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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 기러기 할아비의 이야기-1(시작 편)
- 곰과여우 (dkemft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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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3-14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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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하 오늘 그생각을 단번에 깨주셧군요
두 아이들 뒷바라지가 쉽지 않을 터인데 잘해내실것같은 예감이 듭니다
글잘읽엇습니다 앞으로도 많은글 부탁드립니다
마치제가 한국떠나올때같아서 다시한번 회상에 잠겨봣습니다
> -싱가포르에 오던 날-
>
> 이것저것 챙기고 또 빠뜨린 것은 없는지 부산을 떨었다.
> 반소매 셔츠 반바지 팬티 등 의류에서부터 운동화 슬리퍼 우산은 기본이고 김 미역 멸치 고춧가루 미숫가루까지 챙겼다.
> 무료 화물량이 한 사람당 20Kg를 넘지 않아야 한다는 항공기 휴대물량에 맞추느라 넣었다 빼내다 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 체중계에 삐딱하게 걸쳐 얹어 본들 제대로 계량이 될 리 만무다. 3Kg 초과까지는 봐 준다니까 그것만 믿고 갈 뿐이다.
> 아이들과 마누라를 만나려 간다는 즐거움과 상하의 타국생활을 경험하게 된다는 기대와 두려움이 묘하게 교차했다.
> 지난해 1월의 싱가포르 더위는 견뎌 낼만 했지만 가장 덥다는 5,6월은 얼마나 더울까?
>‘말도 안 통하는 더운 나라에서 어떻게 살려고 가느냐?’... 가지 말라고 말리던 친구들의 만류가 귓전에 맴돌던 밤이었다.
> 누가 뭐래도 내가 이 시점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이 길 밖에 없다며 마음을 다잡았던 밤이기도 했다.
> 자는 둥 마는 둥 뒤척거리다가 일어난 시각은 새벽 4시,
> 공항리무진을 타야 할 시간까지는 무려 6시간이나 남았다.
> 원래 느긋한 성격과는 거리가 멀기도 하지만 그만큼 설레었던 밤이었다.
> 화분에 물을 주었다. 어항에 평화롭게 노니는 물고기 밥도 주었다. 어쩌면 오랫동안 못 볼 수 있는 정든 친구들이다. 아니 오늘도 살아있음을 서로 확인하는 요긴한 사이다.
> 아침은 긴장과 피로가 몰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귀밑에 멀미약을 붙였다.
> 짐을 하나라도 더 가져가겠다고 아무리 요령을 부려도 결국은 여행가방 하나에 아이스박스 한 개다.
> 노트북 MP3 카메라 캠코더는 기내휴대품으로 양쪽 어깨에 걸쳤다.
> 청바지에 두터운 점퍼 차림이 내 나이에는 좀 어색했다. 하지만 청바지는 계절과 상관없고 점퍼는 벗어버리면 여름 날씨라도 무방하다는 계산된 차림새다.
> 떠나올 때 며느리의 ‘너무 죄송해요’ 그리고 건강 챙기라는 인사를 받았다.
> 국내선과 국제선을 같은 항공사로 이용하니까 김해공항에서 원스톱 체크인카운트를 끝낼 수 있어 참 편리했다.
> 우려했던 화물은 무려 6Kg이나 초과했지만 그저 봐주어서 무척 고맙기도 하고 미안했다.
> 날씨가 참 좋다.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산하는 그 여느 때보다 더 아름답다. 산허리를 휘감고 도는 뭉게구름도 산골짜기마다 촘촘히 자리 잡은 촌락은 어쩌면 그토록 싱그럽고 다정다감하게 다가오는지.
>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1시.
> 보딩타임까지는 무려 2시간 반이 남았다.
> 고마웠던 친지들에게 한 번 더 감사의 마음을 휴대폰으로 전했다.
> 여느 때와 같이 오늘도 공항청사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 보면 볼수록 놀랍다. 규모가 그렇고 시설이 또한 그렇다. 매년 세계 최고 공항상(안전 서비스 시설 등)을 받는 것도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1992년 착공하여 2001년 3월29일 개항한 인천국제공항은 하루 500여 편의 항공기가 뜨고 내리는 세계 유수 공항중의 하나이기도 하지만 우리나라 민간항공운항 60년사의 결산이기도 하다.
>
> 일단 점심부터 먹기로 했다. 공항 음식 값은 참 비싸다. 최하 7,000원이다. 라면은 잘 안 먹는 식성이라 큰맘 먹고 10,000원짜리 비빔밥을 청했다. 옆 좌석의 노랑머리 부인이 우리나라 비빔밥을 먹고 있어 신기하고 고마웠다. 영어를 잘 했더라면 ‘한국을 사랑하는 부인께 경의를 표합니다‘라고 한 마디 건넜을지도 모른다.
> 창밖의 거대한 항공기들에 한동안 넋을 잃고 있다가 벌떡 일어섰다. 손자가 좋아하는 울릉도 엿집이 생각났다. 10,000원 어치를 사서 휴대용 가방에 집어넣었다. 다음 코스는 요새 젊은이들이 말하는 S라인 미녀들을 만나볼 수 있는 면세점이다. 곱디고운 여직원들의 미모와 휘황찬란한 조명등의 만남은 ‘숨 쉬는 예술’이다.
> 마냥 기웃거리기만 하고 지나칠 수 없어 국산 스킨과 로션 두 개를 172,500원에 샀다. 아내로 부터 예쁨 받을 선물이기는 하지만 비싸다. 이래서 미인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닌가?
> 쭉쭉 빠진 노랑머리 파란 눈의 남녀들이 많이 띄었다. 기분도 좋고 고맙기도 하다. 외화수입을 보는 듯해서다. 반면 출국하는 내국인들을 보면 국부유출이 염려스럽다. 내 주제는 망각한 채 말이다.
>
> 오후4시 싱가포르 행 비행기는 요란스런 폭발음을 신호로 이륙했다. 또 지루하고 고달픈 6시간을 견뎌내야 한다. 장거리 비행에 가장 좋은 좌석이라는 비행기 날개 앞쪽 통로자리가 그래도 마음을 편하게 했다.
> 옆자리에 뚱뚱한 사람이 앉으면 어쩌나? 하던 기우도 빗나가 다행이다.
>스튜디스들이 부산을 떨기 시작했다. 앞치마로 변신한 스튜디스들은 분명 바깥에서 보던 늘씬하고 교만스런 자태가 아니다. 별이 별 것에 혼란을 겪는 자신이 우습기도 하여 얼른 머리를 가로 적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 이륙직후부터 기체 흔들림(rolling)은 심했다. 멀미약효까지 겹쳐 어지러웠다.
> 신문도 대략 훑어보고 좌석 앞 모니터에 방영되는 영화 보기도 잠깐이다.
> 그래도 기내식은 꼭 챙겨먹어야 할 것 같은 통과의례였다. 그리고 커피 한 잔으로 기내 절차(?)는 그런대로 모두 끝냈다.
> 눈을 감고 잠을 청해보지만 헛수고다. 그저 눈만 감았다 떴다하면서 힐끔힐끔 보는 것은 마이너스로 차감되어가는 비행거리(4,624Km)와 남은 시간과 항속(h/k 700~920)이다. 그리고 중얼거린다. ‘편리한 세상일까 편한 세상일까?’
>
> 눈 깜짝할 사이에 쏜살같이 내달리던 하루가 오늘은 왜 이렇게 더딘지.
> 그래도 시간은 가고 약속된 장소는 어김없이 다가왔다. 비행기라는 문명의 이기를 실감하면서 적도의 나라 싱가포르 땅을 밟았다.
>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영어 중국어 안내 멘트, 시야에 들어오는 검은 얼굴과 뚱뚱한 몸매 그리고 오감을 자극하는 후덥지근한 열기가 열대지방임을 확실하게 알린다.
> 지금부터는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청각장애인의 신세다.
> 현지시각 밤 9시30분.
> 싱가포르 입국장에서 90일간 체류할 수 있는 스탬프가 여권에 쾅 찍혔다.
> 눈치코치로 버텨야할 싱가포르생활의 그 시작이다.
> 두 손자가 손을 흔들어 댄다. 재미없는 아내는 물끄러미 바라만 볼 뿐이고...
> 짐 찾는 시간은 지루했다. 까만 벨트가 몇 번을 돌고 돌아서야 분홍색 리본이 눈에 들어왔다. 눈에 쥐가 나도록 뚫어지게 보던 10여분 뒤쯤에서야 카트기에 짐을 얹을 수 있었다.
> 더디어 사랑하는 손자들과 포옹했다.
> 두 손자와 싱가포르공항에서의 만남은 작년 12월 이후 두 번째다.
> 겨울 방학 때 집에서 혜여진지 불과 한 달이지만 감회는 다르다.
> 양팔에 한녀석씩 끌어안고 ‘우리 똥강아지(손자들 애칭)들 잘 있었어?’
> 나는 진짜로 아내와 진한 포옹을 하며 ‘여보 사랑 해’라고 말하고 싶은 충동이 치솟지만 감정절제를 못하면 하급인간으로 여기는 아내에게는 철저히 속내를 감춰야 했다.
> 장사진을 이룬 택시가 쉴 새 없이 들어 닥치고 꼬리를 문 인간 띠는 너나 할 것 없이 제 갈 길을 찾아 사라져 간다.
> 목적지를 묻는 기사에게 주소를 알려주는 손녀의 영어발음은 1 년 전과 확연히 다르게 유창했다. 거무튀튀한 택시기사는 우리의 언행을 보더니 ‘코리언’이냐고 묻는다. 한국인들의 왕래가 얼마나 많은지 가름 할 수 있다.
> 금세 몸이 오싹할 정도로 차가운 택시의 에어컨 바람은 이곳이 남국임을 확인한다.
> 불야성을 이룬 싱가포르 창이국제공항의 야경은 역시 야자수가 압권이다. 흐드러지게 핀 열대화가 조화롭다.
>
> 잠 못 이루게 했던 싱가포르의 셋집 콘도,
> 오색 스포트라이트에 번쩍거리는 엄청 큰 입체 조각의 콘도 이름은 늙은 코리언의 기를 꺾었다. 고급스런 엘리베이터까지는 그랬다.
> 전작 집 내부는 단순하다 못해 초라하다. 공간의 조화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사각상자의 구조물에 실망했다.
> 한 박자 쉬지 못하는 나의 급한 성격은 ‘이게 삼천불이 넘는 집이야?’... 하지만 ‘...삼천불’까지의 악센트에는 힘이 들어갔지만 ‘넘는 집...’에서 부터는 모기소리로 꼬리를 내렸다. 집을 얻느라 엄청 힘들었을 아내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는 생각이 불현 듯 스쳐갔기 때문이다.
> 그러나 비싸다는 생각은 두고두고 지울 수가 없다.
> 월세 3,300불의 콘도라기에 아주 근사한 아파트로 인식되었었다. 인터리어도 화려할 것으로 짐작했다. 당시 환율 SGD 700으로 환산하면 월 2,300,000원이기 때문이다.
> 내가 미군에게 세놓은 집과 비교된다. 자연석 욕실까지 갖춘 33평형 꽤나 괜찮은 빌라를 월세 1,000,000원을 받고 횡재한 것으로 여겼는데 새발에 피다.
> ‘무더움 속의 아름다움’과 ‘엄청 비싼 집세’라는 양면의 첫인상에서 싱가포르 생활의 서막은 올랐다.
> 노후에 벅찬 숙제를 안겨준 채 말이다.
>
> 드리는 말씀 : 아내가 교통사고로 귀국하면서 졸지에 ‘기러기 할아비’가 되었습니다.
> 순탄치 않았던 지난 나날들을 이런저런 이야기로 되돌아보고자 합니다.
> 구수한 글맛내기는 물론이고 매끄러운 글 솜씨도 아니어서 차마 올리기가 민망스럽기도 하지만 그리 흔치 않을 ‘기러기 할아비의 이야기’라는 호기심이 무료한 분들의 심심풀이라도 되었으면 어떨까 하는 마음에서 용기를 내었습니다.
> 어쩌면 너나없이 모두 겪고 사는 일상이기도 하지만 한번쯤 되짚어 보는 것도 영 무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라 여기면서 말입니다.
> 물론 내가 보고 느낀 것들을 적나라하게 쓸 수 없는 한계도 있지만 행여 참고가 될 만한 내용이다 싶으면 꼼꼼히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 원하는 바는 주2회씩 연재(예정)되는 제 글에 댓글을 통한 설왕설래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많은 추천을 받는 영광도 누려보았으면 합니다. 첫 몇 회는 개략적인 소감을 올리고 이후부터는 제 일기를 중심으로 요식에 구애 없이 적어볼까 합니다.
> 모국의 경제가 좋지 않고 환율이 요동치면서 살아가기 힘들지만 최악의 여건 속에서 최선을 다하고 최고의 수확을 걷는다면 이 또한 기쁨의 배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 힘내십시오. 그리고 씩씩하게 당당하게 정진(精進)합시다.
> 모두모두 사랑합니다. 내내 건강하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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