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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싱가포르의 세습정치 완성] 아버지의 기적, 아들이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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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6-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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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 반도 남단에 자리잡은 싱가포르(692㎢)는 서울(607㎢)보다 크지만 부산(750㎢)보다 면적이 작다. 440여만명의 인구에 1인당 국민소득 2만6000달러의 동남아 최고 선진국인 이곳에 리콴유(李光耀) 부자의 정치 세습이 사실상 완성됐다.

2004년 8월, 고촉통(吳作棟) 총리를 이어 3대 총리에 취임한 리셴룽(李顯龍) 총리가 이끄는 집권 국민행동당(PAP)이 5월 초 실시된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면서 장기집권 체제의 반석이 굳건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리 총리는 ‘싱가포르의 국부(國父)’라 불리는 리콴유 자문(諮問)장관(Minister Mentor·83)’의 장남이다.

올해 집권 3년째를 맞는 리 총리는 당초 내년 6월 말로 끝나는 의회의 해산을 S. R. 나탄 대통령에게 전격요청, 조기총선을 통해 자신의 집권 능력과 국민적 신임을 묻는 승부수를 던졌다. 결과는 총 84석의 의석 가운데 82개를 싹쓸이하는 대승리. 리 총리는 승리 소감 일성으로 “새로운 젊은 지도부가 앞으로 15년에서 최대 20년 동안 싱가포르를 이끌게 될 것”이라고 기염을 토했다. 이는 올해 54세인 자신이 지금부터 15~20년 동안 장기집권을 하겠다는 공식 선언이다.

1959년 초대 총리를 맡은 이후 말레이시아로부터 싱가포르의 독립을 이끌어내고 1990년 11월 물러날 때까지 32년 동안 싱가포르를 통치했던 아버지에 이어 자신도 17~22년 동안 싱가포르의 리더 역을 맡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일종의 과도기라 할 수 있는 고촉통 총리 집권기간(1990~2004년)을 제외한 나머지 기간은 리콴유 부자가 싱가포르의 권좌를 독점, 사실상의 ‘리씨 왕조(王朝·Dynasty)’가 현실화되는 셈이다.

사실 북한의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경우와 같은 독재국가를 제외하더라도 민주주의 정치권에서 명문 가문이 최고 지도자를 배출하는 경우는 가끔씩 있는 일이다. 미국만 해도 존 애덤스 대통령(2대)과 아들인 존 퀸시 애덤스(6대), 조지 부시 대통령(41대)과 조지 W 부시 대통령(43대) 등 두 번이나 부자 대통령이 탄생했다. 또 루스벨트 가문은 20세기 미국 최고지도자 반열에 늘 등장하는 프랭클린 루스벨트(32대)와 테오도어 루스벨트(26대) 두 대통령을 배출했다. 하지만 싱가포르는 상황이 조금 다르다. 기업인 출신으로 영입된 고촉통 총리가 외관상 10년 넘게 집권했지만 사실은 리콴유의 섭정과 영도력 아래 중요 국가정책이 처리됐다. 또 고 총리 시절 경제·금융 분야의 실권(實權)은 리셴룽 수석 부총리가 챙겼다. 이렇게 보면 부자 정치세습을 인정하거나 최소한 묵인하고 있는 주인공은 다름 아닌 싱가포르 국민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경제발전이 정치 민주화를 낳는다’는 전통적인 정치발전 이론이 아직은 싱가포르에서 적용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집권당인 PAP가 거둔 득표율을 보면 이런 기류가 보다 선명해진다. 리셴룽은 총리 취임 이후 처음 실시된 이번 총선에서 66.6%의 득표율을 올렸다. 이는 고촉통 총리의 집권 후 첫 총선(1991년)에서 달성한 득표율(61.0%)을 5% 포인트 이상 앞서는 성적표이다. 2001년 총선 득표율(75.3%)과 비교하면 8%포인트 이상 떨어지지만, 당시는 9·11테러의 충격과 불안감으로 집권당 지지율이 폭등한 예외적 시기라고 홍콩 아주주간은 분석했다. 실제 리 총리의 득표율은 1980년 이후 싱가포르 역대 총선 사상 두 번째로 높다.

리콴유에 이어 아들 리셴룽까지 이처럼 국민적 지지를 받으며 정치세습의 정당성을 사실상 보장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는 ‘먹고 살 거리’와 안전·치안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해주는 뛰어난 국정 관리 능력이다. 1960년대 중반까지 한촌(寒村)에 불과했던 곳이 국제경쟁력 1, 2위 수준의 강소국(强小國)으로 발돋움한 데는 리콴유의 리더십이 밑바탕 됐다는 것은 싱가포르인 대다수가 인정한다. 아들 리셴룽도 집권 2년여 동안 평균 7%가 넘는 경제 성장률을 달성했고,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와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 증후군) 같은 국가적 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하면서 두터운 신망을 쌓았다. 동남아 국가에 횡행하는 부패로부터 자유롭고 고(高)효율의 모범국가라는 브랜드도 싱가포르인의 자랑이다.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싱가포르 국민은 ‘삶의 질을 올려주면 계속 권력을 보장해주겠다’는 일종의 거래를 통치자와 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경제 못지않게 국방도 상당하다. 미국·대만과 준(準)군사 동맹 관계를 맺고 있는 싱가포르는 매년 국민총생산(GDP)의 6%를 국방비 지출에 쏟아 붓고 있다. 이는 중국·인도·일본을 포함한 아시아 전체를 통틀어 가장 높은 비율이다. 또 IT(정보기술)와 지식 기반시스템 접목을 골자로 한 ‘제3세대 첨단 국방전략 시스템’ 구축 작업을 진행, 막강한 군사력을 확보하고 있다.

사실 싱가포르 정부의 대(對)국민 서비스는 흠잡기 힘들다. 가령 지난 4월에 싱가포르 정부는 모든 성인에게 소득 수준에 따라 200~800싱가포르달러(약 11만8000~47만5000원)의 ‘성장 배당금’을 지급했다. “최근 경제성장으로 세수(稅收)가 크게 늘어 국민에게 보답한다”는 의미라는 설명도 곁들였다. 별도로 저소득층에는 최대 1200싱가포르달러(약 70만원)의 추가 배당금도 검토 중이다. 2004년 7월에는 경제 성장률이 목표치를 초과달성한 데 대한 대가로, 3만여명의 공무원에게 반 달치 급여를 특별보너스로 나눠줬다.

둘째는 유연하고 미래지향적인 리더십이다. 리셴룽 총리는 작년 8월 21일 독립 40주년 기념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40년 후 싱가포르는 완전히 다른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그때도 지금과 똑같다면 싱가포르는 죽은 것입니다. 그러기에 싱가포르를 재창조해야 합니다. 경제, 교육시스템, 서비스마인드, 도시를 완전히 재창조해야 합니다.” 리 총리는 “황량한 사막에 매년 4000만명씩 몰려오는 라스베이거스를 창조한 인간의 상상력과 기업가 정신을 배우자”며 싱가포르인의 단결과 분발을 촉구했다.

그러면서 첫 번째 타깃으로 ‘내니 스테이트(nanny state·보모국가)’를 정하고 변화를 행동으로 실천했다. 40년 동안 엄금했던 도박산업의 빗장을 풀고 30억달러(약 3조원)를 들여 시내 중심부와 센토사 섬 등 두 곳에 카지노·고급 호텔·쇼핑몰 등 15만평 규모의 복합 리조트 단지 건설에 나선 것이다. 또 요염한 나체쇼로 유명한 프랑스의 명물 카바레 ‘크레이지 호스(Crazy Horse)’가 아시아에서 처음 싱가포르에 문을 열었다. 나이트클럽·가라오케의 24시간 영업과 바톱 댄스(bar-top dance·술집 손님이 테이블 위에서 춤추는 것), 동성애 및 외설 영화 상영이 허용됐고 ‘성애(性愛) 관련 심야 TV프로’ 방영과 작년 말에는 수천 종류의 섹스용품을 다룬 ‘섹스 엑스포(sex expo)’도 열렸다. 성장 엔진도 금융·물류 중심 일변도에서 ‘실리콘 밸리형(첨단산업)’과 ‘샌프란시스코형(생명과학 허브)’ ‘라스베이거스형(오락산업 메카)’을 아우르면서 갈아끼우기 작업이 진행 중이다.

이렇게 보면 싱가포르의 리 왕조 건설은 순풍에 돛을 단 형국이다. 저항하는 야당 세력도 미미하고 40년 넘게 다진 지도부의 우수한 역량과 내부 부정부패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밑바닥 민심’이 더 이상 편안하게 먹고 사는 기존의 생활 방식에 만족하지 못하고 꿈틀거리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특히 이런 불만과 변화의 욕구는 20~30대 초반의 젊은층에서 분출되고 있다. 메이블 리(28·드라마 제작자)는 “우리가 원하는 것은 선택과 다양성”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특히 집권당과 야당이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어야 한다”며 “정부를 일방적으로 홍보·지지하는 언론의 왜곡 편향성이 고쳐져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 선진국이면서 정치는 사실상 일당독재 후진국이라는 ‘절름발이 구조’에 대한 반발심리가 퍼지고 있는 것이다. 싱가포르 동남아연구소(ISAS)의 테렌스 총 박사는 “젊은층은 경제안정 그 이상을 원한다”고 진단한다. 그는 “이들은 무엇보다 정치적 개방성 확대와 더 많은 야당 정치인의 의회 진출 희망을 공공연하게 표출한다”고 말한다.

노동당·민주당 등 야권의 움직임도 활발해지고 있다. 올 총선에서 84개 선거구 중 57곳에 후보를 내 여당 독주(獨走)에 대한 제동걸기에 나선 게 증거이다. 야권이 총선에서 전체 의석의 절반 이상에 입후보자를 낸 것은 20년 만에 처음이다. 경제 활황 분위기와 선거를 코앞에 둔 시점에서 정부의 ‘경제성장 배당금 분배’ 같은 공세에도 불구하고 야권이 33.4%의 득표율을 올렸다는 것 자체가 ‘절반의 성공’에 가깝다는 지적도 나온다. 리셴룽 총리는 개표 전까지도 84개 의석 전체 석권을 자신했었다. 그런 점에서 야당의 2석 확보는 나름대로 선전(善戰)한 것이다. 특히 노동당은 조지 여 외무장관이 출마한 알주나이드 선거구에서 44%대의 높은 득표율을 기록, 집권당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노동당이 후보를 낸 선거구에서 득표율은 평균 38.4%로 5년 전보다 10% 포인트 정도 치솟았다.

하지만 상당수 전문가들은 이변이 없는 한 ‘리콴유 왕조’는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호주 머독대 정치학과의 개리 로단 교수는 “집권층의 리더십과 정책 역량이 워낙 뛰어날 뿐 아니라 야당에 정치적 토론의 자유나 활동 공간 확대를 허용할 의향이 집권당에 아직 전혀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리 총리는 이번 선거 유세 중 정치 민주화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야당의 의석이 10석이나 15석, 20석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그러면 나는 싱가포르의 올바른 정책에 대해 고민할 시간에 어떻게 하면 야당을 꼼짝 못 하게 하고, 어떻게 지지표를 늘리고 내년의 국가적 과제보다 이번 주의 현안을 처리하느라 바쁠 것입니다.”

그가 꿈꾸는 ‘싱가포르의 길(Singapore Way)’은 ‘PAP 일당체제’의 틀 안에서 ‘제한된 변화’와 ‘재창조’를 통한 국가건설이 뼈대이다. 집권 후 리 총리는 ‘지식 혁명’과 ‘라스베이거스 정신’을 입버릇처럼 역설하지만 정치 개혁은 일절 언급하지 않는 양면성을 보이고 있다. 그렇지만 독립 이후 태어난 40세 이하의 젊은 국민이 전체 인구의 절반에 육박할 정도로 늘고 있는 것은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또 빈부격차가 심화하고 소수 명문 가문에 의한 장기적인 권력·부(富) 독점에 대한 반감이 확산되고 있는 것은, 리콴유-리셴룽을 잇는 ‘리씨 왕조 체제’를 언제든지 위협하는 압박 요인이 되고 있다. 리 총리가 이번 총선을 계기로 여당 의원 가운데 80% 정도를 새 인물로 물갈이 하고 다음 번 선거에서 최소 20명의 의원을 더 바꾸겠다고 약속한 것은 정치 민주화와 개혁을 요구하는 민심을 더 이상 외면할 수는 없다는 증거라는 지적이다. 싱가포르 국립대학 정치학과의 안토니오 랍파 교수는 “이번 총선에서 유권자들이 투표를 통해 변화를 원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며 “(야당 등과의) 미래의 싸움은 더 힘들어질 것이므로 리셴룽 정부는 싱가포르 내부 문제에 한층 더 관심을 쏟아야 한다”고 말했다.

아버지에서 아들로, 선거를 거쳐 2세대 정치 세습에 성공한 싱가포르는 앞으로도 다당제, 여야 정권교체 등이 실종된 후진국형 정치 문화를 고수할 것인가? 그리고 그런 싱가포르는 어떻게 건강하고 활력 넘치는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을까? 21세기 싱가포르의 변화상을 흥미롭게 관찰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06.6.4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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