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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격려하는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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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 사람 (hoys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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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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뺑소니 사고로 남편을 잃은 중장비 기사 부인이 한 통의 편지와 30만원을 받았습니다. "가해 운전자를 결코 증오하지 마십시오. 부디 용서하는 마음으로 자녀와 열심히 살아가시길 당부 드립니다." 세 자녀와 함께 살아 갈 길이 막막했던 피해자의 부인은 이 편지를 읽고 가해자에 대한 증오를 버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남편이 교도소에 가고 괴로워하며 지내는 가해자 가족에게도 30만원과 편지가 전달됐습니다. "너무나 큰 고통을 피하고자 하는 것은 모든 인간의 본질입니다. 한 집에서 당분간 같이 지내지 못하는 괴로움은 있겠지만, 그래도 살아있는 것이 죽은 쪽보다 덜한 절망일 겁니다." 이 편지와 위로의 말에 가해자와 피해자가 서로를 생각하는 아름다운 일이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격려는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위로의 힘은 인격을 세웁니다. 미움을 녹이고 사랑과 용서를 만들어 내는 힘이 한 마디의 격려와 단 한 마디의 위로 속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윌리암 바클레이]라는 신학자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인간 최상의 의무 중의 하나는 격려의 의무입니다. 다른 사람의 정열에 찬물을 끼얹기는 쉽습니다. 다른 사람을 절망시키기는 훨씬 쉽습니다. 이 세계는 다른 사람을 좌절시키는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 격려해야 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의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많은 경우에 한 마디의 칭찬이나 감사나 상급이나 격려의 말로도 그 사람을 일으켜 세우기에 충분합니다." 그는 다른 사람을 격려하는 일은 바로 그리스도인의 의무라고 강조합니다.
[폴 투르니에] 박사의 <고독으로부터의 도피>라는 책 서두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스위스 제네바 국제 복지기관에 책임자의 비서로 일하고 있는 미모의 여성이 있었습니다. 그 여성은 하루의 일과가 끝나고 집에 들어가 잠자리에 들기 전 그 날 방송을 마감하는 시간에 아나운서의 마지막 인사말을 반드시 듣고 잠자리에 들곤 하였습니다. 아나운서의 마지막 인사말이란 별 것 아닌 "여러분, 이 밤도 좋은 밤이 되기를 바랍니다."라는 아주 짤막한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여비서에게 하루의 일과가 끝나고 잠자리에 들기 전 이 인사말을 듣고 자는 데는 특별한 사연이 있습니다. 그가 이 기관에 와서 일한지가 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그의 책임자를 비롯해서 누구 하나 그에게 인간적인 말을 걸어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하루에도 많은 사람이 사무실로 찾아오지만 모두 사무적인 이야기 외엔 다른 이야기는 없었습니다. 하루의 일과가 끝나서 아파트로 돌아오면 많은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를 듣고 있지만 그와 인격적인 대화를 나누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유일하게 하루 중 인간적인 말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은 방송을 종료하는 시간에 아나운서의 마지막 인사말 "여러분, 이 밤도 좋은 밤이 되기를 바랍니다."라는 말이었다는 것입니다.
[투르니에] 박사는 이 말을 하면서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런 병에 걸려있다고 합니다. 따뜻한 인간적인 말 한마디에 목말라 있고, 격려와 위로와 칭찬에 허기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이것을 해결해주는 책임이 있는 곳이 바로 교회라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현대인들은 주위에 사람이 없어서 고독한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 가운데 삶을 나눌 수 있는 진정한 이웃이 없어서 고독을 느낍니다. 그래서 저는 "군중 속의 고독"이라는 표현이 참으로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문화 인류학자는 현대인의 비극을 가리켜 말하기를 "군중은 있어도 공동체는 없다. 그것이 현대의 비극이다"라고 했습니다. 여럿이 모여 있다고 해서 저절로 공동체가 형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공동체란 삶을 같이 나누고 인생을 나누고 분명한 목표를 향해 함께 행진할 수 있는 집단을 말합니다.
교회는 격려하는 공동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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