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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 서생님의 교육관에 저의 미천한 생각을 올립니다.
- 하동파파 (singd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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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4-2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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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이곳에서 개인사업을 하는 입장이라서 교육에 대해서는 할말이 많은 입장은 아닙니다. 다만 저도 본고사를 거친 누님을 모셨고, 본인은 학력고사 출신에 후기고사 합격과 재수의 시기도 거쳐서 교육정책에 대해서 그다지 좋은 경험을 갖고 있지는 않습니다. 억척스럽게 살아온 조부모님, 부모님 밑에서 배운 것이 악 이라서 이렇게 살아남았나 생각해봅니다.
말씀하신 한국인의 저력을 저도 동의합니다. 특히나 한국의 대학 순위에 대한 평가기준에대한 부분은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실제로 한국의 석사과정을 거쳐 외국대학에 가서 박사과정을 마치고 교수 생활을 하고 있는 친구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역시나 한국인의 근면성과 억척스러움은 외국 대학의 관계자들도 상상하기 힘들고 또는 좋지않은 소식들만이 신문, 방송의 매체를 통해 전달되다보니 좋은 능력으로 세계무대에서 인정받는 한국인의 모습이 가려지고 퇴색되어 버리는 느낌이라고 합니다.
이와 반대의 이야기도 합니다. 이 부분은 저도 공감하는 바입니다. 한국인의 가장 큰 병이랄까? 외국에서 성장하기 힘든 이유중의 하나가 지나친 겸손과 친절, 연장자에 대한 존경이라고 합니다. 물론 나쁜 성향이 아닙니다. 다만 이로 인한 외국인과의 관계에서 오해를 만들거나 스스로 자포자기하는 사례가 빈번하다는 것입니다.
사업협상의 예를 들어보면, 어떤 일을 시행하기에 앞서서 계획을 하는 단계에서는 모든 과정의 결과가 확연하게 보여질수 있고 쌍방의 이익이 확실할때 쌍방의 협상이 이루어지는데 반해서 한국인의 경우엔 친절하게 대하고 선심을 쓰고 대화가 화기애애하게 통하면, 술자리를 갖는 사례, 계획과정이 어떻든 일단 협상이 다 되었다고 생각하기 쉽상이라고... 만일 협상이 결렬되면 내가 어떻게 대해주었는데, 해준게 얼마인데 라고 하면서 협상 결렬의 근본적인 이유보다는 자신의 선심에 대한 상대방의 태도를 비난하는 사례가 그것입니다. 외국인 회사의 입금협상에서도 피눈물없다고 느끼는 경우가 있으셨을텐데, 회사를 하나의 인격체로 바라보면서 공과 사를 확연하게 구별하는 외국인의 또는 싱가폴인의 잣대는 한편으로 본받을 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겸손의 부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겸손humble은 우위에 있고 확실한 실력차를 갖고 있는 사람이 보여주는 의미가 더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는 아니겠지만 제가 경험하고 느끼는 외국에서의 한국인은 협상의 자리에서 지나치게 겸손하고 자신의 역량을 표현하는데 익숙하지 못하다고 느낍니다. 말수를 줄이고 상대방의 지위와 그 동안의 관계를 의식하다보니 정작 자신의 요구사항을 제대로 관철시키지 못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영어권의 친구들도 비슷한 얘기를 합니다. 실제 있지만 지나치게 겸손하고 표현하지 못하는 것보다는 없어보이는데 있다고 우기고 논쟁하고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려고 노력하는 자에게 손을 들어 준다는 것입니다. 논쟁은 싸우는 것이 아니라 논쟁속에서 서로간의 이해를 높이고 새로운 대안을 찾을 수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상황이라는 것이죠.
다음으로 연장자에 대한 지나친 존경입니다. 우연찮게 어른들에게 막말을 하고 비하하는 태도와 뉘앙스를 목격하면 마음이 답답합니다. 다만 상대방은 제가 느끼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존경을 받는 것은 단체,사회적인 지위, 가정과 직장에서의 위치에 의해 결정이 나고 소비공간에서의 부의 많고 적음(?)에 따른 가식적인 존경도 포함된다고 본다면 한국인이 몸소 느끼는 존경은 단지 나이의 많고 적음, 사회생활에서의 근무경력이 큰 차이를 보인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다른 경우도 있을 것이고 이 부분이 전체를 대표한다고 표현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외국 또는 싱가폴에서 느끼는 한국인이 하지 못하는 것이 바로 나이와 근무경력에 대한 선입관으로 인한 차별과 가식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싱가폴 사람들도 중국의 역사를 일부 물려 받았으니 그런 선입관이 전혀 없지는 않겠지만 연장자라고 무조건 존중하고 배려하며, 나이가 어리다고 무시하고 배제하는 기준이 한국보다는 적다는 것을 많이 보고 있습니다. 동년배처럼 편안하게 말하고 만나는 만65세의 현지인 친구(friend)를 두고 있는 저로서 이부분은 정말 가슴깊이 느끼는 외국의 성장의 일면이면서 한국인의 병(?) 중에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나이의 많고 적음이 사회,직장에서는 존경의 기준이 아니라 근무의 능력과 가치관이 존경의 기준이 되고 이로 인한 세습과 폐쇄적인 구조를 방지하고 평생교육의 실천을 강조하고 실천할수 밖에 없는 사회구조가 오늘의 선진국을 만들었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얘기가 많이 길어졌습니다. 그만큼 오늘 저녁은 한가하고 다른 할일이 없었습니다. ^^
끝으로 오늘하루님께서 서생선생님과 다른 면을 얘기하신다고 해서 관련 글들을 읽어보았는데, 사실 두분이 같은 의견을 갖고 계시다는 점을 느꼈습니다.
서생선생님께서도 오늘하루님께서 언급하신 한국의 저력에 대해서 언급하신 부분이 있네요. 개인적으로 느끼기엔 서생 선생님께서는 이 부분을 조금만 언급하셨고 선진국의 교육에 대한 장점과 우리가 좀더 발전하고 개선할 수있는 방향도 제시하셨다고 보구요, 오늘하루님께서는 한국교육의 저력에 대한 더 깊고 많은 사례를 들어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결론적으로 두분의 글을 읽으면서 과거, 현실과 미래를 두루 살펴볼수 있었습니다.
서생선생님의 글에서 몇줄 퍼왔습니다.
.........비정상적 교육이 결국 역주행이라는 희한한 현상을 낳기도 한다. 4년제 일류대학교를 나왔어도 취직이 안 돼 2년제 전문대학으로 유턴하는 현상이다. 이 얼마나 허탈하고 낭비적인 역주행인가. 그렇다고 우리의 교육열을 비난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오늘의 한국을 있게 한 견인차가 유별난 교육열이었기 때문이다.......
.....오늘 내가 말하고자하는 본질은 이 시대에 걸맞은 교육개혁의 필요성에 있다.....
....이런 맥락에서 나는 평소 사람은 타고난 소질에 따라 가야할 길이 다르다고 믿는 사람이다. 아이의 재능과 역량에 따라 일찌감치 진로를 정하고 그에 합당한 교육을 시켜야 된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예컨대 학문의 길을 가야할 아이, 기술이나 예능 쪽으로 가야할 아이, 농사를 지을 아이, 노동으로 승부를 걸어야 아이 등등...
대안으로서는 중학교까지는 인성교육에 중점을 두면서 최대한의 기초학습을 읽히고 고등학교부터는 진로선택을 할 수 있도록 교육제도를 혁신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맞춤교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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