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생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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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콩송편과 토란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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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맛깔 (karchizor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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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4
    4. 2012-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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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음식하면 뭐니뭐니 해도 송편과 토란탕입니다




대가족이었던 어린 시절의 우리집은 대식구들의 입 속에 들어가고


이웃과도 나눌 만큼의 엄청한 송편을 빚고는 했습니다


차례를 지내기 위함이라지만 사실 산 사람이 먹는 거니까요


우리집만 그런 것이 아니라 옆집 뒷집 모두 명절만큼은


넉넉하게 음식을 준비했었던 것으로 기억이 됩니다


시집 안 간 막내 고모도 있고 바로 이웃에 살던 셋째 고모님은 시댁이 없어


친정으로 오셨으니 일손이 부족한 편은 아니지만,


저는 꼭 거들겠다고 고사리 같은 손으로


아버지 옆에서 송편을 빚곤 했었습니다, 물론 오래도록 앉아 있지는 못 했지요


밖에서 놀자고 부르는 소리가 들리면 뛰쳐나가야 했고


어린 아이 인내심이나 지구력이 뭐 그리 오래가나요...


아버지께서 나무 농사를 지으시면서 분가해 마루턱으로 옮겼지만


명절이나 큰 일에는 본가로 내려왔으니 저도 모처럼 동무들과 놀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주어진 거였지요



 



할머니께서는 살 먹는 송편, 속 먹는 만두라고


송편은 오동통 배가 볼록 나오게 너무 크지 않게 빚으라고 하시는데


그게 쉽지 않아 제가 만든 건 죄다 납작하면서 속이 터져 볼만했었습니다


그럼에도 야단을 치지 않으시고


제 송편을 다듬어 주시곤 하셨었습니다


차차 나이가 들어가면서 제가 빚은 송편도 제법 모양새를 갖추게 되긴 했었지요


송편을 이쁘게 빚어야 시집가서 이쁜 딸을 낳는다기에~ 더욱 나름 공을 들였는지도~


송편의 소는 대체로 팥과 콩이었습니다


팥고물은 작은 크기가 가능하지만 콩을 넣은 건 도무지 작게 할 수 없었습니다


울 아버지께서 좋아하시던 송편은 콩을 넉넉히 넣은 콩송편이었습니다


할머니께서 아무리 작게 하라고 하셔도 아버지는 넉넉하게 콩을 넣고


손가락으로 꾹 눌러 빗살무늬를 새긴 송편을 만드셨습니다


저는 콩 비린내를 싫어해서 콩이 들어간 음식은 못 먹었었습니다


콩밥을 하면 콩을 골라냈고 콩조림 같은 건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었기에


아버지가 만드는 송편은 제 입에 들어간 적이 없었습니다



 



입맛이 변한다는 것은 참 희안한 일입니다


서른이 될 때까지도 못 먹었던 콩을 결혼을 하면서야 먹게 되었는데


콩뿐 아니라 굴이라든가 전혀 입에도 대지 못 했던 것을 먹게 되더라구요


그건 아마도 시댁에 가면 친정처럼 골라낼 수 없으니 어거지로 먹다보니


그리 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먹다보니 콩이 고소하다는 걸 알게 되더군요


지금은 입맛과 기호에 따라 송편 속에 밤도 넣고 참깨와 설탕을 버무려 넣거나


갖가지 가족이 좋아하는 것들을 넣고 저도 시댁의 기호에 따라 깨송편을 빚었지만


가장 먹고 싶은 송편은 햇콩을 삶아 넣은


큼직하고 넙적한 아버지 손가락 문양이 빗살무늬로 새겨진 그 콩송편입니다


그렇게 아버지께서 좋아하시는 콩송편이 올라온 차롓상을 받으러


올 해도 다니러 오실까, 차롓상을 차리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한데


이젠 당신이 먼 길을 오셔야 하니, 길 잘 찾아 오시려나....


요즘은 도통 꿈에 안 보이니 잘 지내고 계신가 싶어 안심이 되기도 합니다만


명절이란 날이 오면 제가 추억합니다


아버지와 함께 했던 추억은 참 많습니다만 추석 명절의 추억은 송편입니다



 




나물을 다듬거나 마늘을 까거나 토란 껍질을 벗긴다거나


힘 쓰는 반죽이라든가 사소하지만 중요하고 잔손이 많이 가는 일을


도맡아 하시던 참 자상하던 아버지, 언제나 어머니 일을 도우시던 모습..


토란을 좋아하셔셔 밭에 토란은 꼭 심으시고 줄기는 나물로


알이 영글면 삶아서 아버지와 둘이 앉아 숟가락으로 껍질 벗기며 먹던 기억 여전한데,


울 어머니 올 해도 철원에 심은 토란 캐면서 아버지 생각 많이 하시겠네


영감 올해도 당신 좋아하는 걸로 차렸으니 와서 많이 드시라고


눈시울 붉게 물들이면서 차롓상 차리시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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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남강(서생)님의 댓글

남강(서생) (h12k13)

가슴에 사무치는 사모곡, 마음을 흔듭니다.
지금 싱가포르에 체류 중인지요?
엊그제 아래 글에 댓글을 달았는데 못 보셨는지?
넉넉한 한가위 맞으세요.

맛깔님의 댓글

맛깔 (karchizorim)

아~~~ 서생님 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간 평안하셨는지요... 명절이 되니 이런저런 고국, 고향 생각에 젖게 됩니다
싱가포르에 체류 중입니다. 표류는 아니니 참 다행이지요~~~~
체류 표류 모두 끝내고 돌아갈 날을 기다리면서
마지막 혼신을 다하는 아이를 뒷바라지하고 있답니당~~~
한가위 명절, 보름달 보면서 이곳을 생각하실 서생님의 고운 추억이
더욱 아름답게 빛나길 바래 보면서 늦은 인사를 올립니다~~

뜰님의 댓글

뜰 (mkleecha)

두 분 글 가끔 읽고 있는 사람입니다. 여전히 싱가폴에 계시나요? 직접 뵌 적은 없지만, 나눠 주시는 글들이 무척 유익하고 향기롭습니다. 늘 감사드립니다. 항상 평안하세요!

맛깔님의 댓글

맛깔 (karchizorim)

뜰님~ 먼저 댓글이 늦어 죄송하다는 말씀을 ~ 전합니다
글을 올리지 않다보니 들어오질 않게 되어 이제야 보았습니다~
아직은 싱가폴에 있지만 이달 말에 귀국합니다~*
싱가폴의 생활이 여유롭고 넉넉하길 바라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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