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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철의 몸살림 이야기<20> 비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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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앤디0312 (cby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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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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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초입에 들어선 하루하루가 사뭇 정취를 달리하고 있습니다. 풀벌레 소리는 여름의 절정을 넘긴 시간을 아쉬워하고 수그러든 태양의 열기도 이제는 제몫을 다했다는 생각에서인지 긴 그림자만 남기고 초연하게 사라지고 있습니다. 무슨 대가를 바라지도 않고 자신을 온통 몰두시키는 여름의 고된 노동이 한편 고마우면서도, 가을의 서늘한 바람이 지금은 보다 더욱 반가운 것이 숨길 수 없는 진정입니다.
이른 새벽에 찾아드는 아침 해도 이제 서서히 속도조절에 들어갈 것이고, 짧아지는 낮 시간에 맞추어 귀가 길의 도시도 변모해갈 것입니다. 계절의 논법이라는 것은 우주적 생명의 동선을 따라 전개되는 것인지라 그 움직임의 규모는 감히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이지만, 우리의 일상에 스며드는 힘은 매우 구체적이고 섬세해서 우주 전체의 맥박을 감지하는 신비를 맛보게 되는 듯 합니다.
아무리 기를 쓰고 물러서려 하지 않아도 퇴장의 시간은 어김없이 오기 마련이며, 낯을 가리거나 또는 겸손이 지나쳐 주저한다 해도 무대 위에 올라야 할 때가 결국 당도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니 한참 기세가 드높다고 안하무인(眼下無人)으로 기고만장(氣高萬丈)할 일이 당연히 아니며, 나야 뭐 하면서 미적거린다고 자신이 감당할 차례가 그냥 지나쳐 주는 것도 아닌 것입니다.
하여 인생은 계절의 화폭에 다채로운 색깔로 담겨져 있으며, 우리는 그 안에서 자기도 모르게 하늘의 뜻을 배우는 자가 됩니다. 시간의 운행과 운명이 서로 어떻게 얽혀 들어가는가를 깊이 고뇌했던 옛 사람들의 마음에 고개가 비로소 끄떡여지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온 우주는 우리에게 영원한 일깨움의 터가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깨우침만큼 성숙해져 갈 것입니다.
마음은 깊어지고 영혼은 투명해지며 몸 안에서 새로운 피가 도는 것을 느낄 수 있다면, 우리는 그만큼 신선한 생기를 뿜어내는 존재가 되어갈 것입니다. 그런데 그건 그냥 되는 것은 아니고 시절의 변화와 함께 하는 마음과 몸을 갖춰가는 일과 관련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도시의 문명에 너무 오래 익숙해진 나머지 자꾸 그런 능력을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여름이 우람하게 무장을 한 장수가 불마차를 앞세우듯 이글거리는 표정으로 들판을 거세게 달려 온다면, 가을은 다소곳하면서도 우아하게 미소 지은 채 사뿐히 다가오는 코스모스 언덕길의 여인인 듯 합니다. 그래서인지 가을은 향기롭고, 또한 은밀히 감춰두었던 우아한 자태를 드러냅니다. 그건 매우 유혹적인 시간을 의미합니다. 이제껏 닫혀 있던 것들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가을은 잔뜩 신경을 곤두세우며 무장했던 것들을 스스럼 없이 풀고, 원초의 심성으로 돌아가는 계절이기도 합니다. 소멸되었던 여유도 되찾고, 막혔던 소통의 통로도 새로 구축하면서 우리는 혹여, 바쁘게 지내면서 잃어버렸던 자신과 이방인처럼 대했던 이웃을 새롭게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가을 저녁의 기분 좋은 바람 속에서, 이제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해도 괜찮은 시간인가 봅니다. 가을의 도시는 그래서 다소 어설프게 소란해도 아름답게 느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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