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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 사는 이야기-(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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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강(서생) (h12k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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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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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공산 갓바위’ 등정을 마치고-
나는 얼마 전 산에 오르는 특별한 기회를 얻었다. 그동안 친구의 만남조차 꺼리던 아내가 친구를 만나겠다고 했다. 엊그제부터 친구들과 통화를 잦게 하더니 내린 결론이다. 너무도 바라던 일이어서 무척 기뻤다. 친구들 몇몇이 우리 집으로 오겠다는 날이 바로 오늘이다. 아침 설거지를 마치기가 바쁘게 서둘러서 집을 나섰다. 오랜만에, 정말 모처럼 등산을 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싱가포르에 가기 몇 해 전부터 등산과 인연을 끊었으니까 아마도 예닐곱 해는 된 것 같다. 마음 설레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다. 그래서 여차하면 산자락에 눌러앉을 요량으로 등산복도 챙기지 않았다. 바깥에 나갈 때면 습관적으로 가지고 다니는 카메라만 달랑 메고 나섰다.
버스 정유소까지 10분 쯤 걸으니 벌써 땀이 비 오듯 흘렸다. 이거 오늘 욕보겠다는 예감을 하면서도 중도 포기는 싫었다. 아내의 친구들이 집에 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부터 어디에서 어떻게 시간을 때워야 할지 여러 갈레로 생각해 보았지만 딱히 ‘여기다’고 선뜩 나를 끌어당긴 곳이 없어서다. 이 더운 날에 친구와 커피숍에 틀어박혀 잡담이나 주고받는 것도 고리타분하고 계절의 정서와 동떨어진 차디찬 에어컨 바람도 싫었다. 자연에 순응하면서 나의 의지와 체력적 한계를 시험하는 도전장을 내고 싶어졌다. 오전 10시쯤인데도 등산화와 배낭 등 등산장비를 완벽하게 갖춘 중년 아주머니들이 속속 모여들고 있었다. 머리칼이 하얀 늙은이는 나밖에 없어 좀 어색하기도 했지만 50대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는데 뿌듯했다.
버스는 대구의 외곽에 자리 잡은 팔공산의 허리를 휘감으며 산 중턱을 숨 가쁘게 올랐다. 30여분을 그랬을까 종착지에 멈췄다. 차문이 열리자 더운 기운이 얼굴을 후려쳤다. 산골이라는 이름을 무색하게 하는 무더위다. 그래도 얼마나 다행인가. 자동차라는 문명의 이기가 있어 산의 3분지 1은 수월하게 오르지 않았는가. 1000원짜리 한 장으로 여기까지 왔으니 발품을 따지면 너무 헐하다. 햇볕이 쨍쨍 내려 짼다. 산꼭대기는 무성한 나무에 가려 볼 수가 없다. 경사 30도 쯤으로 짐작되는 가파른 오르막길에 발을 내딛자 금방 땀이 방울져 잔등을 적신다. 각오는 하였지만 정상을 정복할 수 있을지 불안감이 엄습한다. 벌써 하산하는 인파도 만만찮게 많다. 새벽 등산객이거나 철야 기도를 했던 불자들인 것 같다.
등산로 저편에 즐비한 식당가를 지나자 아스팔트길은 끊기고 콘크리트 포장길이 이내 바통을 받았다. 연신 땀을 훔치며 발길을 재촉했다. 한참을 가자 불교대학 팔공산 도량이 나타나고 조금 더 오르자 팔공산 ‘관암사’가 길을 가로막았다. 오르는 길이 막혀버린 것이다. 한참을 두리번거렸다. 길을 잘 못 든 것 같아 당혹스러웠다. 그렇게 먼 옛날도 아닌데 이렇게 지난 기억을 찾을 수 없나 싶어 한심했다. 사찰 경내에 갇혔다는 어이없는 기분으로 하늘을 보았다. 파란 카펫에 하얀 솜덩이가 굴러가는가 싶으면 금방 희색 물결이 뒤따라 흐른다. 언제나 그런 하늘인데 이 날의 그림은 유별스럽다. 카메라 앵글을 조정할 수밖에 없는 마력을 뿌리칠 수 없다. 사람의 마음이란 때와 장소마다 이토록 다른데 어찌 평생을 두고 한결같기를 바라겠는가.
산봉우리가 보이기는 하였지만 전작 내가 오르려는 ‘갓바위’는 어딘지 분간할 길도 없다. 불전에 공양을 드리고 나오는 아주머니를 붙잡고 물어보려 해도 선뜩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개울이 흐르는 골짜기 저편에 인기척이 들렸다. 숲속 오솔길로 내려가는 사람들이 띄엄띄엄 보였다. 저곳이 아닌가 싶을 때 사찰의 왼쪽 모서리에서 등산객이 나타났다. 대구 쪽에서 가장 쉽게 오를 수 있는 갓바위 길은 이 절을 거처가야 한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았다. 절 마당 왼쪽 모퉁이에 빼꼼히 고개를 내민 길섶을 헤치자 맨흙바닥에 납작한 돌덩이를 적당한 간격으로 주섬주섬 올려놓은 그런 모양새의 돌계단이 나타났다. 콘크리트를 처발라 놓지 않은 것만으로도 얼마나 다행인가. 도회지에서는 쉽게 다가설 수 없는 귀한 자리다. 이제 올라가는 일만 남았다. 나름의 속도를 재촉하자 그 새 이삼십 대의 젊은 남녀들이 앞질러 나간다. 질 수 없다는 오기가 생겼다. 하지만 세상사 어디 오기로 되는 게 있던가.
햇빛은 등 뒤에서 혀끝을 나불됐고 깊은 계곡의 산바람은 이미 힘이 빠져 있었다. 하산하는 사람들의 얼굴에도 땀범벅이었다. 구불구불 제멋대로 휘어진 돌계단을 한참 밟았지만 여전히 그 자리를 맴돌고 있는 기분이이다. 오르기로 작심한 이상 중도포기는 없다. 끝장을 보겠다며 이를 악물지만 만만치 않다. 한발 한발 뗄 때마다 땀은 비 오 듯 흐르고 숨결도 가프다. 정상은 무성한 나무에 가려 가름할 수 없다. 오를수록 가팔아지는 메의 심술은 칠순의 옷자락을 자꾸 뒤로 당긴다. 눈 꼬리를 겨우겨우 비켜가던 땀방울이 이젠 대놓고 눈망울을 공략한다. 손수건은 흥건히 젖어 제구실을 못했다. 입술에 흐르는 땀을 훔쳐내느라 푹푹 거렸다. 계곡을 스쳐가는 미풍도, 짤짤거리는 개울도 힘겨운 노구의 벗이 되지는 못했다. 그래도 때때로 의지할 수 있었던 것은 누군가가 세워둔 깔끔한 가드레일이다. 확실히 모르긴 해도 경사도는 40~50도는 됨직하다. 붙들고 쉴 수 있는 시설물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위안이다.
돌계단은 오를수록 눈앞에 바싹 다가선다. 칙칙한 흙냄새가 반갑지는 않지만 그 또한 자연의 한 모습이어서 참을 만하다. 바위 틈새를 비좁고 떨어지는 낙수와 제 명을 다하고 떨어지는 나뭇잎이 뒤엉킨다. 검게 썩어 볼썽사납지만 그 또한 자연의 조화이기에 차라리 정겹다. 오순도순 정담을 나누며 내려오는 연인들이 부럽다. 아내 또래의 여성등산객은 더욱 나를 심란하게 한다. 언제쯤 이곳을 아내와 나란히 오를 수 있을까? 어쩌면 영영 오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르면 눈물이 복받친다. 그럴 리 없다면서 도리질을 친다. 끝까지 희망을 접을 수는 없어서다. 하지만 싱가포르 교통사고의 악몽은 어쩌면 영원히 치유될 수 없는 모진 아픔일지도 모른다.
허공을 쳐다봤다. 30분을 올라도 남은 길이 얼마인지 가늠할 수가 없다. 어디쯤에 있고 남은 길이 얼마나인지 몹시 궁금하다. 힘들면 더욱 그렇다. 미래가 어떤 것인지 미리 알고 싶은 것이다. 잠시 망설이다 곧 마음을 바꿔 먹었다. 묵묵히 그저 오르기만 하자고 다짐했다. 어차피 가야할 길이라면 알아본들 어떻고 모른들 어떠랴 싶었다. 인생이란 어차피 한 치 앞을 모르고 가는 것이 아닌가. 가는 길을 모르기에 꿈이 있고 희망도 있지 않는가. 인생이 바로 그런 것인데 뭐하려 알 것인가. 가는 길이 멀고 힘들수록 더 깊은 인생을 배울 것이고 더 높은 곳에 오를수록 더 넓은 세상을 볼 것이 아니던가.
내 자신을 다잡으며 앞뒤 볼 것 없이 오르고 또 올랐다. 고난과 인내의 한계에 도전하는 것도 해볼 만하다. 성패를 떠나 가치 있는 일이다. 급경사가 겹겹이 앞을 가로막는 것을 보니 정상이 가까워지는 것 같다.
땀이 비 오듯 흐르는 내 모습이 가엽든지 스쳐 내려가던 청년이 생수 한 병을 꺼내 준다. 고마운 마음을 사양할 수가 없어 진심으로 감사하며 받아들었다. 이 얼마나 따뜻한 정인가. 저절로 힘이 난다. 족히 1시간은 걸렸다 싶을 때 웅성거리는 인기척이 들린다. 눈을 치켜뜨자 벼랑에 걸터앉은 분청구조물에 ‘갓바위 산신각 중창 불사’라고 쓰인 현수막이 손짓하듯 펄럭인다. 그 곳에 영험 있기로 이름난 돌 갓 쓴 돌부처가 있는 바로 그 곳인 것이다. 눈이 버쩍 뜨이고 힘이 솟구쳤다. 정상이 코앞에 있지 않는가. 기온이 35도를 오르내리는 이 한여름의 한낮에 일흔 노구를 산정까지 옮겨놓은 자신이 고마웠다. 나는 아직 건재하다며 고함이라도 치고 싶었다.
100평 남직한 공간의 차양 아래에는 엄마들이 연신 두 손을 합장하고 큰절을 올린다. 부처를 향해 간절한 소원성취를 빌고 있는 것이다. 거대한 바위 덩어리 한 가운데에 앉아 있는 석조불상은 나약한 중생들을 지켜보고 있다. 이름 하여 관봉석조여래좌상(冠峰石造如來坐像)이다. 천년의 그 모습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영감이 물씬거린다.
부처 하단에 마련된 시주함에 손길이 끊이지 않는다. 공양미는 넘쳐나고 향로와 촛대는 식을 줄 모른다. 불자 1,000만 명이 실감난다.
불현듯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간절하다. 자식들의 무탈 성공을 위해 온몸을 던지시던 어머니다. 어머니의 마음은 너와 내가 따로 없다. 오로지 하나같은 것이다. “부모는 자식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지만 자식은 부모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언제나 자식일 뿐이다.”
우선 숨을 쉬야 했다. 철책난간에 다가서 땀을 훔쳤다. 길 잃은 여름바람이 허공을 휘젓지만 소금에 절린 몸뚱이의 물기를 빼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미풍이다. 셔츠의 단추를 줄줄이 풀었다. 간이 써늘하도록 좀 더 세게 때려주었으면 좋으련만 검붉은 뺨만 만지고 지나치는 바람이 야속타. 외려 시간이 땀을 식혀준다. 그래도 좋은 것은 탁 트인 시야다. 싱가포르에서부터 알게 모르게 꽉 막힌 가슴을 틔우는데 인색하지 않았다. 올망졸망한 봉우리를 이어가는 산등성이가 눈 저 아래에 있어 성취감은 더했다. 파란 하늘은 손에 잡힐 듯 가깝고 손아귀에 들 것 같은 도시의 건물들이 작아서 더욱 좋다. 자연의 힘을 빌려 인간의 탐욕을 철저히 뭉개고 싶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위로만 치솟는 인간의 피조물에 언제나 눌러 산다는 게 늘 거북스러웠다. 한참을 사색에 잠겼다.
생각 같아서는 돌부처를 향해 두 손을 모으고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이라도 중얼거리고 싶었지만 억지 불자 노릇을 어찌 하겠는가. 하지만 가슴에선 절박한 기원문이 흐르고 있었다. 다름 아닌 아내의 건강기원이다. 우리, 하루속히 손과 손잡고 꼭 한 번 정상을 밟자고 간절히 빌었다. 다음은 내 손주들과 함께 싱가포르 팬들이다. 한인회 여러분들과 한국촌 애독자와 자녀들이다. 먼 이역 땅에서 한국인의 명예를 드높이고 대성하기를 기원했다. 특히 우리 유학생들은 그들의 목표가 성취되기를 진심으로 빌었다. 대한의 자녀들은 대한의 미래이자 희망이기에 하나같이 소중하고 축복받아야 할 대단한 존재여서다. 학부모들이 갓바위에 불공을 드리는 가장 큰 이유도 자녀들의 진학 소원이다. 그래서 전국 각지에서 갓바위를 찾고 있다. 8월부터 11월까지 ‘수능시험 100일기도’라는 현수막이 나붙어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10월이면 이곳은 대학진학을 소원하는 엄마들로 발 디딜 틈도 없이 붐빌 것이다. 어머니들의 소원에 영험이 있는 것은 돌아간 어머니의 넋을 기리기 위해 이 부처를 만들었다는 전설에 기인한 것인지도 모른다.
갓바위를 관장하는 선본사가 저 아래에 있지만 내려가기를 포기했다. 밥 한 술 얻어먹을 비위가 없으니 배고파도 참아야했다. 아내를 혼자 둘 수 없어 오래 머물러 있을 처지도 아니다. 겨우 땀만 식히고 내려가자니 서운하고 아쉬움이 남았지만 발길을 돌렸다. 내림 길의 돌계단은 더욱 가팔았다. 자칫 실수라도 하게 되면 천 길 아래로 굴려 떨어질 것 같다.
산은 오를 때보다 내려갈 때를 더 조심하라는 격언이 실감난다. 겨우 5시인데 산골엔 어둠의 그림자가 서서히 드리운다. 한 발짝씩을 옮길 때마다 정신집중이다. 물먹은 돌은 미끄럽다. 그래도 가드레일이 있어 안심이 되었다. 천천히 발을 떼다보니 말동무가 생겼다. 계단을 헤아리는 것이다. 100계단마다 잠깐 숨을 돌리면서 메모하기 시작했다. 열 번을 쉬었으니 1,000계단이고 끝 다리가 400이니까 총 1,400계단이다. 그러니까 내가 오늘 도합 2,800계단을 오르내린 셈이다. 계단은 오를 때와 마찬가지로 관암사에서 끝났다.
해거름 때가 되자 나뭇잎이 하늘거렸다. 초목의 푸른 향기는 짜디짠 땀 냄새에 묻혔다. 버스 정유소에 도착하자 아내로부터 전화다. 친구들이 모두 돌아갔다는 기별이다. 마음이 바빠졌다. 곧 도착할 것이라고만 말했을 뿐 팔공산이라는 말은 차마 못했다. 두 다리가 성한 내가 민망해서다. 버스정유소에서 갓바위까지 2킬로미터라는 이정표를 뒤늦게 보면서 출발 직전의 버스를 탈 수 있어 그나마 행운이었다.
버스에서 내리기가 바쁘게 10여분을 달렸다. 산에 오를 때보다 더 힘들고 숨이 목에 걸렸다. 집 문턱을 넘었을 때 비로소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를 의식할 수 있었다.
곰곰이 따져보면 오늘 내가 갓바위를 오른 것도 더 높게, 더 넓게, 더 많이 얻으려는 불의불식간의 탐욕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인간이 갈 수밖에 없는 길이라면 어찌 멈추랴.
-“목표를 세워라. 앞만 보고 달려라. 재지도 묻지도 마라. 힘든 만큼 높이 오르고 오른 만큼 넓게 보인다.”- 평소 지론을 등산을 통해 다시 확인할 수 있어 감사했다.
[갓바위로 불리는 불상의 원명은 관봉석조여래좌상(冠峰石造如來坐像)이다. 경북 경산시 와촌면 대한리 산44번지 해발 850m의 험준한 암벽에 위치한 이 불상(보물 431호)은 신라 선덕여왕 7년(638)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전설에 따르면 의현대사(義玄大師)가 돌아가신 어머니의 넋을 기리기 위해 조성한 것으로 불상을 만드는 동안 밤마다 큰 학(鶴)이 날아와서 대사를 지켜주었다고 한다.]
<20회에서 계속>
댓글목록
Tony님의 댓글
Tony (jaehojoung)남강님, 대단 하십니다. 요즘 뉴스를 보니 대구의 날씨가 연일 폭염을 토하고 있던데..., 왠만한 젊은 사람보다 체력이 더 나으신것 같습니다. 저도 한 20여년전에 친구들하고 새벽에 가서 일출을 본적이 있는데 가파랐던 계단이 기억이 납니다. 건강 하십시오.
간띠분곰님의 댓글
간띠분곰 (encarrot)정말 맛깔스런 글입니다...감사합니다....어르신 건강하십시요........^0^
투썬즈님의 댓글
투썬즈 (jungsoowoo)저도 한번 가보고 싶어요 말로만 듣던 팔공산. 산을 좋아해서 여러군데 가보았지만 그곳은 못가 봤네요.싱가폴은 산이 없어 정말 아쉽습니다.언젠가 할머니 완쾌하시면 같이 올라가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