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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 사는 이야기-(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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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강(서생) (h12k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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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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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서로 사랑하는 마음 되자-
손에 손잡고(Hand in Hand)는 이탈리아의 작곡가 조르조 모르더 (Giorgio Moroder)가 작곡하고, 코리아나가 부른 1988년 서울 올림픽의 공식 주제곡이다.
하늘높이 솟는 불
우리의 가슴 고동치게 하네
이제 모두 다 일어나
영원히 함께 살아가야 할 길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
우리 사는 세상 더욱 살기 좋도록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
서로서로 사랑하는 한마음 되자 손잡고
어디서나 언제나 우리의 가슴 불타게 하자
하늘 향해 팔 벌려 고요한 아침
밝혀주는 평화 누리자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
우리 사는 세상 더욱 살기 좋도록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
서로서로 사랑하는 한마음 되자 손잡고
하늘높이 솟는 불
우리의 가슴 고동치게 하네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
우리 사는 세상 더욱 살기 좋도록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
서로서로 사랑하는 한마음 되자 손잡고
세계 각국에서 1700만 장이 판매되었다는 이 곡의 노랫말이 던지는 메시지는 세상은 하나라는 것이다. 그러기에 더불어 같이 살아야한다는 내용이다. 당시 유럽 차트와 미국의 라디오 방송 리퀘스트 1위를 달리면서 우리나라를 세계에 널리 알린 이 노래의 그 무엇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을까? 인종과 종교와 계층을 뛰어넘는 ‘사랑’이라는데 공감하였을 것이다. 이 세상의 언어 가운데 사랑만큼 아름다운 단어가 또 있을까? 사랑은 모든 것을 품고 아우른다. 적개심도 증오와 갈등도 사랑 앞에서는 굴복한다.
이토록 심오한 마력 같은 사랑은 어디에서 어떻게 오는 것일까? 서로가 가슴을 열고 손에 손을 잡을 때다.
사랑은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다. 오로지 주는 것이다. 대가가 없기 때문에 더 빛나고 따뜻하다. 이 또한 인간만이 가지는 특권 같은 존재다. 인간은 타고나면서부터 사랑을 먹고 자란다. 어머니의 젖을 빨고 가족의 울타리에서 자라나는 그 때 사랑은 저절로 싹을 틔운다.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고 친구들과 놀이하며 어울리는 그 때 사람을 배우고 익힌다. 사람과 사람이 스치고 부대낄 때 사회를 알게 된다. 만나서 기쁘고 서로의 마음을 나눠서 즐겁고 때로는 슬픈 눈물을 흘릴 때도 사랑은 함께 한다. 만남과 헤어짐의 모든 것에 사랑이 존재한다. 그래서 사랑은 크고 넓을수록 더욱 아름다운 것이다. 모든 종교가 사랑을 앞세우는 이유도 이래서다.
세계를 향해 사랑을 노래한 우리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손에 손잡고 왔을까?
2010년 기준 세계 69억 인구 가운데 남의 도움을 받아야만 살 수 있는 기아 인구는 무려 9억2500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14%라고 한다. 여섯 명 가운데 한 명이 만성적 기아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굶주리고 있다는 통계다. 이는 2011년 3월 영국의 경제지 파이낸셜 타임스(FT)가 보도한 내용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세계적인 식품가격 상승으로 연말까지 10억 명이 기아에 도달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이렇듯 이 지구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세끼 밥을 먹지 못한 채 배고파 죽어가고 있다. 굶주림에 허덕이는 대부분은 아프리카와 아시아 그리고 중동지역으로 가뭄과 더위라는 지형적 어려운 여건을 가지고 있다. 가뭄으로 땅은 메마르고 더위는 사람들을 나른하게 만들었다. 그들이 그래도 그 곳에서 살 수밖에 없는 것은 그들의 태어난 곳이기에 그렇다. 그 척박한 환경에서 태어난 그들도 세계가 보듬고 가야할 사랑의 대상이다. 그들에게는 굶주림으로 죽어가야 할 아무런 죄가 없다. 어쩌면 문명만을 쫓아온 소위 선진국의 환경파괴가 그들의 땅을 황폐화 시킨 것인지도 모른다. 굳이 책임을 따지자면, 잘 먹고 잘 사는 나라 사람들이 그리 자유롭지 못하다고 말한들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사랑은 아무것도 따지지 않는다. 아울러 원망하지도 시샘하지도 않는다. 그저 나누고 보듬는 것으로 따스하고 벅찬 것이다.
우리는 사랑하면, 가장 먼저 어머니를 떠 올린다. 아무런 전제나 조건이 없는 그야말로 무한한 헌신으로 생명을 보듬었기 때문이다. 그만큼은 못하더라도 우리가 먹고 입고 남아도는 것조차도 나누기에 인색해서는 사람의 도리가 아니다. 지금 선진국은 기부의 문화가 한창 꽃피고 있다.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우리나라도 불과 반세기 전에만 해도 동족상잔의 폐허에서 굶주리고 헐벗었다. 국민의 근면성과 무한한 도전정신을 유효적절하게 잘 이끈 지도자의 덕분으로 세계경제 10위권에 진입한 선망의 나라가 됐다. 삶의 기본인 의식주는 물론이고 수명연장도 상위권이다. 이 말은 몸서리쳤던 가난을 겪었기에 가난을 안다는 이야기다.
나는 자주 이태석 신부를 떠올리고 있다. 그는 왜 의사라는 보장된 삶을 굳이 뿌리치고 신부의 길을 걸었고 아프리카에서도 가장 가난한 오지 수단에 갔을까?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의 목숨까지도 불태웠을까?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그의 무한한 사랑을 두고 우리는 무엇을 생각하고 알아야할 것인가? 이 세 가지 질문에서 스스로를 되돌아보면 참으로 부끄럽고 죄송하기 한량없다. 그는 굶주리는 그들에게 물적 가치 그 이상의 정신적 궁핍을 극복하는 법을 가르치려 했다. 사람이 사람으로서 살아야할 이유를 알려주려 했던 것이다. 그것은 책이나 노트와 연필로써는 도저히 설명하고 주입시킬 수 없는 것들이다. 그들과 손에 손잡고 뒹굴고 뛰면서 나누어 줄 수밖에 없는 그야말로 순수한 인간미의 헌신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것이 바로 사랑이라는 이름이다.
이태석 신부는 1962년 9월 19일 부산 산동네에서 10남매 중 9번째로 태어났다. 9살 되던 해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며, 어머니가 자갈치시장에서 삯바느질을 해서 아이들을 키웠다. 초등학교 시절 동네 성당에서 다미앵 신부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를 보고 같은 삶을 살겠다며 다짐하였다고 한다. 1987년 부산 인제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한 그는 군의관으로 군복무를 마친 뒤 1992년 광주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 입학함으로써 성직자의 길에 들었다. 1997년 이탈리아 로마 유학을 거쳐 2000년 종신서원과 부제서품을 받았다. 2001년 6월 24일 서울에서 사제서품을 받고 11월 아프리카 수단 남부 톤즈(Tonj)로 향했다. 이것이 그의 톤즈행 이전의 대략적인 이력이다.
그가 수단을 선택한 것은 광주가톨릭대학교 재학 중 아프리카 케냐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20년 동안 계속되고 있는 내전으로 수백만 명이 죽었다는 남부 수단의 소식을 듣게 된 때였다. 수단은 아프리카에서도 가장 오지로 불리는 폐허의 나라다. 오랜 내전(內戰)으로 황폐화된 지역 주민들은 기아와 질병으로 하루를 버텨내기가 힘들었다.
이태석 신부는 그곳에서 가톨릭 선교활동을 펼쳤으며 말라리아와 콜레라로 죽어가는 주민들과 나병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흙 블록을 만들고 나무줄거리와 잎으로 지붕을 엮어 병원을 세웠다. 하루 200~300명의 환자를 돌보며 인근 80여개 마을의 순회진료와 예방접종도 했다. 하지만 오염된 톤즈 강물을 마시고 콜레라가 매번 창궐하자 톤즈의 여러 곳에 우물을 파서 식수난을 해결하기도 했다. 하루 한 끼를 겨우 먹는 열악한 생활을 개선하기 위해 농경지를 일구기 시작했고 학교를 세워 원주민 계몽에 나섰다. 처음 초등교육으로 시작한 학교는 중학교와 고등학교 11년 전 과정을 개설하면서 기숙사와 학교 건물을 증축했다. 전쟁으로 상처받은 원주민을 치료하는데 음악이 가장 좋은 효과가 있다는 사실에 착안하여 피리와 기타를 가르쳤고 예상을 뛰어넘는 효과가 있자 학생들을 선발하여 브라스밴드(brass band)를 구성했다. 수단 남부에서 유명세를 탄 그의 밴드는 정부행사에도 초청되어 연주하였다. 2005년 그의 헌신적인 공로가 인정되어 제7회 인제인성대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그는 미처 자신의 건강을 돌보지 못했다. 2008년 11월 한국에 잠시 입국하였다가 대장암 4기 판정을 받고는 톤즈로 다시 돌아가지 못했다. 투병생활 중 2009년 12월 17일 제2회 한미 자랑스러운 의사상을 수상했다. 암세포가 간으로 전이되어 증세는 점차 나빠졌으며 결국 2010년 1월 14일 새벽 5시 48세를 일기로 영면하였다.
그는 사제이자 의사였으며 교육자이자 음악가 건축가로서 일인다역을 하던 끝에 목숨까지 내놓았다.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리는 이유다.
묵상(默想)은 그가 작곡한 대표곡이며 저서로는 2009년 집필한 에세이집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가 있다. 이 책에는 아프리카 톤즈의 일상이 그려져 있다.
그는 비록 이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그의 삶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준 감동 그 자체다. 그가 떠난 지 1년 뒤인 2010년 12월 21일 제1회 KBS감동대상 대상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것이 백과사전에 수록된 그가 베푼 사랑의 기록이다.
그의 이 같은 삶을 영상으로 담아 2010년 9월 9일에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가 <울지마, 톤즈(Dont cry for me Sudan)>다. 이 영화는 KBS스페셜 〈수단의 슈바이처 故 이태석 신부 - 울지마, 톤즈>를 토대로 제작되었다.
한 인간의 삶이 왜 이토록 우리의 마음을 뒤흔들고 사로잡을까? 그것은 인간에게는 그 누구에게나 사랑이란 불씨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구호 선교단체에 정기적인 성금을 보내는 것도, 아들이 적십자 봉사활동을 벌이는 것도, 며느리가 국내외의 의료봉사에 빠지지 않고 참가하는 것도 아주 작으나마 한 줌 사랑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우리나라 연예인들이 해외 봉사에 적극참여하고 입양까지도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6.25 전쟁과 가난으로 우리는 많은 아이들을 외국에 입양시켜야 했었다. 60년대 독일광부로, 간호사로, 중동 근로자로 돈벌이를 나갔던 우리들이다. 그 때 우리는 가난의 고통을 뼈저리게 느꼈고 타국의 설움을 온몸으로 감당해야 하였다. 그런 아픈 역사가 우리에게 있었던 것은 불과 반세기 전이다. 그 주역들이 이제 70~80대의 고령으로서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
그래서인지 내가 바라보는 이태석 신부의 감동 인생은 남다르다. 아울러 우리나라에 들어온 외국인 근로자와 결혼 이민자들도 남의 이야기로만 치부되지 않는다.
지난 2009년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의 외국인 수는 총 1,106,884명이다. 이는 직전년도인 2008년에 비해 24.2% 늘어난 수치로 국내 총인구 4,9593,665명의 2.2%에 해당하는 비율이다. 이들 중 52%인 575,657명은 경제적인 이유로 한국에 온 외국인 근로자이고 11.4%에 해당하는 125,673명은 결혼 이민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이 52%이고 베트남, 필리핀 등 동남아 출신이 21.2%, 미국 5.4%, 남부아시아 3.9%, 일본 2.4%, 대만, 몽골 이 각각 2.1%의 순으로 집계되고 있다.
문자 그대로 다문화 사회와 가정으로 바뀌어져 가고 있는 것이다. 전국 주요 교통망의 안내방송은 영어와 중국어와 일본어로 멘트 되고 있다. “이번 역은 서울, 서울역입니다”라는 안내방송 뒤에 “This stop is Seoul, Seoul station" 그리고 ”这个站是汉城站“과 ”この停留所はソウル駅です“로 이어진다. 가요와 팝송 그리고 일본가요만 있던 노래방에도 언제부턴가 베트남어 태국어로 된 노래들까지 등장했다. 우리나라 드라마와 가요가 한류를 일으킨 것을 보노라면 격세지감이다.
지금 우리가 손쉽게 할 수 있는 나눔은 우리 주변에 있는 다문화 가정과의 교류다.
지난해 7월 언론을 뜨겁게 달군 기사의 헤드라인은 “베트남 새댁들, 정말 미안합니다(We feel sorry to Vietnamese). 그리고 사랑합니다.”였다. 부산으로 시집온 지 일주일 만에 남편으로부터 죽임을 당한 베트남 여성 탓티황옥씨의 추모행사장 피켓에 새겨진 사과의 글귀다. 그녀는 한국의 아내와 엄마가 되기 위해 한국 이름 ‘황옥’을 덧붙였다. 그런 그가 비명에 세상을 뜬 것이다. 이를 한 사람의 우연한 비극으로 치부하기에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실로 중차대한 사건이자 인식의 전환점이었다. 그럼에도 성의 노리개로 삼거나 돈벌이의 수단으로 여기고, 폭력과 학대로 말썽을 일으키는 사례도 그치지 않는다.
그 피해 당사자들은 물론이고 타국 땅으로 시집보내고, 낯선 타국의 일터로 내몬 부모들은 어떤 마음일까?
과거의 우리 모습에서 금방 읽힌다. 그들의 원망과 분노는 하늘을 찌를 것이고 한국에 대한 이미지는 한 순간에 바닥으로 내려앉을 것이다. 그 무엇보다 인간으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무리 목청 높여 손에 손잡고를 불러 대도 이런 사건들이 발생하고 쌓일 때 우리는 사람의 본디 모습을 훼손당하고 있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 다양한 국적과 인종과 문화를 가진 남녀가 한국가정을 이루거나 노동현장에서 몸을 부대끼며 살고 있는 것도, 그들보다 우리의 필요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위 우리나라 청년들이 기피하는 세 가지 업종을 그들 외국 근로자가 채워주고 있다. 농촌에 시집가기를 꺼려하는 분위기가 외국인 처자들을 불러오게 되었다. 그들로 하여금 농어촌이 살고 혈통이 이어지고 있다. 우리가 외려 그들의 은혜를 입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왜 차별을 받아야하고 따돌림을 당해야 하는가? 적반하장도 유분수다. 우리는 그들을 따뜻하게 껴안아야 한다. 그들과 그들의 아이들을 손 잡아줘야 한다.
나는 오래전부터 매주 수요일에 방영되는 KBS의 ‘러브인 아시아’를 꼭 챙겨 본다. 이주결혼여성들의 삶을 다루는 방송이어서 유별나게 관심이 간다.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남편은 물론 시부모와의 관계는 원만한지? 자녀들은 주변 아이들이나 학교생활에 문제가 없는지? 등등, 궁금하고 염려스러움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값싼 동정심이 아니다. 지명도가 대단한 인사여서도 아니다. 오로지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입장에서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국민이여서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은 국경도 인종도 따로 없다. 부모라는 이름 하나로 하나같다. 함께 웃고 우는 진솔한 우리들의 이야기프로여서 좋다. 그런데, 혹여 TV에 나올 수도 없는 아픈 이야기는 없을까? 그것이 걱정이다. 우리의 알량한 우월감과 무지와 편견이 슬픈 문제를 일으키고 있지는 않는지 당혹스럽다.
행여 국민소득 2만 불과 1천불의 잣대로 인격을 재려들지는 않는지? 못사는 나라에서 끼니나 때우려고 온 것으로 착각하지는 않는지? 이런 것들이 늘 마음을 무겁게 흔든다. 그녀들은 이미 어엿한 대한민국의 신부이자 농촌의 안주인이며 가정의 대들보가 되어 준 고마운 여성들이다. 그리고 그들 자녀는 엄연한 대한민국 어린이다.
그들이 설령 가난에 몸서리나서 국제결혼을 선택하였다고 하더라도 인격적인 푸대접을 받을 죄도 아니고 이유도 못된다. 결혼 그 자체로서 ‘너와 나’라는 이분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방인도 아니다. 동일한 위치에서 존중받아야 할 건전한 부부의 한 축이다.
삶의 국경이 허물어진지도 오래다. 글로벌 세상을 가장 많이 외치는 우리다. 인간은 결코 물질의 노예가 아니다. 인간답게 살 인격체다. 언제 어디서나 누구나 그렇다.
지난해 캄보디아 정부는 한국에 시집보내는 국제결혼을 제한조치 했었다. 인권을 최고의 선으로 여기는 21세기 문명시대에서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낯 뜨거운 일이다. 일그러진 우리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자신이 대접받고 인정받는 길은 남부터 대접하고 인정해 주는데서 비롯된다. 하물며 우리 이웃이자 우리 며느리로 들어온 결혼이주여성에 대한 대접이 애초부터 인격모욕이어서야 되겠는가.
모두 나서서 결혼이주여성들부터 챙겨야 한다. 다문화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넓혀야 한다. 내 이웃에는 필리핀, 베트남, 캄보디아 등지에서 시집온 여성은 없는지 살펴보자. 있다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아이들끼리 잘 어울리고 있는지. 학교생활에서 따돌림을 당하지는 않는지.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피부색이나 국적이 차별의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우리’라는 거스를 수 없는 공동체 의식과 인간의 도리를 훈육해야 한다. 사랑과 나눔의 값어치가 얼마나 고귀한 것인지도 똑똑히 익혀줘야 한다.
특히 필리핀과 베트남은 깊은 인연이 있는 나라다. 필리핀은 6.25전쟁 유엔참전국으로 혈맹이다. 우리가 은혜를 입은 16개국 중의 하나다. 그와 반대로 베트남은 우리 국군의 군화발이 찍힌 어쩌면 그 때부터 빚진 나라다. 이래저래 참으로 깊은 인연을 맺고 있는 나라들이다.
더는 미안한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젊은 어머니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고독에 아파할 이주결혼여성들을 껴안아야 한다. 우리의 따뜻한 인정으로 그들의 차가운 가슴을 데워줘야 한다. 낯선 땅의 서먹한 그녀들은 아주 작은 친절에도 감사할 것이다.
러브인 아시아 TV 프로를 통해서 그들을 보았다. 그들의 남모르는 고통과 아픔이 얼마인지를, 몰래 흘린 눈물이 무엇인지를 헤아려야 한다. 세계가 1일 생활권인 이 시대에 우리의 아들딸도 이국의 며느리와 사위가 되고 있는 현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의 딸이자 이웃이며 소중한 며느리라는 사실을 일깨우자. 얼마나 고맙고 애틋하고 사랑스런 새댁들인가.
그들에게 대한민국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해 주자. 그것이 이 시대를 사는 대한민국 우리들의 소명이다.
오늘도 내일도 꼼꼼히 살펴보자. 내 주변에는 사랑에 굶주린 아픈 사연이 없는지? 아주 작은 인정 하나로 웃음을 나눌 수 있는 내 몫은 없는지? 눈을 부라리고 챙겨보자. 우리의 아름다운 삶을 위해서다.
그래야 이웃과 세계를 보듬고, 어깨를 나란히, 손에 손잡을 수 있다. Hand in Hand를 목청 높여 부를 수 있다.
<30회에서 또 만나요>
댓글목록
줄리앙님의 댓글
줄리앙 (kofather)'울지마 톤즈'를 보고 밀려왔던 감동이 새롭습니다. 자신을 희생하며 숭고한 삶을 실천 해 간 그들을 다시금 기억하게 되네요. 남강 선생님 글 잘보고갑니다. 늘상 건필하시고 다음회에서 뵙겠습니다. 부키 판장 앞 세가로드에서 선생님의 팬 드림
남강(서생)님의 댓글
남강(서생) (h12k13)줄리앙 님, 반갑습니다. 비록 짧지만 참 잘 쓰는 글 솜씨입니다. 싱가포르에 있다면 만나보고 싶군요.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