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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몸은 내가 살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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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앤디0312 (cby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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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8-28
본문
아래는 제가 깊이 동감하는 글이라 한겨레 웹진에서 퍼 왔습니다. 몸살림의 취지와도 어울리는 글로써 우리 동호회 회원님들과 나누기 위함입니다.
자연이 ‘명의’다
독을 독으로 제압하려다 ‘만성’으로 뿌리 내려
많고 넘친 찌꺼기가 병 ‘밑거름’, 비워야 고쳐
누가 내 몸을 치유하나?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누구나 수긍할 만큼 당연하고 쉬운 내용이라 다소 허접하게 느껴지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방에서 무시로 찾아드는 질병을 보다 당당하게 맞고, 그 질병의 본색을 얼른 파악하여 그에 적절히 대응하며, 자연과 더불어 건강하고 힘찬 생활을 누리려는 사람들에게 나침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마음 놓고 약봉지에 의지하던 우리 몸, 결국 웃음 잃어
과학기술의 빠른 발달, 생활수준의 향상과 더불어 거대한 병원들도 불쑥불쑥 생겼다. 그에 따라 우리들의 질병이나, 약봉지, 의료비도 덩달아 쑥쑥 쌓여 온 것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다. 헤아릴 수 없는 특혜에 의기양양한 미소를 띠며 ‘이제 되었다!’고 마음놓고 약봉지에 의지하던 우리 몸은 결국 그 웃음을 잃고, 자연성을 잃고, 독자적인 치유 능력을 잃는 처절한 대가를 치르고 있는 상황이다.
노인들은 일터인 양 병원으로 출근하고, 희귀병은 어느덧 보편질환으로 바뀌었으며, 성인병은 이제 연령제한을 한껏 낮추었다. 최첨단 의료장비로 무장한 의학이 전면에서 지휘하고 있는데도 질병의 꼬리는 길어지고 그 세력이 강성해지는 것은 어인 조화일까?
뭐가 단단히 잘못된 것이고, 필시 곡절이 있지 않을까? 갖가지 예방주사와 비상한 약품들이 즐비한데도 어쩌자고 적들은 사방을 포위하고 진군을 멈추지 않는가? 혹 질병을 이해하고 대응하는 태도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 사태가 이렇다면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조근조근 따져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뿌리 그대로 둔 채 가지만 잘라내니 결국 ‘악의 열매’ 주렁주렁
질병을 다루는 일에는 기본적으로 두 방식이 있다. 하나는 투쟁적 방식이고 또 하나는 예방과 조화의 방식이다. 증상제거에 무게중심을 두는 것은 대부분 투쟁의 방식이다. 이는 독을 독으로 제압하는 방식이다. 근본 원인은 찾지 않은 채 아무리 가지를 잘라내 봐도 그 뿌리가 깊다면, 싹은 또 움트고 꽃이 피며, 머지않아 '악의 열매'가 열릴 것이다.
그것은 원인을 안에서 찾지 않고 밖에서만 구하기 때문이다. 적이니 무찌르겠다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선물도 받지 않으면 내 것이 아니듯 질병도 마찬가지다. 내부구조가 정갈하고 안정되면 자리할 수 없는 것이 질병이다.
많은 급성질환들은 몸에 담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기 위한 가장 지혜로운 해법이다. 결코 병으로 볼 일이 아니다. 자연적으로 치유하려는 이러한 몸의 해법을 소멸시키는 것은 강제적 치료기법이다. 이런 강압적인 기법이 반복 축적되면 결국 몸에 있는 문제를 치유하기 위해 생겼던 급성질환은 치유가 아닌 질병, 즉 만성질환으로 형태를 달리하고 만다. 어떠한 외부적 치료라 해도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내부에서 정리되고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 한 근본치료는 요원한 것이다.
무엇을 집어넣어서 해결하겠다는 생각부터 해결해야한다. 물론 원인이 외부에 있다면 외부적 치료를 해야 하지만, 내부에 그 뿌리가 있다면 내 몸이 부르짖는 아우성을 경청하고 따라야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것이 현대의학의 지대한 업적을 무시하는 발언이라는 식의 오해는 말았으면 한다. 다만 인체를 기계적 방식으로 이해하고 치료하기에 앞서, 인체를 자연의 일부로 이해하고 조화롭게 대처해야만 뒤탈이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을 뿐이다.
인체는 결코 기계가 아닌 거대한 자연의 일부이며, 또한 작은 우주이다. 몸은 또한 온몸이고 전체로서 하나다. 그 전체는 잘 짜여진 그물망처럼 빈틈없고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기계처럼 여러 부품의 조합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하니 특정 증상 하나에 매달리기보다 몸 전체의 이해를 바탕으로 접근하고, 조화롭게 수정해야 바른 근본치유다.
이미 종교가 돼버린 병원…의료기관 많아서 장수마을됐나
요즘 아이들을 보면, 언제 한번 제대로 앓아는 봤을까 의심스럽다. 아이가 조금만 열이 나도, 기침을 콜록거릴 때도, 또 어처구니없을 만큼 작은 증상에도 많은 부모들이 곧장 병원으로 달려간다. 색깔 구분 없이 십자가는 이미 우리에게 종교가 된 것인가!
물론 시급을 다투는 질환도 있지만, 대개의 급성 질환들은 스스로 치유할 시간을 벌기 위해 통증을 주는 것이다. 내적 부조화를 해소하기 위한 자생 노력이거나, 새로운 외적 조건에 적응하기 위한 내적 반응이다.
그런데 그 아픔이 마치 신의 언도인양 '믿습니다! 이 고통을 사하여주소서!' 라고 매달린다면, 피어난 꽃을, 잔가지를 도리 없이 꺾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증상의 뿌리에서 해결되지 않았으니 또 다른 가지에서는 더욱 튼실한 열매가 맺을 것이다. 단순한 질환의 통로가 봉쇄되고, 그것을 막아내느라 독을 사용했으니 점차 복잡하고 다루기 힘든 만성질환으로 공고한 뿌리를 내리게 되는 것이다.
믿어야 할 때 믿더라도, 불필요한 검사와 약물남용으로 점차 맹신도가 되어 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내 몸의 의사는 자신의 생명력이고, 내 몸의 권위는 내가 지녀야 한다. 건강한 장수마을은 뛰어난 의료시설이 많아서인가? 의료시설이 선진화되고 병원을 자주 방문한다고 건강해지는가? 오히려 의료에서 멀어야 천수를 누린다.
자르고 싸우는 ‘투쟁요법’이 화…새는 배 아프다고 의무병 안 불러
야생동물이 아프면 먼저 휴식을 취한다. 음식을 거부하거나 진흙 속에 몸을 담그고 자연이 해결해 주도록 내버려둔다. 하는 일이라곤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다. 날던 새가 날개 아프다고, 소화가 안 된다고 '의무병'을 부르겠는가? 야생동물이 비만, 당뇨, 혈압, 암으로 힘들어하다 죽어가는가? 그저 고목 쓰러지듯 한 순간 자연으로 돌아갈 뿐이지.
자연의 힘이, 내 몸의 자연성이 그 병을 돌려놓는다. 그러다 시절인연이 다하면 대자연의 품으로 흩어지는 것이다. 그러니 자연에서 답을 찾자는 것이다. 막고, 자르고, 싸우는 투쟁적 방식이 아니라 순리를 따르고 몸과 자연의 목소리를 경청하자는 것이다.
아프면 그 이유가 있고 해법도 바로 거기에 있는 것이다. 또한 아프면 무엇을 넣기보다, 비워서 해결하는 것이 이 시대의 순리다. 지금 무엇이 부족해서 만들어진 질환이 얼마나 되겠는가? 많고 넘쳐서 이지경이 된 것이다. 그 쌓여서 정체된 찌꺼기들이 질병의 밑거름이다. 몸도 마음도 비우는 것이 작금의 순리다.
깨진 자연성 먼저 복원하고 그래도 답 없으면 의사 조언 참조
무조건 내 몸을 의사에게 의탁하기보다는, 스스로 삶을 되새겨 어디에서 자연성을 깨고 있는지 확인하고 복원해야 한다. 그래도 답을 찾지 못할 때 의사의 조언을 참조할 일이다. 이것이 내 몸의 주인 된 자세다. 자연의 이치를 살핀다면, 결코 난해한 일도 아니다. 저 들짐승, 날짐승들이 6년 교육을 받아야 건강하고 자유롭게 하늘을 날고 산천을 뛰어다니는가?
우리의 본능과 몸의 외침을 들어준다면 그리 심오한 지혜가 필요한 게 아니다. 내 몸은 건강한 자연상태를 유지하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조금만 살피고 화답해 주어도 조화롭고 건강한 삶을 살아낼 수 있다. 이치를 알게 되면, 비록 질병은 길었어도 치유는 짧은 것이다. 그 길을 바로 알고, 내 몸을 제대로 치유할 수 있는 이는 바로 '나' 자신뿐이다.
결국 이 말들의 밑바탕에는 우리가 너무 자연으로부터 멀어져 있었다는 것이다. 자연으로 돌아가자! 봇짐 싸서 지리산으로 강원도로 들어가자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살피고 거울삼아 순리대로 사는 것이 지혜롭고 건강한 삶이다.
이 허접하고 빤한 이야기가 그럼 직하게 들린다면, 우리가 너무 멀리 왔기 때문이다. 자연이라는 고향마을에서.
댓글목록
thanks2500님의 댓글
thanks2500 (sylee)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