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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생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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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유 있는 고장

페이지 정보

  • 맛깔 (karchizorim)
    1. 3,031
    2. 0
    3. 2
    4. 2012-12-18

본문



벽걸이 에어컨이

켜진 상태에서 고장이 났다

리모컨의 신호를 받지 못하는 센서,

전기 코드는 벽 속에 숨어 보이지 않아

멈추는 방법을 모르는 에어컨과 나



꺼지기까지 15시간

윗목에 놓아둔 물 한 잔이 꽁꽁 얼어있던

아스라한 유년의 겨울 아침처럼

성에 낀 창문에 입김 불어

수묵화 한 점 그릴 법한 냉기를

고스란히 받았다



물구나무선 듯

여름이 겨울로 보이는 방,

내 안 깊숙한 곳에 고여 있던 겨울 추억마저

역류의 물살을 타고 올라

꾸역꾸역 풀어놓은 이야기로

빙판을 이룬 겨울 체험



여름 나라에 살면서

추위에 무디어진 감각 세포를 흔들어 깨워

겨울로 갈 차비 差備 단단히 하라

서리로 내린 센서 이탈 사건을

타국살이 비망록 끝줄에 쓴다



댓글목록

머라이거님의 댓글

머라이거 (merliger)

'추위가 그리우시면 싱가폴도 추워질 수 있으니 가지 마세요'라고
에어컨이 떠나시는 맛깔님과의 헤어짐이 안타까웠을까요? ^^

맛깔님의 댓글

맛깔 (karchizorim)

공교롭게도 방에 있는 에어컨 세 개가 모두 이틀 간격으로 고장이 나네요
센서가 수명이 다했다는 현실적인 문제에 앞서
저는 이런 작은 사건 하나에도 뭔가 의미를 붙이곤 하게 됩니다
사람이 살고 머무는 곳,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 사람과 정이 든 물건과의 정 또한
놓질 못하는 성격 때문인지는 몰라도...
돌아보면 아쉽고 앞을 보면 털고 싶은 기억들도 많았던 싱가포르의 생활이
이제 떠나면 다시는 찾지 못하겠지만 그럼에도 빙긋 웃을 수 있는 추억도 많았으니
그것이면 행복했다 말하렵니다
감사합니다! 내내 즐거운 생활이 되길 기원드립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앤 해피 뉴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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