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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러기 할아비의 이야기-(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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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생 (h12k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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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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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의 학교 거리도, 아파트 상태도 마음에 들었다. 다만 집주인이 인도 사람이다. 인도 사람들의 뒤끝이 좋지 않다는 평판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사람 나름이고 세입자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 하는 생각으로 자신을 달랬다.
토요일 오후2시 아파트에서 만나 계약하기로 했다. 손사장에게 계약서를 봐달라고 부탁했다. 손사장은 내 일 뿐만 아니라 교민들의 애로사항을 발 벗고 나서 챙겨주기로 널리 알려져 있어 고맙다.
아내의 여권과 비자사본을 챙겨 약속시간에 맞춰 나갔다. 검은 피부의 인도계 주인 부부와 현지 에이전트 두 명이 먼저 와 있었다. 40대 주인부부는 비교적 마음씨가 착해 보여 마음이 놓였다. 손사장을 나의 가디언이라고 소개시켰다. 화기애애한 대화가 분위기를 살렸다. 손사장은 집이 괜찮다고 호평하여 기분이 좋았다.
중국계 두 사람이 에어컨을 청소하고 있었다. 에어컨 청소는 1년에 4번 하는데 3번은 세입자가 해야 한다고 했다. 청소 영수증을 계약 만료 시 주인에게 제시해야 디포짓을 제대로 받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Mr리(이씨라는 호칭이 어색하여 바꿈)가 가픈 숨을 몰아쉬며 뒤늦게 도착했다. 많이 바쁜 모습이 좋았다. 어떻게든 우리 교포들이 잘살았으면 좋겠다는 소망 때문이다.
그런데 순간의 소망이 빗나갔다. 아기가 아파서 병원에 다녀오느라 늦었다고 했다. 병원이라는 소리만 들어도 끔찍하다.
Mr리가 도착하자 곧 계약서를 썼다. 세입자의 계약 명의는 비자 소유자인 아내다. 나는 대리인의 자격이다.
계약서 내용의 요점은 이렇다.
계약기간은 1년, 월세는 1,800싱달러, 입주일은 2008년 12월1일, 해약통보는 쌍방이 계약만료일 2개월 전에 할 것, 설비(화장실과 주방기구, 가전제품 등 가재도구)고장 수리비는 100달러 이상 분에 한해서만 주인 부담.....
해약은 계약만료일과 상관없이 상호간 2개월 전에 통보하면 유효하다는 우리나라 방식대로 하고 싶었으나 이곳에서는 불가하다고 했다. 세입자의 입장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자기들만의 조항들이다. 계약금으로 월세 한 달 치인 1,800달러를 주었다.
그러나 HDB의 경우는 정부의 승인을 얻어야 임대할 수 있어 승인절차 기간이 걸린다고 했다. 일단 가계약 형식이지만 계약은 성립된 것이다.
나는 곧 집주인의 양해를 구하고 가재도구와 건물 상태를 카메라에 담았다. 특히 이미 부식되어 가는 샤워실의 목재재질과 바닥에 생긴 작은 흠까지도 각도를 잡아가며 여러 장 찍었다. 심보 나쁜 주인들의 시설물 훼손 트집에 대항하기 위한 수단이다.
모르긴 해도 카메라를 들고 설치대는 나의 행동거지를 보면 아무리 못된 주인이라도 훗날 트집 잡기는 포기할 것이다. 사진 촬영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주인은 아마 그랬을 것이다.
또 손사장의 힘을 빌려 아들에게 계약서를 팩스로 보냈다. 계약자인 아내의 사인이 필요해서다.
가장 시급한 문제를 풀었다는 안도감에 몸도 풀렸다. 밥맛도 떨어지고 삭신도 쑤셨다. 이럴 때면 외로움은 배가됐다. TV를 틀어 봐도 음악을 들어 봐도 보고 싶은 얼굴만 덩그레 떠오를 뿐 위안이 되지는 못했다. 오늘처럼 주변의 공간이 크게 느껴지기도 처음이다.
이럴 때 여느 사람들은 술 한 잔 걸치고 담배 한 모금을 피우는가 보다. 나에게 있어 이런 탈출구은 애당초 없다. 그냥 그대로 버티고 견뎌내야 하는 미련한 곰이다.
다음 날 새벽 손녀의 학교 앞에 갔다. 정유소 두 군데의 버스 넘버를 모조리 메모했다. 안내 표지판을 그대로 베꼈다. 집에 돌아오기가 바쁘게 버스 넘버로 노선 조회를 했다. 행여 계약한 아파트에서 바로 가는 버스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기대는 한 순간의 희망사항으로 끝났다. 예전처럼 한 번 갈아타는 수밖에 없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지금 사는 콘도에서 다니는 여건과 엇비슷하다는 것이다. 누나와 남동생 사이가 워낙 돈독한 터라 샘내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손녀에게는 미안하다. 1년 먼저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로 늘 동생에게 은근슬쩍 양보만을 요구하지는 않았던가.
이제 남은 숙제는 콘도의 해약이다.
손사장한테 에이전트와 연락하여 마지막 절충을 시도하여 주기를 부탁했다. 이사비용이라도 달라고 하였다. 그러나 며칠 뒤 돌아온 답변은 집이 임대되지 않은 한 디포짓은 한 푼도 내줄 수 없다는 이야기다. 나 역시 디포짓을 되돌려 받기는 벌써 포기한 상태다. 의도적인 심적 압박이다. 이사할 때 엉뚱한 트집을 잡지 못하도록 하는 사전 차단용이다.
어차피 11월 말까지 살면서 그 동안 집이 나가면 좋고 그렇잖으면 그냥 나가면 그만인 것이다.
아들은 집을 잘 얻었다고 했다. 아내의 담낭 수술 자리에 박혀있던 호수도 뽑았다고 했다. 치유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밥상과 청소기, 다라미판, 플라스틱 양동이 등 부피가 크고 거추장스런 물건들을 묶었다. 밥솥과 밥그릇 반찬만 남겨두었다.
그리고 며칠 뒤 아들이 계약서류를 우편으로 보내왔다. 다음 날 본 계약을 체결하게 되었다.
11월30일, 본 계약이 체결되었다.
Mr리는 나에게 계약서 내용을 상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세입자가 크게 불리한 독소조항은 없다고 했다. 이곳 사람들이 관행적으로 쓰는 틀에 박힌 내용이라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밑져도 본전이라는 심정으로 보증금 반환시기에 제동을 걸었다. 계약만료(해지)일 7일~15일 이전에 점검을 마치고 명도일 3일 이전에 디포짓을 반환할 것을 요구했으나 싱가포르식이 아니라서 못한다는 것이다.
모든 조항이 임대자만 유리한 일방통행식이다.
내가 요구를 고집하면 계약을 할 수 없다는 배짱이다. ‘울며 겨자 먹기’라는 속담이 이를 두고 나온 것 같다.
이건 분명 불공정행위지만 이 나라 법은 그렇지 않는 모양이다. 새삼 이국의 서러움을 느끼게 했다. 어쩔 수 없었다.
주인 측 에이전트는 가재도구 목록을 펼쳐들고 함께 체크하자고 했다. 가장 중점을 두는 도구는 에어컨이었다. 방 두 개와 거실에 있는 에어컨 3개를 작동시켜 보여주었다. 냉장고 세탁기 순이다.
다섯 장짜리 인쇄된 계약서와 가재도구 목록 1장, 임대인의 거주지 연락처와 임차인의 동거인 명세서 각 1장, 납세증서 1장, 관리실 발행 영수증 1장이 첨부된 계약서에 서명했다.
디포짓으로 월세 한 달 치 1,800$, TV 공청료 110$, 인지세 89$, 부동산 소개비 970$(세입자 부담으로 월세의 반달 치 900$+부가세 7%) 등 모두 4,770$이 들어 계약은 마무리 되었다.
집 열쇠도 받았다. 언제라도 들어와서 살면 된다.
한시름 놓았다.
Mr리가 이사는 어떻게 할 것인지 걱정스레 물었다. 맡겨 둔 큰 짐은 이삿짐센터를 이용하면 되고 자질구레한 짐은 버스로 옮기겠다고 했다.
MR리는 자기 승용차로 한 번 옮겨주겠다고 했다. 그렇잖아도 부피가 크고 너무 무거운 책상, 밥상, 여행용 큰 가방 등 버스에 싣기가 마뜩찮은 물건을 어떻게 나를지 고민하고 있던 참이었다.
내 마음을 꿰뚫어 보는 것 같아 면구스럽다. 눈 딱 감고 신세를 지기로 했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짐을 챙기자 비가 쏟아졌다. 빗속에서 이삿짐 한 바라기를 했다.
Mr리의 생각하지 않았던 배려로 골치 아픈 일을 해냈다.
행여나 기다리던 콘도 임대는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계약 만료일이 다가올수록 불안하다. 더는 버틸 수 없는 마음의 한계에 스스로 무너지고 있었다.
HDB에 갔다. 청소를 하였다고는 하지만 내 성깔엔 미치지 못했다. 한나절 동안 대청소를 했다.
얼마 안 될 것 같았던 남은 짐도 만만치 않았다. 이삿짐은 겉모양만 보고 측량하였다간 낭패 보기 십상이다.
새벽 버스를 이용하여 짐을 날났다. 개미의 흉내를 내고 있었다. 양쪽 손에 하나씩 두 뭉치를 들고 버스에 올랐다. 버스 승객이 적은 이른 아침을 이용하여 두 번을 오갔다.
그런데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다. 갈 때 21번 버스를 타고 되돌아올 때는 228번을 탔는데 요금이 21센트 정도 적게 찍혔다. 1시간 내에 다른 버스를 탈 때 요금 활인이 된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기왕이면 단 몇 푼이라도 아껴야 한다는 절약정신이 발동했다. 해거름 때도 옮겼다. 역시 활인이 되었다. 우리 돈으로 따지면 왕복 400여원에 불과한 적은 돈이지만 기분은 몇 천원쯤 덕을 본 것 같았다. 참 용렬한 게 사람의 마음인가 보다.
그렇게 1주일이 흘렸다. 더는 버틸 수가 없었다. 집안 구석구석을 쓸고 닦았다. 가스레인지와 냉장고도 반들반들하게 걸레질을 했다.
사실 그대로 나가도 평소 깨끗하게 사용하던 터라 욕 얻어먹을 일은 만무하지만 찝찝한 뒷맛이 싫어 고생을 샀다.
다음 날 손사장이 에이전트를 콘도에서 만나자고 하였다. 기한을 10일 남겨놓은 시점이다.
에이전트 두 명이 왔다. 손사장이 그간에 겪었던 소음 피해와 교통사고를 환기시켰다. 너무 차분하고 점잖은 말솜씨에 그들은 꼼짝도 못했다. 20여 분만에 KO승을 거뒀다. 한마디 항변도 없이 내실과 가재도구와 전자제품에 대한 점검에 들어갔다.
이 또한 30여 분만에 끝났다. 열쇠를 넘겨주고 서로 웃으며 헤어졌다.
그토록 마음고생이 많았던 11개월간의 콘도생활은 막을 내렸다.
그렇지만 이 세상에서 숨 쉬고 있는 그 날까지 지울 수 없는 아픈 상처만은 현재진행형이다.
어쨌든 삶의 한 페이지가 넘어가는 순간이다.
노트북 하나만 달랑 들고 새 보금자리로 찾아 들었다. 썰렁하고 어색했다. 낯선 남의 집 같다. 아내나 손자들이 있었더라도 이러지는 않았을 것이다.
옆집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린다.
사방에서 불빛이 창을 넘어온다.
뿌연 하늘은 간간이 어둠을 가른다.
가는 한숨이 너울져 밀려든다.
아무데도 이한 몸 묶어 둘 곳이 없다.
이렇듯 새둥지 틀기는 쓸쓸했다.
2008년 마지막 날 밤 손녀 손자가 엄마와 함께 창이공항에 도착했다.
이삿짐을 맡겨둔 효서 엄마도 따님과 함께 귀국했다. 공항에서 만나 더욱 반가웠다.
집에 짐을 옮겨놓기가 바쁘게 며느리와 효서네 집에 갔다. 저녁에 당장 필요한 이부자리와 취사도구 일부라도 옮겨야 했다. 이삿짐센터와 며칠 전에 예약을 했는데도 1월1일 오후 6시로 잡혀 어쩔 수가 없었다. 효서 엄마에게 늘 감사하다.
며느리는 아파트를 돌아보고 상상했던 것 보다 낫다고 했다. 그런데 어쩌나! 그 말이 무색하게 일이 터졌다. 큰 방의 에어컨이 돌아가다가 멈춰버린 것이다.
이날따라 유난히 무더웠다. 한 밤중에 큰 방 침대를 작은 방으로 옮기는 작업이 벌어졌다. 완벽에 가깝다고 여기는 시아버지의 체면이 구겨진 사건이다. 몹시 마음이 상했다.
다음 날 에이전트를 통해 항의했으나 뜻밖의 반응에 또 놀랐다. 점검기간 하루가 지났기 때문에 세입자가 알아서 하란다. 분통이 터졌다. 남의 집에 살 팔자가 못되는가 싶었다.
계약대로 수리비 100$이 넘는 분만 내겠다는 것이다. 단 한 시간도 쓰지 않아 발생했고 점검기간 만료일인 31일 밤에 일어난 사안으로 밤에 연락할 수 없었다는 사정도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최후의 대항 카드는 집세를 주지 않겠다고 맞서는 길이다. 나는 며느리가 귀국하는 사흘 동안 열대야에 시달렸다.
주인은 나흘 째 되는 날 기술자를 데리고 왔다. 컴프레서 고장이라고 했다. 주인은 그때서야 임대인의 귀책을 인정했다. 첫 인상은 구겼지만 이후 부딪치는 일은 없었다. 오래된 형광등의 전구 4개를 갈아 끼우고 세탁기의 낡은 호수를 교체해도 불평하지 않는다.
자질구레한데 신경 쓰지 않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마음이 편하다.
바보스럽게 살자.
<30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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