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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 사는 이야기-(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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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강 (h12k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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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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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 혼자 다닐래.’
손자의 폭탄선언이다.
듣는 순간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다. 그리고 서운했다.
이야기는 이렇다.
손자는 싱가포르에서 귀국하자마자 중국어와 수학 그리고 국어학원을 다니고 있다. 중국어학원은 집에서 좀 멀리 있어 갈 때와 올 때 버스를 타고 다녔다. 할아비는 손자와 함께 갔다 왔다 하느라 2시간은 너끈히 보냈다. 과잉보호인줄 알면서도 그냥 그렇게 데려다주고 데리고 오고 했다. 녀석과 학원에 가고 올 때면 서로 골러먹고 웃기고 웃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 시간이 한없이 행복했다.
손자는 아침 8시면 인터넷 영어공부를 한다. 아침밥은 내가 챙겨 먹인다. 싱가포르에서처럼..,
때로는 소파에 비스듬히 누어서 양발을 신기라며 발을 쭉 내미는 어리광도 부린다. 12살짜리인데도 귀엽기만 하다. 제들 엄마 앞에서는 어림도 없다. 버릇 나빠진다며 나무라기 때문이다. 스스로 하라고 다그친다. 누가 그걸 모르는가. 나 역시 ‘이제 자기가 신어야지’ 하면서도 손은 벌써 양말을 신기고 있지 않는가. 손자와의 스킨십이 마냥 좋은 것이다.
10시에 중국어학원으로 나선다. 버스 정유소까지 10분을 걷는다. 이때부터 손자가 웃음을 준다. 할아버지 집의 응접실을 원통형으로 지어 주겠다고 한다. 할아버지 팬들이 빙 둘러앉아 이야기하는데 편하고 분위기도 좋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손자의 장래 꿈은 건축가다.
나에게 멋진 집을 지어주겠다는 이야기는 2년 전부터다. 그러니까 싱가포르에서 등하교할 때마다 곧 잘 입에 올리는 단골 메뉴다. 가장 아름답고 가장 큰 건물을 설계하고 짓겠다는 것이 희망이다.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컴퓨터 앞에 앉으면 빌딩 설계를 하곤 한다. 그래서 더 귀엽다.
또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손자의 반말이다. 손자의 반말이 고소한 이유는 덧셈 뺄셈도 없는 아이의 순수함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반말이 문제가 되어 학원을 오갈 때만 쓰고 있었다. 따라다니지 못하게 되면 이 재미가 날아가게 된 것이다.
이 반말 이야기의 전말은 이렇다.
할아버지한테 반말을 하는 버릇 때문에 아빠 엄마에게도 반말을 한다며 고치라는 엄마의 엄명이 내렸다. 그 때문에 ‘요’자가 유행어가 되었다. 손자의 어리광스런 반말이 나오면 엄마가 ‘요’라고 외친다. 손자는 ‘요’자를 말끝에 얼른 붙인다. 예컨대 “...하기 싫은데.”하였다가 얼른 ‘요’를 붙이는 것이다. 한 발 더 나아가 ‘요.요’를 연발하는 바람에 포복절도를 한다. 때로는 엄마를 은근히 놀려주려고 부로 하기도 한다. 나는 그것이 좋다. 천진한 아이의 모습이 좋고 웃음꽃을 피울 수 있는 집안 분위기가 좋은 것이다. 그래서 손자의 반말이 싫지 않다.
엄마 아빠가 곁에 없던 싱가포르에서의 생활태도가 바뀌어져 가고 있다. 간섭이 많아진 것이다. 눈치를 보기는 나도 마찬가지다. 할아버지 때문에 아들 버릇 나빠진다고 할까 봐서다. 그래도 나는 손자와 반말하면서 함께 뒹구는 게 행복했었다. 집안에서 아무 말이나 마음껏 나눌 수 있는 유일한 말벗이니까 그럴 수밖에 없는지도 모르겠다.
남모를 그 즐거움이 2년간의 싱가포르에 이어 중국어학원으로 이어지는가 하였으나 오늘로서 막혀버린 것이 섭섭하고 허전한 것이다.
며칠 전 대구에 갈 때도 학원에 간 손자를 집에 데려다 두고 가려는 생각에서 약속 시간을 오후 늦게 잡았었다. 2년 만에 만나는 한 친구의 일성이 이랬다. ‘이 세상에서 자네만큼 손자에게 지극정성인 할아버지는 없을 것이다’.
여느 할아버지들도 아들에게 느끼지 못했던 ‘사랑’을 손자에게 쏟는다고 하지 않든가. 나 역시 그럴 것이다. 손자 사랑이 유별나다는 생각이 때때로 들면서도 정이 가는 데는 어쩔 수가 없다. 내가 이 손자와 깊은 인연을 맺은 것은 녀석이 태어 난지 7개월에 접어들면서다. 한 살 터울의 손녀와 손자여서 손자는 우리 집에 데려와서 키우기로 하였던 것이다.
손자가 우리 집에 오기로 결정되자 내가 가장 먼저 준비한 것이 ‘육아일기’였다. 성장과정별로 먹이는 영양식과 목욕시키기, 기저귀 사용법, 장난감 놀이, 예방접종시기 등등... 육아에 도움이 될 모든 정보를 습득하기 위해서였다.
손자의 육아일기 서문과 첫 날 일기를 그대로 옮겨본다.
[-밝게, 맑게, 튼튼하게-
이 할아비의 건강과 여건이 내 사랑하는 손자를 다 키울 때까지 지속될 수 있기를 기도한다. 1999. 7. 4.]
☆1999년 7월4일 (일)
오전 10시쯤 손자가 도착했다. 포동포동한 몸매가 예전 제 아빠와 흡사했다. 곧잘 깔깔대고 웃는 게 귀여움을 더 했다. 아래 이빨도 두 개나 났다. 엎드려 궁둥이를 치켜들고 기어보려는 몸짓이 우습다. 올 되는 녀석 같으면 앉을 수도 있을 7개월째인데...
어제 준비해둔 강판에 오렌지를 갈아 먹여보았으나 혀로 밀어내는 게 입맛에 맞지 않는 모양이다. 차차 길을 들여야 되겠지-
목욕을 시켰더니 낮잠을 한 시간쯤 잤다. 4촌 누나와 형이 웃기는 몸짓을 하자 깔깔대고 웃었다. 우유를 한꺼번에 120그램을 먹었다. 장난감은 아직 가지고 놀지 못한다. 잠투정은 20여분 만에 한 번 씩 한다. 밤 10시쯤 잠들었다.☆
☆1999년 9월17일 (금)
밤 1시 반께 우유 120ml을 먹고 1시간 뒤 150ml을 더 먹었다. 6시에 일어나 장난을 쳤다. 씨익 웃으면서 내 머리카락을 잡아당기고 품안으로 굴러들어와 안기기도 한다. 침대와 창틀 소파를 잡고 가재걸음으로 걷는다. 언제 넘어질지 몰라 불안하고 조심스럽다. 7시께 베이비주스 반병과 밥 한 숟갈을 먹었다. 8시에 우유 250ml를 먹고 10시께 아침잠을 잤다. 11시 반과 오후 1시에 300ml를 두 번 나누어 먹었다. 2시에 주스 반병을 또 먹었다. 변을 모았으나 아랫도리만 씻었다. 날씨가 춥고 좋지 않아 샤워는 안하기로 했다. 매일유업 육아 상담원과 통화했다. 우유와 이유식과 변비에 대해 알아봤다. 내 방식이 좋다고 했다. 녀석과 함께 이 방 저 방을 돌아다니며 놀았다. 장난을 치다가 녀석이 내 팔을 물어버리는 바람에 눈물이 났다. 3시 반께 낮잠을 잤다. 6시에 우유 150ml를 먹고 두 시간 뒤에 150ml를 먹었다. 오늘 모두 1,120ml를 먹은 셈이다.☆
서문의 글처럼 이 손자를 이렇게 키웠다. 물론 중간 중간 돌보지 못했던 때도 있었지만 중요한 시기마다 할아비의 역할을 다했다고 자부해도 무리가 아닐 정도다.
특히 이 손자를 말하면서 크게 두 번 놀란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다. 한 번은 녀석이 겨우 방바닥을 기어 다니기 시작 할 무렵이다. 밥을 푸고 있던 밥솥 언저리에 손을 대다가 손가락 하나를 데인 것이다.
녀석은 자지려지게 울고 너무 놀란 나도 울었다. 손가락을 잡고 한걸음에 응급실에 갔고 진료를 받았다. 다행스럽게도 손가락 한 마디만 약간 화상을 입었다는 의사 말을 듣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전기밥솥을 방바닥에 내려놓은 죄책감은 치료를 받으려 다니던 내내 나를 괴롭혔다.
두 번째는 녀석이 급성후두염에 걸려 극심한 호흡곤란을 겪을 때였다. 이 날 나의 일기장엔 이렇게 쓰여 있다.
☆ 1999.12.30 (목)
손자 컨디션이 오후 들면서 신통찮았다. 단골 소아과의원에 데리고 갔다. 감기기가 있다고 했다. 독감이 아닌지 걱정스러웠다....<중략>...녀석이 자정이 되자 갑자기 목구멍에서 그르렁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는 호흡곤란 증세가 나타났다. 혼비백산이 되어 의료원의 응급실로 달려갔다. 한밤중에 X-레이 촬영을 하고 퇴근중인 소아과과장을 황급히 불러냈다. 급성후두염 일종인데 더 심하면 목구멍에 구멍을 뚫어 숨을 쉬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사지에 힘이 빠져 주저 않을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너무 놀라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정신을 잃었다. 손등에 링거액 주사를 꼽고 항생제 반응검사를 하는데 너무 아파했다. 목은 더욱 더 그르렁대고 울어대는 바람에 얼굴은 창백하게 질렸다. 가습기를 코앞에 대고 8시간을 보듬어 안은 채 밤을 새야 했다. 녀석이 주사 바늘이 꽂힌 손을 움직거리고 가습기의 차가운 증기를 피하려고 머리를 흔드는 바람에 밤새도록 꼼짝 할 수가 없었다.
녀석의 목 아래에는 포대기와 수건 그리고 잠바로 감싸고 얼굴은 가습기 앞에 바싹대고 있어야 하는 힘든 시간이었다. 자며 울며하는 녀석이 얼마나 안쓰럽고 짠한지 팔다리가 시리고 저려서 남의 살이 되어도 녀석이 겪고 있는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후략>
1주일 동안 애를 태우기는 하였으나 완치되어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아마 이 1주일간의 병상일기를 각색해도 한편의 논픽션드라마로 손색이 없을 듯하다.
이렇듯 정성을 쏟아 붓은 녀석이다.
손자 셋에 손녀가 둘 인대도 이 녀석만큼은 이토록 유별난 사이였다. 물론 주어진 환경 때문이었다. 옛말에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고 했고 ‘자식도 품안에 있을 때가 자식이다’고 했듯이 하나도 틀린 말이 아니다 싶다.
사실 아들이 태어나고 커갈 적만 해도 사랑을 쏟지는 못했다. 우리 시대의 정서가 그랬고 삶에 바쁘고 지쳐 ‘사랑’이란 용어 자체가 하나의 사치에 불가하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자식들에게 못다 한 사랑을 손자를 통해 애틋이 나누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무엇이든지 그저 주고 싶기만 한 손주들이다, 하나같이 귀하고 예쁘기만 한 녀석들이다.
다행스럽게도 너무나 고맙게도 내 손주들은 잘 커주고 있다. 그래서 행복하다.
오늘 ‘혼자 다닐래요’라던 이 녀석이 빌딩을 지어 내 사랑하는 팬 여러분들과 원탁 쉼터에 둘러 앉아 오순도순 옛 싱가포르 이야기를 나눌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시 한수 낭송하고 막걸리 한 잔 들이켜면서 사랑하는 자식과 손주들의 이야기를 나눈다면 그 얼마나 행복할까.
황당하고 지나친 탐욕이겠지?!
하지만 꿈이라도 품어보고 싶다.
<5회에서 계속>
드리는 말씀 : 이 글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지금 이 시간에도 타국의 자식 걱정에 여념이 없을 부모님들께 더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는 바람에서입니다. 모두 이렇게 키워주었으니까요. 은혜갚음 이상의 숨은 가치가 있습니다. 나를 통해 나를 바라보면서 내가 가고 있는 길이 아닌가 합니다.
3회에도 아낌없이 격려하여주신 웃자 님, 열심히 님, Ann 님, 투썬즈 님, luna 님, 피닉스 님, 빨간머리앤 님, 호호아줌마 님, 명진맘 님, chris 님... 나에게 있어 참으로 소중한 님들 입니다. 늘 감사한 마음으로 더 열심히 쓰겠습니다.
♣지금부터 저의 호(號)인 남강(南江)을 닉네임으로 사용하겠습니다. 필명의 일원화를 위해서 아쉽지만 ‘서생’를 떠나보내야 되겠습니다. 너그러이 해량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댓글목록
luna님의 댓글
luna (bead73)닉네임이 바뀌어 잠시 당혹스러웠어요 ^^ 언제부턴가 한국촌에 들어올 때면 오늘은 선생님의 새로운 글이 올라왔을까? 습관처럼 살펴보게 되네요 *^^* 제가 잊어버린채 살고 있던 무언가를 자꾸 일깨워주시는 선생님께 감사드리고 앞으로도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훌랄라님의 댓글
훌랄라 (hgh987)글 읽는 내내 미소짓게 되네요. 덕분에 하루를 기분좋게 시작합니다~
chris님의 댓글
chris (mckhang)너무도 빨리 커버리는 아이들때문에 안타까울 뿐입니다..내년이면 한국학년으로 중1이 되는 둘째를 보면서 그냥 이대로 시간이 멈추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 보기도 하지요^^ 아이들이 빨리 커버리는 것이 넘 서운하거든요...훗날 시간이 더 많이 흐른뒤 저도 선생님처럼 손자 손녀에게 사랑을 많이 주는 할머니가 되었으면 좋겠어요...선생님의 손자 사랑에 흐린 날씨에 우울했던 제 기분마저 밝아지네요 감사합니다...
캔디님의 댓글
캔디 (mieco)오늘밤 부모님 생각에 더욱더 잠못이룰것 같습니다..낼은 부모님께 전화드려 이런저런 얘기 나누렵니다~^^늘~좋은 글 감사드리구요 담주면 크리스 마스네요^^가족들과 즐건 성탄절 보내셔요~*^^*
민아님의 댓글
민아 (taelin3001)나이를 초월한 할아버님과 손주의 친구같은 사이가 읽는 저를 즐겁게 하시네요... 저의 어머님게서도 손녀딸이 두달동안 들어가 할머님께서 키워 주신 은공은 갚는 흉내라도 내본다고 할머니하고 재미있게 보냈더니 제가 가니 그렇게 기분 좋으시고 행복하셨다 하시며 누군가 당신을 그렇게 사랑한다는 느낌을 받았다는것이 주무시면서도 미소가 지어지신답니다. 손주분께서 이런 우리들 이야기를 할수있는 둥그런공간을 마련해주신다니 건강하게 살아서 꼭 그 자리에 앉아보아야 겠습니당~~~~~
구름처럼님의 댓글
구름처럼 (charmer)한국에서 선생님의 글을 읽습니다. 모처럼 느긋하게 열흘을 쉬었습니다. 짧은 인생이지만 이런 느긋함과 호사가 몇번이나 있었는지 생각을 해 봅니다. 거의 앞만 보고 달려온것 같습니다.
구름처럼님의 댓글
구름처럼 (charmer)연락을 드릴까 하다가 모처럼 찾아온 호사를 더 누리겠다는 이기심과 고요한 일상에 방해가 되겠다는 생각에 참았습니다. 22일 싱가폴로 돌아갑니다. 손자의 두통이 없어졌다니 참 고마운 일입니다.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도 조만간 깨우치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뭔가 나눌것이 있다는것 자체가 행복인것 같습니다. 단 한사람이라도 간절히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는한 열심히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감성과 정신만큼이나 늘 건강하시기를 기원 합니다.
날아라싱가폴~님의 댓글
날아라싱가폴~ (dleodlf21)^^ 미소짓게 만드는 이야기.. 감사드립니다.!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