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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 사는 이야기-(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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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강(서생) (h12k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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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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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의 아름다운 분들을 생각하며)
요즘 나는 거울 앞에 서서 나의 모습을 보며 지난 세월을 반추한다. 내가 이 세상에 어떻게 태어났으며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지? 그것을 묻고 있는 것이다.
내가 태어난 것은 결코 우연히 아니라는 생각이 첫 째이고 무엇을 위해 살았는지에 대한 의문은 정답을 얻을 수가 없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을 생물학적 현상으로만 본다면 부모의 생리적인 결합에 의한 산물로 치부할 수 있겠지만 종교적으로나 이상세계에서 보면 그렇게 간단치 않다는 생각이다. 그것은 이성판단의 사고력이 없는 동물과는 다르다는 전제가 깔려있어 그렇다. 왜? 어떻게? 이 세상에 왔느냐는 의문도 벅찬데 무엇 때문에 사느냐는 의문표에는 그저 어지럽기만 하다. 그럼에도 내가 여기에 매달리는 것은 인간의 삶에 대한 회의가 나날이 크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독자집안의 큰 아들로 태어났을 때 나는 분명 끔찍이 귀한 존재였을 것이다. 할머니는 딸 셋에 아들을 막내로 얻고 청산과부가 되셨고 아버지 역시 서른다섯에 나를 얻었으니 그 때만해도 조상이 내린 홍복이라 하여 옥이야 금이야 하였음직하다. 그 때 내 할머니는 손자인 나를 두고 밤낮 할 것 없이 품에 끼고 살았다고 하였다. 털끝이라도 다칠까봐 잠깐 한 눈 파는 것도 삼가 하셨을 것이 뻔히 보인다. 사실 이 이야기는 어머니를 통해서 늘 들어 왔지만 그냥 그렇거니 대수롭잖게 여겨 왔었다. 그런데 내가 할아비가 되고나서야 비로소 ‘그래 우리 할머니가 나를 이렇게 키우셨구나.’라고 실감했다. 흔히 농담으로 ‘죽을 때 철든다.’고도 한다. 그저 듣고 흘리는 농담이 아니라 그게 바로 정답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부쩍 가슴을 친다.
누군들 그렇지 않은가. 모두들 귀하게 태어났다가 허무하게 사라져 가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말이다. 물론 다 그렇지는 않다. 천박스럽게 태어나서 귀하게 떠나는 인생도 있고 귀하게 태어났다가 비참하게 떠나가는 인생도 있다.
나의 고뇌는 바로 여기에서 출발한다.
왜 하필이면 밥 한 끼가 그리웠던 시절에 망해버린 집안의 자식으로 태어났느냐는 의문이다. 배고팠던 청소년기에는 뱃속에서 꼬르르... 하는 신호도 묵살하고 허리띠 구멍만 한 칸 두 칸씩 졸라매야 했었다. 끝내는 쓰리고 아픈 뱃가죽을 움켜쥐어야만 했다. 세 끼 밥 잘 먹는 주변 사람들이 그토록 부러울 수가 없었다. 너는 무슨 팔자를 타고났기에 잘 먹고 잘사느냐고 질시했다. 고대광실을 볼 때마다 내부모를 원망했었다. ‘내가 저런 집에서 태어났으면 얼마나 행복할까?’라는 허상에 수없이 붙들어지기도 했었다.
그래도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은 젊음이라는 무형의 재산이 있어서였다. 대단한 꿈을 품고 앞만 보고 열심히 달리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는 희망을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배고픔 면하고 장가들어 아들 딸 놓고 내 집 하나 장만하면 그 이상 바랄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그 때 나로서는 유일한 꿈이었다. 돈만 벌면 그 꿈은 이루어지고 세상의 행복은 내 것이라 여겼다. 그래서 앞만 보고 달렸다. 그러나 세상살이 만만치 않았다. 좋은 인연은 피해가고 악연만 곁에 있는 것 같았다. 시련과 도전의 연속이었다. 돈도 벌어보고 쫄딱 망하기도 해 보고, 그래서 박장대소도 하였고 대성통곡도 하였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내 가슴을 100%로 채워주지는 못했다. 언제나 만성소화불능 상태였다. 좋으면 좋은 대로 나쁘면 나쁜 대로 살아가는 방법을 몰랐다. 불만과 부족에만 앙탈했다. 문제는 지금도 그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채우기만 바랐지 비울 줄은 모르고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삶의 모순을 이제야 비로소 고민을 하고 있다는데 나도 놀란다. 허나 사실은 이 시점에서 나를 찾아본들 무엇에, 어디에 쓸 것인가? 이렇게 부정할수록 꼭 찾고 싶은 화두가 인연이다. 왜냐면 자아를 찾았을 때 한 인간이 완성된다는 생각이 강열하기 때문이다. 아무른 의미 없이 그저 그렇게 그럭저럭 살아온 세월이 허무하기에 더욱 그렇다.
내가 오늘도 매달려 있는 것은,
아이들의 할아비로서 그들을 한없이 사랑해야 했고 한 여자의 지아비로서 그녀를 무지무지 좋아해야 하는 것도 그 어떤 알 수 없는 인연이 아니었다면 가능한 것인지? 내가 일흔을 살아오는 고비고비 구비구비가 과연 우연이었을까? 그 의문을 찾고 있는 것이다.
가장 최근의 싱가포르에서의 삶은 또 무엇이며 아내의 교통사고는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그 아프고 고달픈 마음을 싱가포르 생활정보지 ‘한국촌’에 쏟아냈고 뜻밖의 사랑을 받았던 것도 분명 어떤 인연의 끈이 있어 가능하지 않았느냐는 생각이다. 단순한 기러기라는 동질성과 외로움이라는 공감대에서 글을 나누었고 마음을 주고받았을까?
그 때를 곰곰이 생각한다.
때로는 만나서 이야기도 나누고 팬과 오누이의 관계도 맺고 정감도 나누었다. 그리고 끝내 헤어져야 했다. 싱가포르의 모든 인연을 ‘추억’이라는 두 마디에 송두리 채 묻어야 했다. 그 얼굴 그 모습들이 저 높은 하늘의 구름 되어 두둥실 떠나가고 있다. 아무리 붙들어 갖고 싶어도 그것은 무심히 가고 있는 것이다. 나만의 의지로서는 어쩔 수 없다는데 슬프다.
지금 나는 이유 있는 정신적 공황에서 헤매곤 한다.
아내는 싱가포르에서 당한 교통사고로 1년을 요양하였다. 절룩거리기는 하였지만 세월이 가노라면 완치되고 예전의 정상으로 돌아오리라는 희망이 있었다. 그 소박한 희망이 허무한 꿈으로 끝날지도 모를 불의의 사고가 또 찾아왔다. 지난해 11월 귀국하자마자 다친 그 다리에 또 골절상을 입은 것이다. 수술을 받고 석 달 만에 퇴원은 하였지만 다친 다리는 아직도 보호 장구에 의지하고 있다. 다리 두 곳에 철판이 박혀있고 언제쯤 보조기에 의지하지 않고 걸어 다닐지 모를 처지다.
교통사고로 죽을 고비를 넘기는가 하였더니 급성담낭염으로 큰 수술을 받았고 연이어 골절상을 당하는 게 과연 우연일까 악연일까? 인생은 ‘팔자’라는 말이 지금처럼 실감난 적이 없다. 인생이란 진정 인연에서 태어나고 인연으로 소멸되어 가는 것인가.
요즘 한국의 날씨는 거의 날마다 흐리고 궂은비가 내린다.
뜨락에 봄기운이 서리는 걸 보면 세월은 지칠 줄도 모르고 계절을 안고 오는가 보다.
여름밖에 없어 더워서 죽겠다던 싱가포르가 그리워지는 것은 또 웬일일까? 추위보다는 차라리 더위가 나은 노인성 때문일까? 전혀 아니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그보다는 싱가포르에 뿌려진 인연을 야박스레 지우지 못하는데 있다.
나는 스쳐간 옷깃조차 소중히 간직하고 싶다. 상대야 어떻게 여기든 말든 나는 적어도 그 인연만은 쓰레기통으로 가져가기 싫어서다.
나와 대화를 나누었던 한국대사관 관계자들이나 음양으로 많은 도움을 받았던 한인회장과 사무국직원들은 영영 잊을 수가 없다. 봉세종 한인회장과 나누었던 중국 찻집의 그윽한 차향은 지금도 혀끝을 맴돈다. 그들로 하여금 싱가포르를 더욱 이해하게 되었고 많은 것들을 배웠다. 조국을 빛내고 있는 교민들과 그들의 성공과 활약상에 감명도 받았다.
한인회가 마련한 경로위로연에도 참석할 수 있었고 한인가족 한마당에 한 컷 출품하여 대상을 받는 영광도 누릴 수 있었다. 한인회 체육대회 장.노년 뛰기에서의 입상도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골프 모임 자선회도 둘러보았고 개천절 행사장에서 귀빈들의 면면을 살펴볼 수도 있었다. 오라비라고 부르던 기러기 엄마와 대사관 초청 리셉션 행사장인 Shangri-La호텔을 찾아 헤매기도 하였다.
어디 이뿐인가 아내의 교통사고 때 정성껏 보듬어 주던 이웃들, Bugis iluma ‘창’에서 만난 팬들, 손주들을 맡아 주었던 ‘싱하숙’ 내외분들, 한 걸음에 달려와 굽은 몸을 일으켜 준 ‘몸살림운동’의 싱가포르 사랑방장, 몸살림운동에 참여한 여러분들, 그리고 오늘까지도 정성껏 도와주고 있는 가디언과 변호사도 여문 인연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아들처럼 여겨져 늘 걱정스럽고 축복해 주고 싶은 부동산 에이전트도 내 일기장 속의 지울 수 없는 인연이다.
싱가포르 인연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오차드 다카시마야 3층 한식당에서 팬으로부터 아내와 함께 대접받은 돌솥비빔밥은 여생동안 잊지 못할 영원한 인정의 맛이다. 싱가포르를 떠나오던 그 날 창이공항에서 이별의 손을 흔들며 눈시울을 붉혔던 두 팬과의 뜨거운 가슴은 싱가포르의 대미였다. 불가 2년 동안이었지만 교민들과 맺은 인연은 나에게 있어 이토록 엄청 큰 행복이었다.
과학적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인연’이란 되새김질은 할수록 오묘하다.
이해관계에 얽히지 않고 그저 순수한 아름다움으로 오래 오래 기억되는 인연이면 얼마나 좋은가.
석가는 "사람이 만나고 헤어지는 조건을 헤아릴 수 없으니 인연을 귀하게 여겨라"라고 설파했고 법정스님은 ‘모든 존재는 인과 연의 법칙에 의해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했다.
저는 무교이지만 너무 와 닿는 가르침이어서 소중히 담고 있다.
싱가포르를 떠나왔지만 지금도 ‘한국촌 생활기’에 눈을 떼지 못하는 까닭은 바로 이 인연을 차마 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기러기 할아비의 이야기’를 쓸 당시 말했듯이 내 글을 읽어주는 단 몇 분이라도 있는 한 손을 놓지 못할 것 같다. 어쩌면 내가 살아 숨 쉬는 의미일지도 몰라서다. 출판 준비도 해야 하고 신문사로부터 청탁받은 원고도 써야 하고 바쁜 나날 가운데서도 ‘사람 사는 이야기’를 써야 하는 이유다.
만나고 헤어짐이 일상적인 생활로서 하찮게 인식될 수도 있다. 그러나 잠깐 생각해 보라. 바람결에 떨어져 내 신발 아래 밟히는 낙엽조차도 어찌 우연이겠는가. 하물며 사람의 만남이란 적어도 60억분의 1이라는 확률이라면 얼마나 소중한 인연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부모 자식 간의 인연이 그렇고 부부의 인연이 또한 그렇듯 친구도 사회생활도 하나같이 인연이 아닌 것이 없다면,
어떤 경우에도 악연일랑 맺지 말고 평생 동안 아끼고 그리면서 가꿀 수 있는 곱디고운 인연으로 살아가기를 빌어본다.
<11회에서 계속>
드리는 말씀 : 요즘 세상은 너무 어지럽습니다. PC 게임에서 가상의 아이를 키우다가 전작 자기의 아이는 굶겨 죽이는 사건이 있는가 하면 자식이 어머니를 살해하는 끔찍한 사건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금 ‘한국촌’에서 뜨겁게 달아오른 환전사기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의 관계를 너무도 하찮게 여겨 그 소중함을 모르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글을 써 보았습니다.
9회에 댓글을 달아주신 제이미 님, 레몬트리 님, 케빈 님, 싱숭생숭 님, 구름처럼 님, 정말 감사합니다. 아울러 추천을 눌려주시고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께 고마운 말씀을 올립니다.
댓글목록
웃자님의 댓글
웃자 (emsabina825)항상 좋은 말씀 감사드려요... 세상살이 다 제 맘 같지 않는 요즘입니다..... 힘든일 겪고나서,,,주변에 너무나 이기적 인분들 부대끼려니
웃자님의 댓글
웃자 (emsabina825)세상살이 다 제 맘같지 않다는걸 많이 느낍니다.... 그래도 선생님같은 곧은 분 계셔서 감사한 마음입니다.... 선생님 글 일어 내려 가면서 친정 아버지 생각에 또 한번 눈물을 흘리고 말았네요.... 한상 건강하시고 계속해서 좋은 글 올려 주세요.
싱폴님의 댓글
싱폴 (jeh121)서생님의 이 글을 읽은 후 기존 글을 모조리 검색해서 이틀동안 읽었습니다. 지금은 한국에 계시지만 꼭 꾸준히 글 올려주심 좋겠어요. 참, 혹시 부제를 제목에 같이 달아주시는건 어떨지 한번 고려해봐주세요. 요즘 성미급한 많은 사람들이 제목만 보고 클릭할지 여부를 판단하는지라, 젊은사람들이 더욱더 서생님의 글을 봤으면 하는 바람에서 혹시 부제가 같이 있다면 좀더 그들의 클릭수를 받고 글을 통해 교훈을 줄수 있지 않을까 하는 저만의 생각입니다. ^^ 화이팅입니다~ 너무 멋쟁이세요!
남강(서생)님의 댓글
남강(서생) (h12k13)웃자 님, 반갑습니다. 사슴같은 청순한 눈망울이 연상되는 아름다운 분이시지요. 싱폴 님, 처음뵙겠습니다. 너무 좋은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부제를 달아보았습니다. 한 결 더 낫습니다. 늘 지적해 주시고 사랑해 주십시요. 진심으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