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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란지교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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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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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 저녁 아이를 재우고 난 후 남편과 약간의 언짢은 일로 인해 무작정 밖으로 나와보니 막상 갈만한 곳도, 연락할 만한 친구도 없었다.
거리를 무작정 거닐던 내 뇌리에서 계속 맴돌던 "지란지고를 꿈꾸며"의 한 구절. 여고때 너무 좋아 줄줄줄 외었던 이 시의 한 구절만이 계속 맴돌 뿐이었다.
이 곳에서 오랜 동안 살아 오면서 현지인 친구든 한국인 친구든 정말 저 시의 첫 구절처럼 대할 수 있는 친구 하나가 없다는게 서러웠다.
월요일, 또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바쁜 오전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잠시나마 이 시를 감상하고 싶으신 분들을 위해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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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란지교를 꿈꾸며
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입은 옷을 갈아입지 않고, 김치냄새가 좀 나더라도
흉보지 않을 친구가 우리집 가까이에 있었으면 좋겠다.
비 오는 오후나 눈 내리는 밤에 고무신을 끌고 찾아가도
좋을 친구, 밤 늦도록 공허한 마음도 마음 놓고 보일 수 있고,
악의없이 남의 얘기를 주고 받고 나서도 말이 날까 걱정되지 않는 친구가
사람이 자기 아내나 남편, 제 형제나 제 자식하고만 사랑을
나눈다면 어찌 행복해질 수 있으랴.
영원이 없을수록 영원을 꿈꾸도록 서로 돕는 진실한 친구가 필요하리라.
그가 여성이어도 좋고 남성이어도 좋다.
나보다 나이가 많아도 좋고 동갑이거나 적어도 좋다.
다만 그의 인품이 맑은 강물처럼 조용하고 은근하며 깊고 신선하며
예술과 인생을 소중히 여길만큼 성숙한 사람이면 된다.
그는 반드시 잘 생길 필요가 없고, 수수하나 멋을 알고 중후한
몸가짐을 할 수 있으면 된다.
때론 약간의 변덕과 신경질을 부려도 그것이 애교로 통할 수 있을 정도면 괜찮고, 나의 변덕과 괜한 흥분에도 적절히 맞장구를 쳐주고 나서, 얼마의 시간이 흘러 내가 평온해지거든 부드럽고 세련된 표현으로 충고를 아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정이라 하면 사람들은 관표지교를 말한다.
그러나 나는 친구를 괴롭히고 싶지 않듯이 나 또한 끝없는 인내로
베풀기만 할 재간이 없다.
나는 도를 닦으며 살기를 바라지 않고, 내 친구도 성현같아지기를 바라진 않는다. 때로 나는 얼음 풀리는 냇물이나 가을 갈대숲 기러기 울음을 친구보다 더 좋아할 수 있겠으나, 결국은 우정을 제일로 여길 것이다.
우리는 흰눈 속 참대 같은 기상을 지녔으나 들꽃처럼 나약할 수 있고,
아첨같은 양보는 싫어하지만 이따금 밑지며 사는 아량도 갖기를 바란다.
우리는 명성과 권세, 재력을 중시하지도 부러워하지도 경멸하지도 않을 것이며, 그보다는 자기답게 사는데 더 매력을 느끼려 애쓸 것이다.
우리가 항상 지혜롭진 못하더라도, 자기의 곤란을 벗어나기 위해 비록 진실일지라도 타인을 팔진 않을 것이다. 오해를 받더라도 묵묵할 수 있는 어리석음과 배짱을 지니기를 바란다.
우리의 외모가 아름답지 않다해도 우리의 향기만은 아름답게 지니리라.
우리는 시기하는 마음 없이 남의 성공을 얘기하며, 경쟁하지 않고
자기 일을 하되, 미친듯 몰두하게 되기를 바란다.
우리는 우정과 애정을 소중히 여기되, 목숨을 거는 만용은 피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우정은 애정과도 같으며, 우리의 애정 또한 우정과
같아서 요란한 빛깔도 시끄러운 소리도 피할 것이다.
나는 반닫이를 닦다가 그를 생각할 것이며, 화초에 물을 주다가, 안개 낀 아침 창문을 열다가, 가을 하늘의 흰구름을 바라보다가, 까닭없이 현기증을 느끼다가 문득 그가 보고 싶어지며, 그도 그럴 때 나를 찾을 것이다.
그는 때로 울고 싶어지기도 하겠고, 내게도 울 수 있는 눈물과 추억이
있을 것이다. 우리에겐 다시 젊어질 수 있는 추억이 있으나, 늙는 일에 초조하지 않을 웃음도 만들어 낼 것이다.
우리는 눈물을 사랑하되 헤프지 않게, 가지는 멋보다 풍기는 멋을 사랑하며 냉면을 먹을때는 농부처럼 먹을 줄 알며, 스테이크를 자를때는 여왕보다 품위있게, 군밤을 아이처럼 까먹고, 차를 마실때는 백작보다 우아해지리라.
우리는 푼돈을 벌기 위해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을 것이며, 천년을 늙어도 항상 가락을 지니는 오동나무처럼, 일생을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 매화처럼, 자유로운 제 모습을 잃지 않고 살고자 애쓰며 격려하리라.
우리는 누구도 미워하지 않으며, 특별히 한 두 사람을 사랑한다 하여
많은 사람을 싫어하진 않으리라. 우리가 멋진 글을 못 쓰더라도 쓰는
일을 택한것에 후회하지 않듯이, 남의 약점도 안스럽게 여기리라.
내가 길을 가다가 한 묶음의 꽃을 사서 그에게 들려줘도 그는 날 주책이라고 나무라지 않으며, 건널목이 아닌 데로 찻길을 건너도 나의 교양을 비웃지 않을 게다.
나 또한 더러 그의 눈에 눈꼽이 끼더라도 이 사이에 고춧가루가 끼었다해도 그의 숙녀됨이나 신사다움을 의심하지 않으며, 오히려 인간적인 유유함을 느끼게 될 게다.
우리의 손이 비록 작고 여리나, 여로를 버티어 주는 기둥이 될 것이며,
우리의 눈에 핏발이 서더라도 총기가 사라진 것은 아니며, 눈빛이 흐리고 시력이 어두워질수록 서로를 살펴주는 불빛이 되어 주리라.
그러다가 어느 날이 홀연히 오더라도 축복처럼, 웨딩드레스처럼 수의(壽衣)를 입게 되리라. 같은 날 또는 다른 날이라도.
세월이 흐르거든 묻힌 자리에서 더 고운 품종의 지란(芝蘭)이 돋아 피어,
맑고 높은 향기로 다시 만나지리라.
댓글목록
줌마님의 댓글
줌마 (anejung)그러게요. 저도 항상 그런 친구를 꿈꾸네요. 5년이상이나 살았는데도 아는 사람은 많이 있는듯하지만 그런 허물없는...갑자기 우울할떄 밤 늦게라도 전화해서 목소리 들으며 수다떨수 있는 친구가 그리워요
blue님의 댓글
blue (jhoan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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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흰눈 속 참대 같은 기상을 지녔으나 들꽃처럼 나약할 수 있고,
아첨같은 양보는 싫어하지만 이따금 밑지며 사는 아량도 갖기를 바란다.
우리는 명성과 권세, 재력을 중시하지도 부러워하지도 경멸하지도 않을 것이며, 그보다는 자기답게 사는데 더 매력을 느끼려 애쓸 것이다.
우리가 항상 지혜롭진 못하더라도, 자기의 곤란을 벗어나기 위해 비록 진실일지라도 타인을 팔진 않을 것이다. 오해를 받더라도 묵묵할 수 있는 어리석음과 배짱을 지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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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에서 비롯된 어처구니 없는 일을 겪으면서 마음 아팠는데..윗글을 읽다가 울컥 눈물이 나네요..
저도 참 좋아하는 글인데..감사합니다.
외로운 타국에서 모두들 힘내세요..
MishaWang님의 댓글
MishaWang (sisqueen)
저도 한국에 있는 제칭구 생각에 울컥했어요..
좋은글 너무 감사드립니다..
yooni님의 댓글
yooni (jms7240)저도 고교 시절 달달 외우던 시였는데...무럭이나 좋아 했던 글인데...반갑네요. 가슴 저편에서 옛 일들이 밀려오네요.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시절...지란지교를 꿈꿈며 재잘재던 친구들 지금은 어디에 있나...보고싶고 그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