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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생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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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러기 할아비의 이야기-(간추린 최종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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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강(서생) (h12k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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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11-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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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대, 싱가포르여! 안녕
  - 이별이란 아쉬움과 슬픔의 대명사 -

오늘 밤 그대의 품에서 떠납니다.
바깥 공기가 차갑게 다가옵니다. 만감이 교차합니다. 끝내 눈물이 흐릅니다. 너무 좋은 인연을 두고 떠나야 하기에 그렇습니다.
그대와 함께 했던 21개월은 그야말로 이야기의 시작이었습니다.
인간의 삶에서 겪을 수 있는 희로애락의 모든 것을 겪었습니다.
월 3300달러짜리 콘도에서 그리고 1800짜리 HDB에서도 살았습니다. 여러 환경에서 두루 많은 체험을 하였습니다. 상하의 상징인 코코넛 나무 즐비한 풀장에서 손주들의 미역 감기에 즐거움을 만끽하였고 동남아 무역과 금융의 중심에서 쇼핑도 즐겼답니다.
세계에서 가장 깨끗하고 안정하다는 싱가포르가 나에게는 불안을 안겨주기도 했고 미움의 대상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얻은 것도 많았습니다. 평생 잊지 못할 마음의 후원자들을 얻었고 또 다른 시작을 선물 받았습니다. 얼마 안 되는 날들이지만 돌이켜보면 모두가 내려놓을 수 없는 아름다운 추억이었습니다. 칠순에 인생을 다시 배우고 썼습니다.
내일 아침이면 내 사랑하는 조국 대한민국의 파란 하늘 아래서 그대 싱가포르를 그릴 것입니다.

2008년 1월 아내는 싱가포르에 첫발을 디뎠습니다. 뒤따라 저도 합류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콘도의 참을 수 없는 소음이었습니다. 대사관까지 도움을 청하는 어려운 싸움을 벌였습니다. 결과는 2년 계약을 1년으로 단축시키는 성과를 올렸습니다. 계약기간을 줄인 것을 성과라고 한다면 싱가포르 주택 임대차 계약관행을 모르는 사람들은 의아할 것입니다. 계약조문을 이해하였든 못했든 계약서에 일단 서명하면 수정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계약기간 만료 전에 이사하게 되면 잔여기간의 집세까지 내놓으라는 것이 이곳의 관행이랍니다. 계약이 만료되어 나가게 되면 디포짓에 또 한 번 울분을 토해야 합니다. 사소한 흠도 크게 손해를 봐야하고 그것도 제 때에 주지 않아 포기하기도 한답니다.
나 역시 그랬습니다. 디포짓을 주지 않아 기간이 거의 다 될 때까지 버텨보았습니다. 하지만 부질없는 오기에 불과 했습니다. 마음만 더 상했습니다. 문제는 집주인에게만 유리한 일방통행식의 계약입니다. 그들의 조건에 대한 이의를 달다가는 집을 얻을 수가 없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이해성 많은 착한 주인 만나는 행운을 바라는 길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열 달을 맞아 아내가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파란불이 켜진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갑자기 달려든 승용차에 들어 받혔습니다. 앰뷸런스는 사고가 난지 40여 분만에 도착했고 입원보증금은 SGD 6000$이었습니다. 가해 차량의 자동차 보험이 피해자에게 아무 혜택을 주지 못합니다. 치료비든 보상금이든 재판에 의한 과실정도에 따라 정해지기 때문입니다. 당사자 간의 합의나 보험회사의 개입도 허용되지 않습니다. 오로지 변호사를 통한 법적 절차에 따르게 되어 있답니다. 교통사고를 당한지 1년이 지났지만 치료비 한 푼도 받지 못하고 갑니다. 가해 운전자가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하는 바람에 이곳 병원비 12,000달러라도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증거를 모으고 있으나 언제 결판이 날지 기가 막힐 뿐입니다. 우리 교민의 어느 아이는 인도에 뛰어든 차량에 받혀 머리를 다치고 온 몸이 망신창이가 된 교통사고를 당했답니다. 정신과의 확진을 받을 수 있는 2년이 지나야 피해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 하니 그 고통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왜 이 말을 꼭 하느냐면 교통사고, 조심 또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나라처럼 가해차량보험사에서 치료비는 무조건 주는 것이 아니랍니다. 몇 푼 받는다고 해도 2년 이상 걸려야 하고요.

교통사고로 아내는 귀국했고 나는 집 때문에 오가도 못하는 처지가 되면서 기러기 할아비가 되었답니다. 이것이 동기가 되어 인터넷 정보지에 ‘기러기 할아비의 이야기’를 연재하게 되었습니다. 엄마 아빠 기러기들의 동정과 격려, 그리고 분에 넘치는 찬사도 받았습니다. 오늘까지 말입니다. 그리고 지난 5월 한인회가 마련한 ‘2009 한인가족 한마당’에 참여하여 대상도 받았습니다. 이후 한인회와 맺은 인연과 봉세종 회장의 각별한 배려로 상공회의소 기부행사와 한국대사의 리셉션에도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2009 한인 연합체육대회’에 참가하여 생각지도 못한 마라톤 입상까지 하였지 뭡니까.
최근에는 한인회 봉세종 회장과 SK건설 싱가포르 현장 윤정욱 부장과 맺어준 인연도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추억입니다. 봉 회장의 추진력과 윤 부장의 헌신으로 교민들의 건강증진을 위한 ‘몸살림운동’이 벌어지고 있어 말입니다.
뒤돌아보면 웃기는 이야기도 참 많습니다. 일흔 나이에 무슨 글을 쓴다고 나부대지를 않나 유관기관에 분주히 드나들지 않나...
따지고 보면 불의의 교통사고가 나에게 있어서는 꼭 불행만은 아니었습니다. 기러기 할아비가 고초만은 아니었기는 마찬가집니다. 더 많은 인연으로 이어진 동기부여가 되었기에 그렇답니다. 이것을 두고 인생이라 말한들 누가 나무라겠습니까.  

손녀와 손자가 이곳 공립학교에 입학 할 때만 해도 싱가포르와 이 같은 인연이 닿을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저 조용히 살면서 녀석들 영어 하나만 똑 소리 나게 배워 가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인간사 어찌 마음먹은 대로 되던가요. 뜻대로만 된다면 큰 행운이 아니겠습니까.
아이들이 하숙집과 홈스테이로 번갈아 1년을 오갈 때, 차마 그대로 두고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싱가포르에 발을 디뎠습니다. 손녀는 유치원 때부터 영어를 배웠으니까 그렇다손 처도 손자는 겨우 알파벳을 외우는 수준이었답니다. 그런 손자가 버스와 지하철을 번갈아 타면서 등하교를 한다니 대견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였습니다. 두 녀석 밑에 어림잡아 연간 5천만 원씩은 깨졌을 것입니다. 제들 아빠 엄마는 한국에서도 과외열풍 때문에 그만한 돈은 들어간다고 하지만 나는 너무 아까웠습니다. 왜 이역만리 낯선 땅에 외화를 뿌리느냐고 말입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후회하지 않습니다. 손녀는 조그마한 항구도시 마산이기는 하지만 6학년에 복학해서 영어는 물론이고 걱정하던 여타과목도 금방 상위권으로 따라 잡아 엊그제 고사에서 1등을 하였답니다. 또래에서 ‘외국인’으로 통한다나요. 물론 본인의 억척스런 성격 덕분이겠지요. 오늘 떠나는 손자도 꽤나 영어와 중국어를 잘 해서 얼마나 가슴 뿌듯한지 모릅니다.  
여럿 좋지 못했던 상황을 겪었지만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셈이랍니다.  

한국에서 그려보는 싱가포르는 매력 덩어리였습니다. 적어도 창이공항에 내렸을 때까지 그랬습니다. 발을 들어놓기가 바쁘게 쇼핑몰과 관광지와 유적지를 돌아다녔습니다. 싱가포르의 상징이라는 싱가포르 강변과 센토사의 머리이언, 그리고 동물원, 새 공원, 보타닉 가든, 과학박물관, Discovery Centre, 전쟁박물관, 차이나타운, 리틀인디아, 아랍스트리트, 무슬림사원, 등등
그런데 결론은 “어찌 내 조국 금수강산에 견주겠는가?”입니다.
손 내밀면 잡힐 듯 언덕배기와 산이 있어 언제든 오릅니다. 발 담그고 가재 잡을 개울이 있습니다. 추억을 뿌려놓은 낙엽 길도 있고, 얼음지치기 웅덩이도, 하얀 눈꽃 세상도 있습니다. 이것이 내 조국 대한민국입니다. 이곳 사람들에 있어 대한민국은 동화속의 그림이겠지요.
그렇다고 싱가포르에 볼거리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사시사철 늘 푸른 수목이 있고 아름다운 꽃이 있습니다. 여러 종족의 삶이 있습니다. 간이 떨어질 만큼의 엄청스런 천동뇌성도 있습니다. 내가 미처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각양각색의 풍습과 의.식.주(衣食住)문화는 아주 큰 가르침이었습니다.  

아내에게는 영원한 죄인이 되었지만 나에겐 아름다운 추억이 많았습니다. 뭐니 뭐니 해도 ‘기러기 할아비’= ‘서생’ 말입니다. 너무 괴롭고 외로워서 손에 댄 글쓰기가 많은 분들의 과분한 호응을 받을 줄은 정말 몰랐답니다. 조회수가 1000여건이 올라오고 격려의 댓글이 예닐곱씩 달리면서 갑자기 스타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나이 일흔에 너무도 분에 넘치는 일대 사건이었습니다.
그래서 대충 생각한 것이 최소 30회에서 최대 50회까지 쓸 마음을 정했답니다. 싱가포르에 얼마나 오래 동안 체류하느냐가 관건이었습니다. 한 회 두 회 횟수를 거듭할수록 신이 났습니다. 젊은 기러기들과 같은 공간에서 호흡을 함께 나눈다는 게 너무나 큰 축복이라 여겼습니다. 34회 때입니다. 닉네임 ‘피닉스’님께서 뫼시고 싶다는 댓글이 달렸습니다. 황홀하기도 하고 두렵고 민망스럽기도 하여 한참을 망설였습니다. 이유는, 하찮은 글을 읽어주시는 것만으로도 흥감한데 만나기를 청하니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두 번째는 사랑하는 분들에게 일흔의 초췌한 몰골을 들어내기가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결론은 ‘에라 모르겠다. 부딪쳐보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나의 일기장엔 “참 기분 좋은 날이다. 선보려 나가는 떨림이다”라고 적었습니다.

약속된 날짜가 다가오자 더욱 설레었습니다. 부기스 MRT앞 iluma 4층에 있는 한국 레스토랑 ‘창’에 나갔습니다. 얼핏 보기에는 30대 초반에서 50대 엄마들이었습니다. 네 분이 점심을 끝내고 저를 반가이 맞아 주었습니다. 늦게 온 분과 모두 다섯 명이었습니다. 아이들 하교 시간이 맞지 않은 분들은 참석하지 못했다고 하였습니다. 모임을 주선했던 피닉스님이 차후로도 시간 잡아 계속 만나도록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만나보고 싶다는 엄마들이 많았는데도 참석인원이 적은데 대해 아쉬워하는 눈치였습니다.
두 시간 남직한 짧은 만남이었지만 너무 좋았습니다. 엄마들의 젊음을 통해 내가 젊어졌습니다. 한없이 자랑스러운 내 동포였습니다. 오랫동안 아주 많이 함께 머물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마냥 좋았습니다. 멀어져 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한참 우두커니 보았습니다. 헤어지면 다시 더는 만나보지 못할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 때문이었습니다. 한동안 땅바닥에 얼어붙었던 발걸음을 옮겨갈 때서야 즐거움을 되찾았습니다. 다음이라는 희망이 피어올라서 말입니다.  
저의 보잘 것 없는 글을 읽어 주신 여러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댓글과 쪽지를 통해 격려하고 성원하여 주셨던 여러 분들, 어찌 잊겠습니까.  
헤어짐은 곧 만남의 시작이라 했습니다. 부디 그러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빌어봅니다. 우리 내일 더 젊고 활기찬 모습으로 꼭 만나기를 말입니다. 비록 싱가포르를 떠나지만 우리는 내나라 한국에서 만나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 세월이 얼마일지, 언제일지는 비록 모른다 해도 그렇습니다.
이제 ‘기러기’가 아니기에 앞으로 기회가 닿는다면 또 다른 이름으로 인연의 끈을 이어가겠습니다. 또 다른 계기를 만들어서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 때 알려드리겠습니다.
아쉽고 서운한 마음을 안고 갑니다.
당당하고 건강하게 지내시다 오십시오. 대한의 아들딸들 밝고 맑게 잘 키워서 오실 것으로  확신합니다. 꼭 그럴 것입니다. 성심을 다해 빌겠습니다.
‘기러기 할아비의 이야기’ 마지막 편을 쓰고 있는 창밖은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밤하늘입니다. 음력 구월 열이렛날의 둥근달도 휘영청 밝아 상쾌합니다. 아마 애독자 여러분들과 이 늙은이에게 축복을 내려주는 듯합니다. 이래저래 내 마음의 한쪽을 싱가포르에 내려놓고 가야 하겠습니다.  
떠나야 할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제 마지막 짐을 꾸려야 하겠습니다.

                                        2009년 11월 3일 서생 올림

                                                                         <간추려본 이야기 마지막 분>

드리는 말씀 : 싱가포르와의 이별은 기러기 엄마들이 모두 겪게 될 일입니다. 체류기간과는 상관없이, 너무도 길게 느껴지며 힘들었던 타국생활을 미리 상상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 여겨집니다.
지금 무엇을 어떻게 대처해야 후회 없는 알찬 수확을 보듬고 귀국할 것인지에 대한 선택과 실행 말이지요. 속된 말로 최소한의 본전은 뽑고 가야 되기에 말입니다.
이 편을 마지막으로 저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고자 합니다. 시간이 날 때면 ‘기러기 할아비의 이야기’와 ‘사람 사는 이야기’를 ‘생활기’에서 찾아보시면 되겠습니다.
시간이 닿는 대로 ‘사람 사는 이야기’는 계속 될 것입니다. 그동안 저에게 많은 성원과 격려를 아낌없이 보내주신 여러 분들께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댓글목록

둘리맘님의 댓글

둘리맘 (sohnjung)

오늘은 그냥 읽고만 갈렵니다...늘 기다리던..무엇이..끝나는 날..느낌 아시죠..건강하세요..~~

Chris님의 댓글

Chris (chris19kim)

벌써 최종회라니요.. 아쉽고.. 좋은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생각날 때 마다 들려서 다시 읽고 가겠습니다. 얼굴도 못뵈었지만.. 늘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남강(서생)님의 댓글

남강(서생) (h12k13)

둘리밈님, Chris님, 두 분 고맙습니다. 저에게 큰 힘이 되어 주셨지요. '세상사는 이야기'를 통해서 만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여태껏 올려둔 저의 글을 더욱 많이 사랑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건강하고 행복하세요.

ireneyun님의 댓글

ireneyun (ireneyun)

뒤늦게 합류에 선생님의 글을 읽으며 생각도 많이 정리하고 환상만 가지지 않고 싱가폴에 가게 되어 너무 감사합니다.이제 일주일후면 입싱합니다.저도 가서 아이와 남편 뒷바라지 잘하고 선생님처럼 뿌듯한 맘으로 귀국하고 싶습니다. 그동안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늘 평안하시고 행복하세요.

남강(서생)님의 댓글

남강(서생) (h12k13)

ireneyun님, 좋은 생각입니다. 많은 선물 가지고 귀국할 수 있기를 빌겠습니다. 한국촌을 통해서 많은 정보를 얻으시기 바랍니다. 잘 챙겨서 들어가시기를...

소망향해님의 댓글

소망향해 (vibraphone)

제발 부디 영어때문에 기러기 가족이 탄생하지 말기를 기원합니다.그까짓영어 가정의 화목과 건강이 우선이라고 사료되옵니다.부디.건강하소서

남강(서생)님의 댓글

남강(서생) (h12k13)

소망향해님, 정말 절실한 말씀입니다. 전적으로 동감입니다. 건강한 가족이 최우선입니다. 기러기 엄마 아빠들, 부디 건강한 마음 하나로 소기의 목적 달성하시기를...,

소원맘님의 댓글

소원맘 (matil0)

남강선생님..여기 한국에서도 큰 감동과 배움으로 글 읽었습니다...한국에 오시는거 환영합니다..사모님도 어서 안좋은 기억 털어버리시고 손자, 손녀와 즐거운 생활하시길 바래요..홧팅!!^^

남강(서생)님의 댓글

남강(서생) (h12k13)

소원맘님, 변함없이 챙겨주셔서 감사합니다. 격려의 말씀 늘 고맙게 새겨듣습니다. 어머님을 비롯한 가족들과 더불어 행복하시기를 빕니다.

캔디님의 댓글

캔디 (mieco)

한국엔 벗꽃들이 눈꽃을 뿌리며 춤을추고 있는 모습을보니 더욱 서울이 그립습니다  안녕하셨어요^^ 늘 좋은글 감사히 읽고 있답니다^^2009년가을에 입싱해서부터 쭉~선생님의글 읽으면서 싱생활에 많은 도움을 받았답니다 정말로 감사드리구요 건강하세요~^^

남강(서생)님의 댓글

남강(서생) (h12k13)

캔디님, 오랜만입니다. 너무 반갑고 고마워서 님께서 달아주신 그 간의 댓글을 찾아보았습니다. 2009년10월22일 '흔들렸던 맘 꽉 잡아 주셨습니다'를 시작으로 2010.12.15. 출판 축하까지 일곱 번이나 올려주셨더군요. 감성이 참 풍부하신 분으로 기억됩니다. 글쓰기를 하시지요. 모두 건강하고요? 꼭 좋은 성과 거두시기 바랍니다. 늘 행복하세요.

캔디님의 댓글

캔디 (mieco)

선생님께서 어버이의 마음으로 써주시는 글을 읽을수 있는것만으로 감사한데 이렇게 넘치시는 칭찬과 격려를 주시니 큰 선물 보따리를 받은것 같습니다 ~^^아이처럼 활짝 웃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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