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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러기 할아비의 이야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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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생 (h12k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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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9-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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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밤의 상념 그리고 등굣길-

손자들은 할아비가 가져온 짐을 제들이 앞 다퉈 풀어 헤쳤다. 순간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손녀가 원했던 인형도 손자가 바라던 모형만들기도 ‘공짜짐 무게’의 희생양이 되었기 때문이다. 말은 아꼈지만 시무룩한 표정에서 그 서운함의 정도를 읽을 수 있어 미안했다.
얼마나 실망했을까?
다 접어두고 아이들 주문부터 해결했어야 하는 건데...

밤 11시.
이른 등교 때문에 평소의 취침시각 9시를 훌쩍 넘긴 상황이다.
아내는 빨리 자자고 채근하며 손자들을 데리고 큰방으로 들어갔다.
큰 방의 대형 침대는 아내와 손자들의 차지다. 손자들은 할머니를 한가운데 두고 한쪽 가슴씩 껴안고 잤다. 내가 비좁고 들어갈 자리는 없다. 영감은 이래서 갈 곳이 없나보다...
덕분에 제들 방 두개는 송두리째 내차지다. 이 침대 저 침대 번갈아 누어 봐도 마음 붙일 데는 좀체 없다.
에어컨은 쉴 새 없이 돌아간다. 자정이 지나자 녀석들은 새우잠을 자기 시작했다. 추웠던 것이다. 얼른 홑이불을 덮어주고 에어컨을 껐다. 채 한 시간이 안 돼 이불을 걷어차고 몸에 땀이 맺힌다. 리모컨에 켜졌다 꺼졌다 하는 자동조정 기능이 있으련만 찾을 수가 없다. <뒤에 알고 보니 오래된 에어컨이라 자동작동이 시원찮다고 했다>
깊은 잠에 빠진 녀석들을 에어컨 작동 상태에서 그대로 방치하면 금방이라도 감기에 걸릴 것만 같고 꺼버리면 더위 때문에 선잠을 잘 것 같아 내버려 둘 수가 없다.
아내는 깊은 잠에 빠졌다. 한 달 동안 아이들 뒷바라지에 이사까지 하느라 몸살을 앓았을 게 뻔하다. 잠버릇이 곱지 않은 손자들 틈에 어디 한 번 마음 놓고 단잠인들 잤겠는가.
<아이들 뒷바라지라는 무거운 바통이 은근슬쩍 내게로 넘어오는 느낌이다>
아내와 손자들이 평화롭게 잠든 방을 연방 들락거리며 에어컨 조절을 했다.
늙은 사내는 오나가나 설자리가 마땅찮다.
피로할수록 쉬 잠을 이룰 수 없는 나의 고질병고가 싱가포르의 첫날밤을 괴롭혔다.
갈 곳을 잃고 이리저리 서성거리던 시선이 창밖에 멈췄다.
자정이 훨씬 넘은 1시 반인데 버스가 다니고 있다. 그 시각에도 띄엄띄엄 앉아 있는 승객이 반갑다. 잠시나마 그들로 하여금 위안을 얻었다.
서울시의 면적( 605.41㎢)보다 약간 더 큰 도시국가 싱가포르(면적 692.7 km²)의 편의한 대중교통수단을 읽게 하는 대목이기도 했다.  
키 큰 열대림 저 넘어 하늘거리는 저수지의 풍광이 황홀하다. 휘황한 달빛이 잔잔한 물결을 희롱하며 ‘물꽃놀이’를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고독한 늙은이의 감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하고많은 젊은 날의 사연들이 새록새록 살아난다.
운명처럼 다가왔다 이슬처럼 사라져간 첫사랑의 홍역,
끊임없이 반복된 좌절과 재기의 부침...
‘운다고 옛 사랑이 오리요 마는 눈물로 달래보는 구슬픈 이 밤...’ 소싯적 뜻도 모르고 즐겨 불렸던 유행가 한 소절이 입가에 흐른다.
  지나간 이야기로 치부하기엔 너무도 선명하여 혼란스럽다.
  가슴을 갈기갈기 찢었던 아프고 서러웠던 모진 세월들이 그토록 시릴 수가 없다.

전망 하나는 명품일세 그려...
이내 현실로 머리를 틀고 그들의 방을 훔쳐본다.

길고도 짧은 한 밤은 끝내 새벽을 불렸다.  
어느새 일어난 아내가 부엌에 들어간다.
“아직도 이렇게 일찍 일어나는가? 의아해 물었더니 손녀가 버스를 두 번 타야 한다는 대답이다. 세상모르게 단잠에 빠진 것 같아도 입력된 머리 시각은 한 치의 오차도 없다. 엄마들의 뛰어난 감각이다.
5시 50분에 맞춰 둔 알람이 요란스럽다. 손녀가 벌떡 일어난다.
‘우리 똑순이 일어났구나.’ <출신이 촌이어서인지 되게 촌스럽고 상스런 애칭이 좋아 즐겨 쓴다>
말을 걸어도 눈을 비벼대며 화장실 가기가 바빠 대꾸도 없다. 날쌘 몸짓에서 그간의 일상을 읽을 수 있다.
손자는 일어나다 말고 베개를 끌어안았다. 아무래도 잠이 모자라는 모양이다. 버스 다섯 코스밖에 안 되는 거리어서 사실은 급할 게 없는 녀석이다.
손녀 앞에 아침밥상이 차려졌다. 잡곡밥 한 공기에 미역국 그리고 구운 조기 한 마리다. 조촐한 식단이다.    
세수를 하고 머리 빗질까지 마친 손녀는 밥 한 공기를 눈 깜짝할 사이에 뚝딱 해치었다.
“체할라 천천히 먹어.”
“빨리 가야한단 말이에요.” 부드럽지 못한 말투가 마치 제 할머니를 닮은 것 같다.
요즘은 군대식 밥 먹기도 이렇게 빠르지는 않을 것이다. 1년 반 동안 번갈아 했던 하숙과 홈스테이 생활이 민첩하고 절도 있는 습관을 만든 것 같아 안쓰럽기도 하고 걱정스럽다.
6시 20분, 그때서야 손자는 베개를 한 아름 보듬고 거실로 나타난다. 손자의 고질적 습관은 베개를 안고 다니는 것이다.
“녀석은 아직도 베개네”
아내는 이를 두고 “엄마의 젖가슴을 만지며 자라지 못한 아이들의 ‘원초적 욕구불만’이라고 했다. 듣고 보니 그럴듯한 주석이다. 아이들의 급하고 사나운 성격이 우유만 먹여 키운 탓이라는 얘기는 들어봐도 ’욕구불만’이란 소리는 처음 듣는다. 자기 젖으로 아들 셋을  키웠다는 자랑을 빗대어 하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실은 우유를 먹이고 싶어도 우유 값이 없을 때여서 어느 게 정답인지 모르겠다.  
손자는 아침밥을 먹으라니까 손사래를 쳤다.  
할머니가 밥 먹고 가야 한다고 애를 태워도 먹혀들지 않는다. 참 좋은 세상이다. 피죽도 못 얻어먹어 하늘이 노랗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안 먹어서 애태우는 세상이 올 줄이야 어찌 상상이나 했었던가.
4학년짜리 손녀가 집을 나서는 시간은 6시30분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그 시간에 3학년의 손자도 함께 나가겠다고 한다. 버스 다섯 코스 거리인데도 세수와 양치질도 생략하고 눈을 껌벅거리며 나선다.  
손자는 하숙집 생활의 이력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아침밥도 굶은 채 새벽같이 등교하는 손자를 보며 마음 아파했던 1년 전의 기억이 새롭다.
무조건 일찍 나서야 마음이 놓이는 모양이다.
아내는 ‘학교 일찍 가는 것은 좋은 현상이다’라며 함께 나가자고 했다.
아내와 함께 두 손자들의 손을 잡고 여명을 맞았다.
아내는 손녀의 책가방을 나는 손자의 책가방을 끌고서 5분 거리에 있는 버스 정유소에 갔다. 벌써 학생들이 많이 나와 버스를 기다린다. 내친김에 손자의 학교까지 가보기로 했다. 손자는 반기지 않는다. 가방도 내 손에서  뺏다시피 하여 제가 들고 버스에 오른다. 나도 뒤따라 올랐다. ez link 카드를 처음 사용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싱가포르의 버스정유소 간의 거리는 짧았다. 다섯 정유소를 통과하는 시간은 4분쯤이다. 내성적인 손자는 하얀 머리의 늙은 할아버지와 같이 걷는 게 서먹한지 자꾸 거리를 둔다. 버스 정유소에서 학교까지는 어림잡아 300미터 안팎이다. 6시40분인데도 꼬마학생복이 눈에 제법 띈다. 제 키만큼이나 큰 가방을 짊어지고 걷는 아이들이 신기하다. 아침 햇살을 맞으며 등교하는 우리나라 초등학생들의 등교 모습과 너무 다르다.      
2007년 1월, 손자와 함께 하숙집 승용차편으로 딱 한번 왔던 학교다. 그 때 어둠속에서 잠깐 보았던 ‘ㅁ자형의 3층짜리 초등학교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나라의 사무실형 학교 모형과는 판이하다. 아기자기하고 아늑한 분위기가 괜찮다. 천편일률적인 우리네 학교건물보다 훨씬 세련되었다는 느낌도 든다.(지금의 신축 초중등학교는 모형과 시설이 호텔 수준이지만)
정문 앞에 흰 셔츠와 검정 바지차림(싱가포르 공무원들의 통일된 복장)의 경비원(직명을 모름) 아저씨가 버티고 있다. 다가갈 수 없는 금단의 문 앞에 선 것 같다.
“잘 다녀와”
손자는 대꾸도 없이 고개만 끄덕이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학교마당 저편으로 사라진다.
“자식- 손이나 한 번 흔들어 줄 것이지” 그렇거니 여기면서도 왠지 서운한 감정을 감추지 못하고 중얼거렸다.  

그 다음 날,
이번에는 손녀를 따라 등굣길에 나섰다. 콘도에서 10분 거리라는 인터체인지에서 내려 갈아탈 버스를 기다렸다. 이른 아침인데도 인파가 넘쳐났다.
출근과 등굣길로 부산을 떠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시아권이다. 검정피부색과 무슬림복장이 많다는 게 색다르다.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2층 버스와 굴절버스도 이색 분위기중 하나다. 어디 할 것 없이 노점상은 있기 마련인가보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버스를 탄 시각은 6시50분,
아침의 버스 에어컨은 코끝이 찡하도록 차갑다. 족히 4~5미터는 돼 보이는 어마어마하게 큰 야자수 잎들이 거리를 압도한다. 버스에 오르자마자 책을 꺼내 읽고 있는 손녀가 너무 예쁘고 대견스럽다.
‘할아버지 다 왔어요’라며 어디랄 것도 없이 촘촘히 박혀있는 하차 벨을 눌렸다. 도보로 5분여 만에 손녀의 초등학교를 만났다. 학교 정문에서 본 시각은 7시10분이다. 세 번째 보는 이 학교는 유학생이 많고 학교 규모도 꽤 컸다. 손녀는 바쁘게 교정으로 내 달렸다. 손자와 달리 손은 한 번 흔들어 주어 고마웠다. 늙으면 어린애가 된다는 말이 내 자신을 통해 입증되고 있는 순간이다. 아주 작은 일상에도 일희일비하는 연약한 심보 말이다.
돌아오는 길은 쓸쓸하고 서글펐다. 낯선 얼굴들과 귀에 설익은 언어가 늙은 이방인을 주눅 들게 한다.
작은 몸집이지만 통 컸던 자신이 오늘따라 작게만 느껴지는 것은 언어? 나이? 그리고?  

드리는 말씀 : 분에 넘치는 과찬과 성원에 몸 둘 바 모르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늙은 대접으로 치부하기에는 자신에 대한 책임의 무게가 버겁습니다. 여러분들의 기대에 얼마나 부응할 수 있을지 솔직히 두렵습니다.  
지금 그렇듯이 앞으로도 그저 따뜻한 마음으로 보듬어 주시길 바랄뿐입니다.  
귀하신 댓글로 용기를 주신 곰과여우님, 힘내자!힘!님, 싱~~님, greenpapaya님, 마미님, 맛깔님, 잠뽀맘님. 베독님, 벌서이년님, 불사조님, ----  
그리고 쪽지까지 보내주신 엠마오스님, 베독님, 벽난로님, 모두모두 너무 고맙습니다.
아울러 비천한 글을 읽어주시고 추천까지 아끼지 않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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