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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생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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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람 사는 이야기-(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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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강(서생) (h12k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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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10-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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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을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부산 찬가-

불현듯 부산에 가고 싶었다.
꼭이 갈 일도 할 일도 없었지만 그저 가보고 싶었다. 그 곳에 가면 무엇인가 보고 듣고 얻을 것이 있을 것만 같아서다. 처녀가 바람나면 이런가 보다.
일기예보를 검색했다. 흐리다고는 해도 비가 온다는 예보는 없어 다행이다 싶었다. 나들이 채비를 서둘렀다. 카메라를 챙기고 메모지와 볼펜을 점퍼 포켓 깊숙이 찔러 넣었다. 나의 여행 기본 수칙이다.
잿빛을 머금은 이른 아침의 하늘이 잔득 찬 기운을 품고 있다. 365일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신호등은 풀이 죽어 보인다. 그토록 혹사를 당하고 있으니 지칠 만도 하다. 그래도 빨강불과 파란불이 어김없이 제 시간을 지켜주고 있어 고맙다. 사람과 자동차가 부딪치지 않도록 제들의 임무를 다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성미 급한 보행자와 자동차 앞에서는 보람도 없고 의미도 없다. 사람도 자동차도 이리저리 힐끗거리다가 도망치듯 마구 달아나고 뛰어들기 일쑤다. 따로 놀자는 얌체 배짱은 교통사고 1,2등국을 다툴 만도 하다.    

영하의 바깥 날씨는 그야말로 춥다. 상하의 싱가포르가 그리워지는 순간이다. 한 참을 기다리다 택시를 잡았다. 차에 오르자 아까 보았던 신호위반 차량들이 내 입술을 간질거렸다. 우리나라의 비뚤어진 교통문화를 화제에 올렸다.
“왜 택시 운전자들은 신호등을 안 지킵니까? 무엇이 그렇게 급하고 초조하게 만듭니까. 애초에 잘 못 들인 습관을 고처야 하는데...” 한참 입방아를 찧어대자 뒷좌석을 힐끗 훔쳐보던 택시 기사는 “맞습니다. 문젭니다.”라며 장단을 맞춰 주었다.
택시에서 내리고 나자 ‘나도 참 실없다’는 생각이 들어 겸연쩍었다.
도착한 곳은 마산시외버스 터미널, 벌집같이 촘촘히 뚫린 매표구에 진작 자리 잡고 있는 매표원 아가씨는 서 너 명에 불가했다. 여행하기에는 아직 이른 시간이라고 일러주는 듯하다.  4,100원을 내밀고 표 한 장을 거머쥐었다.
승차하자마자 출발이다. 딱 좋다. 차속에 10분 이상 기다려도 주리가 틀리고 허겁지겁 달려가서 겨우 타도 기운이 빠진다. 인생살이도 그런 것 같다. 매사가 잘 풀릴 때는 크게 힘들이지 않고 쉬 나간다. 잘 안 되는 일일수록 고생만 잔득하고 남는 것은 한숨뿐이다.

끄무레한 하늘 때문에 눈의 초점은 온통 TV 일기예보에 꽂혔다. 비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안도했다. 버스는 막힘없이 내달려 부산 서부터미널까지 40분이 걸렸다.
칠팔년 전과 크게 변한 것은 없는데도 어리둥절하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길거리 옷 장사들이 한참 전을 펴고 있다. 문고리에 묵직한 자물쇠가 채워져 있는 점포와는 대조적이다. 고생을 덜하고 돈을 더 버는 사람과 고생을 더 하면서도 돈은 덜 버는 모순이 엿보여 씁쓸하다.
일단 중앙동에 가보기로 하고 사상역 지하철로 빨려들었다. 전동차에 오르자 빈 좌석이 기다리고 있었다. ‘장애인 노약자 임신부석’이라는 표지가 붙어있다. 앞에는 젊은이들이 서 있었지만 앉지 않았다. 선진국민의 성숙한 모습을 내 나라에서 보고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뛰었다. 기분 좋은 설렘이다. 차내 영어 일어 중국어의 안내방송도 썩 좋게 들렸다. 싱가포르에서도 센토사와 새공원에서 듣던 우리말 안내방송이 그토록 반가울 수가 없었던 추억이 스쳐갔다. 남의 나라에서 듣는 우리말이 너무 즐거웠듯이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서 자기들의 언어로 안내받을 때 얼마나 깊은 친근감을 느낄까 하는 생각에 이르니 내가 즐겁다.

애초 생각대로 연안여객선 터미널로 향했다. 바다냄새와 특유의 배 기름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맞은편 화물 도크가 거만스럽게 위용을 뽐내고 있다. 바로 눈앞에 버티고 있는 제법 큰 클로즈선 귀퉁이로 작은 배들이 들락거리고 있어 그림이 좋다. 터미널 전망대에 오르자 용두산 타워가 눈앞에 섰다. 타워에 깔린 듯이 납작한 팔각정이 수줍은 몸짓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어 반갑다. 이 모두 셔터의 과녁이다. 무엇보다 거대한 고층빌딩 사이사이에서 눈짓으로 그의 존재를 알리는 산비탈 동네 지붕들이 정겹다.
바다바람을 비켜나 중앙대로에 들어서자 롯데백화점으로 변해버린 옛 시청청사가 영도와 광복동과 충무동을 가리키고 있다. 지하도에 내려가자 10시가 지났는데도 문을 연 상점은 스무 개 가운데 하나정도다. 게으름 피우기는 싱가포르나 부산이나 매한가지다. ‘새벽종이 울였네 어서어서 나가세‘의 새마을 노래는 호랑이 담배피던 옛 이야기로 묻혀 버린 현장이다. 어쨌건 여유로움이 괜찮다.

남포동에 발을 딛자 부산의 충무동(서울)이라는 옛 도심지는 아직 숨 쉬고 있어 마음이 놓였다. 어디나 할 것 없이 도심은 그대로고 외곽이 신도시로 탈바꿈하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지난 세월 향수를 달래기라도 하려면 나갈 곳은 낮은 키에 낡은 건물들이 오밀조밀한 남포동거리였다. 영상문화의 거리로 새 옷을 갈아입었지만 여전히 그 모습이 옛 그대로라 포근하다. 아내와 거닐던 그 때가 어언 일곱 해는 되었음직하여 골절상으로 입원중인 아내가 더욱 안쓰럽게 다가선다. 부산극장 앞에 서자 더욱 아프다.
아내와 함께 멜로영화 한 편을 보면서 20대로 되돌아가고 싶은데...,
극장 문을 나서자마자 근사한 찻집에 들려 정열의 상징인 트로피칼 커피를 나눈다면 그게 바로 행복일 터인데...
스치는 바람소리에 찰나의 공상은 소스라쳐 놀란다. 그 새 발길은 「‘오이소, 보이소, 사이소’」3소의 자갈치시장에 끼어들었다. 온갖 해물로 넘쳐나는 어패류 가게가 서로 몸을 비벼대고 늘어섰다. 자갈치 아지매의 고함소리가 내뿜는 열기는 활화산이다. 끊임없이 부대끼며 살아가는 모습에 힘이 솟구친다. 사람들의 살 내음과 생선의 비린내가 묘한 하모니를 이루는 너무도 순진한 인간적인 삶의 현장이다. 생선회맛보다 부산사투리의 말맛이 더 감미롭다.

타박타박 걸어서 초등학교 옛 친구 사무실에 당도했다.
칠순 늙은이가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야 이놈아 와 그리 늙었노.’라고 고함을 쳤다.
우리의 정서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인사가 뭐 저러냐고 흉보겠지만 사실은 그게 우리에게 있어 정겨운 인사법이다. 제나 내나 머리칼 하얗고 쭈그러진 화상은 똑 같은데 서로가 더 늙었다니 어이없다. 예순 길에 접어 들 때만 해도 서로 젊어 보인다고 덕담하던 사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거칠게 내뱉는 어간에는 자기 자신에 대한 노인의 저항이 묻어있다. 그만큼 생의 여유가 없다는 반증이다. 도도히 흐르는 세월 앞에서는 속절  없이 망가져 버린 영감들일 뿐이다.
친구는 나에게 초등학교 동기들의 근황을 일일이 대면서 사람이 어쩌면 그토록 무심할 수가 있느냐고 추궁하듯 따졌다. 벌써 삼분지일의 소꿉친구들은 저 세상 사람이 되었다고 했다.
서글픈 이야기는 또 이어졌다. 누구는 돈이 많아 잘 나가고 누구는 구들장 신세라고도 했다. 자기는 몇 해 전에 사업 일선에서 물러나 이 사무실 하나에 의지하고 있다고 했다. 쉽게 말 해 노인당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오갈 데 마땅찮은 노인들이 모여 100원짜리 고스톱으로 한나절을 보내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곳에 나올 수 있는 것도 착한 며느리나 예쁜 딸내미가 있어서 몇 푼 얻을 수 있는 처지라야 한다니 가슴이 저민다. 친구로부터 장어국 점심 한 그릇을 얻어먹고 우리는 헤어졌다.

자갈치 지하철역에서 전동차를 탔다. 지하철은 몇 번을 이용하든 공짜다. 싱가포르에서는 늙은이 대접도 받지 못했는데 역시 내 나라가 좋구나 하는 생각에 푸시시 웃었다. 세련된 교복차림의 생기발랄한 여학생들을 보노라니 싱가포르의 텁텁한 교복에 검정신발의 여학생복장이 짓궂게 스쳤다.
이런저런 상념에 빠져 있는 새 전동차는 ‘신세계 센텀’역에 닿았다. ‘신세계 센텀시티’가 세계 최대 백화점으로 2009년 6월 26일 기네스 월드 레코드에 올랐다는 뉴스를 보았을 때 내 마음은 이미 여기에 있었다. 센텀역에 내리자 ‘신세계 센텀시티’에 바로 들어갈 수 있어 편리했다. 지하철역과 쇼핑몰이 거의 다 연결되어 있는 쇼핑의 나라 싱가포르와 닮은꼴이다. 로비의 확 트인 공간과 아름을 짐작할 수 없는 거대한 기둥이 보는 이를 압도했다. 공간의 예술로 불리는 세 곳의 보이드(void)가 세계화를 알린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쌍둥이 빌딩의 쇼핑몰보다 규모는 엇비슷한 것 같으나 짜임새는 앞선다. 싱가포르의 VIVO CITY와 ‘ION’도 떠오른다. 9층까지의 매장을 둘러봤다. 고급스런 디자인과 상품의 다양성에서 예술성에 중점을 두었다는 건물의 외관과 걸맞다. 일본인들을 비롯한 중국 등 동남아 관광객들을 불러들이는데 크게 한 몫 하고 있다니 가슴이 뭉클했다. 부산뿐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랜드마크로 성장할 가능성을 예견하면서 자리를 떴다.

마지막 코스로 잡힌 곳은 부산의 아이콘인 바다다. 그 바다 위를 가로지른 광안리 대교를 향해 걸었다. 민물과 갯물이 맞닥뜨리는 수영강다리의 난관을 벗 삼았다. 찬바람이 옷깃을 갈랐다. 몸속을 파고드는 거센 강바람은 늙은이의 아랫도리를 후들후들 떨게 했다. 그래도 좋았다. 고개를 돌리는데 따라 강도 보고 바다도 볼 수 있어 신선했다. 시인이라면 시상이 떠오를 만도 하다. 강변 저 넘어 멀어져 가는 센텀시티도, 눈앞으로 다가오는 광안리 바다도 카메라에 담았다. 그러느라 어느 듯 수영강을 횡단했다.
육교 바로 옆, 텅 빈 교정의 한 모퉁이에 할머니 댓 명이 모여서 소곤거리고 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어 차가운 난달에 저렇게 모였을까? 혹여 아들 며느리의 자랑일까? 딸과 사위일까? 아니면 그들을 향한 서러움일까? 내 처지가 노인이라 별 생각이 다 든다싶어 머리를 힘껏 흔들어 털어냈다. 센텀시티 자락에 발을 담근 광안리대교는 남천까지 뻗었다. 시야에 쏙 들어오는 광안대교는 금방이라도 손에 잡힐 듯 말 듯 나를 희롱했다. 걷고 걸어도 대교의 끝자락을 잡을 수가 없다. 두 다리에 쥐가 날 무렵 광안해수장의 언저리에 발을 디뎠다. 총연장 7.42㎞인 광안대교는 국내 최대의 해상 복층 교량으로 그 위용이 보는 이를 주눅 들게 했다. 우리의 기술력이 자랑스럽다.
검푸른 바다위에 홀로 떠 있는 오륙도가 금방이라도 파도에 실려 밀려 올 것 만 같다. 신발이 푹푹 빠지는 모래사장을 걸으면서 이렇듯 사색에 잠겨보기는 아주 오랜 일이다.  

세상은 언제나 다 좋은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늘따라 뿌연 하늘이 대교의 자태에 재를 뿌려 부아 나게 한 것이다. 그래도 화난 내 마음을 도닥거려주는 것은 겨울을 끌어안은 젊은 연인들이 있어서다. 싸늘하게 식은 모래해변에 모락모락 피어나는 연인들의 열기가 늙은이의 싸늘한 가슴까지도 데워주고 있다.
간간이 쏴~악~ 하며 귀를 간질이는 파도소리...,  
이곳이 태평양의 한 귀퉁이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지난여름에 수많은 사연들이 찍혀있을 모래 위에 나의 이야기도 점점이 찍었다. 구두 속에 모래가 넘쳐나도록 찍고 또 찍었다. 그래도 나를 지탱케 하는 것은 가슴을 헤집는 무척 차가운 밤바람이다. 모처럼 맡아보는 해변의 겨울 냄새가 시리기는 하지만 싱그러운 활력소다. 희뿌연 바다 저 멀리 어렴풋이 들어오는 거선들의 거동이 아련하다.
‘빛의 바다’라는 컨셉으로 10만 가지의 색상을 연출한다는 대교의 밤을 지나칠 수가 없어 주변 식당에 주저앉았다. 밤을 기다리는 것이다. 다행이도 겨울밤은 늙은 나그네를 오래토록 기다리게 하지는 않았다. 짧은 시계바늘이 다섯 숫자를 지나치자 대교의 빛은 하나씩 속내를 들러내기 시작했다. 오색 불빛이 하나하나 제 자리를 잡아 가는가 했더니 분침이 30자리에 들어서자 전라의 몸뚱어리를 내 코앞에 내밀었다. 대교의 아래 위층, 육중한 다리발까지도 찬란한 빛이 휘감았다. 카메라 앵글을 정조준해 보지만 모두 보듬어 안기에는 너무 컸다. 기술도 모자라고 부속장비도 없어서다. 아무리 재주를 부려도 그 곱디고운 자태를 양껏 담아 낼 수는 없었다.  
이렇게 너무 취하다가는 집으로 되돌아 갈 수가 없다는 자각에 이내 마음이 바빠졌다.
이제 헤어져야 한다. 계량할 수없는 아쉬움을 밀쳐내야 할 시간이다. 어쩌면 다시는 찾지 못할 줄도 모른다는 생각에 모래알 하나까지도 소중히 챙겨 담아야 했다. 그러고 나서야 노구는 자리를 떴다.

                                                                                                 <9회에서 계속>

드리는 말씀 : 앞으로 저의 꿈은 우리나라 곳곳의 풍물을 담아내는 일입니다. 아내가 마음 놓고 걸을 수 있는 날부터 말입니다.
늘 변함없이 찾아주시고 댓글로 격려하여 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제이싱 님, 레몬트리 님, 캔디 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늘 건강하시고 계속해서 좋은 말씀 자주 올려주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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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레몬트리님의 댓글

레몬트리 (bead73)

부산에 다녀 오셨군요 ^^  사모님 완쾌되셔서 남강선생님과 함께 한국을 두루 여행하실 날이 빨리 찾아오길 진심으로 기원하겠습니다. 여긴 chinese new year 준비로 거리가 온통 붉은 빛이네요 건강하시고 행복하고 즐거운 명절 보내세요~~.^^

긍정의힘!님의 댓글

긍정의힘! (iandp)

이야 부산 멋지네요 근데 10여년 전과 많이 변한것 같습니다 외국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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