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생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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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러기 할아비의 이야기-(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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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9-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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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울 것과 알릴 것-

외국 생활에서는 반드시 얻은 것이 있다. 아울러 배울 것도 있고 알려주고 싶은 것들도 있다. 외국에 나가면 자연스레 자국의 홍보대사가 된다는 사실이다. 우리민족의 장점을 알려주어야 한다. 그래서 이해 증진의 역할을 자임해야 한다. 이미지 제고는 우리 자신의 위상을 업그레이드 하는 것은 물론 ‘메이드 인 코리아’의 상품 판매고에도 알게 모르게 기여하기 때문이다.
나라마다 인종마다 문화가 다르고 관습이 다르다. 언어도 다르고 행동거지나 도덕성의 기준도 다르기 마련이다.
대한민국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빨리빨리 문화로 알려져 있다. 오늘의 세계경제 10위권을 만든 동력이다. 싱가포르의 대형 건설공사를 독점할 수 있는 것도 속도전의 덕분이다.
지금 이곳에 조기유학을 오게 된 것 또한 우리의 조급한 민족성과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그로 인한 ‘날치기’의 오명도 존재한다. 이렇듯 반드시 옳고 그르고 낫고 못함의 이분법이 만능이 아니라는 것이다.
싱가포르 인구의 70%라는 중국인들의 악착같은 배금주의라든가, 무슬림의 히잡 문화도 우리네 생활관습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이런저런 이유로 싱가포르 생활을 통해서 배워야 할 것도 많지만 그저 이해하는 정도로 지나칠 것들도 더러 있다.

먼저 속도 이야기부터 해 보자.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열대지방의 느린 문화다. 바쁘다거나 조급하다는 느낌은 눈을 씻고  찾아보려고 해도 없다. 처음에는 짜증스럽고 답답하더니 이제 그 여유로움이 좋아진다.
이사를 하자마자 화장실의 변기와 세면대의 물이 찔찔거리며 잘 내려가지 않았다. 수리를 요구했지만 기사가 와서 수리하기까지 만 사흘이 걸렸다. 이 정도의 소요시간은 아주 양호하다고 했다. 우리나라였다면 늦어도 하루 만에 해결될 문제다.
베독 레저뷰어 로드 쪽에 이사 갔을 때 집 앞에 위치한 버스정유소 이전 공사를 하고 있었다. 배수로를 돌리고 콘크리트 바닥 위에 빔을 세워 지붕을 얹는 단조로운 공사다. 그 때가 1월이었는데 이사를 갈 때인 12월까지 완공이 되지 않았으니까 1년도 더 걸린 셈이다. 아마 우리나라 같았으면 관계 기관은 민원에 견딜 수 없었을 것이고 건설회사는 부도가 나도 한참 났을 것이다. 콘도 도색도 마찬가지였다. 1년 넘게 걸렸으나 손길은 섬세하고 꼼꼼했다. 각 세대의 창문은 물론 창틈 구석구석까지 닦고 칠했다. 느리기는 하지만 뒷손이 필요 없다는 장점을 보았다.
이것이 사람 사는 모습이다. 제 각기 삶의 방식이 다르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실례다.

생활습관도 다르기는 마찬가지다. 이곳의 식습관은 푸드코트 위주다. 중국의 외식문화 영향인 듯하다. 우리에게는 낯선 모습이다. 푸드코트는 동남아 각국의 음식의 전시장이다. 태극마크가 선명한 한국음식 코너도 쉽게 볼 수 있어 다행이다. 쇼핑몰마다 자리 잡은 삼성과 엘지의 전자제품과 함께 볼 때마다 늘 반갑다.
쇼핑몰이나 재래시장에 나가면 비닐봉투가 넘쳐난다. 우리말 그대로 아낌없이 준다. 유제품과 과일류, 채소류, 건과류, 어류, 육류별로 비닐봉투에 담긴다. 비닐봉투를 공해물질로 경계하는 우리나라 정서와는 너무 다르다. 그래도 빵 하나마다 봉투에 넣어주는 위생관리는 본받을만하다.
음식 쓰레기는 물론 온갖 생활폐기물은 집집마다 마련된 쓰레기 창구로 던져진다. 처음에는 망설였다. 쓰레기 창구를 열 때도 그랬지만 쓰레기 비닐봉투 떨어지는 쿵^^ 소리는 간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뒤늦게 알았지만 폐기물 분리수거함이 마련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용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아파트 분리수거함은 넘쳐흐르기도 예사다.
그런데 문제는 내 자신도 어느 날부턴가 예사로운 일상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결코 습관화되어서는 곤란한 일인데도 말이다.  

다음은 교통관련이야기다.
자동차 운전문화는 확실히 선진화 되어 있다. 운전자들은 거의 완벽하게 교통신호를 잘 지킨다. 정지선 밖에 불쑥 나가는 자동차는 거의 없다. 보행자가 시야에 들어오면 일단 멈춤도 아주 잘한다. 예외는 물론 있다. 하지만 90% 이상은 잘 지키고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닌 것 같다. 우리나라 운전자들이 눈여겨봐야 할 운전문화다.
특히 버스운전은 본받을 바가 많다. 우선 승강장의 정확한 위치에 정차한다는 것이다. 승강장 보도와 버스의 사이가 10센티를 넘지 않는다. 승객을 도로 한복판에 예사롭게 내려놓는 우리나라 버스 운전자들의 의식은 부끄럽다. 꼭 배워야 될 것 중의 하나가 운전문화다.
시설에 관한 문제이지만 행선지를 알려주는 서비스는 그저 그렇다. 버스 내 안내 방송도 안내스크린도 없다. 이제 이곳도 우리나라처럼 버스 정유소에 도착 시각을 알려주는 시스템이 한참 설치중이다.
MRT의 경우도 다음 역을 알려주는 팻말이 없다. 물론 종합 안내판은 있지만.., 섬세한 서비스에 익숙한 우리로서는 낯설다. 지금은 새 동차로 교체되면서 차내 스크린이 제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싱가포르 자랑거리 가운데 하나인 지상에는 전봇대가 없다. MRT의 동력도 지하에 매설되어 있어 쾌적하다. 계획도시답다.

도보습관은 배울 게 없다. 인도를 이용하지 않고 큰 도로를 무단횡단하거나 신호등을 무시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심지어 차량 사이를 비집고 건너가는 일도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이 같은 시민들의 삐뚤어진 통행 습관은 운전자들의 선진문화를 반감시키는 병폐다. 우리나라에서도 볼 수 있는 일이기는 하지만 이곳처럼 심하지는 않다. 외면하고 지나쳐 버려야할 시민의식이다.
교통정책의 문제이기는 하지만 트럭의 적재함에 사람을 태우고 다니는 모양은 볼썽사납다. 오토바이가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것도 우리의 시각에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말레이시아 등 주변국가의 공통현상이다. 자전거와 오토바이 이용자가 많다는데서 이해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어찌 보면 교통문화에 있어서는 선진과 후진이 함께 어우러진 양상이다.

이른 아침의 길거리와 아파트 주변에는 휴지와 담배꽁초와 비닐봉투 페트병 등 쓰레기가 예사롭게 널려있다. 사람들이 많이 붐비는 곳에서야 눈이 무서워서 조심하겠지만 후진 곳과  공원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꼴 볼견이다. 심지어 엘리베이터 안에도 휴지와 담배꽁초가 버려져 있고 오물도 흘려 있다. 곳곳에 쓰레기통이 있는데도 말이다.
깨끗하다는 싱가포르 이미지를 송두리째 뭉개버리는 흉물스런 현상이다.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청소부들의 대량 투입이 아니라면 감당할 수 없을듯하다. 돈 많은 정부의 깨끗한 환경이라는 정책기조가 싱가포르하면 깨끗하다는 이미지를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버스와 MRT 이용 손님들의 차례 지키기도 그저 그렇다. 솔직히 질서의식에 대해서는 남의 이야기를 논할 자격이 없다. 우리나라와 오십보백보니까 말이다.
어쨌건 우리는 배우고 버릴 것들을 챙길 수 있는 기회다. 외국에서 보고 느끼는 감정은 특별한데가 있어 뇌리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아서다.

뭐니 뭐니 해도 기러기들이 가장 먼저 맞닥뜨리고 고민하는 부분은 주택임차다. 2~3년 살면서 집을 매입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콘도든 아파트든 월세를 얻어야 산다. 전세제도 자체가 없다. 위치와 주거형태(콘도, HDB, 주택) 그리고 임차료라는 기본원칙에 부딪친다. 정말 잘 생각하고 대비해야 하는데 그게 어디 쉬운가. 대부분 처음 들어오는 사람들이니까 귀가 어둡기 마련이다. 그래서 억울하고 울화통 터지는 일이 심심찮게 벌어진다.
한마디로 싱가포르에서는 주택임대차 중도 해지는 없다. 중도해지를 하려면 쌍방 누구든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한다. 특히 임차인은 계약 만료일까지의 잔여임차료를 지불하고 에이전트 비용까지 물기를 강요당한다. 나갈 때 디포짓 해결도 문제 가운데 하나다. 집에 조그마한 험자국도 용납되지 않는다. 약점이 잡히기만 하면 바가지 쓰기 일쑤라는 게 이곳을 살고 간 기러기들의 하소연이다.
이런저런 핑계거리가 제공되면 디포짓 받기는 어렵다. 약점이 없다고 해도 이삿짐을 빼야  받을 수 있어 항공기 출발시간에 맞추기도 쉽지 않다. 이러다보니 마지막 달 월세는 미루다가 그냥 가버리는 사례도 종종 있다고 한다. 집세와 디포짓을 상쇄하겠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2년 계약의 경우는 손해다. 결국 이미지 추락에다 손해만 보고 가는 꼴이다. 우리의 시각에서는 그렇다. 입장 차이와 불신으로 인한 서로의 삿대질 현상이다. 우리나라의 보편적 상식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이야기라고나 할까.

편리한 생활 패턴도 많다. 반소매에 반바지 그리고 슬리퍼 차림이면 못 갈 곳이 없다. 상하의 나라에 사는 편이성이다. 여름이면 30도를 오르락내리락하는 우리나라지만 이곳 옷차림새로 전국을 돌아다닐 수는 없는 일이다. 차림새도 다양하다. 우리나라 표현대로 찜통더위에도 불구하고 온 몸을 감싼 무슬림의 히잡 복장은 과히 경이롭다. 인도 여인들의 금빛 롱드레스는 물론 코걸이 발걸이 그리고 얼굴에 박은 링까지, 그 화려한 장신구도 놀랍다.  손으로 밥을 먹는 모습도 HDB 주변 곳곳에서 벌어지는 불교의식도 낯설기만 하다. 드럼통에 불을 지피고 복록을 비는 무속도 신기하다.
이 처럼 다민족 다종교가 한데 어울러 사는 싱가포르의 모습을 일상으로 경험할 수 있어  좋다. 많은 것을 얻고 느끼게 한다.  

꼭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교통사고다.
어디에서든 당해서는 안 될 일이지만 남의 나라에 사는 우리들로선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지난해 10월에 일어났던 아내의 교통사고는 아직까지 미결상태다. 꼭 1년이다. 보상은 고사하고 치료비 한 푼도 받지 못하고 있다. 사고 운전자의 처벌재판까지 8개월, 재판기록이 우리 쪽 변호사에게 오기까지 두 달이다. 그리고 상호 변호사가 합의하는 과정도 판사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우리 사건은 지금 이 단계에 머물러 있다.  
싱가포르의 엄격한 법치주의가 우리들의 법의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와 같은 법체계가 오늘의 싱가포르를 번영케 한 원동력이기도 하다. 세계 최하위의 범죄 발생률이 입증하고 있다. 관리들의 부정부패가 없다는 사실도 뒷받침 한다. 싱가포르에 오면 싱가포르 법을 따라야 한다. 우리가 배우고 본받을 일이 많은 나라다.

남의 나라에 살면서 지켜야 할 것도 많고 배우며 익혀야 할 것도 많다. 옳고 그르고의 판단은 전적으로 당사자들의 몫이다.
다행이도 우리나라는 싱가포르와 1970년 국교수립 이후 지금까지 긴밀한 외교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무역은 10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한국에 부동산 투자도 활발해 서울 시그마타워, 프라임타워, 서울파이낸스타워, 무교빌딩, 코오롱빌딩, 스타타워빌딩까지 굵직한 빌딩들의 주인이 싱가포르인이다.
정치적으로는 더욱 긴밀하다. 국교 수립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인연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오늘의 세계경제 10위권의 대한민국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영도력에서 비록 되었다면 불과 인구 500만의 싱가포르가 세계경제 40위권에 드는 부국을 이룬 영웅은 리콴유(Lee Kuan Yew) 전 총리다. 나라의 운명을 결정짓는 것은 지도자의 만남이라는 사실을 또렷이 알려준다.
우리는 이와 같은 인연의 시각에서 싱가포르를 이해하고 긍정해야 옳다.
그리고 배울 것은 확실히 읽히고 부족하고 불편한 것은 우리 것으로 고쳐 쓰는 지혜가 필요하다.

꼭 배우고 싶고 부러운 것이 있다.
2년 동안 살면서 단 한 번도 싸움은커녕 말다툼도 본적이 없다. 술주정을 부리거나 비틀 걸음을 걷는 사람도 볼 수 없었다. 유흥가에 가 본적이 없어서일까? 하지만 우리나라는 주택가이든 유흥가이든 가릴 것 없이 꼴 본견은 난무하고 있지 않는가.
옷깃만 스쳐도 예외 없이 SORRY 연발이다. 좁은 인도에서 부딪치기만 해도 눈을 흘기고 구시렁거리는 우리와는 너무 대조적이다.
폭력이 없는 나라, ‘SORRY’, THANK YOO, EXCUSE ME가 몸에 배어있는 싱가포르인들의 예절과 친절이 부럽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 깨끗한 이미지의 백의민족(白衣民族), 바르게 사는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의 옛 명성을 되찾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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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피닉스님의 댓글

피닉스 (wisethink)

언제나 느끼지만, 이런 섬세하고 사려깊은 식견에 늘 감탄하고 존경하는 마음입니다^^    저도 길지 않은 시간에 참으로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만.....  대한민국인이라는 자부심과 품위를 잃지 않도록 노력하고자 한답니다.  가끔가다 들려오는 우리 조국의 소식에 일희일비 하면서요 ^^    끝에 언급하신 부분, 즉 술과 관련된 여러가지 문제들 - 사소한 경범죄 부터 입에 담기 힘든 큰 범죄까지..... 이런 부분만이라도 싱가폴의 경우를 본받기를 바랄 뿐입니다.

서생님의 댓글

서생 (h12k13)

피닉스님, 언제나 발랄하고 긍정적인 모습이 넉넉한 삶을 짐작하게 합니다. 16일 한인회의 몸살림운동에 꼭 참가하세요.

가자미래로님의 댓글

가자미래로 (iandp)

어르신 정말 정확하게 꼭꼭 짚어 내시는 군요.. 공감100%입니다, 건강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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