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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람 사는 이야기-(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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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강(서생) (h12k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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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7
    4. 2011-11-26

본문

<지금 대한민국에는 가슴 섬뜩한 뉴스로 나라를 온통 혼란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다름 아닌 고등학생이 어머니를 살해하고 8개월 동안 방 속에 내버려둔 슬픈 이야기입니다. 이유는 전국 1등을 강요하는 어머니가 두려워 죽였답니다.
엄마들의 1등 병이 빚어낸 우리들의 일그러진 모습을 보는 듯하여 안타깝습니다. 이 어두운 단면이 통계로도 나타나 있습니다. OECD 30개국 가운데 한국 청소년의 자살률은 1위인 반면 행복지수는 25위라고요.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고 행복하게 만드는 방법은 꼭 학교공부 1등을 만드는 길밖에 없을까요?
가정이 해체되고 가족이 흩어져 살아야하는 우리의 자화상을 이 기회를 통해 다시 한 번 음미하고자 이 글을 올립니다.  
필자는 이미 ‘1등이란 오답’(사람 사는 이야기-30회)을 올렸습니다. 이 글도 한 번 더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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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과 가정의 의미
     - 핵가족의 사회문제 -

‘포근하고 편안하다.’ 이는 가정의 상징적인 밑그림이다. 마음과 몸을 편히 내려놓는 보금자리다. 가정이라는 울타리만큼 살가운 곳이 어디 또 있으랴. 그곳에는 언제나 사랑이 넘쳐 나고 훈기가 넘실댄다. 서로 보듬고 볼을 비빈다. 아이들은 어리광을 부리고 어른들(할아버지 할머니) 은 흐뭇하다. 아이들이 가족의 꽃이라면 어른은 든든한 뿌리다. 아이들의 재롱이 귀엽고 쑥쑥 자라나는 모습이 대견하다. 아이들에게는 누구도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가 있다. 한량없는 여지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가족의 노른자위를 차지하고 있다. 어른들은 은근히 아이들을 통해서 못다 이룬 꿈을 피워 보려고도 한다. 그러나 이는 한낱 바람일 뿐 가족은 무한한 가족애만이 존재의 가치다.
어쩔 수 없는 혈연이기 때문이다. 결혼식 주례사에서 빠뜨리지 않는 필수 멘트가 있다. 그 첫 번째가 부모에게 효도하라는 것이다. 날 낳아 주시고 길러 주신 은혜를 잊지 말라고 이른다. 두 번째가 부부는 가까운 만큼이나 더욱 조심하고 존중하라고 한다. 그리고 인연을 역설한다. 자식으로 태어나는 것도, 부부로 만나는 것도, 모두가 인연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사실 그렇기는 하다. 어쩌면 70억만 분의 1 의 만남인지도 모른다. 이토록 부자와 부부는 천생연분이라는 그 어떤 연결고리에 의해 만난다. 그 소중하고 귀한 만남이 가족의 바탕이다. 가족과 가정을 떼어 놓고 설명할 수 없는 것이 인간관계의 기본 틀인 것이다.
건강하고 행복한 가정을 위해 가족은 피땀 흘리며 일한다. 튼튼한 가정을 지켜 내기 위해서다. 이렇듯 가정은 가족이 함께 웃고 울 수 있는 삶의 공간이다. 여기에는 언제나 화기애애한 정이 넘쳐흐르는 곳이다. 가족의 소중함이 여기에서 기인되는 이유다.
언제부터인가 가정의 구성원인 가족이 핵분열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일컬어 핵가족이다. 아마 21 세기에 들면서 분명해졌다. 가정의 가족은 고작 세 명 내지는 네 명이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빠져 있는 것이 당연시되었다. 2세대, 그것도 극소수의 자녀만 있는 곳이 오늘의 가정이다.
1970 년대까지도 가정은 3대가 모여 사는 곳이었다. 가족구성원은 적어도 여섯에서 열 명 정도가 기본단위였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물론 삼촌과 숙모도 있었다. 손주와 조카가 한 우리 안에서 부대끼며 살았다. 희로애락이 꽃피던 곳이 곧 가정이었다. 그 풍속도가 서서히 사그라지면서 인간관계가 큰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물질만능과 기계화문화가 빚어낸 극도의 이해관계다. 잇속 따라 엉클어진 모습이다. ‘천륜’도 예전의 사전적 의미에 불과하다. 편이만이 존재한다. 복잡하고 거추장한 것이 부담스럽고 귀찮은 것이다. 하나라도 더 떼어 내면 그만큼 숨 쉴 공간이 넓어진다는 생각이다. 독신자가 늘어나고 아이 낳기조차 싫은 현상이 이를 잘 설명하고 있다. 옳고 그르고를 떠나서 삭막한 현실이다. 극도의 이기주의가 가칠한 세상으로 변모시키고 있다. 어른과 아이의 경계선이 급격히 무너지면서 어른 없는 세상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가정의 조화가 깨지고 세상의 이치가 훼손되는 징후다.
상하좌우가 존재하는 이유는 균형이다. 균형이 흔들리거나 뒤리면 온전히 존재하지 못하는 것이 세상이치다. 인간의 삶에 있어 이 기본이 지금 심각히 요동치고 있다. 나밖에 생각하지 못하는 편협한 마음이 인간의 기본을 노략질하고 있는 것이다. 우선은 참 편하고 수월하다. 그러나 그 시간은 길지 않다. 세월이 곧 증명해 줄 테니까 말이다. 사람이 어리석은 것은 당장 닥쳐올 확실한 내일조차도 애써 뭉개며 지우고 싶은 소갈머리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불안한 잠재의식 때문인지 모른다.
“내일은 있을지 없을지도 모른다. 오로지 오늘만 편하면 그만이다.”하기야 그렇다. 멀쩡했던 사람도 갑자기 죽는 세상이 아니던가. 도처에 무덤이 도사리고 있다. 자동차라는 괴물이 그렇고 천재지변이라는 하늘의 노여움이 또한 그렇다. 동남아시아와 일본의 대지진과 쓰나미에서 우리는 인생의 허무함을 너무도 생생히 보았다. TV 뉴스에서는 사람의 목숨을 앗아 가는 모습이 지겹도록 방영되고 있다. 지나친 기계문명의 폐단이다. 끝없는 인간의 탐욕이다. 손바닥 크기의 강철조각이 사람을 조정한다. 스마트의 시대라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인간의 존재를 무력화시키고 있다. 인간의 편의일변도의 집착이 스스로를 기계의 노예로 만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인간을 논한다는 것조차 무의미하다 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다.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기계의 종을 자초한 것이다. 주체가 완전히 뒤바뀐 주객전도의 현상이다. 이를 두고 인간성 상실의 시대라고 할 만하다. 과연 옳고 바람직한 모양새인가? 백보를 물러서서 봐도 의문은 여전하다. ‘하루를 보면 인생을 안다. ’하루 두세 끼 밥 먹으면 연명하는 것이 인생이다. 하루하루를 이어가는 나약한 한 생명체의 일원에 불과한 존재다. 언제 무슨 일이 닥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머리를 싸매고 투쟁하는 것은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얻으려는 욕심 때문이다. 제아무리 과학문명이 발달해도 불멸의 영생은 없다. 생물의 한계를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이 천리다. 의술의 발달이 생명의 연장수단일 수는 있어도 죽음까지 막을 수는 없다. 기껏 살아야 팔구십인데도 자기 하나만을 위해 자기 잇속만 챙긴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바보스런 짓인가 . 억척스레 사는 목적이 분명해야 하는데도 오로지 ‘ò잘 살기 위해서다.’라는 막연한 대답이다. 일신의 편의가 곧 잘 사는 길이라면 더는 할 말이 없다. 개인지상주의가 삶의 한 방식으로 인식되어 가고 있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인간은 어울려서 살 수밖에 없고 그 중심축이 곧 가족과 가정이라는 것은 불변의 진리다. 이를 인위적으로 깨부술 때 삶의 모든 균형이 뒤틀리는 것이다.
세계의 삶을 주도하는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 가입국가에서 가장 큰 골칫거리가 있다. 여성의 독신자 숫자가 날로 불어나고, 출산을 기피하거나 적게 낳는 저출산 사태다. 신생아는 줄어들고 노인층은 두터워지는 현상이 날로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통계가 뚜렷이 증명하고 있다. 이런 풍조가 우리나라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우리나라 출산율은 2010 년도 기준 1.24 명으로 세계 평균 2.52 명의 절반도 안된다. 이는 세계 186 개국 가운데 184 위로 도시국가를 제외하면 사실상 꼴찌에서 1 위다. 이에 반해 노령인구는 전체인구의 7% 인 ‘고령화사회 (Aging Society)’로 2000 년부터 진입했다. 2020 년에는 14.4% 의 ‘고령사회(Aged Society)’로, 2026년쯤엔 20%가 넘는 ‘초고령사회(post-aged society)’에 도달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 이야기의 중요성은 노동력이 있는 젊은 층의 부담이 과중된다는 데 있다.
여러 연구에서 우리나라는 2050 년쯤 노인인구가 38.2% 에 달해 생산가능인구 1.4명당 노인 1명을 부양해야 할 것이라는 진단이다. 출산은 줄어들고 수명은 늘어나는 데 따른 사회적 비용을 말하는 통계다.
굳이 이 같은 비관적인 통계를 왜 인용하는가 하면 대답은 간단하다. 가족과 가정의 의미가 빠르게 퇴색될 것이기 때문이다. 1인 1가정 형태로 변모할 것이 빤하다. 가족이 없는 가정을 말하는 것이다. 상상만 하여도 끔찍하지 않은가?
우리나라도 이에 대비하여 2005 년 5 월 ‘저출산 ·고령사회기본법’이 제정되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노인들의 생계해결책에 불과할 뿐 인간본연의 문제해결책은 아니다. 인정이란 돈으로써는 도저히 살수(매입) 없는 지고지순한 무형의 인간자산이기에 그런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지금 우리나라의 독거노인 숫자는 100 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 젊은이들의 1인 1가정과는 그 차원이 전혀 다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자녀들로부터 버림을 받았다는 뉘앙스가 강하기 때문이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가족으로 인정하지 않는 의식이 날로 팽배하고 있는 것이다. 생리적인 ‘노년의 고독 심리’에 플러스를 가하는 잔인한 형상이다. 이는 노인자살률에서 쉽게 헤아릴 수 있다.
“자식들에게 짐이 되기 싫어 이제 갈란다. ”77세의 할머니가 44세의 아들에게 말한 통화내용이다. 이를 보도한 언론사는 2009년 65세 이상 남성 자살자는 1,235 명으로 1990년 234명보다 527배 증가하였다고 했다. 최근 20년간 노인 자살률이 급증한 것은 핵가족화 등 가족해체가 가속화되면서 발생하였다고 분석했다. 가정에 할아버지의 자리가 없어져 버린 결과다. 서글픈 일이다. 자식을 위해 일생의 대부분을 받친 결과라면 더는 살맛이 없을 것이다. 살기 위해 숨 쉰다는 것조차 고통이었을 것이다. 얼마나 아팠을까? 얼마나 쓸쓸하였을까? 우울증과 치매가 왜 찾아왔겠는가? 주변에 아무도 없어서다. 어깨를 나란히 함께 갈 동행자도, 살가운 말동무도, 손주들의 재롱도 볼 수 없어서다.
이런 현상이 어디 노인들만의 것이겠는가? 예비 노인일 수밖에 없는 젊은이들도 마찬가지다. 오로지 살날의 여유분이 다소 많다는 것 외는 똑같다. 다만 혼자이기를 타의가 아닌 자의적 선택이었다면 다를 것이다. 어쨌건 가족과 멀리 있거나 , 없다는 것은 더없는 불행이다. 본인은 물론 모든 인연의 불행이다. 가족과 가정이 헐겁다는 것은 사람 사는 본모습이 아니기에 그런 것이다. 세상의 모든 존재의 진면모와 값어치는 꽉 채워진 알곡에 있다. 빈틈이 적으면 적을수록 오붓하고 따뜻한 것이다. 열심히 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는 하이에나를 무척 경멸하고 증오한다. 이유는 외모도 흉측한데다 남의 것을 빼앗아 먹고산다는 데 있다. 그러나 언젠가 그 사고가 바뀌었다 . 끈끈한 가족애다. 대가족이 더불어 산다는 게 그토록 부러울 수가 없다. 살기 위한 수단이라고는 하지만 그것이 바로 생존의 의미가 아닐까 해서다. 그들에게는 먹고사는 것밖에는 아무 욕심이 없다. 위계질서가 반듯하고 가족애가 넘쳐흐른다.
고도의 지능을 가져서 고등동물이라 일컫는 사람의 삶과 먹고사는 데만 급급한 하등동물과는 무엇이 다르고 어떤 것이 우위일까?
물욕, 명예욕, 지배욕, 과시욕, 성취욕, 하나같은 탐욕일까? 아니다. 이것들이야말로 인간성의 무덤이다. 탐욕의 성취를 위해 거추장스런 것은 버릴 수밖에 없다면 그것은 곧 반인륜이다.
가족의 존재가치마저 부정하는 인간성에서 어찌 사랑을 말하고 이웃을 찾겠는가? 이것이 오늘의 우리들 자화상이라면 너무도 서글프지 않은가? 가족의 단순화가 삶의 질을 높인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바보천치이거나 자기부정이다. 행복의 첩경으로 여긴다면 더욱 심각한 수준이다. 분명, 우선은 편하고 편리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얼마 가지 못한다. 기껏해야 20~30 년에 불과하다. 그보다 많은 나머지 인생을 고독으로 살아야 할 것이다. 자신의 과거행적이 고스란히 자기에게 되갚음 되기 때문이다. 삶에 있어 고독이라는 형벌만큼 잔인한 것은 없다. 예전의 유배라는 형벌도 인간의 최대 최고의 취약점을 노리고 활용한 것일 게다.
유학에서는 인간은 희로애락애오욕( 喜怒哀樂愛惡欲)의 칠정( 七情)을 가지고 있다 했다. 즉 기뻐하고, 성내고, 슬퍼하고, 즐거워하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욕심내는 것은 사람이면 가지지 않을 수 없는 기본적인 심성(心性)이라는 이야기다. 동감이 가는 정의다. 그런 뜻에서 가족이란 칠정을 풀어내는 힘이자 가정의 정서를 녹여 내는 공간이라 말하고 싶다. 기쁘면 기쁜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함께 웃고 우는 것이 가족이고 가정인 것이다. 거기에는 오로지 정만 있을 뿐 어떠한 이해관계도 헤집을 수 없는 순수한 곳이다. 그래서 가족 구성원이 다양하고 그 수효가 많으면 많을수록 효과는 배가되는 것이다.
지금의 가정은 부모와 자녀 한두 명으로 자리매김했다. 달랑 세 식구 아니면 네 식구가 가족의 전부다. 그곳에는 근엄한 할아버지도 사랑의 할머니도 없다. 소위 핵가족시대의 단면이다 . 참 편리한 구조다. 당연한 현상으로 치부한다. 대가족이 어우러져 칠정을 나누고 보듬던 시대는 각박한 시류 따라 흘러가 버렸다. 3~4세대가 한 지붕 아래서 오순도순 살던 이야기는 지나간 먼 옛날의 동화 속에서나 만나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현대화라는 거센 바람에 편승된 핵가족과 미니 가정이 왠지 위태롭게만 보인다.

                                                                                                                              <34회에서 계속>

댓글목록

구름에 달가듯이님의 댓글

구름에 달가듯이 (jxkk)

우리의 삶의 기준을 국가나 사회가 무엇을 해주어야 한다는데 놓지말고, 각 가정들이 나름대로의 가치관을 놓고, 자녀들을 잘 적응시켜야 할 것 같습니다. 

요즘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가족관련 대부분의 사건들의 원인은 그 부모들의 책임이 크다고 하고 싶습니다. 
부모들의 가치관이 공부1등, 혹은 남의 아픔을 무시한 혼자만의 이익추구 등으로 구성된다면, 당연히 그 집안의 구성원들은 인간답게 살기보다는 자신의 이익과 평안을 위해서는 부모를 죽여도 괜찮다는 방향으로 흐르지 않을까요? 가정 교육의 중요성을 우리 모두가 깨닫고, 자신의 집안부터 가치관 정립을 하고, 그 가치관이 자식들을 통해서 반영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 같습니다.  각 가정에서 해주지 못하는 가치관 교육을 학교나 사회가 해주기를 바란다는 것 그 자체가 모순이란 뜻이지요. 

자라나는 아이들을 인간으로 키우지 않고, 하이에나, 혹은 호랑이와 같은 짐승으로 키워놓으면, 어느순간, 약간의 불편한 상황 만으로도 부모를 물어죽이는 짐승의 본성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부모님의 방종적인 사랑이 아니라, 가치관이 잘 정립된 올바른 사랑, 인간적으로 잘못된 것은 꾸짖어주고, 성적이 조금 쳐지거나, 친구들에게 무엇인가를 빼앗기고 오더라도 너그럽게 봐줄 수 있는 지극히 인간적인 사랑만이 아이들을 올바르게 키워줄 수 있는 기본적인 토양이 아닐까 합니다.

자식을 짐승처럼 키웠을 때, 가장 큰 폐해는 그 가족에게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재인식해야 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고맙습니다님의 댓글

감사합니다고맙습니다 (vibraphone)

각골난망  하겠습니다.
영어하나  더잘  하는거  보다  올바른  인성과  가족이  중요하단  이야기 이시지요.
이곳 싱가폴에 조기  유학  이나  기러기 가족들에게  하는  이야기이신거죠.

줄리앙님의 댓글

줄리앙 (kofather)

머릿글에서 제언하신 있을 수 없는 반 인륜적 경악할 말한 사건이 아니더라도 얼마전 패륜적 '도가니'사건 등 언론의 지나친 상업적 보도와 '선정적 이슈 중심주의'의 흐름은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시대적 해법과 문제해결방식에 대해 곰곰히 생각을 하면서 어찌 저리 깊이 생각하실까하는 생각을 하며 역시 깊은 경륜과 삶의 지혜는 인생선배님들로 부터 배워야 산경험이요 교훈이라는 사실을 절감하게 됩니다.

선생님의 탁견 소중하게 간직하며 많은이들이 한국촌을 통해 자녀 교육의 본보기의 지침으로 삼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늘상 올려주신 글  정독하곤 합니다. 끊임 없는 애정과 사랑으로 한국촌에 올려주신 주옥 같은 글들이 먼 이국땅에서 생활하는 많은 이들에, 먼바다에 항해하는 배들에 등대같이 빛나는 글이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즐리앙

남강(서생)님의 댓글

남강(서생) (h12k13)

구름에 달 가듯이님, 애칭이 참 아름답습니다. 서정이 스르르 흘려내립니다. 첨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고맙습니다님, 저의 지인 한 분이 "감사합니다"라는 말씀으로 국민운동을 벌리고 계시지요. 매사를 감사한 마음 하나로 이해하고 살면 막힐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닉네임에 공감합니다. 고맙습니다.
언제나 감사하신 줄리앙님, 칭찬을 받을 때마다 부끄럽습니다. 사실 저는 고도의 물질 문명시대가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희망과 행복을 주고 있는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다음 출간 예정의 글은 여기에 초점을 맞추려고 합니다. 모두모두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훈이네님의 댓글

훈이네 (dany17)

남강서생님세상에모든짐을 다내려놓으신분같아요 처음 글을 접했을때 작가아니면 소설가가 직업이신가그렇게만 알았어요 한편에 에세이를 읽는듯한  제자신을 돌아보게끔 만들어 주시고 제자신에잘못을 채찍질하게끔해주시네요  교만 오만 이모든것들이 욕심을 만드는데 저또한 남강서생님 처럼 어깨에 짊어진짐을 다 내려놓고 제자리에서 열심히 살아야겠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좋은 말씀 잘보고 갑니다 감사드려요 다시한번 저를 뒤돌아볼 기회가 생겼습니다

남강(서생)님의 댓글

남강(서생) (h12k13)

훈이네님, 반갑습니다. 늦게 들리는 바람에 답글이 늦었습니다. 과분한 말씀에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그저 나이 먹은 것 밖에는 없습니다. 지나간 저의 글을 보시면 이해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늘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감사합니다.

훈이네님의 댓글

훈이네 (dany17)

남강 서생님 ^^ 메리크리스마스 입니다 건강하시고 얼마남지 않은 한해 더 멋지게 마무리 하세요 좋은글 또 올려 주시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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