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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러기 할아비의 이야기-(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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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강(서생) (h12k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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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3-29
본문
-할아비가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엄격히 구분하면 손주들의 겨울방학 귀국 중이던 작년 11월부터 두 달간은 혈혈단신의 홀아비였고 기러기 할아비가 된 것은 아이들이 돌아온 올 1월부터다. 아무리 힘들어도 손녀 손자 둘이 있을 때는 그런대로 사람 사는 온기가 서렸었다. 갑자기 손녀가 떠난 자리는 너무 크게 느껴져 썰렁하기까지 했다. 내 마음이 이런데 누나를 떠나보낸 손자의 서운하고 허전함은 그 얼마일까? 이렇게 할아비도, 손자도 짝 잃은 기러기가 된 것이다. 착잡했다. 가슴 한구석이 텅 비어 시렸다.
손자는 쓸쓸한 표정을 애써 피했지만 누나와 헤어진 뒤 1주일 동안은 동요하는 눈치가 역력했다. 그 모습을 바라봐야만 하는 내 마음은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졌다. 너무 안쓰러워 손자의 얼굴을 보기조차 민망했다. 마치 내가 저지른 죄 같다.
이렇게 손자와 할아비의 생활은 시작됐다.
손자는 잠을 많이 자지 못하는 것 같았다. 아침 6시를 전후하여 스스로 일어났다. 내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면 잠이 많은 시기다. 그런데도 일찍 일어나는 것은 불안감으로 인한 신경과민일 것이다. “아침밥을 먹어야 몸이 튼튼하고 몸이 튼튼해야 마음도 건강한 거야. 그러니까 아침밥을 먹어야 한다. 하루 밥 세 끼를 먹는 것이 건강의 비결이란다.”입에 침이 마르도록 설명하고 꾀어 보았으나 소용이 없다.
그저 싫다는 것이다. 사실 먹기 싫어 먹지 않을 뿐인데도 할아비의 마음은 편치 못하다. 외로움의 후유증이 아닌지 불안한 것이다. 이토록 애타는 할아비의 마음을 손자가 알 리 만무다.
여느 때처럼 손자의 안경은 어젯밤에 닦아 두었다. 교복과 양말도 챙겨 내놨다. 날마다 챙기는 2달러도 지갑에 넣어 두었다. 신발만 신으면 등교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녀석은 세수와 양치질을 싫어한다. 아침마다 성화를 하고 재촉해도 싫단다. 양치질은 하루 한 번이고 세안은 샤워로 끝났다. 어쩌다 아주 특별한 날도 있다. 아침식사로 계란프라이나 시리얼과 우유를 먹고 양치질까지 하는 날이면 그렇게 내 마음이 가벼울 수가 없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다. 손자는 계란프라이를 먹고 문 앞에 섰다. 하얀 운동화가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양말과 마찬가지로 운동화도 내가 신겨 주었다. 손자는 발만 내밀고 있으면 만사 오케이다. 남으로부터 돈 받고 하는 일이라면 억만금을 준다 해도 이렇게 기분 좋게 할 수 있을까.
손자의 등굣길은 엘리베이터 앞에서부터 시작된다. 책가방도 내가 끌고 나간다. 빛바랜 둥근달은 이른 아침의 서녘에 걸려 있다. 동틀 무렵의 공기가 상쾌하다. 띄엄띄엄 나타나는 학생들이 시선을 붙든다. 뚱뚱한 엄마가 아들을 자전거에 태우고 가는 곡예 같은 볼거리도 있다.
히잡을 두른 엄마가 아들딸과 손잡고 가는 그림도 좋다. 아빠가 딸의 책가방을 어깨에 메고 다정스레 걷는 모습도 있지만 할아비와 손자가 함께 등교하는 케이스는 우리뿐이다. 손자의 딱 벌어진 어깨와 오동통한 종아리가 듬직하다. ‘야~, 똥강아지야 같이 가자.’너스레를 떨었다. 이렇듯 아주 상스런 부름도 손자는 대수롭지 않게 받아 주었다. 손자가 너무 귀여워 쓰는 할아비만의 애칭인 줄 아는 것이다. 가끔은 싫다고도 한다. 똥강아지가 크면 똥개가 되
지 않느냐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녀석은 오늘 아침에도 ‘해 봐 해 봐’한다. 나더러 고양이 울음소리를 내라는 것이다. 아파트와 주변에는 고양이가 많다. 사람들은 먹이를 군데군데 놔두기도 했다. 손자가 ‘고양이 천국’이라 말할 정도다. 손자가 시키는 대로 ‘아웅~ 아웅’… 그럴싸한 고양이 울음소리를 냈다. 고양이가 두리번거리는 모습을 보며 손자는 깔깔거리고 웃었다. 자주 그렇게 즐거움을 만들었다. 이렇게 우리 사이는 유별나게 정겹다. 하기야 이 녀석 태어나 6개월 때부터 똥오줌 받아 내며 키웠던 남다른 관계에서 연유된 것이렷다.
학교 뒷문이 있어 정문까지 가는 거리가 3분은 단축되었다. 아침마다 만나는 경비원은 낯이 익어 굿모닝을 주고받는 사이다. 인사말은 어느 사회에서든 즐거움을 나누는 데 있어 가장 값싸고 순수한 교류다.
손자에게 책가방을 넘겨주며 늘 하는 말은 ‘배고프기 전에 미리 사먹고 계단 조심해라.’날마다 손자에게 반복하는 당부다. 손자는 교문을 들어서서 서로 보이지 않을 때까지 두세 번쯤 손을 흔든다. 1시 40분에 만나자는 약속을 뒤로하고 되돌아선다. 그래도 손자가 들어간 학교에서 쉽게 눈을 떼지 못한다. 돌아오는 길의 아침 풍경은 역시 부모자녀들의 동반등교다. 사랑이 영그는 행복의 시간들이다.
그 다음 코스는 놀이터에 마련된 운동기구 활용이다. 내가 이곳 아파트에 이사 왔을 때 만족했던 두 번째 매력이다. 몸통 좌우 흔들기, 허리 돌리기, 팔 돌리기, 몸통 돌리기, 걷기 운동 등등 거의 모두 우리 나이에 딱 맞는 기구들이다. 한 운동기구당 100번의 운동량이면 아주 적당할 것 같다. 여덟 개를 이용하면 30분이 걸리니까 의사들이 권유하는 매일 30~40분씩 주 5일간의 운동량이 충족되는 프로그램이어서 만족스럽다. 또 하나 좋은 것은 아침 7시를 전후한 시각엔 놀이터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없다는 사실이다. 아무런 부담 없이 혼자 즐길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다.
걷기 운동을 할 수 있는 산책로가 있지만 내키지 않았다. 콘도에서 살 때는 아내와 함께 저수지 한 바퀴를 도는 것이 좋았지만 이제 싫다.
혼자 걷기가 왠지 초라하게 느껴져서다. 샤워를 하고 TV를 켜면 KBS 아침마당이 진행되고 있어 정겹다. 아침밥을 한술 뜨고 곧 아내와 통화한다. 첫 번째 말은 아내의 컨디션이다. 이어지는 이야기의 주인공은 항상 손자다. 070 인터넷 전화의 덕을 많이 보고 있다. 한국 집에도, 아들과 며느리의 사무실에도, 그리고 일본 유학 중인 큰손녀와 큰아들 집에도 각각 한 대씩 놓아 주었다. 지난해 모두 내가 알선해 준 것이다. 그리고 3년 전에 아들이 쓰고 있는 월정액의 국제전화까지 이용되고 있으니 언제 어디서나 통화는 가능하다. 참 좋은 세상이다. 40년 전만 해도 가정집에 전화 한 대 놓기도 힘들었다. 괜찮은 직장 덕분으로 전화를 놓았을 때 주변의 부러움을 받았던 추억이 아련하다.
다음 차례는 인터넷 신문 보기다. 커피 한 잔을 먹는 시간이기도 하다. 객관적 판단을 위해서 중립과 보수, 진보로 대표되는 매체를 고루 보는 편이다. 거의 제목만 훑어보다가 주요 기사다 싶으면 꼼꼼히 살펴본다. 가끔씩 토론장에 의견을 올리기도 한다. 하지만 적극적인 개입은 자제한다. 2년 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적극적인 의견 개진을 하였다가 피를 본 경험이 정치를 환멸의 대상으로 내몰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주 멀리할 수도 없는 것이 정치다. 국민의 권리와 의무가 있어 그렇다.
컴퓨터 앞에서 기지개를 켜고 나면 청소다. 청소기와 걸레는 시도 때도 없이 불러 대는 호출의 대상이다. 아파트 규모가 작아 30분이면 끝난다. 이 집의 매력 포인트 하나는 청소기와 냉장고, TV가 삼성 제품이다. 집 얻으려고 왔을 때 우리나라 제품이 여럿 있어 얼마나 기분 좋았는지 모른다. 한국에서는 느껴 보지 못한 감정이다. 그래서 더 정감이 갔다.
이렇게 하다 보면 11시다. KBS 정오 뉴스를 들으면서 점심 반찬을 생각한다. 날마다 찬이 달라야 성에 찬다. 같은 찬을 또 올리기가 싫은 것이다. 이미 정해진 메뉴가 있지만 ‘무엇을 만들어 줘야 손자의 식성을 만족시킬까’하는 생각은 언제나 고민거리다.
1시 40분에 수업이 끝나기 때문에 1시 30분에 집을 나선다. 뙤약볕을 피해 아파트의 셸터(shelter=지붕 있는 통행로)를 이용한다. 아파트를 벗어나면 육교다. 첫 20계단을 올라가 돌아서면 다음 20계단이 기다린다. 40계단이다. 양쪽 계단을 합하면 80계단인데 하루 두 번씩 오르내리니까 320계단을 밟는다는 계산이 성립된다. 제법 많은 운동량이기도 하다. 학교 문 앞에 있는 아파트의 둥근 의자를 중심으로 아이들 마중 나온 젊은 엄마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여기도 인종 전시장이다. 비록, 얼굴색도 몸집도 각양각색이지만 자녀를 향한 ‘사랑’은 하나같을 것이다. 수업 종료 차임벨이 울리면 초등학생 꼬마들은 자기 몸집보다도 더 큰 책가방을 메거나 끌고 교문 밖을 나선다. 목을 빼고 기다리던 엄마와 아이들의 만남은 언제나 반가움이다.
나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손자가 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고 나면 그때부터 우리 둘의 시간이다. 무슨 간식을 먹었느냐고 묻는 것은 나의 단골 메뉴다. ‘할아버지, 아파트 5개 넓이면 초고층 빌딩을 지을 수 있을까’아파트 밑을 지나면서 묻는 말이다. 손자는 늘 세상에서 가장 높고 가장 아름다운 빌딩을 짓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 건축가가 되겠다며 컴퓨터 그래픽으로 빌딩을 그린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한 층씩 주겠단다. 말만 들어도 배부르다며 보듬고 뒹굴기 일쑤다. 나는 어쩌면 손자와의 자질구레한 이야기가 좋아서 손자의 등하굣길을 놓치지 않는지도 모른다. 언제 보고 들어도 기분 좋은 얼굴이고 이야기다.
손자가 점심을 맛있게 먹으면 더 이상 부러울 게 없다. 이국땅에서 늙은 기러기로 사는 가장 큰 보람이자 희열이다. 손자의 방과 후 일정은 컴퓨터게임에 이어 오후 4시에서 5시에 시작되는 영어 또는 중국어 투션(tuition)이다. 지금 우리는 월. 수요일에 영어를, 화. 목요일에는 중국어를 하고 있다. 1시간 30분씩이다. 개인지도 전업선생님들로서 투션비는 하루 35달러다. 학생가정교사들은 교습비가 좀 싸지만 시간이 들쭉날쭉하여 오래전부터 이용하지 않는다. 그리고 교습방법도 프로와 아마추어는 확연히 다르다. 재미있게 웃으며 가르치는 것과 딱딱한 분위기에서 가르치는 차이는 또렷하다. 손주들이 투션을 실증내지 않는 것도 공부에 대한 욕심도 있지만 방법도 중요했다. 나는 한국 에이전트에게 부탁하여 좋은 선생님들을 만날 수 있었다. 뒤에 알고 보니 그 에이전트가 내 팬이기도 해서 너무 좋았다. 영어 투션은 애초부터 현지인 선생이었고 중국어는 처음에만 한국인으로 하였다가 곧 현지인으로 바꾸었다. 외국어는 외국인과 부딪쳐야 제대로 배운다는 고정관념 때문이다. 사실 우리의 생각이 맞는 편이었다.
손자가 투션에서 한숨 돌리고 나면 저녁밥을 먹는다. 투션 시간 중에 미리 준비하여 두어 언제라도 먹을 수 있다. 생선은 뼈를 발라내어 숟갈에 얹어 준다. 내가 클 때만 해도 젊은 아빠 엄마들은 엄두도 내지 못했던 일이다. 아이들 버릇 나쁘게 키운다는 어른의 눈총과 꾸중이 두려워서다. 어른의 위치에 있는 내가 지금 그렇게 하고 있다. 사실 그렇다고 버릇없는 아이가 되는 것 같지는 않다. 집안에서나 짐짓해 보는 어리광일 뿐이다. 손자는 인사성 밝고 남에게 대한 양보심도 대단하다. 낯간지러운 행동은 하지 못한다. 얼마나 고마운 심성인지 모르겠다. 사람의 품성은 선천성과 후천성이 있다고 한다. 품성이 어디에서 오든 선하고 착하기만 하면 그것으로 그만이다.
저녁상을 밀치고 나면 기다리는 차례는 숙제 풀기와 책읽기다. 시간이 나면 컴퓨터게임도 빠뜨리지 않는다. 하루의 피날레는 아빠 엄마와의 통화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로 끝맺는다 그 다음은 누나가 학원에서 돌아오는 9시 10분으로 어김없이 이어진다. 10여 분간의 대화는 얼마나 진지하고 다정한지! 누나와의 통화가 그날의 마감을 알리는 괘종이다.
누나와의 대화 끝이 서운할까 봐 나는 곧장 장난기를 발동한다. 똑강(똑똑한 강아지라는 애칭) 너 ‘똑똑하다며, 키 크다며, 힘세다며’로 시작된다. 이 장난말은 할아비와 손자가 서로 똑똑하고 키 크고 힘세다는 자기 자랑을 한 것이 발단이 되었다. 단둘의 생활에서 할아비는 손자와 흉허물 없는 친구가 돼야 했다. 이것이 몸에 배여 손자는 늘 나에게 반말을 했고 그러다가 아빠 엄마로부터 꾸지람을 듣기도 했다. 사실 나는 손자가 반말하는 게 더 정겨운데도 버릇 나빠진다니 그대로가 좋다고 말하지도 못한다. 그래서 또 희한한 말투가 생겼다. 나와 대화중에 ‘그래’로 끝나다가 엄마가 눈을 흘기면 얼른 ‘요’를 뒤따라 붙인다. 두 마디를 이으면 ‘그래요’가 되는 것이다. 얼마나 우스운지…옛말에 손자 귀여워하다가 상투 잡힌다고 했다. 젊었을 때는 ‘그럴 리가?’했지만 이제야 알게 됐다. 아하~ 이거로구나 하고.
손자가 잠들 때까지 팔베개해 주며 오늘 손자와의 하루를 바둑판 복기하듯 되풀이한다. 잘한 일은 칭찬하고 부족했던 일은 어떻게 고쳐야 좋은 사람이 된다고 일러 주는 일이다. 때로는 할아비의 옛이야기도 들려준다. 밑천이 딸리면 ‘옛날에 할아버지와 손자가 살았는데 손자가 말을 잘 듣지 않으니까 호랑이가 나타나 이놈 고추 따 먹어야 되겠다. 으흥하더래.’등 즉흥자작도 곧잘 했다. 너무 재미있어 하고 호기심도 발동한다. 어떻게 하든 손자가 외로워하거나 잡념을 가지지 못하도록 무진 애를 쓴다.
아이에게 정신적 지주로서 확실한 자리매김을 하고, 녀석의 마음과 몸의 건강까지 함께 챙겨주려는 노력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
손자는 목요일마다 CCA에 참가한다. 4시 15분에 끝나기 때문에 매일 가져가는 용돈 2달러에 점심값으로 2달러를 더 얹어 준다. 손자는 때때로 학교 용돈을 아껴 쓰고 남은 돈은 저금통에 넣는다. 그렇게 모아진 돈이 지난해는 52달러였다.
내일은 손자가 가장 고대하는 럭키데이(Lucky Day) 금요일이다. 손자가 지어낸 소위 황금요일인 것이다. 왜 금요일이 그렇게 좋은지 물었더니 첫째 이유는 일주일이 갔다는 것과 두 번째는 늦게 잠자리에 들어도 된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다음 날 바깥나들이를 할 수 있어 더욱 좋다고 했다. 우리는 토요일이면 베독 도서관에 나가 책을 빌려 온다. 바깥바람을 쐴 수 있는 유일한 기회다. 서너 달 전까지만 해도 수요일에도 나갔는데 지금은 토요일만 나다닌다. 빌려 볼만한 책이 없다는 핑계다.
이렇듯 금요일은 손자에게 있어 해방감을 만끽하는 날이다. 내게는 손자와 함께 도서관에 간다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오늘 낮에 갑자기 천둥번개가 치고 소나기가 내린다. 샌들과 우산을 챙겨 나섰다. 비 오는 날이면 학부모들도 교정까지 들어갈 수 있었다. 손자 운동화를 벗기고 샌들을 신겼다. 운동화를 버리면 다음 날 등교가 문제다. 등굣길에 비가와도 마찬가지다. 운동화는 비닐봉투에 넣고 샌들을 신고 간다. 학교 앞에서 신발을 갈아 신기는 것이다. 운동화가 비에 젖으면 하루 종일 축축한 운동화를 신고 있어야 할 판이니 그럴 수는 없어서다.
비 내리는 육교의 정취는 언제나 늙은이의 마음을 심란하게 한다. 한발 떼고 한 계단을 오르면서 ‘경상도 아가씨’를 개사한 -♬ 사십 계단층층대를 올라가는 할아비 울지 말고 속 시원히 웃어 봅시다♩- 제법 큰 소리로 불러 대도 자동차의 굉음에 묻혀 간다.
이렇게 기러기 할아비와 손자의 하루하루는 동녘과 서녘을 넘나들며 지나간다. 무엇보다 고마운 것은 손자가 이 할아비의 속마음을 읽기라도 하듯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반찬도 참 맛있다고 하고 행동거지도 흐트러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럴수록 애처롭다. 아빠와 누나가 창이공항을 떠나던 날 애써 눈물을 삼키던 손자의 모습은 지금도 내 가슴을 헤집는 아픔으로 남아 있다.
<토요일에 계속>
댓글목록
청풍명월님의 댓글
청풍명월 (hwan8606)할아버지의 살뜰한 손주 사랑이 정말 감동입니다. 오로지 자신만을 집중해서 사랑으로 대해주는 할아버지가 잇어 얼마나 행복햇을까요 손주가 넘 부럽네요 제가 자랄때는 사느라 바쁜 부모님으로 늘 외롭고 허전햇어요 그건 성인이 되어서도 살아가는데 많은 영향을 주어 내 아이들에게는 정말 잘 해 주어야지 하면서도 받아 보지 못해서일까요 아이보다 내가 먼저 일 때가 더 많아요
청풍명월님의 댓글
청풍명월 (hwan8606)그러는 제가 맘아 안들어 속상하곤 해요 손주에게 갖은 정성을 다하시는 모습을 보며 다시금 돌아보며 반성을 합니다!!!
둘리맘님의 댓글
둘리맘 (sohnjung)사진 속의 주인공이 누구일까..? 궁금하네요..안경을 전날밤에 닦는 모습, 용돈 2달러 지갑에 챙겨두는 모습, 등교길에 길고양이과 얶히는 내용...다...우리집 아들과 저의 모습이네요..다만..저는 정류장까지..입니다..10분 뒤에 셔틀타고 가는 동생을 배웅해야 하니까요!! 지금의 제 생활을 복사해서 보는 듯 하여 슬며시 웃어지내요..누가 나를 보고 쓴 듯한 느낌..이제..저는 아이들..점심에 먹을 것을 만들러 갑니다..그러면서 중얼거립니다..오늘 뭐 먹었나..오늘은 안물어 봐야지..라고...좀 틀린 구석도 만들어 보려고요..
남강(서생)님의 댓글
남강(서생) (h12k13)청풍명월님, 할아비의 사랑이 어디 엄마 아빠만 할까요? 진정한 사랑은 마음 깊숙이 있는 것입니다....둘리맘님, 사진속의 손자는 앞줄 검정넥타이 맨 학생 옆 아이입니다. 엄마 생활의 복사판 같다고요? 눈에 선하게 다가옵니다. 두 분 모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