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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 사는 이야기-(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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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강(서생) (h12k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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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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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소, 질서, 인사-
4월1일은 일본을 체험하는 좋은 기회였다. 일본에서 고등학교를 나오고 대학에 입학하는 손녀의 입학식에 참여하려 가는 날이다. 구름이 많이 끼어 날씨가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3일 입학식에 참석할 수 있도록 떠날 수 있는 것만 해도 행운이었다. 보름 전에 항공권 구매에 나섰으나 매진이었다. 난감했다. 항공사에도 없고 여행사에도 없다. 큰 아들과 손녀와 세 사람이 가야하는데 큰일이다. 부산에서 선박을 이용해야 할 판이었다. 그런데 여러 군데 이름을 올려준 덕을 보았다. 국적기는 아예 없고 일본 항공기 ‘JAL’이다. 예약을 취소하는 티켓을 잽싸게 낙아 챈 것이다. 그렇게 천신만고 끝에 얻은 항공권이어서 그만큼 소중했다. 무엇이든 쉽게 얻는 것보다 어려운 과정을 거처 얻는 것이 외려 소중하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쉬운 것만이 다는 아니다. 쉽게 편하게 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그렇지 못하더라도 결코 낙심하고 화내지 말아야 한다는 나름의 생활철학을 배가시킨 계기이기도 했다.
김해공항에서 일본 동경의 나리타(成田)공항까지는 불과 1시간 30분 거리다. 절반 쯤 갔을 때 기내식이 나왔다. 햄버그 한 개와 플레인 요구르트(요플레) 하나가 전부다. 일본 식생활을 엿보는 첫 관문이었다. 소식(小食)과 절제의 일본 이미지가 떠오른 것이다. 간단하고 깔끔해서 좋다. 불만이라도 표시하듯 단숨에 해 치었다. 동해 한 가운데를 지나는 듯 했지만 구름이 많아 아름다운 동해바다를 볼 수가 없어 아쉬웠다. 하지만 일본 영공은 맑았다. 시야에 들어온 일본의 산야는 우리나라와 거의 같다. 이웃 나라임이 실감났다. 독도 문제가 마음에 걸렸다. 독도를 자기들 나라 땅이라고 생떼를 쓰는 이유를 모르겠다. 제국주의의 추억을 잊지 못하는 것일까? 그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나리타공항은 내 품에 들어왔다. 그렇게 크지도 산뜻하지도 않은 공항 청사다. 눈에 띄는 것은 안내 전광판에 한글이 나온다는 사실이다. ‘버스매표소, 국내선 터미널행, 철도승차권’ 등 제법 상세하고 친근한 안내문이었다. 이는 바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일본을 드나들고 있는지를 말해주는 증표다.
손녀는 ‘동경공예대학(東京工芸大学)’에 입학했다. 1.2학년 캠퍼스가 있는 동경의 위성도시인 카나가와 현 아츠기시(厚木キャンパス)에 원룸을 얻었다. 이 대학은 코니카 미놀타(카메라회사)가 "일본의 사진기술부흥에 기여하는 인재를 키워 국가발전에 공헌한다는 이념으로 1923년에 설립한 ‘코니시 사진전문학교’가 모태다.
이후 공대가 설립돼 공과대학과 예술대학을 합친 ‘공예대학’으로 이름이 붙여졌다. 3.4학년이 다니는 본교 캠퍼스가 동경 한 복판에 있는 4년제 명문사립대학이다. 손녀의 장래 희망이자 목표는 세계적인 영상작가다. 그래서 일본에서 가장 선호한다는 이 대학의 ‘영상과’를 선택한 것이다. 우리나라 홍익대학의 결연 대학인 ‘오사카 예술대학’의 합격을 포기하면서까지 이 대학을 고집한 이유다.
굳이 일본의 특정 대학교를 거론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일본 대학으로 진출하는 유학생들이 선택할 수 있는 생활과 주변 환경, 그리고 소요 비용을 알려줌으로서 혹여 참고 정보라도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서다. 두 번째는 일본의 의식주생활과 시민의식의 단면이라도 보고 느낀 그대로를 전해드리고자 하여서다.
우선 대학이 요구하는 수업을 정상적으로 받기 위해서는 아리바이트는 용납이 안 된다는 사실이다. 입학식 날 학교는 이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었다. 대학의 입학문도, 졸업문도 좁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 대학 문화와 다른 점으로 되새겨볼 일이다. 입학금 포함 1학기 등록금은 우리 돈으로 약 14,000,000원이었다. 기숙사를 사용할 경우 일시불로 지불하는 1년 기숙사비가 13,000,000원 정도다. 이에 반해 자취비용은 조금 적다. 먼저 원룸 임차료는 월세 400,000원이다. 여기다가 전기, 가스, 수도료 등을 합쳐도 월 800,000원이면 해결된다. 손녀는 후자를 택했다. 고등학교 때는 이만큼 많은 비용을 치루고 기숙사 생활을 했었다. 그 때는 일본어는 물론 일본사회의 모든 것이 서투르기에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였다. 이제 이 나라의 근검절약의 장점을 몸소 익히고 실천하는 자유로움과 유학비용도 최소화하기로 한 것이다.
대학 캠퍼스에서 걸어 10분 거리에 아파트를 얻었다. 그들은 아파트라고 부르지만 외형상은 우리나라 건설현장 임시사무소 조립식 건물형태(사진)와 너무도 흡사했다. 철 기둥이 쭉 늘어선 테라스와 철판 계단 등 외관이 영락없다. 나는 처음 이 건물을 보고 ‘이게 무슨 아파트냐’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러나 실내를 보고는 다소 마음을 놓았다. 전체 크기(7.5m×4.5m)가 대략 10평 정도니까 혼자서 생활하기에는 큰 불편이 없어 보였다.
첫날 이야기다. 한국에서 가져간 생필품을 집에 넣어두기가 바쁘게 시내 한 복판에 나갔다. 먼저 저녁부터 해결할 요량으로 식당에 들어갔다. 연신 허리를 굽히며 ‘고자이마쓰’를 연발하는 일본 여인들의 애교 넘치는 미소를 온몸으로 받으며 자리에 앉았다. 우리나라 해물탕 그림을 선택했더니 영 아니다. 조갯살과 새우 두 마리 그리고 알 수 없는 해물 조각 밑에 깔린 튀김면이 전부다. 요리와 함께 따라 나오는 반찬이라고는 없다. 물 한 잔이 고작이다. 작게 간단이 먹는 식탁문화의 차이를 알았다.
침대와 책상을 사기 위해 백화점에 들였다. 백화점 규모도, 상품도 한국백화점이나 싱가포르 쇼핑몰처럼 크거나 많지 않았다. 작은 도시의 백화점이라는 입지도 있지만 일본의 ‘적은 문화’ 유형인 것 같았다. 때마침 세일 중이어서 비교적 싸게 살 수 있었지만 그래도 우리나라에 비하면 두 세배는 비쌌다. 무엇보다 크게 당혹스런 것은 침대와 책상의 배달 소요기간이 이틀도 아니고 무려 20일이 걸린다는 사실이다. 인터넷 설치도 3주다. 싱가포르가 늦다고 불평하였지만 그건 지극히 양호하다는 것을 깨닫고 미안스러워지기까지 했다. 우리나라 같으면 산간벽지라도 이틀을 넘기지는 않을 것이다. 일류 선진국가의 서비스와 맞닥뜨리면서 내 나라 대한민국에 얼마나 감사를 느꼈는지 모른다. 불편한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백화점이라고 해서 모든 상품이 한 자리에 있는 것도 아니다. 전자제품이나 주방기구는 있다고 해도 한정된 모형에다 얼마 없어 전문점을 찾아 나서야 했다.
다음은 높은 물가다. 전자제품은 너무 비싸 혀를 내둘렸다. 우리나라에서 6만원에 샀던 아주 단조로운 가스런지가 일본에서는 최하 15,000엔이다. 우리 돈으로 19만 원쯤이다. 우리 돈으로 200만 원짜리 이하의 32인치 LCD TV는 아예 없다. 아마 네댓 배는 비싼 것 같다. 시내버스의 요금체계는 싱가포르처럼 거리제다. 기본요금이 170엔이니까 2,100이다. 우리나라처럼 무료 환승도 안 된다. 싱가포르처럼 1시간 내 할인 환승도 안 된다. 대중교통비가 비싸다는 말이 나올법하다. 택시는 710엔이다. 8천원이 넘는다. 지하철도 150엔이 기본이다. 이렇게 보면 아직까지는 우리나라 물가가 전반적으로 싸다. 싱가포르 물가도 우리나라의 수준을 넘지 않으니까 괜찮은 편이다. 일본의 물가를 보면서 GNI를 따져봤다. 작년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 즉 GNI가 1만7천 달러인데 반해 일본은 3만3천 달러로 거의 배다. 물가만의 평면적인 수치로 보자면 우리나라가 일본보다 살기가 낫다는 결론에 이른다. 소득 대비 물가로 따져서 말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우선 주거의 규모가 크다. 아파트의 보통규모가 32평이다. 일본에서는 재벌급이나 사는 큰 규모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땅은 작고 인구는 많은 이유도 있지만 그들의 검소한 문화가 더 큰 이유로 여겨져 반성의 여지를 남긴다. 자동차 역시 마찬가지다. 어림잡아 70% 이상이 소형 승용차를 몰고 다닌다. 적게 먹는 식습관과도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도 든다. 즉 ‘작은 문화’의 패턴이다. 물가고가 있다 해도 세계3위라는 경제대국의 국민이 지닌 절제와 검소의 철학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거리는 인파로 넘쳐났지만 조용했다. 휴지나 비닐조각 하나도 찾아볼 수없는 그야말로 깨끗했다. 인도는 물론 외진 골목도, 시내 한 복판도, 시골도 마찬가지다. 놀라울 정도다. 싱가포르와도 비교할 수 없는 너무도 청결한 거리가 그저 부러울 뿐이었다. 횡단보도 끝자락에서 자동차의 정지선을 지켜봤다. 어떤 차종이든 거의 정확히 정지선을 넘지 않았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버스는 정지선에 멈출 때면 반드시 시동을 껐다. 승강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짐작하건데 두 가지 의미가 있는 것 같았다. 연료절약이 첫 번째 이유이고 두 번째는 철저한 질서의식에서 울어난 여유로움이 아닌가 싶다.
이미 일본인들의 친절과 인사법은 널리 알려진 그대로, 그들의 브랜드였다. 시내버스 기사도 정장이다. 흐트러짐이 전혀 없는 깔끔한 복장이다. 마이크가 입 앞에 부착되어 있다. 손님이 오르고 내릴 때면 한 사람 한사람 모두에게 ‘고자이마쓰’다. 신호등에 걸려 정차할 때도, 손님이 오르내리면서 정차할 때도 꼭 안내방송을 한다. 출발이나 도착 시간도 단 1분의 어김도 없다. 잘 모르긴 해도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이 같이 정확한 시간개념과 친절한 인사문화는 찾아볼 수 없을 것 같다.
대학의 입학식장에서도 그들의 질서와 예절은 쉽게 엿볼 수 있었다. 한 마디로 조용했다. 1시간 30분 동안 단 한사람도 자리를 벗어나는 행동은 없었다. 수근 거리는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오로지 무대만 응시한 채 경청만 했다. 퇴장할 때도 학과별 학생들 뒤에 학부모들이 숨죽이며 뒤를 따랐다. 이것이 ‘질서다’ 싶었다. 학과별로 가진 학생과 교수 그리고 학부모들과의 리셉션에서도 한 줌 흐트러짐이 없었다.
나는 사실 우리 손녀에게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라고 했다. 지진의 불안감과 알게 모르게 받게 되는 차별대우와 너무 비싼 물가를 들어 권했지만 먹히지 않았다. 이유는 단 하나, 대학의 학습과정과 연구시설이 한국과는 판이하다는 것이다. 한국이 일본에 따라가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반론의 여지가 없어 졌다.
비록 우리나라 국민감정에 어긋나는 그들 일본이지만 배울 점은 배워야 한다는 결론에 굳이 부정적일 수는 없었다.
4박5일간의 아주 짧은 기간이었지만 많은 것을 보고 느낀 여행이이서 간단하게나마 나누고 싶어서다.
<14회에서 계속>
드리는 말씀 ; 독자 여러분들께 늘 고마운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추천과 댓글을 달아 격려하여 주셔서 더욱 감사합니다.
살자 님, 화창한 오후 님, 긍정의힘 님, 웃자 님, 언제나힘찬 님, JSING 님, 투썬즈 님, ROSALIA 님, 화니 님, 호호아줌마 님, 모두 모두 고맙습니다. 언제나 활기 넘치고 보람찬 생활이 되시기를 빌겠습니다.
댓글목록
투썬즈님의 댓글
투썬즈 (jungsoowoo)여행 다녀 오셨군요? 일본에 가본 적이 없어서 궁금했는데 글읽고나니 가보고 싶네요.할머니 완쾌되시면 같이 여행도 많이 다니시고 글도 올려주시고 하시면 좋겠습니다. 아무튼 다시 느끼는 거지만 글로 보고 느낀 걸 정말 잘 표현하시는 것 같아요. 글짓기 독서논술 선생님하셔도 잘 하실것 같은데.. 글을 잘쓰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나요? 책을 많이 읽어야 하겠죠? 그리고 써보기도 많이 하고요. 하지만 제겐 너무 어렵답니다.ㅋㅋ 건강하세요.
ROSALIA님의 댓글
ROSALIA (mjjung68)10여년전 일본에도 잠시 살았었습니다. 이렇게 일본 풍경을 글과 사진으로 주시니 그때가 생각나네요. 모든게 너무 깔끔해서 정이 없을것 같던 겉모습과 다르게 잠시 살았지만 그들과 함께 어울려 살았을땐 그 깔끔함이 타인을 피해주지 않고, 오히려 예의 바르단 생각을 했었습니다. 모든게 작고, 좁고 비싸서 답답하다기 보다는.... 나름 무지 검소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너무나 넘치는 우리나라랑 비교가 많이 됐던 기억도 있습니다. ^^
웃자님의 댓글
웃자 (emsabina825)일본 여행기 잘 보았습니다... 늘,, 좋은 글 감사해요... 건강하게 지금처럼 멋진글 자주 올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