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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철의 몸살림 이야기<3> 무애스님 세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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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앤디0312 (cby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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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13-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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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애스님의 스승, 최천리 선생
김철의 몸살림 이야기<3> 무애스님 세번째 이야기
  무애 스님께서는 필자가 배우면서 함께 기거한 4년 동안 스님의 머리를 깎고 게를 준 스승이 되는 스님에 대해서는 한 번도 말씀하신 적이 없다. 원래 말수가 적던 스님이 그래도 여러 번 번 말씀해 주신 것은 스님의 스승이 되시는 최천리 선생에 관한 것이었다.
  
  무애 스님의 스승 최천리 선생
  
  무애 스님은 어렸을 때 상원사에 맡겨졌다고 한다. 필자는 그때를 1910년대 중후반경이 아닌가 짐작하고 있다. 모든 것을 훌훌 털고 사시는 스님께서는 과거의 인연을 별로 중하게 여기지 않아서인지 자세한 말씀은 해 주지 않으셔서 이렇게 추측해 보는 것이다. 당시는 찢어지게 가난한 시대인지라 먹고살 것이 없을 때 아이를 절에 맡기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었다. 스님은 동자승이 돼서 절에서 살게 되신 것이다.
  
  그런데 이 절에 천리 선생께서 자주 들르셨다고 한다. 원래 천리 선생께서 사시는 곳은 무산인데, 무산에서 부산 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상원사가 그 길목에 있었기 때문에 자주 들르신 것이라고 한다. 그 천리 선생과 질긴 인연이 있어서인지 젊어서부터 무려 30년간을 선생을 따라다니면서 인술을 배웠다고 한다.
  
  함경북도 무산(茂山)이라는 곳은 재미있는 지역이다. 무산은 백두산과 바로 연결돼 있다. 무산이 백두산의 일부라고 보면 된다. 백두산 남동쪽 지역이 무산군에 속하는 것이다. 민족의 영산(靈山)이라 불리는 백두산 기슭 무산 쪽에는 특별한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았다고 한다. 마치 남한의 계룡산 지역이 영험하다 하여 기도하고 수련하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드는 것과 마찬가지로, 백두산 무산 쪽에도 이런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았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무산신궁(茂山神宮)이라 불리는 곳이 있었는데, 이곳에는 수천 년부터 신통한 사람들이 모여서 살고 있어 일반인으로부터 이 이름으로 불렸다고 한다. 계룡산 중에서도 신도안(新都內, 신도내) 쪽에 더 많은 도인들이 모여 사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하겠다. 신도안이란 조선 태조 이성계가 새 도읍으로 삼으려고 하다가 국도(國都)로는 부적합하다는 여론이 많아 공사 1년 만에 중지한 신도의 안쪽에 있는 지역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무산신궁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자기들이 살고 있던 곳을 스스로 인촌(仁村)이라 불렀다고 한다. 도인 중에서도 인술을 펴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라는 뜻이다. 인술이란 몸살림운동처럼 다른 사람의 아픈 곳을 고쳐 주는 행위를 말한다. 이에 비해 체술(體術)이란 자기 몸을 단련하는 것을 말하고, 무술이란 타인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는 방법을 말한다. 말하자면 무산신궁에는 수천 년 전부터 의자(醫者)들이 집단적으로 거주하고 있었던 것이다.
  
  최천리 선생께서는 이곳에 거주하면서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인술을 펼치셨다고 한다. 천리는 선생의 본명이 아니라 별명이었다. 하루에 천 리(400km)를 걸어 다니면서 인술을 편다고 해서 붙은 별명인데, 그렇게 몸이 빠르셨다는 것이지 실제로 하루에 천리를 걸어다니셨다는 얘기는 아닐 것이다. 스님께서 선생의 본명을 말씀해 주시지 않아 선생의 본명은 나도 모른다.
  
  진흙집으로 장티프스를 고치다
  
  천리 선생께서 병을 고친 얘기 중에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열병(그 중에서도 장티푸스)에 관한 것이었다. 지금 그 지역이 어디였는지 기억이 안 나는데, 경상남도였던 것만은 분명하다. 이때에도 무애 스님은 천리 선생을 모시고 다녔기 때문에 분명하게 보았다고 한다.
  
  요즘에야 장티푸스는 예방주사 한 방만 맞으면 평생 걸리지 않기 때문에 거의 퇴치가 된 병이지만, 일제시대까지만 해도 장질부사(腸窒扶斯)라고 해서 참으로 무서운 병이었다. 한번 돌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인근 마을로 퍼지고 치사율이 대단히 높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병이 돈 마을은 아예 전체를 불질러 없애 버리고 했던 것이다.
  아무리 무서운 전염병이 돌아도 모든 사람이 그 병에 걸리는 것은 아니다. 우선 전염병이 돌아도 누구나 병원균에 노출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병원균에 노출되지 않으면 그 병에 걸릴 리가 없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면역체계가 튼튼한 사람은 병원균이 들어와도 스스로 이를 퇴치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몸이 완전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으면 웬만큼 병균이 들어와도 대개는 스스로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척추가 바로 서고, 오장육부가 자기 위치에서 변형되지 않고 원래의 모습을 유지하며, 공명이 트여 있으면 어지간해서는 병에 걸리지 않는 것이다(<몸의 혁명> 참조).
  
  그렇다면 장티푸스에 걸린 사람은 몸이 틀어져 있을 것이고, 첫 번째로 그 사람에게 해 주어야 할 일은 틀어진 몸을 바로잡아 주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한다고 해서 모두 낫는 것은 아니다. 이미 병이 너무 깊게 진행된 사람은 약을 함께 쓰지 않고는 스스로 나을 수가 없다. 이미 오랫동안 떨어져 있었던 면역체계의 능력이 한꺼번에 되살아나지는 않기 때문이다.
  
  장티푸스도 마찬가지다. 이미 깊어진 사람은 몸을 바로잡는다고 해서 낫지는 않는다. 이때 천리 선생께서 약을 대신해서 사용하신 방법이 진흙집이었다고 한다. 진흙으로 집을 지어 놓고 장티푸스 전염병 환자 수십 명을 수용하게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한 발짝도 나오지 못하게 했다.
  
  그랬더니 3주 만에 환자 전체가 회생을 했다고 한다. 진흙에서 살고 있는 미생물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자세한 메커니즘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필자는 그 미생물이 약의 역할을 한 것으로 믿고 있다. 실제로 폐가 나쁜 사람은 황토집에 들어가 있으면 금방 좋아지고, 위가 나쁜 사람은 육쪽마늘을 장기 복용하면 효험이 탁월하다.
  
  이렇게 우리 민족에게는 자연에 있는 것을 이용해서 건강을 되찾는 탁월한 방법이 무궁무진하게 널려 있었다. 인간은 자연적 존재이고, 따라서 자연 안에서 스스로 건강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현대 물질문명은 이렇게 좋은 방법은 모두 버리게 하고, 거꾸로 인공에 의존해서 우리 몸을 망치게 하고 있다. 무애 스님은 천리 선생께 자연에 의존해 스스로 건강할 수 있는 방법을 전수받은 것이다.
  
  황종국 판사의 <의사가 못 고치는 환자는 어떻게 하나?>에 나오는 다음의 말은 아주 적절한 지적이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이 나라, 이 백성은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의료 풍토와 의료 자질을 타고났다. 지구상에서 가장 훌륭한 의료문화의 전통과 의술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의사와 한의사는 20~30%밖에 못 고치지만, 이 땅의 이름 없는 민중 의료인들은 적어도 80~90%의 환자를 능히 고쳐낸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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