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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 사는 이야기-(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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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강(서생) (h12k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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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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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항속의 물고기가 죽었다
-생명은 하나같은데..-
2011년 4월 27일 아침,
어제 내리던 비가 그친 아침이다. 엊그제부터 흐렸다 개였다 하면서 우중충하던 날씨가 개이기는 하였지만 온전한 4월 하순의 봄 날씨는 아니다. 어젯밤부터 속이 쓰리고 아프더니 자리에서 일어나기조차 싫다. 9시가 되어서야 침대에서 몸을 곧추세웠다. 기지개를 켜보지만 제 컨디션은 아니다. 거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여느 때처럼 시선은 남강쉼터에 꽂혔다.
어제 훌뿌려진 빗방울이 나뭇잎과 꽃잎에서 미적거리고 있다. 그래도 가끔씩 스쳐가는 햇볕이 피로감을 덜어주려 했다. 하지만 뱃속도 머리도 개운치 않기는 마찬가지다. 그것은 나흘 전부터 죽어가기 시작한 어항의 물고기의 잔영 때문이다. 어젯밤 늦게까지 몸을 가누지 못하던 마지막 물고기 엔젤피쉬를 차마 볼 수 없어서다. 봐야 할지 안 봐야 할지 한참 갈등했다. 종잡을 수 없는 감정이 교차하는 사이 내 자신도 모르게 눈은 벌써 어항에 가있었다. 은빛 엔젤피쉬는 아직 숨이 붙어있었다. 여전히 사투를 벌리고 있어 가슴이 내려앉았다. 저토록 끈질긴 삶의 몸부림을 어떻게 해야 보듬을 수가 있을까? 나로서는 아무른 손쓸 방법이 없다는데 억장이 무너진다.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저 생명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어디에서 찾아야하나? 죽어간 생명으로 시작된 나의 번민은 오늘도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뾰쪽한 해결책이 없는 내 자신의 무기력이 얄밉다. 마지막 한 마리까지 묻어야 하는지 마음이 아프다. 더 이상 볼 수가 없어 자리를 일어섰다.
명치끝이 여전히 시원찮아 동네 의원을 찾기로 했다. 두터운 잠바를 입었는데도 바람기는 싸늘했다. 해를 거듭할수록 요동치는 기후는 사계를 무색하게 한다. 며칠 전에는 서울과 강원도에 눈이 내리기도 했다. 이상기후는 많은 재앙을 불러오고 있다. 육지와 바다의 생태계를 교란하고 있다. 제때 피어나야할 꽃도 계절을 잊어버리는가하면 동해에서만 잡히던 고기가 남해와 서해에서도 잡힌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일본 대지진의 참상도 기후변화와 무관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인간이 자초한 자연 파괴의 앙갚음이 아닌지 소름끼친다.
이런저런 자문자답을 하면서 동네 의원에 들렸다. 위가 조금 탈이 났다는 진단이다. 위염인데 음식조심하고 마음 편히 가지라는 당부다. 만병의 원인이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이야기는 상식이 되었지만 어디 자기 마음 하나 다스리기도 쉬운 세상이던가. 어항 속의 고기만 해도 그렇다. 기르지 않았으면 마음 아파할 일도 없었겠지만 사람의 이기심이 이렇게 스스로를 옥죄지 않는가. 이는 분명 죗값이야. 제 명대로 살다가 갔으면 그래도 덜 아프지만 잘 못 기른 탓으로 귀한 생명을 앗았다는 것은 견디기 힘든 고통이다.
이야기는 4년 전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둘째 손자 녀석은 동물 키우기를 좋아했다. 풍뎅이와 거북과 열대어를 즐겨 키웠다. 큰 손자도 마찬가지였다. 여러 도마뱀과 햄스터를 좋아해서 인터넷 주문으로 사오기도 했다. 그러나 사육지식이 부족한 초등학생들로서는 감당하기 힘들었다. 그렇다고 부모들인들 잘 알 리 없고 챙길 시간도 많지 않다. 그러니까 사오면 죽어나기가 예사였다. 그럼에도 생명력이 강하고 키우기가 까다롭지 않은 거북의 경우는 10년 가까이 잘 키우기도 했다.
둘째 손자가 싱가포르 유학 가면서 엔젤피쉬와 비파(이끼고기) 등 몇 종류의 열대어를 사다두었다. 3년 만에 귀국했을 때까지 살아남은 것은 비파와 엔젤피쉬인데 엔젤피쉬는 4대째 새끼를 낳았다. 손자가 싱가포르에 있으면서도 엔젤피쉬와 이끼고기 안부를 자주 묻는 바람에 아빠가 그놈들 잘 보존하느라 엄청 많은 신경을 섰던 것 같다. 때로는 물고기의 살아있는 모습을 사진으로 보내와서 보기도 했다. 그 때마다 나는 손자에게 ‘한국가면 고기 잡아서 회쳐먹자’고 놀려댔다. ‘안 된다’며 기겁을 했다. 손가락 크기의 비파는 네댓 배는 더 컸고 2세대 할미고기 엔젤피쉬는 손자 손바닥만큼 크다. 3대가 잘 어울러서 활기차다. 무늬도 여러 갈래다.
손자가 애지중지하는 엔젤피쉬를 우리 내외가 분양받은 것은 지난 1월 3일이었다. 둘째 아들이 중간 크기의 어항과 함께 엥젤피쉬 3대 5마리와 새끼손가락 크기의 이끼고기 한 마리를 갖다 주었다. 아내가 좋아해서다. 아내는 꽃가꾸기에 능통하다. 시들어가는 꽃나무도 아내 손만 거치면 살아날 정도로 기술도 있고 애정도 깊다. 식물이든 동물이든 사람이 정성을 들여야 제대로 살며 큰다는 것이 아내의 꽃가꾸기 비법이자 지론이다.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자리에 자주 눕게 되는 아내로서는 눈앞에 놓여있는 어항속의 물고기도 애틋한 사랑의 대상이었다. 하루에도 여러 번씩 들러다보면서 대화한다. ‘잘 커라. 새끼도 많이 낳고...’ 아내가 아침에 다가가면 쪼르르 몰려든다. 밥을 달라며 떼를 쓰는 모습이다. 나도 여러 번 보았지만 신기하고 우습다. 그러기를 딱 넷 달째다. 어항 물이 누렇게 변한데다 이끼도 끼고 고둥도 보였다. 황토색 바닥 자갈은 고둥의 번식처가 된 듯 했다. 아주 작은 고둥새끼는 어항 벽에 까맣게 들어붙었다. 늘 찝찔하고 보기 싫었다. 아내는 나에게 물을 갈아주면서 고둥도 제거해야 하겠다고 자주 말했다.
사실 나는 어항의 불빛과 여과기의 소음이 잠자리를 방해할 것 같아 늘 마음에 걸렸지만 아내가 불편해 하지 않고 좋아하는데다 어항 온도도 괜찮아 그대로 두었었다. 그렇게 4월의 봄을 맞았다. 방에 불을 많이 지피지 않고 견디는 우리 내외의 두 방 온도는 4월 들면서 거실과 엇비슷하게 느껴졌다. 바깥 거실로 옮기면서 어항 청소도 대대적으로 하자며 벼렸다. 5월을 코앞에 둔 22일 아침, 더디어 작업은 시작되었다. 아내는 어항의 물고기를 조심스레 대야로 옮겼다. 나는 어항의 물을 퍼냈다. 네댓 양동이나 퍼낼 정도로 많았다. 황토색 바닥 자갈을 퍼내고 어항 구석구석을 깨끗이 씻었다. 그리고 3일 전부터 물에 담가두었던 하얀색갈의 새 자갈을 어항바닥에 깔았다. 어젯밤 중화제를 넣어두었던 수돗물을 어항에 담았다. 물이 모자라고 수온도 차가운 것 같아 끓인 물로 보충했다. 두 시간쯤 그대로 둔 뒤 고기를 어항으로 옮겼다. 작업은 오후 5시쯤 끝났다. 아내랑 같은 목소리로 ‘고기들, 속이 쉬원하겠다’고 입을 모았다.
문제가 발생한 것이 아닌지 하는 느낌이 든 것은 그 다음날이었다. 아침이면 먹이를 재촉하던 고기들의 움직임이 영 둔했다. 먹이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수면 가까이로 올라왔다. 우윳빛을 띤 물도 여전히 갈아 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물을 처음 갈 때 생기는 수포로 여겼었는데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걱정스럽기 시작했다. 아내의 시름은 깊어졌다. 이상하다며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그럴 수도 있겠거니 여겼다. 불편한 마음으로 자정이 지나서야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 날도 고기들의 움직임은 예전 같지 않았다. 식욕도 없는 듯 했고 자주 수면 가까이 모여들었다. 아직 적응이 늦은 것으로 걱정을 덜려고 했다. 나흘째인 25일 아내는 아연실색을 했다. 한 마리가 바닥에 누어있었다. 문제가 터지고 말았다. 우리 내외는 안절부절 했다. 나름대로 아무리 원인을 찾아봐도 알 길이 없다. 어항의 물 온도는 비가 오고 찌푸린 날씨였지만 그렇게 춥다고는 말할 수 없는 정도라 여겼다. 물도 하룻밤 재웠으니 문제가 아닐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도 모른다며 따듯한 물을 어항에 붓기도 했다. 아내는 이미 기력을 잃고 바닥에 가라앉은 채 겨우 입만 뻐끔거리는 줄무늬 엔젤을 깨끗한 용기에 옮겼다. 아무래도 뿌연 물에 의심이 갔다. 고기를 모두 용기에 옮기고 물을 갈았다. 그리고 열대어 마트에 달려가 히터를 사왔다. 알려준 대로 26도에 맞추어 달았다. 그래도 엔젤피쉬의 상태는 호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아내는 이미 죽어가는 녀석을 자기 이부자리에 가져다놓고 살아나기를 빌었다. 그 다음 날이다. 어젯밤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와 함께 그토록 처절히도 버티던 녀석은 사람의 기도도 모른 채 끝내 숨을 거뒀다. 뒤따라 두 마리도 죽고 말았다. 이제 남은 두 마리에 마지막 희망을 걸고 제발 살아달라고 애타게 기도했다.
오후 2시 경북대학병원에 나가야 했다. 교통사고 후유증에 대한 진찰을 받기 위해서다. 4시쯤 돌아왔을 때 나머지 두 마리는 괜찮아 보여 다행이라 여기며 위로로 삼았다. 그런데 그 바람이 무색하게 밤이 되면서부터 모두 시원찮은 몸짓을 보였다. 회생의 불씨가 희미하게 꺼져가는 불길한 예감이 엄습했다. 회복하기 힘들겠다는 방정맞은 생각이 들었다. 그럴수록 안쓰러워 애가 탔다. 물은 적정 온도로 유지되고 있었지만 고기들의 움직임은 여전히 불안했다. 아내와 나는 그 원인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분석해 보았다. 물의 온도와 물의 성질이 문제일 것이라는 막연한 추측만 했다. 애태우는 아내가 안쓰러워 ‘여보, 죽고 사는 것은 운명이라 말하지 않던가요’라고 짐직 전직 대통령의 말을 끄집어내며 다독거렸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지 않을 수 없는 내 마음도 속상하기는 마찬가지다.
이 일이 벌어진지 닷새가 되서야 부랴부랴 인터넷을 찾아들었다. 열대어 키우기의 정보는 많았다. 빨리 찾아보지 않았던 나는 무성의와 죄책감으로 머리가 아팠다. 미련스런 자신의 가슴을 채짓질 했다. 왜 생명에 대한 관심이 이토록 적을까? 사람이든 미물이든 생명 그 자체는 다를 게 없지 않는데도 말이다.
열대어는 사육어종에 따라 최소 24도에서 28도까지의 수온 유지가 가장 핵심조건이었다. 바닥 자갈도 아주 밝은 것은 좋지 않았고 물갈이도 부분적인 것이 가장 이상적이었다. 전체 물갈이는 3~4일 이상의 시간을 두고 기존 어항 물과 엇비슷한 농도와 환경을 만들어야 했다. 이 모든 조건을 우리는 몰랐던 것이다. 그저 들은풍월에 의지하는 게으름으로 귀한 생명을 빼앗은 것과 다름없었다. 분양 받을 때 좀 더 알려고 노력했고 세심한 관심만 가졌더라도 오늘 같은 실수는 없었을 것이라는데 괴로웠다. 나의 뱃속도 그래서 탈이 난 것 같다.
기대를 걸었던 한 마리가 오늘 또 죽었다. 이제 달랑 한 마리가 살기위한 몸부림으로 안간힘을 쏟고 있다. 이렇게 엔젤피쉬는 엿새 동안에 걸쳐 네 마리가 죽어간 것이다.
전적으로 나의 무성의와 부주의가 네 생명을 앗아갔다. 생명에 대한 인식 부족의 탓이었다. 아내의 실망은 너무 컸다.
오늘 이 글을 쓰는 것은 내 자신조차 알 수 없는 마음을 스스로 질타하고 싶어져서다.
달포전이다. 큰 아들이 일본 낚시에서 잡아온 벵에돔 회를 맛있게 먹었다. 수심 100미터의 해저에서 낚아 올린 고기다. 그렇다면 낚시로 잡아 죽인 그 물고기의 생명은 무엇이고 집안에 키우다 죽은 물고기의 생명은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다만 키우면서 알게 모르게 정들었다는 것 밖에는 다를 게 없는 오직 하나의 생명이다. 이만저만의 모순이 아니라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무슬림은 기도를 올리지 않은 육고기는 절대 먹을 수 없는 율법을 가졌다고 한다. 음식으로 제공되는 생명에 대한 죄책감을 조금이라도 덜어보려는 듯하다. 그것만으로도 어느 정도의 도리는 갖추는 셈이다.
나는 이번 물고기의 죽음을 통해서 많은 것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다.
비록 물고기라 하더라도 생명은 평등하다는 것과 책임지지 못할 생명을 함부로 다루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관상용이라는 이름으로 마구 생식되고 함부로 버려지는 미물들이 얼마나 가엾은지? 그리고 인간의 이기심은 어디까지인지? 무엇보다 폭력과 살생이 난무하는 인명경시풍조 속에서 더욱 절감해진다.
마지막 남은 한 마리의 살기 위한 몸부림도 눈물겹다. 1초에 두세 번씩이나 뻐끔거리는 호흡곤란이 내 숨을 멎게 한다. 빤히 들어다보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의 무능력이 외려 처연하다.
제발 남은 한 생명만이라도 살아주기를 우리 내외는 절실한 마음 하나로 하늘에 빌고 땅에 빈다.
아내는 절규한다. ‘이 녀석아 제발 벌떡 일어나 씩씩하게 헤엄치라’고...,
<27회에서 계속>
드리는 말씀 : 오늘부터 ‘사람 사는 이야기’를 이어가겠습니다. 많은 성원과 격려 부탁드립니다. 오늘 이야기는 아주 작은 생명이라도 가벼이 여기고 함부로 다루어서는 안 되겠다는데 있습니다. 시원찮은 표현이지만 깊이 새겨 보았으면 합니다. 마지막 한 마리의 소생을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
댓글목록
Jsing님의 댓글
Jsing (paik1220)뭔가를 키우는 것에 소질없어서 저는 동식물에 관심이 없는데 작은 물고기마저 사랑하는 마음에 숙연한 마음이 드네요. 외설보다 폭력이 더 위험하다고 하는데 어려서 부터 가까이에 있는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든다면 그게 산교육이 아닐까 싶네요. 저는 우리 애들에게 그래보지 못해서 아쉽습니다. 무심히 지나칠 수 있는 일임에도 속상해 하시는 두 분 참 따뜻한 사람들 이십니다
남강(서생)님의 댓글
남강(서생) (h12k13)Jsing님, 감사합니다. 님의 소중한 댓글로 해서 호들갑장이를 면한 기분입니다. 물고기라 할지라도 생명은 귀한 것이지요. 저가 이것을 깨우치기까지 70년이 걸린 듯합니다. 무엇보다 기쁜 것은 거의 희망이 없었던 물고기가 살아났다는 사실입니다. 생명력의 신비를 맛보았습니다. 이 또한 님의 댓글이 있었기에 알려드릴 수 있습니다. 뭐, 물고기 하나 가지고 난리법석이라 할까봐서요. 우리 서로 보듬고 따뜻한 가슴으로 살아요.
깜찍맘님의 댓글
깜찍맘 (orchid28)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다음 이야기도 기다리겠습니다.
남강(서생)님의 댓글
남강(서생) (h12k13)깜찍맘님, 안녕하세요. 격려하여 주셔서 고맙습니다. 늘 행복하시기를 빕니다.
캔디님의 댓글
캔디 (mieco)어르신의 갖은 정성과 아름다운 마음이 통해서 다시 건강해 졌군요^^축하드립니다 살면서 끝까지 포기하지않고 모든일에 이같이 정성을 쏟으면 그행복이 내것이 될것같은 희망이 보이는군요 교훈담긴 글 잘 읽었습니다 변덕스런 봄 날씨와 심한 황사에 건강 조심하세요~~*^^*
남강(서생)님의 댓글
남강(서생) (h12k13)캔디 님, 감사합니다. 그 녀석들 때문에 어찌나 신경을 썼는지 모르겠습니다. 마지막 한 마리가 소생했을 때 기쁨은 이루 헤아릴 수조차 없었답니다. 지금은 너무 기특하고 고마운 존재지요. 이 곳 날씨는 오락가락하는데다 황사 주위보도 자주 발령돼 여간 신경 쓰이지 않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나그네되어님의 댓글
나그네되어 (ara285)
아이가 싱가폴에서 직장을 다녀서 혼자 쓸 수 있는 방으로 옮겨줘야겠다고 왔는데,
20일동안 제가 한 일은 부동산을 하신다는 분과 몇번 통화하고 매일 한국촌 검색하는것 밖에 없습니다.
거리에 부동산이 있는것도 아니고 말이 통하는 것도 아니고.....속절없이 세월만 보내고 있습니다.
이제 선생님 글도 다 읽었으니 한가지 재미도 끝이 났고.....
유익한 글 잘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늘 평온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