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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러기 할아비의 이야기-(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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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생 (h12k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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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5-06
본문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 이름이 붙은 ‘권양숙 蘭’이 ‘보타닉 가든’에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그리고 ‘행운의 돌’로 일컫는 ‘swiss ball fountain’도 재미있다.>
지난해의 일이다.
어느 날 싱가포르 한인회 홈페이지에서 ‘정월보름맞이 경로위로연’을 한다는 공지사항을 보고 너무 반가웠다. 그런데 마감 날짜가 3일 지났다. 안타가운 마음으로 다이얼을 돌렸다. 여직원이 받아 나이와 이름을 물었다. 아내의 인적사항도 함께 말해 주었다.
여직원은 접수되었으니까 2월23일 오전 10시30분까지 탄종파가 엠알티 앞에 있는 아마라 호텔 로비에 나오라고 했다. 아무 준비물도 필요 없다고 했다
싱가포르에 오자마자 얻게 된 큰 선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한국에서 때때로 열리는 경로잔치에는 관심조차 없었던 나다. 노인이라는 반갑잖은 딱지를 인정하기 싫어서다. 내 마음은 아직 청춘인데 노인이라는 굴레에 들어가는 순간 내 마음의 청춘은 날아가 버릴 것 같은 착각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선들 노인이 되고 싶은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지만 한인회에 다가가는 좋은 기회여서 마음의 청춘쯤은 잠깐 접어두기로 작심했다.
일방통행식의 내 결정에 아내는 싫은 내색이다. 청승맞게 노인잔치에는 왜 나가느냐는 것이다. 아내도 아직은 할머니 소리가 듣기 싫은 모양이다.
‘우리 무척 외롭지 않느냐, 우리 또래 사람들을 만나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도 되지 않겠느냐.’고 설득했다. 마지못해 따라주는 눈치였다. 어쨌든 나는 그 날이 기다려졌다.
그 날은 토요일이었다. 손자들에게 아침밥을 먹이고 점심과 간식도 챙겨놓았다.
초등학생 때 소풍가는 기분을 처음 느껴보는 날이기도 했다. 늙으면 어린애가 된다더니 나를 두고 생긴 말인가 싶다.
아내는 화장을 했다. 그리고 나름대로 멋을 냈다. 나는 얼른 설거지를 마치고 모처럼 긴 바지에 운동화를 신었다. 손자가 할아버지 할머니 멋지다며 비행기를 태웠다. 멋지다는 말이 싫지도 않다. 서둘러 나섰다. 호텔을 찾는 시간적 여유도 있어야 하고 여러 사람들을 기다리게 만드는 얌체가 되어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엠알티 출구를 나서자 잔디광장 바로 앞에 아마라 호텔이 보였다. 10시도 채 되지 않았다. 이때는 부지런 한 것도 병이었다. 상가도 문이 닫혀있어 구경할 곳도 없었다. 건너편에 있는 과일가게를 둘려봤다. 이름 모를 열대 과일들이 보는 이의 입맛을 자극했다. 한참 뒤에 호텔에 갔더니 그 새 많은 노인들이 와 있었다.
남녀직원이 참가자 명단을 들고 한 사람씩 체크하고 있었다. 남자 직원은 한인회 사무국장이었다. 우리 이름을 댔더니 반갑게 맞아 주어 한 숨 돌렸다.
부부가 참가한 사람은 몇 되지 않는 것 같았다. 그것도 그럴 것이 참가인원은 모두 30여명쯤 되었고 그 가운데 할아버지 참가자는 대여섯에 불과했다.
싱가포르에 거주하는 노인들뿐만 아니라 자녀 집에 다니려온 분들까지 60세 이상이면 참가하는데도 모인 인원은 너무 적었다. 어느 참가자는 한국에서 이때를 맞추어 입싱했다고도 하는데 인원은 이렇다.
내가 괜히 주최한 한인회에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참여 의식이 부족한가 싶어서다.
예순이 안 돼 보이는 분들도 있고 팔순쯤 되어 보이는 할머니는 손자의 부축을 받으며 왔었다.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를 모시고 다니는 자손들의 효심이 고맙다.
공통점은 그 나름대로 깨끗이 단장하고 나왔다는 것이다. 울긋불긋한 산행차림도 보였다. 너나할 것 없이 조금이라도 젊어 보이고 싶은 욕망은 어쩔 수 없는 본능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텔정문 앞에는 ‘하나투어’에서 나온 멋진 신형 관광버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한 사람씩 차례차례 버스에 올랐다. 안경을 낀 30대 중반의 깔끔한 인상의 여성가이드가 마이크를 잡았다. 자기소개와 함께 일정을 말해 주었다. 싱가포르 최대의 휴식처이자 식물원인 ‘보타닉 가든’(Singapore Botanic Gardens)에 간다고 했다. 오차드에 위치한 ‘보타닉 가든’까지 가는 동안 가이드의 입담은 참가자들의 입을 다물지 못하게 웃겼다. 그녀의 우스갯소리를 옮길 수 없어 유감이다. 메모를 모두 못한 탓이다.
‘가든’의 한 복판에 들어서자 일행은 버스에서 모두 내려 가이드를 따라 걸었다. ‘보타닉 가든’의 일정부분이 말레이시아 소유라고 했다. 말레이시아로부터 독립하면서 줄 수밖에 없었던 조건부였던 것 같다. 싱가포르 내의 말레이시아 철도와 마찬가지다. 아무튼 몰랐던 것들을 알게 되었다.
나의 디카와 캠코더의 렌즈 초점은 바쁘게 움직였다.
처음 만난 것은 인공폭포였다. 폭포라고 해도 우리나라 물레방아 수준보다 좀 높다고나 할까. 초라하게 느껴질 정도의 작은 규모인데도 많은 외국인들이 폭포수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어대는 것을 보면서 우리나라의 금수강산에 자긍심을 느꼈다.
가이드는 “잘란잘란 걸으시겠습니다.“라고 했다. ‘빨리 빨리’ 걷자는 말을 우스개로 표현하는 줄 알았으나 인도네시아어로 ‘산책, 산보’라는 뜻이라고 했다.
말이야 어떻건 의도는 ‘빨리빨리’가 맞았다. 가이드는 중간 중간에 ‘가든’에 얽힌 이야기를 하였다. ‘가든’은 거의 대부분이 인공으로 조성되었다는 것과 나뭇가지 하나 꽃 한 송이도 꺾으면 엄청 많은 벌금을 물어야만 한다고 했다. 벌금도 많고 형벌도 가혹한 나라니까 매사에 주의를 하여야 한다는 당부도 했다.
일행은 야외 음악당을 바라보며 잠깐 쉬었다. 음악당과 야자수를 배경으로 아내의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여기서 잠깐 ‘보타닉 가든’에 대해서 알아보자.
52헥타르의 방대한 부지위에 대략 3,000종의 열대 및 아열대 식물과 약 50만 종의 식물표본이 보존된 식물 표본실이 있다.
전 세계 희귀종을 비롯해 수천종의 식물들이 서식하고 있는데 압권은 당연 20,000여 난초다. 난초 전시관에서는 4,000종의 다양한 식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싱가포르 정부는 국화인 난(蘭)을 통한 특별한 국제적 외교도 하고 있다. 1967년부터 싱가포르를 방문한 국빈들에게 신종 난을 헌정, 명명식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인기 스타도 대상이라고도 했다. 배용준 권상호 난도 있다는데...)
‘이순자 난’도 있었지만 지금은 죽고 없다고 했다. ‘권양숙 난’에 대한 이야기는 상세하다.
지난 2003년 10월 싱가포르를 방문한 노무현·권양숙 부부에게 싱가포르 국립식물원은 새롭게 배양한 양난에 ‘권양숙’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정식명칭은 ‘노무현 양숙(Roh Moohyun Yang-suk)’이지만 싱가포르는 관례대로 영부인의 이름을 붙여 ‘권양숙난’이라고 했고, 이 명명식에 권 여사가 직접 참여했다.
당시 권 여사는 자주색 작은 꽃들이 금낭화처럼 늘어진 난을 보며 “제 이름의 꽃이 생기다니 기분이 묘하고 가슴이 벅차다”는 소감문을 남겼다고 한다.
일행은 ‘호수와 바위 정원’의 스위스 볼 파운틴(swiss ball fountain)의 이야기를 들었다.
무게 3톤의 돌 받침대에 얹혀있는 700kg(지름 80cm)의 둥근 화강암은 엄청난 물의 압력에 의해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볼 모양의 불그스레한 이 돌은 1991년 스위스의 조각가 파우스취(Fausch)가 싱가포르에 기념작품으로 기증하기 위해 순수 손으로 돌을 깎아 제작한 것이라고 했다.
사람들이 손으로 돌리면서 한 가지 소원을 빌면 들어준다는 말 때문에 ‘행운의 돌’이라는 별칭도 있다.
모두들 앞 다퉈 돌리면서 중얼거렸다.
아내도 무었을 비는지 입술을 달싹거리면서 열심히 돌려댔다. 들으나마나 자식 삼형제와 다섯 손자들의 안녕을 빌었을 것이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마냥 즐거워 보였다. 원예학교를 바라보며 단체 사진을 찍었다.
싱가포르의 국화인 ‘반다 미스 조아킴(Vanda Miss Joaquim)’도 알게 됐다. 반다 미스 조아킴은 ‘진보와 우수성을 향한 끊임없는 노력’을 상징하는 서양난이라고 했다. 싱가포르의 미래를 그린 것이란다.
나는 아내를 주인공으로 열심히 동영상 촬영에 몰두했다. 아내와 손자들의 사진을 찍어주는 것도 유일무이한 나의 생활 가운데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일행은 불과 1시간 정도를 거닐고 곧 다음 행선지로 향하게 됐다. 그런데 어디서나 꼭 모난 사람들이 있었다. 한 분이 모이기로 한 버스 주차장에 모습을 들어 내지 않았다. 한인회 여직원과 가이드가 찾아나서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20여분 늦게 출발해야 했다.
가이드가 잠깐이지만 오늘의 분위기가 아주 좋아 노래를 하여야 한다며 앞자리에 앉은 나에게 덥석 마이크를 내 밀었다. 예상치 못했던 돌발 상황에 적잖이 당황했다. 예전에 노래도 제법 한 곡조 뽑았던 이력도 있어 두 번 사양하지는 않았다.
비 내리는고모령을 나름대로 간드러지게 불렸다. 박수가 터져 나왔다. 내 어린 시절이 불현 듯 떠오르면서 엄마의 애창곡 가운데 하나가 저절로 나온 것이다. 윗동네에 살던 당숙 댁의 제삿날이면 우리 모자는 늘 돌아오는 길에 노래를 부르곤 했었다.
우리 엄마는 참 노래를 잘 부르셨다. 그래서 노래하면 가장 먼저 어머니가 떠오른다.
이 나이에 어머니를 엄마라고 다시 부르는 것도 크게 어색하지 않는 것은 자식은 나이가 백 살을 먹어도 어머니에게 있어서는 아이일 뿐이기에 그런가 보다. <엄마! 나도 노인이 되었답니다>
다음 코스는 싱가포르 강을 가로지르는 ‘머라이언 파크(merlion park)’였다. 싱가포르의 상징물인 머라이언상은 사자 머리에 잉어 몸뚱이 모양이다.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줄기는 강 하류를 강타하고 있었다. 센토사의 대형 머라이언과 차별화 되어 있다. 관광객들의 카메라가 찰각거렸다. 우리 팀도 기념사진을 찍었다.
나 역시 아내와 함께 포즈를 취했다. 육중한 ‘앤더슨’다리 밑으로 유유히 흐르는 싱가포르 강물은 나그네들의 발길을 붙들기에 넉넉했다.
강물 너머 두리안 모형의 지붕은 두 개다. 음악당과 국제 회의장 시설로 유명한 거대한 컨벤션센터는 강렬한 햇살에 부딪쳐 유난히 빤짝거렸고 하늘을 찌르듯 우뚝 솟은 마천루와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관람 차 ‘싱가포르 플레이어(Singapore Flyer =지상 165m)’가 태평스럽다.
한마디로 사진 한 장쯤 찍고 가기에 손색없는 곳이었다.
일행은 여기에서 30여분을 지체하였다가 마지막 코스인 식당으로 향했다.
점심식사가 마련된 곳은 아리랑 식당이었다. 식당 주인이 어르신들을 위해 점심 대접을 한다니까 고맙고 반가웠다. 참가자들이 식당에 자리 잡고 앉자 당시 ‘최 석 싱가포르 한인회장’의 인사말이 있었다. ‘해마다 보다 많은 어르신들을 뫼시고 싶다’고 했다.
참석자들은 자리에 앉기가 바쁘게 싱가포르에서 살아가는 이야기, 손자들 자랑으로 시끌벅적했다. 애써 감추려고 해도 감춰지지 않는 노인들의 제 모습이다.
식단은 버섯전골과 한국 나물, 잡채, 전 등으로 풍성하게 차려져 나왔다.
우리 내외는 우리 나이보다 서 너 살쯤 더 먹어 보이는 노부부와 자리를 함께 했다. 싱가포르에서 23년간 살았다며 몇 년 전까지 한국의 직물을 수입하여 파는 사업을 하였다고 했다.
사람이 그리웠던 터라 그분의 성함과 전화번호를 적었다.
노인들은 식사를 마친 후 기념사진을 찍고 협찬자들이 마련한 선물꾸러미와 금일봉이 담긴 홍빠오(빨강 봉투)를 받았다.
오후 3시쯤 한인회가 마련한 ‘정월보름맞이 경로위로연’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불과 네 시간 정도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서로 얼굴이라도 마주 할 수 있었다는데 의의가 있었다. 이역만리 타국에서 만난 고향 까마귀들이 아니던가.
[알 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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