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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 애국
  • Amy (hyemee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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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9-04-18 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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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한국이 너무 빠른 속도로 발전을 해 왔기 때문에 아직도 다른 선진국에 비해서 부족한 점이 많이 있어 때로 마음이 아프지만, 그래도 당신 같은 분들이 있기에 미래가 있습니다.
해외생활을 통해서 한국의 좋은 점과 나쁜점을 함께 볼 수 있는 눈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는 것 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일이지요. 한국에만 있으면 성장하지 못하고, 외국에만 살면 한국을 이해하지 못해서 결국 마음도 멀어지게 됩니다.

모든 것이 제대로 발전하려면 시간이 걸립니다. 먼저 나와서 많은 것 보고 배운 사람들이 리더가 되어서 사회를 제대로 이끌어 가야 하지요. 그래도 한국을 알아주는 이 시대에 이런 나라에 와서 살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귀하는 축복 받은 사람 입니다. 사실 아시아의 여러나라중에 일본, 싱가폴, 한국, 대만, 홍콩 정도 빼면 다른 나라들은 국제 스텐다드에 도달하기에 아직도 멀고 멉니다. 짧은 시간에 이룩한 한국의 경제 발전은 칭찬받을 만 합니다. 부족한 부분을 빨리 메구어 가야지요. 정직성,법의 존중, 합리적 시스템, 교육개혁 등 할일이 많이 있지요. 이런 부분은 젊은이들의 몫이지요.
앞으로 더욱 많은 젊은이들이 해외로 나올 텐데,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일깨워주는 역할을 한다면 그것이 바로 애국하는 길이 될 것입니다.


>애국
>
>나는 만 12살 반 때부터 외국에서 살았습니다. 지금도 젊은 나이인 만 25살입니다.(학교를 빠른 생일로 빨리 들어갔습니다.)
>물론 최초의 애국정신이라고 해봤자 고작 마지막 기수의 국민학생으로서, 그리고 중1년생으로서 국기에 대한 맹세와 애국가를 부르는 형식적인, 아무런 마음에 와닿지도 않는 그런 것이었죠.
>
>가족은 말할 것도 없고, 정든 친구들을 떠나고, 호주로 갔습니다.(어릴 적부터 외국에 가서 공부하고 싶어하던 저의 나이에 터무니 없던 염원과 저희 집의 경제력이 어느정도 바탕력이 되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겠죠.)
>호주에서 뻔쩍한 사립학교를 시험쳐서 합격까지 해놓고, 나의 가디언(스폰서)로 있던 작은 아버지의 주장을 따라서 한국학생들이 많은,, 1류 사립 중고등학교지만 그 학교를 마다하고 일반 공립학교에 입학했습니다.  8학년 부터 12학년까지  중,고등학교가 합친 교육제도죠.
>
>많이 힘들었지요, 말도 안 통하고, 작은 아버지 집에서는 사소한 투정까지 잡아가면서 저녁밥을 안 주기는 일수였고, 저는 9km되는 거리를 자전거를 타고 다녔습니다.
>
>미칠 것같아서 무엇이라도 해야 되겠다 생각해서 공부도 열심히하고, 운동도 열심히 했습니다,
>학교 축구부, 배구부, 육상부를 들었습니다. 육상부 선생님이 그러더군요, 너 스트레스 많냐, 너를 보면 만 13살 학생이 아니라 스트레스가 쌓여서 그걸 풀기 위한 성인같다. 그러다 보니 말도 트이고 언어도 자연스럽게 다 되더군요.
>
>뛰고 또 뛰고, 등교길, 페달을 밟고 또 발고, 학교 도착하면 수업시작 1시간전, 공부를 하고, 또 수업끝나면 각 부별로 운동을 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또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갔습니다.
>
>그때는 살아남야겠다는 생각 뿐이였어요,
>마침 9학년이 끝날 IMF가 터졌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외국 유학생들을 나라로 불러들였습니다, 이제 적응이 되어가는데 다시 돌아오라니 앞이 어둡더군요,
>
>좀더 자세히 알아보니 시니어 레벨(즉 고등학교 2,3학년) 생들은 우수한 성적이 있으면 비자 연장이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
>생예 처음으로 학교 교장이랑 1:1 면담을 신청했습니다.
>속된 말로 쇼부를 쳤죠.  호주는 성적도 중요시 하지만 과외활동도 중요시 하는 사회라서 천만다행이였죠,  
>내가 말했습니다.
>나 성적 전교 5등안에 드는데 영어좀 안되서 그러니깐 영어 A 받고, 운동으로 regional 육상대회가서 1등도 하면, 나 월반 시켜달라고, 담학기 전체 성적 A 이상 나오면 월반시켜달라고.
>
>미친듯이 공부했습니다. 결국은 영어도 A를 받고 부가적으로 육상대회에서 몇가지 종목, regional 대회에서까지 우승을 했습니다.
>
>그래서 월반을 하고, 결국 무사히 졸업을 하게됐죠
>그 때 영주권을 따고 호주에서 취업을 하겠다고 생각을 했으면 지금과는 또 다른 인생이 펼쳐졌겠죠. 허나 저는 모험을 택했습니다. 일본으로 대학을 갔죠, 전혀 다른 언어권으로..
>
>일본에서는 물론, 대한민국에 우호적인 사람들도 있지만 다른 극우파적인 사람들은 말을 안해도 치가 떨릴 정도입니다.
>대학2년에 한국가서 군대도 갔다오고, 파병도 자원해서 갔다왔습니다.
>
>군대에서 2년이라는 시간이 애국심과 모국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새로운 생각을 깨워주는 큰 계기가 되었죠.
>
>허나 이런  긴 기간동안 제일 힘들었던게 무었있었냐 하면,
>
>나를 미친놈 취급했던 친적도 아니고, 한국에서 터졌던 IMF, 군대, 파병기간도 아닙니다.
>고등학교 시절, 호주놈들이 겉으로는 안그러면서 길거리 밤길을 가다가 빈 맥주병이나 과일껍데기를 던지면서,
>
>Monkey Go home!"
>
>이러더군요, 씨발새끼들, 동양인은 다 일본사람으로 알더군요.
>그러면서,
>초등학교의 애국가 애창이나 국기에 대한 경례가 아닌
>애국심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나는 한국사람인데 나는 한반도 사람인데 왜 이놈들은 섬으로 돌아가라하냐,
>현대,삼성이 한국기업이라고 클래스 디스커션때 학생들한테 말해도 이 놈들은 믿지를 않습니다.
>
>한국의 인지도가 그렇게 낳은게 가슴도 아프고 슬퍼서  그 때 잘나가던 유승준,HOT, 제키 노래도 점심시간에 애들 귀꾸멍에 이어폰을 꽃아주고, 한국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면서 한국이란 나라가 조그만 나라지만 이런나라다, 알려주려 노력도 많이하면서, 아무리 우리나라가 힘없고 알려지지 못한나라지만 자랑스럽고 나의 고국이였습니다.
>
>근데 이제는 다릅니다.
>내 머리가 굵어져서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싱가폴에서 일을 하면서 매일 아침 뉴스를 보면,
>저도 부끄럽습니다. 싱가폴 친구들은 아직도 한류이야기를 하고있습니다, 한류열풍입니다, 제게, 김태희, 송혜교, 그리고 나머지 드라마 이야기를 오늘도 묻습니다,
>근데 저는 차마 제입으로 장자연 리스트 사건은 이야기를 못 하였습니다.
>
>그리고 싱가폴친구가 그래도 한국은 휴전상태도 반백년 이상 안정적인거 보면 정치가 안정적이라고 합니다, 근데 오늘도 정치판의 시사 리스트에 올리는 뉴스를 보면 나는 그냥 쓴웃음을 지을 뿐입니다.
>
>갑자기 예전에 봤던, 영화배우 이성재님이 주연했던 영화 홀리데이의 마지막 장면이 생각납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요즘 한국사회가 진행하고 있는 방향을 보면, 홀로 여태껏 키워왔던 애국심과 나라사랑이, 평생이어지는 아무리 실망하고 아파eh 이어지는 짝사랑과 같아서 가슴이 아파 죽겠습니다.
>
> 내가 너무나도 사랑하는 우리나라,
>아무리 미워도 사랑 할 수 밖에 없는 우리나라,
>자랑스러운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대한민국 사랑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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