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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 사는 이야기-(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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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강(서생) (h12k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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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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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눈물을 닦아 드리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림이 눈물 젖은 얼굴이다. 표정은 비록 일그러져도 그토록 예쁠 수 있는 것은 그 눈물 속엔 인간 본래의 진실이 묻어나기 때문이다.
TV를 보았다. 어머니의 애틋한 자식사랑 이야기가 나오기만 하면 엠시도 패널도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용돈을 드렸더니 쓰시지 않으셨더라. 차곡차곡 모아두신 것을 돌아가신 뒤에야 알았다. 어머니는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감내하고 희생하는데 자식들은 그 어머니를 위해 무엇을 하였나?” 이쯤에 이르면 눈물이 뚜덕뚜덕 떨어진다. 주체할 수 없도록 흐르는 눈물의 의미는 무엇일까? 어쩌면 다 그렇고 그런 것이 일상인데 어머니의 이야기만 나오면 눈물샘이 터지는 이유는 뭘까?
어머니의 사랑은 오로지 사랑 그 자체다. 자나 깨나 자식의 행복만 빌어 주는 것으로 자신을 불사른다. 가장 적절한 비유가 바다의 문어 이야기일 것 같다. 문어는 알의 부화를 지키기 위해 여섯 달 동안을 굶주리다 마지막 새끼가 세상을 나올 때 자신은 죽어간다. 사람이라 해서 다를 게 있는가. 모성이 자식을 울리는 것은 바로 이 같은 희생정신이 바탕에 깔려 있어서다. 주는 것만 알았지 받을 줄은 모르는 무조건적인 베풂이다. 오로지 자식밖에 모르는 너무나 순백한 마음이다. 그저 보듬고 다독거리는 따스한 가슴이다.
힘들고 아픈 것은 온몸으로 보듬었고 서럽고 서운한 것들은 가슴 깊숙이 묻었다. 이것이 어버이다.
며칠 전이다. 큰아들이 우리 집 문턱을 들어서기가 바쁘게 싱글벙글했다. 딸이 ‘아빠 엄마 고맙습니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 말 한 마디가 그렇게 고맙고 기분 좋더라고 했다. 저들의 자식 사랑을 비로소 알아주더라는 것이다.
일본 대학교에 재학 중인 큰손녀는 지난 2월 겨울방학으로 귀국했었다. 고등학교 때에 일본으로 유학 가는 바람에 우리나라 문화 감각이 무뎌갔다. 귀국 며칠 만에 백화점에 아르바이트로 나갔다. 우리나라의 삶을 몸으로 부대껴보겠다는 의도였다. 그 생각만으로도 대견했다. 아침 9시 출근하여 밤 10시에 퇴근했다. 일급 4,000여원이다. 너무 힘들어 했다. 가냘픈 몸매에 하루 종일 서 있어야하니까 힘겨울 것은 뻔하다. 그렇게 20여일을 다니고 그만 뒀다. 공부할 시간이 빠득해서다.
그런데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터졌다. 방사능이 동경까지 번진다는 뉴스가 날이 갈수록 심각했다. 동경근교가 학교여서 깊은 고민에 빠졌다. 가야할지 말아야할지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 4월6일 등교일은 가까워 오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방향을 찾지 못했다. 10일여를 앞둔 시점에서 1년 휴학으로 가닥을 잡기까지 마음고생깨나 했다. 학교에 휴학 결심을 알린 며칠 뒤 아빠와 함께 도일하여 집을 정리하고 휴학계를 내고 왔다. 이 어려운 결정의 배경은 엄마의 반대가 절대적이었던 모양이다. 보내놓고 마음조여서 어떻게 견디겠느냐는 것이다. 그러기는 할머니도 마찬가지였다. 자식들 털끝이라도 다를까 마음조이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아리바이트를 재개한 것은 불과 며칠 전이다. 시간이 있으니까 더 하겠다는 것이었다. 아내가 며느리와 통화하더니 ‘역시 엄마의 마음은 어쩔 수 없다’고 했다. 딸이 얼마나 힘들까 걱정스러워서 일하는 모습을 몰래 보았다는 이야기다. 집에서는 게으름을 피우던 녀석이 직장에서는 몸이 가볍더라며 한숨 쉬더라고 했다. 자기가 하고 싶어 하는 일조차 보기에 안쓰러운 것이다.
손녀가 엄마 아빠에게 고맙다는 말이 나왔던 것은, 함께 일하는 선배 대학생의 등록금 문제에서 비롯됐다. 등록금 때문에 휴학계를 세 번이나 내었다는 것이다.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아리바이트를 통해 등록금을 마련하려 하였지만 몫 돈을 마련하는데 번번이 실패하였다고 하더란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아빠 엄마의 사랑을 절절히 느꼈다는 것이다. ‘우리 아빠 엄마는 내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얼마나 애를 먹었을까?’라는데 생각이 미쳤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난생 처음으로 부모의 고마움을 말로써 표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자 그간의 피로가 일순간에 확 날아가더라고 했다. 연간 몇 천만 원씩 들어가니까 그만큼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늘 모자라게 느꼈을 녀석으로부터 고맙다는 인사를 들으니까 부모의 숨은 사랑을 알아준다싶어 외려 신이 날만도 했다.
아들이 저들의 이야기를 굳이 전하는 것은 여태껏 엄마에게 말하지 못했던 ‘고맙다’는 그 말을 에둘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다가왔다.
흔히들 엄마가 되어서야 엄마를 알 수 있다고들 한다. 부모는 자식들을 위해 희생적인 삶을 사는 것은 마땅한 책무로 당연시 되어왔다. 그래서 예사로 지나치곤 한다. 우리나라 정서는 사실표현도 인색하다. ‘사랑한다. 고맙다’는 말은 더욱 쉽지 않다. 겨우 한다는 것이 어버이날 카네이션 꼬리표에 매달린 ‘어버이 은혜에 감사합니다’ 정도다. 참 인색하다. 부모들은 내색하지 않지만 더러는 야속하다 여길 것이다.
부모치고 자식들에게 부담스런 언행을 함부로 하려들지 않는다. 베푸는 것은 무한이지만 받는 것은 극도로 절제한다.
나는 2009년 싱가포르 최대 생활정보지 ‘한국촌’에 ‘기러기 할아비의 이야기’를 연재했다. 독자들로부터 어버이를 그리는 이야기가 여럿 올라왔다. 기러기 엄마들이 흘리는 뜨거운 사모(사부)의 눈물이었다. 미혼의 딸도 있었다. 타국에서 겪어야하는 설음이 부모의 은혜를 생각하게 만든 것이다. 나는 이들의 아픈 이야기들을 간추려 글로 올렸다. 내가 펴는 ‘어느 할아버지의 애틋한 가족사랑 이야기’에도 인용했다. 엄마 돼서 어머니를 알고 아빠가 되어서야 아버지를 알았더라도 얼마나 대견하고 고마운지 몰랐다. 결코 늦거나 헛되지 않다. 당연한 도리라고 하더라도 그것으로 성숙한 인간인 것이다.
나는 2011년5월5일 자 경남여성신문사 고정 칼럼에 ‘가정의 날에 붙여’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 그 글 마무리 부문에 ‘가정의 날은 어버이의 숨은 눈물을 안아 보듬는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적었다. 이는 인간의 도리와 효의 출발이 어버이의 눈물에 숨어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자식 몰래 흘려야 하는 엄마의 눈물은 너무 많다. 자식을 잉태하고 낳고 기르는 모든 과정의 하나하나가 눈물이다. 아프지나 않을까 다치지나 않을까 그저 노심초사다. 남보다 더 잘 먹이고 더 곱게 입히려고 안달이다. 학교 성적이 뒤처질까 봐 가슴이 두근거린다. 어디 여기서 끝나겠는가? 시집 장가 잘 보내야 하고 행복하게 잘 살아줘야 한다. 그것을 위해 모든 것을 아낌없이 쏟는다. 그런 것들이 남몰래 흘리는 부모의 진한 눈물이다.
나는 대학생이든 둘째 아들이 크게 아팠을 때, 날마다 흘렸던 아내의 그 뜨거운 눈물을 아직도 가끔씩 떠올리곤 한다. 배고팠던 시절 우리 엄마의 눈물은 지금도 가슴 찢어지듯 쓰리고 아프다. 부모는 자식을 대신해 목숨도 내놓을 수 있지만 자식은 부모에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우리는 엄마의 그 눈물을, 아빠의 숨은 사랑을 미처 생각하지 못한다.
‘부모는 산에 묻지만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는 의미를 돌아가셨을 때나 알게 된다. 아니 아주 모르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독거노인 100만 명 시대가 대변하고 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핵가족시대라는 현대화 바람이 어버이를 고독의 늪으로 밀어 넣었다 말해도 과언이 아닐 성 싶다. 시부모도 부모이고 처부모도 내 부모다. 가슴깊이 새겨 되돌아 봐야 한다.
나는 나의 어버이에게 있어 늘 죄인이다. ‘감사하다’는 그 말 한마디를 드리지 못한 채 떠나 보냈어야했다. 서먹하다는 핑계로 정작 드려야할 최소한의 도리조차 못한 것이다. 그것을 알았을 때, 나는 애비에서 할아비까지 되었다. 비로소 회한의 눈물을 흘렸지만 살아생전 섬겼어야 될 어버이는 저 멀리 떠나신 한참 뒤가 아니던가. 그 대상은 이미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은 것이다.
어제 손주들이 가져다준 앙증맞은 붉은 카네이션 꽃에 입맞춤한다.
비록 의례적이지만 ‘어버이의 은혜 감사합니다’라고 쓰인 리본을 눈여겨 바라본다.
아들이 엔젤피쉬 네 마리를 또 가지고 왔다. 엊그제 죽어 사라진 벌충이다. 아내는 녀석들을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바라보고 있다. 죽어나간 빈자리를 채웠다는 기쁨보다 홀연히 떠나보낸 생명에 대한 미안함이 더 큰 것이겠다.
어버이의 하해(河海) 같은 은혜를 알았을 때 어버이는 이 세상에 계시지 않더라는 사모곡이 폐부를 찌른다.
우리 다함께 어버이의 노래를 목청껏 불러보자. 그리고 당장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이 두 마디만은 꼭 전하자. 그래서 엄마의 눈물을 닦아드리자. 어버이가 어디에 계시던 그렇게 해보자.
<28회에서 계속>
드리는 말씀 : 손주들은 보낸 오늘 불현 듯 아버지 어머니 생각이 간절합니다. 그리고 죄스럽습니다. 여러분들은 부모님께 잘 하시지요. 꼭 그러리라 믿습니다.
효도 별 것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건강하십시오. 이 두 마디면 됩니다.
독자 여러분과 댓글 달아주신 모든 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댓글목록
캔디님의 댓글
캔디 (mieco)이쁜 손주들이 선물한 꽃바구니들과 빈자리 허전할까봐 얼른 이사시킨 엔젤피쉬를 보니 가족의 훈훈함이 여기까지 느껴집니다~좋은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둘리맘님의 댓글
둘리맘 (sohnjung)카네이션 한다발을 드려도 가슴에 달 카네이션이 없으면 실망하시던 아버지께서 올해는 몸이 불편해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지 못하셨습니다..한바구니 받았다...좋다..하시네요..카네이션은 평생 아버지를 떠오르게 하는 꽃일 겁니다...여기에는 담장넝쿨 넘어로 볼 수 있는 장미가 하나도 안보입니다..길을 가다..항상..장미가 있으면 좋겠다..혼자 그럽니다..오늘은 장미와 카네이션이 그리운 날입니다..
남강(서생)님의 댓글
남강(서생) (h12k13)캔디 님, 둘리맘 님, 아낌없이 보내주시는 격려에 감사드립니다. 두 분은 분명 자식으로서 그리고 부모로서의 도리를 다하리라 확신합니다. 부디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