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한번쯤은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들에 대하여 동경하게 된다. 혹은 강렬하게 자신의 마음을 움직인 멋진 그림을 발견하게 되었을 때 그렇게 그려보고 싶다거나 소유하고 싶어진다.
그림을 구입할 때, 인테리어의 목적도 있지만 어떤 이는 작가의 영혼을 소유하고 싶어서 구입하기도 한다. 후자 쪽은 그 그림과 사랑에 빠진 경우다. 그러나 소유에서 만족할 수가 없다면 근본적인 갈증을 채울 수 없다. 결국 본인이 직접 붓을  집어드는 상황이 발생한다.
그림은 그리움이라는 말에서 비롯되었다는 말을 들어보았는가? 현재는 사진 기술이 발달해서 정확하고 고정된 이미지를 참고하여 화폭에 옮겨낼 수 있지만 그 옛날 인간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을 땐 사진은 없었다. 즉, 실물을 직접 보거나 봤던 것을 떠올려서 그려야 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무언가를 기록할 때 실뭉릉 보고 최대한 비슷하게 옮겨내야 했다. 그렇다면 앞서 말한 그리움이란 것과 거리가 멀지 않은가.

언젠가 이런 경험을 했었다. 여행을 다니던 중 인상 좋은 어떤 이를 만나게 되었다. 짧았지만 많은 대화를 나누었고 나는 곧 여행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어느날 드로잉북에 무언가를 그리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특별한 의도없이 그렇게 그린 것을 들여다보니 그 안에는 다음 아닌 여행 중에 만났던 이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그것은 그리움으로 ㄱ려진 그림이었다. 어찌된 일인지 그리움의 감정으로 그림을 그린 다음부터 무언가가 해소된 느낌이었다.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그 여행자에 대한 내 나름의 끼적임은 객관적인 사진보다 더 리얼하고 정확한 이미지였던 셈이다. 실제 모습과 영 딴판일 수도 있으나 난 그 그림을 볼때바다 여행지에서의 느낌, 그때의 상황, 대화 하나하나를 함께 떠울릴 수 있었다. 이렇게 본다면 역시 그림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선 그 무언가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림을 그리고 싶어하는 이들은 모두가 이렇게 감성적인 목적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지난 몇년 동안 내게 그림을 배우러 왔던 이들의 유형을 대략 정리하자면 아래와 같다. 당신도 해당사항이 있는지 한번 훑어보시라.

1. 여가시간에 취미활동을 하려고
2. 본인 직업의 기초를 탄탄히 하기 위해
3. 특기사항을 만들기 위해
4. 표현의 자유를 위해
5. 미술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서

1번의 경우, 불과 몇년 전부터 급격히 늘어난 추세다. 예전에 그리기는 전공자가 주로 하는 일이었고 일반인들은 따로 많은 것을 준비해야 배워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인터넷의 발달로 정보도 방대해지고 검색도 신속해져서 준비의 막막함을 벗어날 수가 있게 되었다. 또한 개인적인 영역이 점점 더 중요해지면서 취미활동의 종류도 점점 확대되었다. 그 중 뚜렷한 특징은 전문가의 영역을 개인의 취미 영역으로 끌어들여 즐길 줄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배움을 넘어서서 그것들을 즐기고 있다. 그림도 마찬가지다. 전문가들의 영역이었던 드로잉, 크로키에 대한 매력을 일반인들이 점점 더 많이 알아가고 있고 온라인에서는 비전문가들이 카툰을 만들어 연재하기도 한다.
2번은 대개 미술응용계열 종사자들이 많고 3번은 1번과는 비슷한 매락이지만 단순히 여가 시간을 즐기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자시만의 특기로 삼기 위해 그림을 배우는 경우이다.
4번의 경우, 이것 역시 1번과 같은 맥락이지만 표현의 자유가 그리기의 목적인 분들에게는 실력향상보다는 심리적인 것에 더 촛점을 두라 말하고 싶다. 무언가를 발산한다는 것이 마음의 응어리나 갑갑함을 조금이나마 해소시켜 줄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닌가.
마지막으로 5번의 경우는 내가 그동안 가장 많이 만나 본 사람들이었다. 상황과 여건이 안되어 미대를 가지 못한 분들, 미대나 디자인 관련 학과를 졸업 후 미련을 갖고 다시 시작하고자 하는 분들, 전공자는 아니지만 그림을 배우려고 학원을 다녔다가 중단 후 다시 시작하는 분들, 그림을 한 번도 배워보진 않았지만 계속 미루다가 용기를 내신 분들....
여기서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하자면 누군가가 살아생전에 그림 그리기에 마음이 갔다면, 자신이 원하는 실력에 도달할때까지 늘 숙제를 안고 살아가는 기분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그림을 그려보겠다고 시도해보는 사람들은 여러가지 그 이유가 있다.
그리고 그 이유를 각자가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한다. 한가지 명심할 점은 순간적으로 마음을 들끓었다가 사그라지면 그만두기에는 이 세계의 매력이 너무 강렬하다는 것이다. 특히 맛을 봤다면 더더욱 끊기가 힘들다. 어거주춤하느니 차라리 제대로 정면을 바라보는게 좋지 않을까? 그림을 왜 그리고 싶은지 잘 모르겠다면 어쩌면 당신은 더더욱 큰일 났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선 마음이 이끄는 대로 가보시라. 진정한 사랑에는 이유가 없다고 했는데 무슨 말인지는 잘 알 것이다. 뒷일은 책임 못진다. 중요한건 늦었다고 생각될 때가 시작이니까.