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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생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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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람 사는 이야기-(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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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강(서생) (h12k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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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10-02-14

본문

 

          -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오늘이 우리나라 으뜸 명절인 설날이다.
가족이 한자리에 모두 모이고 차례음식을 장만하느라 아낙네들의 손길이 분주한 날이기도 하다.
설빔 곱게 차려입고 조상에게 차례지내고 웃어른께 세배한다. 아이들은 고까옷으로 치장하고 세뱃돈을 챙기느라 입이 귀에 걸린다. 세뱃돈을 주는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들 그리고 숙부 숙모들도 아이들이 세뱃돈을 받고 헤아리는 모습을 보며 박장대소를 하기도 한다. 그리고 떡국을 나눠 먹으며 덕담을 나눈다. 대략 이 정도 상황이 오늘날의 설날풍속도다.
설을 쇠기 위해서 도회지에서 살고 있는 자녀들이 고향을 찾는 귀향인구가 1천만 명이라고 한다. 전체 인구의 5분의 1 가량이 이동하는 셈이다. 그제부터 귀향 차량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전국의 고속도로가 몸살을 앓는 교통전쟁이 벌어진 것이다. 그래도 1년에 딱 한 번뿐인 설을 쇠야 한다는 우리의 미풍양속은 그 힘든 귀향길도 마다하지 않는다.
지금 중국을 비록한 동남아 여러 나라가 귀성객들로 난리라는 뉴스다. 특히 연인원 25억 명이 이동한다는 중국의 설인 춘절(春节)을 맞은 베이징역의 인파 화면을 보노라면 가족의 소중함을 더더욱 절감하게  한다.  

한국의 모든 언론매체는 설 물가와 장바구니 사정을 알리기 시작했었고 TV 아나운서들은 우리나라 고유의 아름다운 한복차림으로 방송하고 있다. 선물을 팔고 사는 시장 분위기에서부터 철도역과 버스와 여객선 터미널에서 선물꾸러미를 들고 있는 귀성객들과의 인터뷰에 열을 올리기도 한다. 설날 분위기를 한껏 부풀리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가슴 설레는 쪽은 고향의 노부모들이다. 아들 딸 며느리 손주들의 얼굴 보기가 그리 쉽지 않는 세태가 부모들을 그렇게 외롭게 만들었다.
그들의 삶은 오로지 자식들의 행복에 있다. 쉼 없이 일구고 거두어 자식들에게 보내주는 재미 하나로 살아가고 있다. 뭐 하나라도 더 못 보내줘서 안달이다.
손이 부르트도록 애써 가꾼 채소며 곡식이며 아낌없이 보낸다. 손수 잡은 고기도, 담근 젓갈도 바리바리 보낸다. 그래도 늘 모자라는 것이 부모들의 마음이다. 그리고 “애들아 잘 받았나? 허허...” 이 한 마디와 웃음소리 하나를 얻기 위해 부모들은 그렇게 힘들다.

그러나 부모들의 보람은 설을 통해 얻는다. 꼬깃꼬깃 말아둔 세뱃돈을 건너며 손주들 손 한 번 잡아보는 그 이상의 기쁨이 없다.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을 안고 한 해를 또 보낼 것이다.
그런데 지방 중소도시의 설 풍경은 농어촌과 사뭇 다르다. 자녀들과의 왕래도 비교적 잦고 주고받는 것도 공산품이다. 땀과 정성이 들어 있는 시골 부모들의 애틋한 마음보다 덜하게 느껴질 법도 하지만 부모의 자식 사랑이야 어찌 차이가 있겠는가. 누구라 할 것 없이 부모는 자식에게 있어 희생 그 자체니까.    
이 같은 우리의 설이 모두 다 좋은 것만도 아니다.
부모가 아무리 보고 싶어도 볼 수 없고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효도라는 마음만 간직하다 제대로 한 번 모시지도 못하고 떠나보낸 자식들, 북한에 두고 온 실향민들, 해외에 살고 있는 교민들과 기러기들, 이런 저런 사정으로 몸을 뺄 수 없거나 사업에 실패한 사람들, 출세하고 돈 번 사람들과 비교 당하기 싫어서 가기 싫은 사람들,... 이처럼 하고 많은 사연들이 주변에는 얼마든지 있다.

오늘 꼭두새벽에 이 글을 쓰면서 이미 먼 옛날이 되어버린 유년기가 나로 하여금 가슴을 쓰러내게 했다. 선친이 보고 싶고 고향이 그리운 것이다. 늙으면 늙을수록 그렇다는 말이 절실히 와 닿는다. 꼴 백 살을 먹어도 부모 앞에서는 자식일 뿐이라고 하였던가.  
1950년 국민소득은 67달러에 불과했다. 1960년대 들어서도 80달러 선으로 170개국 가운데 꼴찌에 가까운 166의 순위였다.
그 때 우리들의 설은 그야말로 밤잠을 설치며 손꼽아 기다리던 설레임이었다. 부모들은 설 차례를 준비하기 위해 1년 동안 정성을 쏟아야 했고 자식들은 그 1년을 애타게 기다려야  했었다. 그 때는 그렇게 힘들고 어려웠지만 지금 되돌아보면 그 때가 정말 좋았다는 생각이 곧장 들곤 한다. 왜냐하면 너무도 간절하고 소박한 기다림의 아름다움이 있었고 가슴속 절절히 스며드는 원초적인 정이 배어있어서다. 돈으로는 전혀 어림잡을 수조차 없는 정신적 가치관이 있었다. 더불어서 함께 사는 것이라는 것, 나누고 베풀면서 사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땐들 어찌 경쟁이 없고 질시가 없었을까마는 그것은 어디까지나 선의의 경쟁이었을 뿐 남을 모질게 해치지는 않았다.

아버지는 설날과 제사에 쓸 대구와 돔과 가자미를 말렸고 감도 줄줄이 끼어 곶감을 만들었다. 어머니는 우리에게 지어 입힐 베를 짜고 고사리를 뜯고 가지와 호박을 말렸다.
우리 형제는 설날에 입을 새 옷과 맛있는 음식을 상상하며 목에 침이 마르도록 기다렸다. 옷에 베인 양잿물냄새가 채 가시지도 않은 검정 무명옷이 어쩌면 그렇게도 좋았든지...아마 어머니의 섬세한 정성과 뜨끈뜨끈한 모정이 한 올 한 올 묻어있어 그랬을 것이다.
섣달그믐이 되면 동네는 온통 절구통 소리로 요란했다. 찹쌀가루부터 떡가래까지 모두 절구질로 뽑아냈기 때문이다. 기계에서 뽑아낸 지금의 맛에 감히 비윤들 하겠는가.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지금 내 코끝을 스치는 듯하다.
온 동네를 헤집고 다니면서 어른들에게 세배하던 그 시절 그 때가 다시 한 번만 더 돌아올 수 있다면...
코흘리개 친구들과 팽이치고 연 날리며 떡국 나눠먹던 그 옛날이 왜 이토록 슬프게 닿아올까? 다시는 되돌려 피울 수 없는 그저 그렇게 사라져 가야할 한낱 꽃잎이었다면 너무 아프다.

나에게 있어 이번 설은 남다른 의미를 가진다. 2년 만에 처음 맞는 설이다.
2008년 설을 눈앞에 두고 싱가포르에 와서 지난 연말께 귀국했으니 그렇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다. 당시 우리는 양력설을 쇠기로 했다. 손주들의 겨울방학이 끝나는 시점이 연말이니까 거의 매년 2월에 드는 설은 쇨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설은 꼭 쇠야 한다는 나의 고정관념이 그렇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지난해는 양력설도 쇠지 못했다. 아내의 교통사고에다 집을 얻어야 했기 때문에 귀국을 못해서다.  
나 홀로 타국에서 쓸쓸한 신정과 설을 맞으면서 고국의 하늘만 바라봐야 했었다. 자식들이 설(양력)을 쇤다고 하지만 조상에게 죄를 짓고 있다는 죄책감은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우리는 해마다 설을 앞두고 아우들과 함께 성묘를 했다. 내가 장손이니까 제주는 항상 나였다. 그럼에도 신정 차례마저 빠졌으니 마음이 편할 리 없었다.  
싱가포르에서 손주들 뒷바라지가 4~5년은 걸릴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양력설로 바꾼 것이었다.  
손주들의 유학이 지난해로서 끝남에 따라 오늘 첫 설을 맞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올 설은 썩 즐겁지만은 않다. 아내가 차례 상을 차릴 수 없어서다. 교통사고의 후유증이 너무 컸다. 엎친대 덮친 격으로 큰 며느리도 참여할 수 없는 병고에 있다. 일본에 유학중인 큰 손녀도 얼굴을 볼 수 없다. 동생들도 제마다 제들 집에서 지내겠다고 한다.
음식장만이 서툰 둘째 며느리는 아예 친정어머니에게 차례음식을 맡겨버렸다. 사부인에게 너무 미안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차례 상을 제수전문점에 주문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어제 낮부터 음식 맛도 볼 수 있어 좋았고 싱싱한 국산 제수꺼리가 흡족하다.
며느리가 명절증후군에 감염되지 않을 것 같아 더욱 좋았다. 나 역시 나서지 않아도 쉽게 차례를 지낼 수 있어 수월한 설이 됐다.
자식과 형제 조카 모두 한 자리에 만나는 설이 되지 못해 아쉽고 서운하지만 그래도 내 나라 내 집에서 조상을 기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이제 차례를 지내야 할 시간이다. 유독 화려한 연붉은 꽃무늬 조끼에 시선을 빼앗기면서 이 만 접는다.  


                                                                                               <10회에서 계속>


드리는 말씀 : 사실 어젯밤까지만 해도 이 글을 쓸 계획이 없었습니다. 지인들에게 새해 인사 말씀을 전해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싱가포르의 애독자들이 불현듯 떠올랐습니다. “복 많이 받으십시오.” 이 한마디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신. 구정이 있어 참 좋구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아무쪼록 타국에서나마 떡국 많이 드시고 행복하시기를 다시 한 번 기원합니다.  

그저 우리들의 설 정서를 되짚어 보면서 고국의 부모와 가족을 한 번 더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면서 말입니다. 어린 시절의 추억까지도 더듬어 보면 더욱 좋겠고요.  
지난 편에도 끊임없이 댓글을 달아주신 ‘레몬트리 님’과 ‘긍정의힘 님’께 심심한 감사를 드립니다.
특히 “부산에서의 추억”을 올려주신 ‘화니 님’의 너무도 생생하고 사실적인 부산의 이야기는 메마른 가슴을 흠뻑 젖어 주었습니다. 좋은 글 솜씨가 계속 이어지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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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제이미님의 댓글

제이미 (dragonyhy)

길지 않은 싱가폴 생활을 접고 이제 얼마 있으면 귀국합니다. 있는 동안, 선생님 글 읽으면서 힘을 많이 얻었더랬어요.

제이미님의 댓글

제이미 (dragonyhy)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좋은 글 많이 올려주세요.한국에서도 열심히 읽겠습니다.

레몬트리님의 댓글

레몬트리 (bead73)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여기에선 'chinese new year' 라고 하더군요,  붉은 물결은 낯설기만 하고... ^^;  명절이 되니 부모님과 내 나라가 더욱 그립네요 ...

케빈님의 댓글

케빈 (yeskimc)

남강님! 새해 복 많이 받으셔요. 사모님 건강도 빠른 시일에 회복 되시길 바랍니다. 손주분들의 한복 사진이 참 좋으네요.

싱숭생숭님의 댓글

싱숭생숭 (raindeer)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명절을 명절답지 못하게 지낸지 벌써 몇 해가 흘렀네요. 떡국이라도 끓여먹었습니다. 한국에 일년에 두차례 정도라도 방문할 수 있는 여건이 된다면 좋을텐데 쉽지가 않네요. 건강하세요.

남강(서생)님의 댓글

남강(서생) (h12k13)

제이미 님, 귀국하신다니 시원섭섭하지요. 귀국하시면 연락 주세요. 오다가다 만나 뵐 수도 있지 않을까요. 레몬트리 님, 춘절 행사가 낯설고 부모님이 많이 그리워졌겠습니다. 전화 자주 올리면서 효도하고 위로 받으세요. 케빈 님도 복 많이 많이 받으세요. 싱숭생숭 님, 싱가포르에 오래 계셨군요. 명절이면 더더욱 그리움이 많겠군요. 떡국을 드셨다니 좋습니다. 올해는 자주 나오실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모두 모두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구름처럼님의 댓글

구름처럼 (charmer)

안타까운 마음만 있지 도움이 되어드리지 못하니 가슴이 아픕니다. 지난번 휴유증인지 한국에서 또 사고를 당하신건지 혹시 기회가 된다면 김선생님과의 만남을 주선 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남강님 덕분에 매 주 금요일이 행복합니다. 단 한사람이라도 몸살림의 진정한 가치를 알고 열심히 따라 하시는분이 있으니.......

구름처럼님의 댓글

구름처럼 (charmer)

입에는 뱅뱅도는데 글을쓴다는것이 이렇게 어려운지 몰랐습니다. 늘상 쓰던말도 글로 옮기려니 머리속이 하예지는것 같습니다. 맞춤법이 맞는지 틀리는지 우리말이 정말 어렵다는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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