안된다는 것을 예전인들 어찌 몰랐겠는가마는 그래도 꿈은 이룰 수 있다고 믿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 아니던가. <나는 성공한다. 명예를 얻고 부자가 되어 떵떵거리고 살거야> 젊은 날의 호기만장(豪氣萬丈)이었다. 하기야 그런 꿈이 없다면 살맛도 없고 살아야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때때로 절망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면서도 끝까지 버텨낼 수 있는 것도 야무진 꿈이 있어 가능했지 않던가. ‘꿈은 지나갈 뿐 결코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늘 이렇게 되뇌며 희망의 끈을 놓아 본적이 없었다.
손주들이 여름방학에 들어가면 그들과 함께 꼭 가기로 했던 싱가포르다. 손주들과 2년을 뒹굴던 그 곳, 숱한 사연을 새기며 추억을 심었던 그 곳, 싱가포르다. 일흔의 나이가 더욱 더 일상의 소중함을 가슴속 깊이 가두고 싶었을지 모른다. 하루하루가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이다. 오늘이 가면 내일을 기약하기 어렵다는 강박관념이 나를 온통 지배하고 있어서일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어린아이가 된다고 했던가? 매사를 넉넉히 보고 판단할 수 있는 ‘나는 어른이다’고 아무리 외쳐본들 사실이 그렇잖은데 어쩌라.
‘한국촌’의 문을 열었을 때 메시지 도착을 알리는 삐삐소리와 동시에 파란 빛을 내며 깜박거리는 ‘쪽지함’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이를 두고 열여덟 처녀의 마음이라 했던가? 그 구군가가 ‘아직도 나를 찾고 있다’니 하는 마음이 늙은 가슴을 자정 없이 뒤흔들었다. 떨리는 손으로 후닥닥 열었다. 아~실망, 광고문이 아닌가. 잠깐의 꿈에 부끄러웠다. 그래도 좋았다. ‘싱가포르생활기’에 한참 정열을 쏟았던 그 때 그 모습을 되새겨 볼 수 있게 하였으니까. 어쭙잖은 내 글에 공감하며 격려해 주던 많은 분들의 면면을 떠 올린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가겠노라’던 나의 약속조차 지키지 못한 못난 늙은이, 세상을 오래 살고 있으면서도 세상돌아가는 이치를 깜빡했던 바보, 혹시라도 기다리고 있을 지도 모를 그 누군가에게 실망시켰다는 죄책감, 이 모든 것이 한밤의 나를 더욱 씁쓸하게 했다. 아니 당혹스러웠다. 아무리 나만의 약속이지만 약속은 약속이니까.
가보고 싶다. 꼭 한 번 보고 싶다. 발자국마다 심어두었던 추억을 캐고 싶다. ‘어느 할아비의 이야기’ ‘세상사는 이야기’에 함께 웃고 울었던 팬들과 단 한 번이라도 만나고 싶다.
2012.9.26. 한밤에
ps : 싱가포르에 오면 만나기를 바란다던 go2lse(paik1220)님,
정말 미안합니다. 아직 싱가포르에 계시는지요? 쪽지든 메일이든 꼭 한 번 주세요.
hgjung77@naver.com
댓글목록
남강(서생)님의 댓글
남강(서생) (h12k13)
많은 분들께서 쪽지를 주셨습니다. 저 글을 통해 도움을 받으셨다는 말씀도, 위료와 격려의 말씀, 모두 고맙습니다.
기왕이면 댓글로 달아주시면 그 또한 여러분들과 공유할 수 있어 유익할 것 같습니다. 저가 쪽지를 부탁한 것은 go2lse(paik1220)님에 한정된 것인데 아마 쪽지만 받는 줄 오해하시지나 않았나 해서요. 어떻게든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반딧불이님의 댓글
반딧불이 (kmc900414)
항상 글을 읽고 있었던 일 인입니다....
많은 것을 느끼고 익히고 배우고 있습니다.
넉넉한 한가위 보내셔요~.^*
go2lse님의 댓글
go2lse (paik1220)
아직 싱가폴에 있습니다.
이상하게 남강님의 글이 없는걸 아는지라 어쩌다 가끔 들리는데 오늘 아침은 나도 모르게... 반가운 분이 오셔서 그랬나봅니다.
건강이 허락치 않으신건 아니시죠.
인생사 다 그런거죠 뭐. 저는 내년 연말에 귀국할 예정인데 올해는 큰아이 대학입시로 뒤숭숭합니다.
뜻대로 안될 수도 있다는걸 항상 생각하고 삽니다. 그래야 덜 실망하니까요.
그래도 가끔 한국소식 전해주세요. 특파원처럼요.
남강(서생)님의 댓글
남강(서생) (h12k13)
반딧불이님, 반갑습니다. 애칭이 아름답군요. 형설의 공을 쌓기 바랍니다.
go2lse님, 싱가포르 생활이 앞으로 1년 이상 남았군요. 큰 자제는 한국에서 대학을 갑니까? 뜻대로 잘 풀릴 것입니다. 어머니의 마음씨가 참 고우셔서요. 언제든 귀국하면 연락 한번 주세요. 댓글을 주신 두 분께 감사드립니다. 행복이 넘쳐나는 한가위 맞으시길 기원합니다.
kaimo님의 댓글
kaimo (mrhell)님의 과거 사연을 몰라 문구 모두를 이해할 수는 없지만 글을 참 잘 쓰십니다.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뜻하는 바 항시 이루시길 바랍니다. 한국에 계시는 노부모가 생각나는 아침입니다.
남강(서생)님의 댓글
남강(서생) (h12k13)kaimo님, 처음뵈겠습니다. 저는 2009년 3월 '서생'이란 닉네임으로 '기러기 할아비의 이야기'를 연재하였습니다. 귀국 이후에는 '사람사는 이야기'로 올 1월까지 연재하였지요. 그리고 이 글은 지난 5월 '추억을 캐려가련다' 제하의 글을 통해 8월에 싱가포르에 가겠다고 하였으나 갈 수 없게 돼 쓴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Mirlan님의 댓글
Mirlan (mirlan)
가슴이 콕콕 찌르면서 아픕니다
글 속에서 삶의 대한 후회와 안타까움 두려움.... 너무 인간적이네요 ...
반성하게 되네요
감사합니다
남강(서생)님의 댓글
남강(서생) (h12k13)
Mirlan님, 반갑습니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하찮은 글에 동감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건투를 빕니다.
kc_pcja님의 댓글
kc_pcja (emkcpcja)
예전에 올리신글 몇번 인상 깊게 읽은 적 있었습니다. 사모님 인상이 아주 좋으세요, 두분다 멋진분들이십니다!
한국은 이제 많이 추워진다는 데 두분다 건강하세요 ^^
남강(서생)님의 댓글
남강(서생) (h12k13)
kc_pcja님, 고맙습니다. 과찬해 주셔서 한결 힘이 솟습니다.
한국은 지금 겨울의 문턱에서 추위를 재촉하는 분위깁니다. 싱가포르가 더욱 그리워 집니다.
나만이 이토록 간사한지 부끄럽기도 합니다. 부디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빌겠습니다.
포켓몬님의 댓글
포켓몬 (phsjwju)글 잘 읽었습니다. 싱이 그리워 아직도 가끔 한국촌에 들어가곤 하는데, 너무 그리워 미치겠습니다....
옵티머스프라임님의 댓글
옵티머스프라임 (raymond721)할아버지..할아버지라 불러도 될까요?..이곳 싱에 온지 벌써 3년...제가 입싱하기전에 할아버지 글을 보며 눈물을 흘렸었는데....그리고 뵙고 싶었는데...제가 들어왔을때는 이미 떠나셔서리....지금 이렇게 사진으로 뵙게 되서 영광이여요..사진을 보며 또 눈물이 나네요..이유는 잘 모르겠어요....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셔요..멀리서 기도 드릴께요.
남강(서생)님의 댓글
남강(서생) (h12k13)
포켓몬님, 안녕하세요.
저와 똑 같은 생각을 가지신 것으로 이해돼 더욱 반갑습니다.
추억은 언제나 아름다운 존재인가 봅니다. 설령 아픔이었더라도 지나고 보면 그리움으로 다가오는 것은 간사한 마음일까요. 국내에 계시면 쪽지 주세요.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면서 싱가포르의 추억을 담아내게요.
남강(서생)님의 댓글
남강(서생) (h12k13)
옵티머스프라임님, 반갑습니다.
일흔이 넘은 나이니까 할아비라 불러도 괜찮습니다. 저의 어쭙잖은 긁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니 부끄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네요. 아무튼 공감하여 주시는 분이 있다는 것은 저로서는 영광이지요.
이유없는 눈물? 어쩌면 인생이란 눈물의 존재가 아닌가 싶습니다. 눈물을 통해서 사랑의 의미를 깨닫게 되기에 말입니다. 며칠 내에 저의 세번 째 저서가 시중에 나옵니다. 쪽지 한번 주세요. 항상 건강하시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