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생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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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러기 할아비의 이야기-(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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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9-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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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알라룸푸르에 가다(후편)-

여행은 뭉게구름이다. 두둥실 떠다니는 꿈, 어디론가 하염없이 떠돌고 싶은 마음 말이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상상과 동경은 사람들의 가슴을 사로잡는다. 오늘 쌍둥이빌딩을 찾는 기분이 바로 이런 것이다.
새벽같이 잠에서 깨어 샤워를 하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아내도 뒤따라 일어났다. 여자에 있어 분단장은 나이가 없는 듯하다. 열심히 얼굴을 다듬었다.
싱가포르 행 버스 편부터 알아봤다. 호텔 근처에 AERO LINE이 있었다. 올 때 이 버스의 정보를 몰랐던 게 아쉬웠다. 아침 7시인데도 내일 표가 거의 매진되고 뒷좌석 8석만 남아 있었다. 이 버스 삯은 어린이만 할인 혜택을 받아 1인당 50링깃에, 어른은 80링깃이다. 그래도 전체 금액으로 따져보면 올 때보다 한화로 5만 여원이 헐하다. 진작 이 버스의 노선정보와 그리고 ‘라군’과 ‘KLCC(Petronas Twin Tower=쌍둥이빌딩)’의 휴무일을 알았더라면 여러 가지로 더 많은 편의를 보았을 터인데 아쉽다.

우리가 식당에 내려갔을 때는 바쁘게 서두른 여행객들로 붐볐다. 서양 사람들도 꽤 많았다. 아이들은 양식에 길들여져 수프와 빵과 칠면조고기까지 잘 챙겨 먹었다. 서양음식과는 거리가 먼 이 촌사람은 계란후라이와 과일 두 쪽으로 아침을 떼었다.
아들은 도어맨에게 택시를 부탁했다. 일곱 명이 탈 수 있는 패밀리카 같은 승합차였다. ‘KLCC’까지 왕복 90링깃이다. 10시에 출발 오후 3시에 데리려오기로 했다. 새 차에다가 차 삯도 마음에 들어 좋은 출발이었다. 운전기사도 싹싹해서 마음이 편했다. 아마 호텔소속의 차가 아닌가 싶었다.
도로는 차와 오토바이로 넘쳤다. 우스운 광경은 오토바이 운전자들은 거의 모두 점퍼를 뒤로 입었다는 사실이다. 점퍼 앞섶에 들어오는 바람의 저항을 줄이기 위한 아이디어라고 했다. 생활의 지혜다.
쿠알라룸푸르의 시가지는 그렇게 복잡하거나 번창하지는 않았다. 왕복 6차선과 8차선으로  이어지는 차도 양옆에는 고층 빌딩이 드문드문 들어서 있다. 15분 쯤 달렸을 때 쌍둥이빌딩의 은빛 찬연한 위용이 보이기 시작했다. KL 타워도 함께 시야에 들어왔다. 30분 만에 정문에 도착했다. 운전기사는 먼저 내려 문까지 열어주는 예의를 갖췄다.

그 웅장한 빌딩의 몸체는 온통 스테인리스강과 스테인드글라스로 휘감겼다. 쿠알라룸푸르를 밝히는 은빛 조명이었다. 머리를 뒤로 한껏 꺾어야 꼭대기를 쳐다볼 수 있었다. 이내 현기증을 느꼈다. 빌딩의 정문 수위가 문을 열어 주었다. 안에 들어서자 히잡 차림의 여성안내원이 빌딩에 대한 안내를 친절히 했다.
나란히 붙어 선 두 빌딩의 높이는 452m에 88층이다. 4층탑까지 합치면 92층이다. 쌍둥이 빌딩으로서는 세계 최고층 건물이다. 높이로만 따지면 타이베이 국제금융센터 101층 508m 다음이다.  
1994년에 착공하여 1998년에 준공한 이 두 건물 가운데 하나는 우리나라 삼성과 극동건설이 지었다는 것이다. 옆 건물은 일본 건설사인 ‘하사마’의 작품으로 한국과 일본이 경쟁하였다. 우리나라 건설사들은 일본보다 35일 늦게 착공하였으나 7일 먼저 완공하여 한국의 건축 실력을 과시하였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41층(높이 177m)에 설치된 구름다리(sky bridge=길이 58m 너비 6m)는 일본 건설사가 포기한 난공사로 삼성이 해냈다. 대한의 자부심을 느끼기에 모자람이 없다. 우리는 재빠르게 ‘스카이브리지’관람 입구를 찾아 오후 1시30분 탑승권을 받았다.

2시간의 여유를 틈타 쇼핑몰의 화려한 쇼윈도를 눈요기하다가 색달라 보이는 아내의 샌들 한 켤레를 쌌다. 전자관의 삼성 TV와 삼성과 LG의 휴대폰은 언제 어디서나 나를 기분 좋게 했다.
빌딩 뒤쪽 분수대 앞에서 KLCC를 배경으로 가족사진도 찍고 캠코더 촬영도 열심히 했다. 인근에 있는 빌딩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손자가 골라주는 음식은 먹을 만했다.
‘스카이 브리지’에 올라가는 1차 관문에 들어서자 대형모니터에서 KLCC의 시공과정과 쇼핑몰의 안내 영상이 끊임없이 방영되고 있었다. 다음 코스는 KLCC의 영상실이다. 시공에서 완공의 전 과정과 완공 이후의 변모된 쿠알라룸푸르가 소개되고 있었다. 그 스케일이 대단했다. 말레이시아의 상징물로 손색이 없었다. 그 화면까지도 캠코더에 담았다.  
세 번 째 단계가 소지품 X-레이와 몸 검사였다. 물병과 위험 물품은 보관되었다. 항공기 탑승 절차와 똑 같았다. 그리고 초고속 엘리베이터에 탈 수 있었다. 열다섯 명이 탄 엘리베이터는 미동도 없이 41초 만에 41층에 닿았다. 보안요원들이 지키고 있었다. 저 쪽 건물에 들어갈 수는 없었다. 구름다리 중간에서 시내 구경을 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건물에 가려서  반쪽 구경밖에 할 수 없어 아쉬웠다. 체류할 수 있는 10분 동안 기념촬영만 하고 끝났다. 쿠알라룸푸르 전경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스카이라운지가 없어 실망스럽다.

  손자는 KLCC 기념관에서 쌍둥이빌딩 모형 조립품을 샀다. 사무실 출입 장면을 보았다. 사무실로 통하는 길목은 보안요원들의 경비가 삼엄하고 출입증이 없는 방문객은 철저한 몸  수색이 있었다. 이런저런 구경을 하다가 10분 전에 정문에서 차를 기다렸다. 약속된 3시 정각에 도착했다.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모두 피로한 기색이다. 35분 만에 호텔에 도착했다.   땀을 씻고 눈을 살짝 붙였다. 저녁밥은 어제 손자가 점찍은 쇼핑몰 일식집이다. 오늘은 조용했다. 세일 기간이 끝난 탓이다. 갖가지 왜식 요리접시가 실린 회전벨트가 쉼 없이 돌아가고 손녀와 손자는 내려놓기가 바빴다. 삽시간에 파란 빨강 분홍 접시가 소복이 쌓였다. 손자가 더 잘 먹었다. 손자가 너무 많이 먹으니까 손녀가 쌍둥이 빌딩을 만든다며 접시 쌓기를 했다. 모두 한바탕 웃었다.
손자들이 잘 먹는 모습은 언제나 즐거웠다. 나는 초밥 두 개에 우동 한 그릇에 만족했다. 호텔로 연결된 복도에서 내일 놀게 될 ‘라군’의 파도풀장 야경을 한참 바라보다 숙소에 몸을 풀었다.

다음날은 떠날 채비를 일찍부터 서둘렀다. 짐을 모두 꾸려놓고 식당에 갔다. 조찬 양식 식탁에는 먹을 것이 없는 내 식성을 알아차린 며느리가 김밥과 된장국을 챙겨왔다. 어제 마트에서 마련해 놓았던 것 같다. 고맙게 잘 먹었다.
짐은 호텔 로비에 맡겨놓고 호텔의 연결통로를 따라 ‘라군’에 들어갔다. 11시부터 입장이다. 무료인 줄 알았던 입장료가 어린이 노인은 45, 어른은 60링깃이다. 디포짓 10링깃(1인당)도 있다. 입장객을 표시하는 시계형 팔찌에 대한 보증금이다. 음식물은 물론 음료수도 가지고 들어갈 수가 없다. 보관도 안 된다. 이런 줄 모르고 준비했던 음식물은 모두 버려야 하는 것이다. 이건 착취다. 너무 심하다는 생각에 항의했지만 막무가내다. 기분 상하지 않기 위해 꾹 참았다. 요란한 댄스 음악이 귓전을 때렸다. 꽤 넓은 면적에 푸른 파도가 넘실거린다. 해변의 분위기를 재현하느라 많은 투자가 되었을 것 같다. 남녀노소가 즐겼다. 공중에는 줄타기 놀이로 스릴을 만끽하고 있다. 풀장은 두 곳이 더 있다. 3m 너비의 둥근 개울 한 가운데 작은 파도풀장이 섬 모양으로 자리 잡고 있다. 흐르는 개울물에 튜브타기가 일품이다. 그리고 조그마한 공연장도 있다. 원주민 소녀들로 꾸며진 공연단은 북과 소도구로 원주민의 춤과 음악을 연주한다. 손녀 손자는 이곳저곳을 넘나들며 파도를 타고 헤엄치느라 정신없다. 나는 캠코더 촬영을 하느라 물에 들어갈 엄두도 내지 못했다. 아내는 잠깐 몸을 적셨다. 아들과 며느리는 아이들의 안전 책임자 역할에 바빴다.

물을 이용하는 여러 놀이기구들도 즐비하다. 급경사를 이루고 있는 100m 길이의 미끄럼 타기는 위험해 보였으나 아이들은 꼭 타보고 싶다고 했다. 생각보다 잘 탔다. 아이들은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재미있게 놀았다. 준비했던 음료수와 간단한 음식물은 모두 빼앗긴 터라 핫도그와 간식거리로 점심을 떼었다. 녀석들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물장구치고 뛰어 다니느라 여념이 없다.
아이들 때문에 오게 된 여행이니까 그들이 만족하면 성공한 것이다. 사실 노인네들에게 어울리는 놀이는 하나도 없지만 어쩌랴. 오두막에 앉아 구경하며 사진 찍는 역할이 전부다.
덩치 큰 서양 사람들과 히잡 차림으로 물놀이를 하는 무슬림 여자들이 볼거리다. 우리나라  초등학교 3~4년짜리쯤 돼 보이는 소인들도 이색적이다. 젊은 서양 여성들의 몸매는 아이들의 말처럼 역시 ‘왔다’고 짱이다. 이런 곳이 아니고서야 볼 수 없는 여러 종족들의 사람구경도 할만하다.  
모든 일정은 오후 3시30분에 끝이 났다.

호텔에서 짐을 찾아 나섰다. 언제나 여행의 뒤끝은 피로다. 긴장이 풀리는 조짐이다. 아이들은 배고프다며 얼굴을 찡그렸다. 어제 보아 두었던 쇼핑몰 한켠에 있는 한국음식집 ‘최고’에 들었다. 버스 출발지의 바로 옆이다.
식당 규모는 컸지만 한국인은 없었다. 모두 한국어를 모르는 현지인들뿐이다. 좀 섭섭했다. 손자와 나는 16링깃짜리 돌솥비빔밥과 해물장찌개를 시켰다. 아내는 18링깃짜리 해물칼국수를, 아들 며느리 손녀는 32링깃짜리 해물전골을 시켜 먹었다. 맛은 그런대로 괜찮았다. 하기야 배고프면 기갈이 반찬이라고 하였던가. 버스 시간을 맞추느라 5시40분까지 미적거렸다.
‘라군’ 정문 앞에 있는 AERO LINE에 여행객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엄마들과 아이들이 열 명쯤이다. 반가워서 말을 걸어보고 싶었지만 나이 탓으로 꺼내지를 못했다. 세상 물정에 밝은 영리하고 약삭빠른 요즘 엄마들이다. 저녁노을이 질 무렵 버스는 싱가포르를 행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버스 앞좌석은 한국 엄마들 차지다. 밤이어서 올 때만큼 부러운 앞좌석은 아니었다. 출발 직후 버스식이 나왔으나 우리 가족은 모두 사양했다. 조름만 왔다. 그러나 눈감으면 잠들지 않는 나의 별난 습관은 여전히 피로를 누적시키고 있었다. 땅거미가 질 때까지 캠코더에 손을 떼지 못했다.

한 참 달리자 빗줄기가 차창을 때렸다. 방울방울 미끄러져 흐르는 밤비소리가 나그네의 시름을 깊게 한다. 승객들은 하나같이 잠에 취했다. 나만이 적막을 지키고 있었다.
차내는 몹시 춥다. 운전기사에게 온도를 낮춰 달라고 하였으나 자동시스템이어서 수동조작이 안된다고 했다. 담요만 얻어 덮었다.
밤 10시가 지나자 출국과 입국 수속은 10분을 넘지 않게 빨랐다. 싱가포르 종착지는 ‘VIVO CITY’다. 시계 바늘은 10시59분을 가리키고 있다. 갈 때의 7시간보다 무려 2시간이 단축된 시간이다. 언제나 그렇듯 무사히 다녀왔다는데 안도했다. 이렇게 2박3일의 말레이시아 여행은 마무리됐다.
여정(旅程)은 곧 인생이라 정의하고 싶다. 알듯 모를 듯, 잡힐 듯 말 듯 한 미지의 미래가 그렇고 부딪치는 현실마다 새롭기에 그렇다.  

드리는 말씀 : 아주 작은 정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시콜콜한 내용까지 써 보았습니다. 그리고 아주 좋은 정보를 주신 ‘나답게’ 님에게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대단히 죄송스런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계속되는 불면으로 몸이 무척 불편합니다. 당분간 ‘컴’을 멀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 두 편을 쓰는데도 많이 힘들었습니다. 언제 다시 펜을 들게 될지 모르겠지만 체력이 재충전 되는대로 다시 찾아뵙기를 희망합니다.
몸을 추스르기 위한 첫 시도로 어제 세계에서 두 번째 아름다운 다리로 이름난 싱가포르 henderson Waves에 다녀왔습니다. 계속해서 시내와 시외 여행도 하려고 합니다.

그 동안의 성원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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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피닉스님의 댓글

피닉스 (wisethink)

에고 저를 어쩝니까.  선생님 건강이 최우선이니 우선 푹 쉬시고, 글이 늦어져도 기다릴 터이니 부담없이 건강 먼저 추스리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강경하세요~~~

맛깔님의 댓글

맛깔 (karchizorim)

이렇게 자세하고 친절한 여행기는 처음 읽는 듯 합니다. 평소에 얼마나 메모를 꼼꼼히 하시는지 짐작이 갑니다. 불면증이 있으시다니 휴식이 필요한 시기 같습니다, 컴에 오래 앉아 있다보면 다리도 붓고 중독처럼 쉽게 일어서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요, 말씀처럼 당분간 컴을 멀리하고 자연과 벗 하심이 불면증 치료에 도움이 될 듯 합니다.건강 보살피세요

시작님의 댓글

시작 (song1)

서생 할아버님. 서운하지만 기다리겠습니다. 제게 메일로 보내 주신, 대상 받으신 사진, 꺼내보며 할아버님의 삶의 열정을 되새기겠습니다.모든 부담 제쳐놓으시고 한가히 지내시고, 숙면의 밤 또한 이어지기를 기도 합니다. 다시 뵙는 날, 할아버님 멋진 여행기 직접듣겠습니다

bye-sing님의 댓글

bye-sing (hakim1220)

앞서 남겨주신 글들 복습해 읽으며 기다리겠습니다. 서생님의 건강을 위하여 기도 중에 기억하겠습니다. *^^*

나답게님의 댓글

나답게 (a2shjhbsj)

따뜻한 대추차를 자주 드세요. 올해가 유난히 더워 할아버님께서 더 힘드신게 아닌가 합니다. 늘 건강하시길 기원하겠습니다.

웃자님의 댓글

웃자 (emsabina825)

빨리 건강 회복하시길  기도중이 기억하겠습니다..얼른 좋아지셔서 좋은 글 계속 올려주세요.

새콤달콤님의 댓글

새콤달콤 (smellsgood)

서생님, 쉬엄쉬엄 쉬시고 따뜻한 물 자주 챙겨드세요,, 세세한 여행정보를 기록하시는 에너지에 늘 놀랍니다..기다릴께요.

화니님의 댓글

화니 (jxkk)

서생 할아버님, 매사에 너무 세밀하시고, 세상 살이에 신경을 너무 많이 쓰시는 것 같으세요.  한동안 푹 쉬시고, 마음 턱하니 놓고 편안한 마음으로 생활하시면 곧 좋아지실 것입니다.  빠른 건강 회복을 위해 기도드리겠습니다.

캘러웨이님의 댓글

캘러웨이 (jmaeng)

꼭 책으로 펴내셔요... 책으로 읽을만 합니다. 그동안 쓰신것을 출판하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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