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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0~50대 전문직 탈출 이민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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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촌 (hans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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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3-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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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좀 예민한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요즘 돌아가는 국내 정치·경제·사회 어느 쪽도 40~50대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는 건 사실 아닌가요?”

국내 유명 대기업의 부장 박모(51)씨는 최근 미국 이민을 결심하고 대행업체와 계약을 맺었다. 박씨는 낯선 땅에서 험한 일에 뛰어드는 것이 두렵지 않다고 했다. 그는 얼마 전부터 서서히 은퇴 압력이 들어오자 한국에서의 경력을 ‘포기’하기로 했다.

“요즘 제 나이에 회사를 그만두면 갈 데가 없어요. 재취업도 어렵고 불황으로 사업성공 가능성도 낮고, 젊은이들도 취업이 안 돼서 난리인데…. 요즘 들리는 뉴스마다 짜증스럽게 만들어요. 한 번뿐인 인생을 더 이상 여기서 골치 썩히며 살고 싶지 않아요.”

경기 불황과 계층·집단 간 갈등이 심화되는 사회분위기 속에 이민(移民)을 새로운 선택으로 여기는 사람이 급증하고 있다. 우리사회에서 탄탄하게 기반을 잡고 살아왔던 40~50대 전문직 종사자와 중·상류층들 사이에서 특히 이민의 유혹이 강렬하다. 중견업체를 경영하는 김모(49) 사장은 “모 대학원의 최고위정책과정에 같이 다니는 친구들끼리의 저녁모임에서 주요 화제가 이민을 떠나거나 달러를 많이 바꿔둬야 한다는 것이었다”며 “모두 이 사회에서 안정된 기반을 갖고 있는데도 떠날 생각만 하고 있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외교통상부에 따르면 지난 6월 한달간 이민신고자는 1173명. 2002년 1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작년 1~6월의 5695명에 비해 올해 같은 기간은 5286명으로 다소 줄기는 했지만, 한국 이민자의 50~60%가 찾는 캐나다·뉴질랜드가 작년 말부터 이민승인 기준을 강화한 것을 감안하면 이민을 떠나려는 사람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고 관계자들은 말한다.

캐나다는 독립이민의 경우 학력·언어능력·경력 등을 포함한 합격기준이 110점 만점의 70점에서 100점 만점의 75점으로 강화됐다. 이 중 영어시험인 IELTS(International English Language Testing System) 점수가 15점 만점에서 24점으로 대폭 상향조정됐다. 뉴질랜드 역시 IELTS 점수가 약 20% 상향조정되어 엄격해졌다. 그럼에도 이민을 더욱 열망하고 그 관문을 통과하려는 숫자가 줄지 않는 것이다.

서울 강남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허모(여·36)씨. 월 700만원 수입으로 안정되게 살고 있지만 최근 캐나다 밴쿠버로 이민을 떠나기로 했다. 캐나다 약사자격 시험도 통과한 상태다. 허씨는 “이 땅에서는 하루도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편할 날이 없는 것 같다”며 “이민을 가는 것은 순전히 이곳 현실이 싫고 내 삶의 여유를 찾기 위해서다”라고 말했다.

중·상류층의 이민형태는 주로 투자이민 쪽이다. 일정 금액을 이민대상 국가가 지정한 금융기관에 납입하는 조건으로 이민을 떠나는 것이다. 하나은행에 따르면, 이 은행 월드센터를 통해 이민을 나간 가구 수는 지난 1~6월 458가구. 이 중 약 30%가 투자이민이다.

이민업무를 담당하는 하나은행 월드센터 한정윤(韓政潤) 지점장은 “과거에는 이민허가통보서를 받아놓고도 국내에 미련이 남아 차일피일 미루는 사람이 많았는데 요즘 이런 사람들이 속속 출국하고 있다”며 “사회적 불안감이 확산되며 외국으로 떠나는 중·상류층이 확실히 늘었다”고 말했다.

외교통상부에 따르면 작년 1~7월간 허가통보서를 받고 이민을 떠나지 않은 사람 숫자는 652명이었지만 올해 같은 기간에는 435명으로 줄었다.

건설업자 김모(50)씨는 지난 2001년 6월 중학교 2학년 아들, 고등학교 1학년 딸을 아내와 함께 캐나다의 밴쿠버로 이주시키고 ‘기러기 아빠’ 생활을 해왔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건설경기가 되살아나지 않자 캐나다로 투자이민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김씨는 “투자이민을 위해 필요한 80만달러를 만들기 위해 지금 짓고 있는 상가건물만 분양되면 떠날 생각”이라며 “현재 나라가 돌아가는 걸 보면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판단이 섰다”고 말했다.

국제이주개발공사 박용수(35) 과장은 “요즘 이민을 원하는 이들 중에는 외국에서 얼마간 교육을 받았던 사람이 많아 그 나라와 우리나라의 현실을 비교하는 것 같다”며 “이들은 외국에 나가도 아마 충분히 안정된 직장을 잡고 살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2003. 8.14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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