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촌 상단 로고

싱가포르 최대의 한인정보 사이트! 우리 따뜻한 한인사회를 만들어 봐요!

통합검색

싱가포르 생활기

  • ~

  • 1,137
  • 기러기 할아비의 이야기-(7)

페이지 정보

  • 서생 (h12k13)
    1. 2,191
    2. 1
    3. 0
    4. 2009-04-04

본문

- 불침번 -

아내와 나는 새벽 4시면 일어난다. 영락없는 자명종이다.
말이 일어나는 것이지 사실 나는 교대도 없는 불침번이다. 싱가포르에 오자마자 나의 별난 오감은 나를 혹사시키기 시작했다.
첫날은 에어컨이 나를 붙들더니 어렵사리 에어컨이 해결되니까 모기가 딴지를 건다. 에어컨에만 신경 쓰다가 모기가 얼마나 어떻게 설치는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손자가 등교할 때까지 몰랐다. 학교에 다녀온 손자가 팔과 다리를 내밀며 가렵고 따갑다고 얼굴을 붉힐 때서야 알게 됐다.
적잖이 열대여섯 군데나 강낭콩만큼 크게 부어올라 있었다. 까무러치도록 놀랬다. 뎅기열(dengue fever)의 공포가 엄습했다.
손자는 가렵고 아프다며 칭얼댄다. 얼마나 긁었든지 물린데 마다 핏자국이 생겼다. 안타까워 차마 볼 수가 없을 정도다.  피가 거꾸로 치솟는 분노를 느꼈다. ‘때려죽일 놈의 모기 잡히기만 해봐라 짓이겨 버릴 테다’.
소염제를 발라도 별반 효과가 없다. 물파스를 뿌렸다. 그것 역시 별로다. 예전에 할머니가 내게 하셨던 것처럼 손가락에 침을 묻혀 발라보기도 했다. 손자는 침을 바르면 어떻게 하느냐며 투덜댄다.  
그동안은 어떻게 안 물렸느냐고 다그치니까 물리기는 했어도 이렇게 심하게 많이 물린 적은 없다고 했다. 아내의 해석은 비가 오려면 모기뿐만 아니라 날아다니는 벌레들은 집안으로 들어오기 마련이라고 했다.
그리고 ‘아마도 별난 할아버지를 시험하는 모양이다’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영감의 열을 식혀보려는 전략적 발언이었다. 언제나 느긋한 아내는 늘 나를 별난 사람으로 여기며 감정조절을 주문하곤 했다. 그렇다고 내 맺힌 마음이 풀릴 리가 없었다.
손자가 저모양이 되도록 왜 모기를 생각하지 못했을까? 내 자신에 대한 원망이 더 컸다.
이놈의 모기를 어떻게 퇴치해야 할지 큰 고민에 빠졌다.

모기와의 1차 대전은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6년 12월 손자들을 보려고 싱가포르에 왔을 때다. 하숙집은 단독주택 3층이었고 우리 아이들은 2층 안방을 차지하고 있었다. 교포 하숙집 주인부부의 배려로 10평도 더 되는 넓은 방을 둘이서 독차지하고 있었다.
방이 큰데다 창문도 많아 모기와 벌레에 대해서는 거의 무방비 상태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자고나면 콩알크기의 혹 덩어리가 팔 다리 심지어 뺨까지 몸 곳곳에 안 불거진대가 없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기가 찼다.
살펴보니 빤드레한 곳이 없었다. 비교적 흰 피부가 거뭇거뭇 깜둥이가 되어 있었다. 모기에 물린 흉터투성이다. 복통이 터졌다. 어디론가 당장 옳기고 싶은 분노를 느꼈다.
그렇지만 어쩌랴. 지금 있는 이 자리에서 최선책을 찾는 도리밖에 없었다.
한국에서 가져온 ‘모기접근방지약’이라는 물약을 온 몸에 떡칠을 했다. 전신을 바르면 부작용이 있다는 말을 듣고 그 또한 많이 바를 수가 없었다. 사실 큰 효험도 없었다. 독한 모기다.
스프레이 모기약은 물론 모기향과 전자 봉 등등 모기퇴치약과 도구까지 다 동원하였지만 지독한 모기공세를 당해 내지는 못했다. 주인아주머니도 두 손 번쩍 들었다는 시늉을 했다.  
뜻밖에도 그들은 내 손자처럼 물리지 않았다. 내가 마치 호들갑을 떠는 것 같아 민망스럽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내 손녀도 물리기는 하지만 손자처럼 엄청 크게 붓거나 많이 가려워하지도 안했다. 더구나 이곳에 오래 살고 있는 사람들은 면역이 된데다 모기가 달려들지 않는 음식이 있다고도 했다. 그럼에도 싱가포르에서의 뎅기열은 2007년 상반기에만 3,216건이 발생하여 늘 공포 그 자체다.
방법은 잠자지 않고 지키는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시작된 ‘불침번’이다.
수건과 부채를 휘저으며 손자 몸만 응시했다. 때때로 몸을 만져보고 홑이불을 덮어주며 꾸벅거리다보면 여전이 한 두 방은 비켜 갈수가 없었다. 모기도 우리나라 모기의 절반도 채 안 되는 작고 새까맣다. 너무 괘씸하고 짜증나서 모기가 잡히면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짓이겨버렸다. 생각해 보면 나도 못됐다. 제들도 살기위한 생존본능인걸...
여하튼 나날을 모기와 전쟁을 치르다보니 건강이 문제였다. 노인이라 잠이 없다지만 몇날 며칠을 지새우다 시피 하니까 평소에 없던 졸음이 시도 때도 없이 엄습했다. 눈은 늘 불그스레하게 충혈 돼 있었다.
낮에 좀 자두면 좋으련만 낮잠은 오지 않는 체질이다. 자리에 들면 쏟아지던 잠도 금방 달아난다. 내가 생각해도 나의 생체리듬은 별나도 많이 별난 변종인 것 같다.
어지럼 증상이 오고 기운도 빠져갔다. 어떻게든 낮잠을 자보려고 젖 먹던 힘까지 동원하여 죽기 살기로 뛰기도 하고 샤워도 몇 번씩이나 했다. 그런데도 눈은 매롱 매롱이다.
때마침 주인집의 사정에 따라 작은 방으로 옮겼다. 낮에 문을 걸어 잠그고 모기약을 흠뻑 뿌렸다. 해가 저물기 전에 창문을 잽싸게 걸어 잠갔다. 이런 각고 끝에 모가와의 정쟁에서 겨우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귀국 후 오랫동안 손자가 모기에 물려 고통스러워하는 악몽에 시달리며 식은땀을 흘리기 일쑤였다.  

2년 전의 그 악몽이 지금 바로 현실로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8층 높이라면 모기나 벌레는 없을 것으로 여겼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20층까지 올라간다고 했다. 사람의 피 냄새를 기막히게 잘 맡는 놈들에게 질려버렸다.
손자들이 등교하기가 바쁘게 청소기로 바닥청소를 하고 나서는 매트리스 밑은 물론 옷장 책장 가릴 것 없이 틈새마다 모기약을 뿌렸다. 서 너 시간 뒤에 문을 활짝 열고 물걸레질을 마쳐야 그 날의 방역 청소는 끝나게 된다.
이렇듯 완벽에 가깝다고 자부할 만큼 독충예방조치를 해도 거실에서나 또는 밖에서 물리는 것은 손쓸 방법이 없다. 학교에서도 독벌레에 물린 적이 있어 더욱 난감하고 곤욕스러웠다.   모기에 잘 물리는 손자는 한국에서도 야외에 나갈 때면 벌레 는 물약을 발라야 했다. 열이 많고 살이 달아서 그렇다나.
그런 체질이니 고온다습한 나라에 갈 때부터 걱정이었고 그것이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그래도 나에게 있어 다행인 것은 때때로 아내가 불침번을 맡아 준다는 사실이다. 자기도 초저녁잠만 자고나면 인터넷 고스톱을 치거나 괜스레 왔다갔다 서성거려야 하니까 손자 곁을 자주 봐주게 되는 상황이 자연스럽게 조성된 것이다. 결국 오래가지는 못했지만...

  그 지긋지긋한 ‘불침번’ 역할은 엉뚱하게도 아내의 고통사고로 막을 내렸다.
  
지난해 12월 모기와 소음과의 전쟁터이던 콘도를 벗어나 아파트로 이사했기 때문이다.  
열 달간의 엄청 비싼 수업료를 치룬 경험덕분으로 집을 보는 안목이 생겼다.
제일 첫 번째 고려대상이 모기와 벌레였고 두 번째가 소음이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런대로 나에게 맞는 아파트를 얻을 수 있어 만족스럽다.
집세도 콘도보다 거의 배나 싸다보니까 환율의 고공행진에도 다소 숨통이 트이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봤다.
모기와 소음에 질려버려 단독주택이나 저수지 가까운 숲 많은 곳의 집들은 보기만 해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잠재의식의 발로라 할까.

지금 살고 있는 HDB 역시 벌레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모기는 거의 없다. 간혹 큰 매미만큼이나 큰 날아다니는 바퀴벌레가 창문을 통해 들어 올 때가 있다. 그런 것만 막아내면  벌레 피해는 크게 없다.
다만 2미리 정도 크기의 작은 개미와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개미 같은 벌레가 설치기는 한다. 설탕 냄새는 기가 막히도록 잘 맡고 모여드는 게 참 신기하기도 하다.
체험을 통한 나의 해충퇴치법은 이틀 꼴로 한 번씩 집안 전체에 모기 개미 바퀴벌레 약을 뿌리는 해충 대 박멸작전을 편다. 샤워실과 화장실은 항상 청결을 유지하고 습기가 없도록 한다. 몸에 땀 냄새가 나지 않도록 자주 샤워를 한다.

아파트의 문제점을 굳이 꺼낸다면 층간의 소음이다. 옛날 아파트여서 그렇다고는 하는데 바로 윗 층에서 연필 구르는 소리까지 들린다. 콘도에서 질려버렸던 자동차 소음에 비하면 새발에 피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어떤 나라 어느 곳인들 100% 만족한 데가 있을까?
이역만리 남의 나라에 와서 크게 간섭받거나 차별받지 않고 이만큼 살 수 있다는데 대해 고마워해야 할지도 모른다.  
손자의 과민한 피부와 나의 별난 성격을 글로 옮기다 보니 싱가포르가 마치 벌레의 나라로 묘사될 오해의 소지가 있을 것 같다. 절대 그렇지 않다. 수없이 많은 공원과 녹색공간이 있음에도 사흘이 멀다 하고 잔디를 깎고 약을 치는 바람에 해충은 여느 나라보다 적다.
깨끗한 나라의 이미지가 잘 보존되고 있는 것이다.

어유~~
산다는 것이...

드리는 말씀 : 5,6편에서 많은 성원을 보내주시고 교육과 유학문제에 많은 관심의 글들이 게재된데 뿌듯한 보람을 느낍니다.
교육과 유학문제는 결코 끝나지 않았습니다. 영원불변한 우리들의 과제입니다.
이제 일상적인 나의 일기를 가벼운 터치로 짚어 보고자 합니다. 더 많은 성원을 고대합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오늘의 행사

이달의 행사

2024.11 TODAY
S M T W Y F S

가장 많이 본 뉴스

  • ~

서비스이용약관

닫기

개인정보취급방침

닫기

이메일무단수집거부

닫기
닫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